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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 화상석 - 효자고사도

Gijuzzang Dream 2008. 10. 2. 16:18

 

 

 

 

 한(漢) 화상석에 표현된 효자고사도

 

 

 

 

 

 

효자정란도(무량사 서벽)

 

화상석은 묘실, 사당 등과 같은 건축물에 사용된 석재의 표면을

선이나 면으로 깍아내어 그림을 새긴 것을 말하는데,

조각과 회화의 두 가지 특징을 겸비했으며

예술적으로 뛰어나 중국회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산둥성(山東省) 자샹현(嘉祥縣) 남쪽의 무씨묘지에서 발견된 무씨사 화상석 탁본은

중국 한대(漢代)의 화상석으로 가장 유명하며

내용이 풍부하여 화상석의 예술적 수준이 가장 높은 곳이다.


무씨묘지의 석각은 일찍이 북송 말 <금석록(金石錄)>에 소개된 바 있고,

청(淸) 건륭(乾隆) 때부터 탁본으로 유포되어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프랑스, 일본, 미국 등의 고고학자에 의해 조사가 되어 초보적인 사당의 복원안이 이루어졌고,

1981년 산둥성박물관의 장영거, 오문기의 연구를 바탕으로

무량사, 무영사, 무개명사 세 개의 사당이 복원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신화전설, 귀신신앙, 선인세계와 인간 현실세계 등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중 인간의 현실세계를 표현한 내용을 보면

유교의 충, 효, 절, 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역사고사화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특히 효는 유교에서 가장 으뜸의 덕목으로 여겨져

무씨사당의 무량사, 무영사, 무개명사에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새겨져 있다.

 

이 중 ‘효자정란각목(孝子丁蘭刻木)’고사는

「태평어람(太平御覽)」의「효자전(孝子傳)」에서 취한 것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실부모한 정란(丁蘭)은 부모에 대한 효도를 하지 못함을 아쉬워하여

나무로 부모의 형상을 깎아 집에 모시고 공양하였다.

마치 부모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고

외출을 할 경우에는 반드시 나무로 만든 부모의 상에 고하였다.

한번은 이웃이 이 목상을 빌리고자 하였으나 아버지의 목상에 좋지 않은 기색이 보여 거절하였다.

이에 대한 불만을 품은 이웃이 화가 나서 몽둥이로 목상을 치며 머리를 때렸다.

정란이 부친의 목상을 보니 그 얼굴에 분노하고 불만이 가득차 있는 기색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하여 보검을 빼 들고 결국 그 이웃을 찔렀다.

관리에게 체포된 정란이 붙잡혀 가면서 부모의 목상을 향해 이별을 고하는데

이때 부친의 목상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군현의 관리가 이를 보고 그의 효행에 감동한 결과임을 인정하고

그를 석방시키고 포상을 내렸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법률의 각도에서 보면 정란이 흉악한 살인범이지만

그의 행동은 오히려 효행으로 간주되어 ‘효’는 일찍이 유교에서 만사의 근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무량사에 표현된 효자정란도를 살펴보면

왼쪽에 정란 아버지의 목상이 있고 정란은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공양하고 있다.

오른쪽 위에 앉아 있는 여인은 정란의 처이다.

왼쪽 목상위에  ‘丁蘭二親終歿, 立木爲父, 隣人假物, 報乃借與’ 라는 제기가 있다.

박성혜(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

- 박물관신문, 2008년 9월(제 445호) 

 

 

 

 

 

 

 

 

 

 효행으로 용서받은 살인죄 - 한대 화상석

 

 

화상석은 묘실, 사당 등과 같은 건축물에 사용된 석재의 표면을 선이나 면으로 깎아내어

그림을 새긴 것을 말하는데, 조각과 회화의 두 가지 특징을 겸비했으며

예술적으로 뛰어나 중국회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산둥성(山東省) 자샹현(嘉祥縣) 남쪽의 무씨묘지에서 발견된 무씨사 화상석 탁본은

중국 漢대의 화상석으로 가장 유명하며 내용이 풍부하여 화상석의 예술적 수준이 가장 높은 곳이다.

 

무씨묘지의 석각은 일찍이 북송 말 <금석록(金石錄)>에 소개된 바 있고,

淸 건륭 때부터 탁본으로 유포되어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프랑스, 일본, 미국 등의 고고학자에 의해 조사가 되어 초보적인 사당의 복원안이 이루어졌고,

1981년 산동성박물관의 장영거, 오문기의 연구를 바탕으로

무량사, 무영사, 무개영사 3개의 사당이 복원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신화전설, 귀신신앙, 선인세계와 인간 현실세계 등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중 인간의 현실세계를 표현한 내용을 보면

유교의 忠, 孝, 絶, 義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역사고사화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특히 효는 유교에서 가장 으뜸의 덕목으로 여겨져

무씨사당의 무량사(武梁祠), 무영사(武榮祠), 무개명사(武開明祠)에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새겨져 있다.

 

이 중 '효자정란각목(孝子丁蘭刻木)' 고사는 <태평어람(太平御覽)>의 '효자전(孝子傳)'에서

취한 것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실부모한 정란(丁蘭)은 부모에 대한 효도를 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나무로 부모의 형상을 깎아

집에 모시고 공양하였다. 마치 부모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고

외출을 할 경우에는 반드시 나무로 만든 부모의 상(像)에 알렸다.

한번은 이웃이 이 목상을 빌리고자 하였으나 정란은 아버지의 목상에 좋지 않은 기색이 보여

거절하였다. 이에 대한 불만을 품은 이웃이 화가 나서 몽둥이로 목상을 치며 머리를 때렸다.

정란이 부친의 목상을 보니 그 얼굴에 분노하고 불만이 가득차 있는 기색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하여 보검을 빼 들고 결국 그 이웃을 찔렀다.

관리에게 체포된 정란이 붙잡혀 가면서 부모의 목상을 향해 이별을 고하는데

이때 부친의 목상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군현의 관리가 이를 보고

그의 효행에 감동한 결과임을 인정하고 그를 석방시키고 포상을 내렸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법률의 각도에서 보면 정란이 흉악한 살인범이지만 그의 행동은 오히려 효행으로 간주되어

'효'는 일찍이 유교에서 만사의 근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효자정란각목(孝子丁蘭刻木)'고사는 무량사, 무영사, 무개명사에 모두 표현되어 있다.

무량사에 표현된 효자정란도를 살펴보면 왼쪽에 정란 아버지의 목상이 있고,

정란은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공양하고 있다.

오른쪽 위에 앉아 있는 여인은 정란의 처이다.

왼쪽 목상 위에 '丁蘭二親終歿, 立木爲父, 隣人假物, 報乃借與' 라는 제기가 있다.

 

 

이 외에도 무영사, 무개명사에도 각각 효자정란도가 표현되어 있으며,

정란의 아버지를 표현한 목상은 몸부분을 모두 권운문(卷雲文, 고사리문양)으로 표현하고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관 중국실, 박성혜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와의 대화, 제109회>, 2008년 10월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