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미인도의 비밀

Gijuzzang Dream 2008. 10. 2. 00:00

 

 

 

 

 

 매혹적인 미인도의 비밀

 

 조개껍질, 진사, 한지의 조화

천재화가 신윤복과 김홍도의 삶을 다룬

이정명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 ‘바람의 화원’이 드라마로 만들어져

9월 24일 SBS에서 전파를 탄다. 11월 13일에는 영화 ‘미인도’가 개봉된다. 과학의 눈으로 신윤복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봤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영화 ‘미인도’는 모두 신윤복을 남장여자로 설정했다.

"그린다는 것이 무엇이냐?"(김홍도)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리움은 그림이 되고,
그림은 그리움을 부르지요."(신윤복)
- 소설 ‘바람의 화원’ 중에서 -

조선 후기 대표적 화가 김홍도(金弘道, 1745년~?)와 신윤복(申潤福, 1758년~?)이
21세기적 상상력으로 책과 스크린에 살아났다.

필자도 소설 ‘바람의 화원’을 읽은 뒤 우리 옛 그림에서 뜯어보고 읽어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이렇게 풍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삼 놀랐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장승업과 더불어

조선 후기 3대 화가로 불린다.

김홍도가 서민들의 생활을 주로 그렸다면

신윤복은 남녀간의 은밀한 정을 소재로 많이 삼았다.

그래서인지 신윤복은 섬세하고 유연한 선과 색채의 ‘달인’이었다.

소설과 드라마, 영화에서 신윤복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남장여자로 설정한 점은

그의 이런 여성적인 화풍에서 상상력을 발휘했으리라.

신윤복이 여자가 아니라면 어찌 이리 여자의 심리를 잘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붉은색은 황화수은, 하얀색은 산화칼슘

 

신윤복의 그림을 분석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신윤복의 그림은 동양화인가, 한국화인가.

그동안 미술계에서는 동양화와 한국화라는 명칭을 섞어 사용하다가

최근에는 한국화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본질적으로는 동양화와 한국화가 동일하다.

그렇다면 한국화와 서양의 수채화는 같은 것일까?

서양의 수채화 기법으로 한국화를 그릴 순 없을까?

한국화나 수채화 모두 물을 매개로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서양의 수채화는 물감의 전색제(vehicle)로 아라비아검을 사용하기 때문에

마른 뒤 수용성이 유지되는 반면 한국화는 아교를 사용해 마른 뒤에는 불용성이 된다.

이 때문에 서양의 수채화는 한번 마른 뒤에도 물에 닿으면 색이 번져 보존하기 어렵지만

한국화는 오래 보존된다. 흔히 한국화는 병풍이나 틀에 풀로 붙이는 배접과정을 거치는데,

이것도 한국화가 물에 강하다는 이점을 활용한 것이다.

또 신윤복은 종이나 비단에 그림을 그렸는데,

‘종이는 1000년 비단은 500년을 간다’는 ‘지천년견오백’(紙千年絹五百)이라는 말처럼

한지도 한국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종이는 105년 중국 채륜이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후 조선의 종이가 품질이 좋아

중국의 화가들도 조선의 종이를 구하려고 애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왜 조선의 종이가 좋은 것일까.

한지는 닥나무로 만든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자라는 닥나무는

중국과 일본에서 서식하는 닥나무에 비해 섬유가 가늘고 길다.

래서 한지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거칠게 스며들지 않고 섬세하고 치밀하게 스며든다.

종이를 만드는 방법도 다르다.

소설 ‘바람의 화원’에서는 조지서 장인의 종이 뜨는 작업을

‘초지를 할 때 종이의 결을 반대로 두 겹 세 겹 거듭하는 복초지 기술만은 이 공장의 비법이라

하겠지만 (중략) 전후좌우로 초지를 마음대로 하는 것이 기술이라면 기술이겠지’라고 묘사한다.

 

그래서 중국이나 일본의 종이는 섬유가 한 방향으로만 늘어선 반면 한지는 섬유가 직각으로 엇갈린 구조다.

현미경으로 한지를 관찰하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한지는 질기면서도 물감의 번짐이 사방으로 일정하다.

어쩌면 이런 특징이 신윤복의 화풍을 더욱 돋보이게 했는지도 모른다.

신윤복은 우리나라 어느 옛 화가들보다 색채를 잘 구사했다.

그의 ‘미인도’(美人圖)에서 치마의 옥색과 속치마고름의 붉은색은 유달리 눈에 띈다.

특히 속치마고름의 붉은색은 진사(辰砂)라는 광물에서 얻는데, 한국에서 흔히 주(朱)라고 부르는 색이다.

 

 

진사의 주(朱) 성분은 황화수은(HgS)이다.

독성이 매우 강하지만 색이 아름다워 오랫동안 화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왔다.

서양에서는 '버밀리언'이라고 부르는 붉은색이 여기에 해당한다.

변색도 잘 일어나지 않아 ‘미인도’에서 여인을 칠한 다른 모든 색은 누렇게 변했지만

속치마고름만은 여전히 생생한 붉은색을 자랑한다.

한국화 중에서도 채색화에는 흰색 안료를 쓰기도 하는데,

이때 도자기 재료로 사용되는 백토(白土), 수정 원석을 간 수정말, 광택이 뛰어난 운모 같은

여러 가지가 이용된다. 그 중에서 호분(胡粉)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하얗게 되는 특성이 있다.
이는 호분이 조개껍질을 빻아 만들기 때문이다.

조개껍질의 주성분은 산화칼슘(CaO)으로 산화칼슘이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 산화되면서 소위 탈색된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색이 좀 남아 있는 조개껍질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고

아주 하얀 조개껍질은 죽은 지 오래된 것인데, 이것도 같은 원리다.

한편 소설에서 도화서 화원을 독살할 때 등황이라는 안료를 사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등황은 중국, 태국에서 자라는 망고스틴 나무의 줄기에서 채취한 수액으로 만드는데,

화학적으로는 폴리페놀계의 감보지산이 주성분이다. 독성이 있어서 7g 정도가 치사량이다.


 

신윤복은 원근법을 몰랐을까?

 

신윤복은 비틀어 보기의 달인이었다.

‘월야밀회(月夜密會)’는 야심한 밤 한 여인이 남녀가 몰래 만나는 것을 훔쳐보는 장면을 묘사했다.

남자는 군복을 입고 손에 장창을 들고 있으니 군관으로 짐작되고,

옆 담에 붙어 숨어서 엿보는 여인은 옷차림으로 보건대 군관의 부인쯤 된다.

 

 

 월야밀회(月夜密會)

신윤복은 서양화보다 반세기나 일찍 다시점을 실험했다.

이 그림에는 여인이 훔쳐보고 작가가 숨어서 보는 2개의 시선이 들어 있다.

 

 

그런데 신윤복은 이 여인의 발을 양 옆으로 쫙 벌려 담에 평행하게 붙여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게다가 ‘월야밀회’에는 시선이 두 개다.

하나는 그림 오른쪽 위에서 몰래 훔쳐보는 여인의 시선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림 오른쪽 아래 담 안에서 화가가 숨어서 보는 시선이다.

 

서양화에서도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폴 세잔에 이르러서야 겨우 나타나기 시작하는 다시점을

신윤복은 반세기나 더 일찍 이 그림에서 실험했다.

‘이부탐춘’(이婦貪春)에서도 그의 대담한 시선이 돋보인다.

두 여인이 나뭇가지에 앉아 마당의 개 두 마리가 짝짓기하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왼쪽 담을 유심히 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담의 앞쪽보다 멀리 있는 뒤쪽이 더 크게 묘사됐다.

이는 역원근법으로 사실과는 명백한 모순이지만 한국화에서는 흔히 사용되는 기법이다.

신윤복이 원근법을 몰랐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내면세계를 극대화하기 위해 작가가 숨겨놓은 장치인 셈이다.

 

이부탐춘(婦貪春) -  "과부가 봄빛을 즐기다"

  '이부[嫠婦]'란 과부[寡婦]란 뜻이며,

담의 앞쪽보다 뒤쪽이 더 크게 묘사됐다.

등장인물의 내면세계를 극대화하기 위한 작가의 장치다.

 

 

흰 도포를 입은 양반이 붉은색 옷을 입은 별감을 내세워

야밤에 수청을 들 기생을 데리고 가는 ‘야금모행’(夜禁冒行)에서도 이런 역원근법이 잘 나타난다.

그림 오른쪽에 등을 든 동자가 앞서고 있는데, 그 키가 비현실적으로 작다.

이는 동자의 신분이나 중요도가 양반과 기생에 비해 미천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야금모행(夜禁冒行) - "야간 통행금지를 무릅쓰고 가다"

맨 오른쪽에 등을 든 동자의 키가 비현실적으로 작다.

신윤복은 역원근법을 써 신분이나 중요도를 드러냈다.

 

 


 

큰 붓 하나로 세밀한 선까지

 

한국화를 그릴 때 사용하는 붓은 중심에 강하고 탄력 있는 털을 심은 점이 특징이다. 덕분에 큰 붓 하나로 작은 무늬까지 칠할 수 있다.

영화 ‘미인도’에는 신윤복(김민선 분)이 청동 붓을 선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저잣거리 씨름판에서 한판 씨름이 벌어지고 씨름판이 내려다보이는 누각에

김홍도(김영호 분)가 앉아 그 풍경을 그리는데,

그런 김홍도를 만나러 왔다가 신윤복이 붓을 선물 받는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도 신윤복(문근영 분)이 방바닥에 한지를 펼쳐놓고

붓을 들고 ‘미인도’를 그리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이 붓에도 한국화만의 비밀이 있다.

서양화 중 유화에는 점도가 높은 유화 물감을 떠서 칠하기 좋도록 납작한 붓을 사용하고

수채화에는 점도가 낮은 물감을 잘 머금는 둥근 붓을 사용한다.

한국화에서 사용하는 붓은 수채화의 둥근 붓과 비슷하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강하고 탄력 있는 털을 중심에 심은 것. 한국화에서는 필력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화에서는 큰 붓 하나로 큰 모양과 작은 무늬까지 모두 그린다.

칠하는 부분의 크기에 따라 붓 크기를 바꿔가며 사용하는 서양화와는 대조적이다.

영화에서도 큰 붓 하나로 한복의 가는 동정 사이를 칠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문근영 · 김민선 얼굴, 남장여자에 어울리나


 
 

소설 ‘바람의 화원’은 신윤복이 사실은 남장여자였다는 흥미로운 설정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 비극적인 사건으로 남장여자로 살아가면서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얽힌 비밀을 캐기 위해 도화서화원이 된다는 것.

이 때문에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영화 ‘미인도’에서 각각 신윤복 역할을 맡은 여배우 문근영과 김민선은

머리에 상투를 틀고 도포를 입은 남자로 분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얼굴은 실제로 얼마나 남성적일까.

한남대 조용진 교수(얼굴연구소장)는
“문근영과 김민선은 지극히 여성적인 얼굴”이라고 말했다.

해부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얼굴을 구분하는 기준에 비춰볼 때

둘의 얼굴 골격이 전형적인 여성에 가깝다는 것.

 


1)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윤은혜는 남자 같은 말투와 털털한 행동, 소년 같은 의상으로 남자 행세를 하며 주변을 감쪽같이 속였다.

2) 영화 ‘미인도’에서 신윤복으로 분한 김민선. 양 눈썹 사이가 낮고 콧대가 가늘며 입술이 도톰해 전형적인 여성 얼굴이다.

3) 문근영은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채 남자를 연기하지만 해부학적으로는 여성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얼굴이다.

조용진 교수의 연구 결과 전통적인 미인은 동그스름한 얼굴, 작은 눈·코·입, 도톰한 입술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일반적으로 남성은

미간(양 눈썹 사이)이 볼록한 데 반해

여성은 미간이 낮다.

또 소위 콧대로 불리는 코허리가 가늘고 약하다.

 

문근영과 김민선은 이런 두 가지 특성을

모두 지녔다. 입이 작고(문근영)

입술이 도톰한(김민선) 점도

이들의 여성적인 면모를 돋보이게 한다.

지난해 인기를 끈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남장여자로 분한 여배우 윤은혜 역시

해부학적으로는 전형적인 여성 얼굴이다.

조 교수는 “행동이나 말투, 표정, 의상이

배우의 남성성을 부각시켰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현재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통적인 미인은 신윤복의 ‘미인도’ 얼굴과 흡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2006년 조 교수는 청소년과 일반인 200여 명에게 20대 여대생 50명의 얼굴을 보여주고

전통적인 미인을 고르게 했다. 그리고 이 중 가장 많이 선택된 5명의 얼굴을 합성했다.

그 결과 동그스름한 달걀형에 눈썹은 가늘고 흐리며,
눈 · 코 · 입은 작고, 입술은 도톰한 얼굴이 나타났다.

반면 현대적인 미인은 갸름한 얼굴형에 크고 동그란 눈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 과학동아, 2008년 10월호

- 전창림, 홍익대 화학시스템공학과 교수 ㆍcjun@hongik.ac.kr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국립대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홍익대 교수로 있다. 고분자화학과 미술재료의 화학적 연구에 관심이 많다.

   ‘알고 쓰는 미술재료’(1996), ‘생활은 화학이다’(2000), ‘색의 비밀’(2003),

   ‘미술관에 간 화학자’(2007년) 등을 저술했다.

 

 

 

 

 

 

 

 

 역사소설은 위대하고 재미있는 오답이다

  - 『바람의 화원』의 이정명

 

 [도서] <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저 / 밀리언하우스

 

 

 

 『바람의 화원』의 초고와 완성된 작품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초고는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강했어요. 정조와 신윤복의 형 영복의 역할이 컸죠.

그런데 이런 미스터리적인 것이 강할수록 내가 하고자 했던,

신윤복과 김홍도라는 걸출한 두 화가의 이야기가 헐거워지는 겁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미스터리적인 것을 덜어내고 예인(藝人)의 삶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바람의 화원』 2권을 보면 정조와 영복이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집니다.

초고를 수정하면서 이들의 분량이 많이 잘려 나갔어요. 그 대신 김조년과 정향의 비중이 커지지요.

작품이 난삽해지지 않기 위해 형식적인 결함을 감수한 셈입니다.

 


『바람의 화원』에 등장하는 정향이나 영복 같은 인물도 그렇고,

『뿌리깊은나무』에 나오는 채윤과 소희, 가리온과 같은 인물도 그렇고,

작가님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큰 애착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소설로 드러내려고 애쓰시는 것 같습니다.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보잘 것 없는 인물들에게 애정이 깊어요.

그리고 이 인물들은 거의 100% 제가 창조해 낸 인물들이기도 하니까요 더 애착이 갈 수밖에 없지요.

또, 역사를 다르게 보고 싶은 욕망도 있고요. 『뿌리깊은나무』는 세종의 이야기인데,

세종의 입으로 이야기하면 지금까지 나온 책과 다를 게 없잖아요.

월탄 박종화 선생님이 쓰신 너무도 훌륭한 작품이 있지요.

그래서 그 시절에 가장 낮은 사람들, 세종에게 오히려 적대적이기까지 한 사람이 서서히

세종의 내면을 알게 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채윤이 『뿌리깊은나무』의 주인공이 되었지요.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한 장면

(출처: SBS 홈페이지)


신윤복이 여자라는 파격적인 설정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무렵에 아버지가 피우시는 담배곽에 신윤복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어요.

담배 심부름을 하면서 그림을 자주 봤는데, 저는 그 그림이 당연히 여자가 그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학교 미술 시간에 신윤복이 남자라는 걸 배우고 많이 놀랐지요.

그때부터 ‘신윤복이 여자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했어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지만 작품으로 쓸 수 있을 때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어요.

어떻게 풀어나갈까 하는 문제에서 많이 부딪쳤습니다.

『바람의 화원』은 신윤복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김홍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서양에는 쌍벽을 이루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많잖아요.

베토벤과 모차르트, 고흐와 고갱, 피카소와 마티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없는 게 아쉬웠습니다.

우리 예술은 서양보다 뒤떨어진다는 근거 없는 열등의식이나 맹목적인 서양 추종도 안타까웠습니다.

우리 예술가의 명예와 그들의 빛나는 예술 세계를 지켜주는 데 다들 무심했습니다.

우리 예술가들 하면 빛나는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궁핍하게 살다 간 모습 밖에

떠오르지 않잖아요? 그런 점이 싫었어요.

우리 예술가에 대해, 한 시대를 풍미한 개성 넘치는 두 천재의 이야기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써보고 싶었어요.

 


『바람의 화원』이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데요. 어떠신가요?

원작자로 이 점은 잘 살려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으신지요.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연출도 무척 훌륭합니다.

드라마가 원작을 잘 살려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저는 아주 행복한 원작자입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뿌리깊은나무』도 내년 하반기쯤 드라마화될 예정이고,

올 12월에 정동극장에서 연극으로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역사소설을 쓰면서 자료가 부족해 고생하진 않으셨는지요.

역사소설은 기본적으로 베이스가 있어야 하니까 자료를 많이 봐야 하는데,

특정한 주제에 대한 출판물이 너무 적습니다. 외국과 비교하면 아쉬운 점이 꽤 있지요.

선택의 폭 자체가 너무 좁으니까요. 도서관에 가서 논문을 찾아보면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인데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그대로 베낀 것도 왕왕 눈에 띕니다.
자료를 많이 확보하고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취사선택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수백 건을 몇 년에 걸쳐 읽어도 필요한 자료는 그중에 몇 건에 불과해요.

그것을 찾기 위해 읽는 셈이지요. 너무 많은 자료를 읽어서 오히려 상상력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설을 쓰시면서 어떤 점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소설의 구성 요소를 다 골고루 신경 씁니다. 한국에선 문장을 잘 쓰는 소설을 높이 평가하는데,

저는 문장은 하나의 구성 요소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출판계와 문학계는 문장에 대한 경도가 좀 심한 듯해요.

소설에서 문장도 중요하지만, 이야기의 얼개나 주제의식, 인물의 형상도 중요하지요.

제 소설은 ‘문장이 거칠다’는 평을 종종 받습니다만, 저는 제 문장에 별로 불만이 없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소설은 미문이 아니니까요. 문장이 아름다운 소설이 가지지 못한 어떤 점을

제 소설이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소설은 굉장히 자유로운 장르인데,

그것을 ‘문장’의 층위에 묶어놓는 것 같아요. 제가 추구하는 건 ‘재미’입니다.

그래서 제 소설에는 ‘추리’의 기법이 많이 쓰입니다. 독자들의 주의를 끌고,

끝까지 흥미를 갖게 하면서 책을 읽게 하는 데 제일 효과적인 테크닉이 추리적인 기법이니까요.

 


역사소설은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데요,

선생님은 소설을 쓰면서 사실과 상상력 사이에서 갈등하시진 않으시나요?

저는 그런 건 없습니다. 소설은 소설이니까요.
『뿌리깊은나무』에는 연표가 들어가 있습니다.

소설과 역사의 기록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지요.

『바람의 화원』은 신윤복이 여자라는 것을 밝히는 소설이 아닙니다.

‘신윤복이 여자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통해 역사를 풍성하게 하는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과 당대의 진실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씌어진 역사로만 과거를 보아야 한다면 우리한테는 몇몇 불완전한 기록밖에는 남는 게 없습니다.

어떤 기록도 진실과 일치하진 않습니다. 기록은 누락되고, 재단되고, 검열됩니다.

의도가 있든 없든 글은 왜곡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역사소설가는 그렇게 누락된 진실들을 자료를 통해 유추하고 상상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진실을 구현합니다.

역사소설은 상상력으로 누락되었던 역사의 진실을 쓰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사실을 잣대로 역사소설을 평가한다면 『바람의 화원』이나 『뿌리깊은나무』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다 걸립니다.

우리가 사실로만 역사를 만난다면 역사 소설은 씌어질 수 없습니다.

역사 소설이 없다면 우리의 과거는, 우리의 역사는 얼마나 빈곤할까요?

저는 역사소설은 일종의 오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하고 재미있는 오답이지요.

정답은 하나지만 오답은 수백 가지입니다. 그 수백 가지의 오답이 과연 쓸모가 없는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풀 때 단숨에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오답을 분석하면서 문제의 본질에 더 가깝게 가지 않습니까?

신윤복이 여자라는 건 역사적으로는 오답에 가까울 것입니다.

역사소설은 화석이 되어버린 역사를 살아 움직이는 환상으로 만드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단 두 줄의 기록만을 남기고 역사에서 사라진 신윤복
베일에 싸인 그의 삶과 그림의 미스테리


베토벤과 모차르트, 고흐와 고갱, 피카소와 마티스……

한 시대를 풍미한 두 천재의 삶은 늘 매력적이다.
조선 후기 궁중화원 김홍도와 신윤복 또한 18세기 정조 시대의 혁신적 화풍을 이끈 천재화가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궤적은 극과 극으로 다르다.

궁중화원으로 활동하며 당대에 이름을 떨친 김홍도의 기록에 비해

신윤복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

'도화서(회화를 관장하는 국가기관) 화원이었으나, 속화를 즐겨 그려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후문만 떠돌 뿐 오세창(吳世昌 · 1864~1953)의 근역서화징(1928)에 나오는 두 줄이 유일한 기록이다.

신윤복. 자 입보(笠父). 호 혜원(蕙園), 고령인(高靈人). 부친은 첨사(僉使) 신한평(申漢枰).
화원(畵員). 벼슬은 첨사다. 풍속화를 잘 그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화원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완벽하게 사라질 수 있을까?

천재적 재능을 가진 그가 왜 도화서에서 쫓겨났을까? 그는 왜 항상 여인들을 화폭에 담았을까?

신비로운 미소의 "미인도"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작가는 단 두 줄의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화석처럼 오래된 그림에 소설적 상상력을 불어넣어

그 속의 인물들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두 천재 화가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예인으로서의 모든 것을 건 대결이 작가 특유의 빠른 속도감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펼쳐진다.


 

'모나리자', '진주 귀고리 소녀'보다 매혹적인 신윤복 '미인도'의 비밀
역사와 예술, 화려한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한 본격 예술소설

 

『바람의 화원』은 역사와 예술 작품을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재탄생시킨 예술소설이다.
그림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으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었던 신윤복,

최고의 화원이었으나 제자인 윤복과의 만남으로 흔들리는 김홍도,

부친인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슬픔을 간직한 젊은 왕 정조,

부와 권력에의 야심 때문에 아들마저 희생시키는 화원 신한평,

자신의 영달을 위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는 시전 행수 김조년,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껴안고 사는 기생 정향 등

역사 속의 인물들이 눈앞에 펼쳐질 듯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치밀한 플롯과 강렬한 캐릭터는 첫 페이지부터 독자들을 빨아들이고

섬세한 내면 묘사와 거듭되는 반전은 롤터코스터처럼 감동을 증폭시킨다.

그림 속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작가의 놀라운 추리력과 탄탄한 구성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마지막까지 독자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베스트셀러 『뿌리 깊은 나무』 작가 이정명 최신작!
조선의 천재 화가 신윤복의 삶과 그림에 숨은 비밀


『바람의 화원』은 소설 『뿌리 깊은 나무』로 ‘한국형 팩션’의 새 장을 연 작가 이정명의 최신작이다.

세종 시대, 훈민정음 반포 7일 전 경복궁에서 벌어진 집현전 학사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뿌리 깊은 나무』는 ‘최고의 한국형 팩션’으로 자리매김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에서 뉴웨이브 문학의 가능성을 내보이며

출간 1년 만에 35만 부를 돌파했다. 또한 2006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 아침독서운동본부 추천도서,

교보, YES24, 인터파크 추천도서로 선정되어 그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작가가 1년 만에 선보이는 『바람의 화원』은 한층 견고해진 스토리와 치밀한 구성력으로

천재 화가의 삶과 예술, 그리고 사랑을 소름끼치도록 생생하게 그려 또 한 번의 열풍을 예고한다.


 

시대를 풍미한 천재 화가 김홍도와 신윤복
모든 것을 건 단 한 번의 그림대결!

 

같은 시대의 화가였지만 신윤복과 김홍도의 화풍은 극과 극이라 할 만큼 다르다.

김홍도가 서민들을 주로 그린 반면, 신윤복은 양반들을 주로 그렸다.

김홍도가 주로 남자들을 그린 반면, 신윤복은 여자들을 그렸다.

김홍도의 필치가 단순하고 힘 있는 먹선 위주인 반면

신윤복은 세련되고 섬세한 필치로 화려한 채색화를 그렸다.

이처럼 극적으로 다른 화풍의 두 화가였지만 놀랄 만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 있다.

같은 인물과 풍경을 각자의 방식으로 다르게 표현한 그림들이다.

김홍도의 '빨래터'와 신윤복의 '계변가화',

김홍도의 '우물가'와 신윤복의 '정변야화'를 비롯한 작품들은

보는 이들에게 말할 수 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그림들은 제목은 물론, 등장인물의 숫자와 위치, 동작까지도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그들은 왜 제목과 등장인물조차 같은 그림을 다른 방식으로 그렸을까?
작가는 놀라운 상상력을 통해 그 호기심과 의문을 풀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