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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부활 - '차가운 평화시대'

Gijuzzang Dream 2008. 9. 18. 13:43

 

 

 

 

 

 러시아 부활 ‘차가운 평화’시대 왔다

 

 

 

그루지야(Georgia)사태 둘러싼 서구와의 신경전… 양측 불신 깊어 사사건건 충돌 우려

 
 


"냉전(cold war)’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19년,

세계는 이제 ‘차가운 평화(cold peace)’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냉전 이후 국제무대를 주름잡은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는

그루지야 전쟁을 통해 드러난 러시아의 야망과 부딪치며 부서질 상황이다.

1991년 15개의 공화국으로 갈라져 ‘무기력한 곰’으로만 여겨진 러시아는

이제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힘’을 서방세계에 내보인다.

나아가 서방 중심의 일극체제를 공식 거부하고 나섰다.

러시아와 서방은 20년 전과 같은 이념적, 군사적 대결을 벌이진 않겠지만

자원 확보,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유지 · 확대 등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제, 어디서든 마찰음을 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차하면 ‘신 냉전’으로 직행할 수 있는 차가운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루지야 전쟁, 새 세상을 낳다


8월 7일, 친서방의 그루지야가 분리 독립을 주장하던 친러시아의 남오세티야를 공격하면서

그루지야 전쟁은 시작했다.
러시아는 서구의 예상을 깨고 즉각 군대를 투입했고, 3일 만에 그루지야를 제압했다.

한때는 흑해의 포티항 등 전략적 요충지까지 장악했다.

이후 미국을 선두로 한 서방과 러시아는 날선 설전을 쏟아내며 긴장을 지속하고 있다.

그루지야 전쟁은 냉전 종식 후 20년 동안 양측이 물밑에 숨겨온

다양한 속셈과 갈등 요소들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구는 소련이 해체되자 소련의 영향권이던 카프카스 지역을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갔다.

이들은 ‘역사의 종언’을 외치며 자유민주주의 확산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속으로는 천연자원 확보, 러시아의 영향력 제한이라는 덤도 노렸다.

유럽연합(EU)은 팽창정책을,

냉전 시절 바르샤바 조약기구와 대치점에 있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동진정책을 추진했다.

헝가리, 폴란드, 체코와 발트3국(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은 나토의 우산 아래 들었고,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도 예정돼 있다.

특히 미국은 러시아가 ‘신 베를린 장벽’ ‘러시아를 향한 위협’이라며 반대한 체코, 폴란드에 미사일방어(MD)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서구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는 모습을 노려보던 러시아에 그루지야의 ‘도발’은 아주 좋은 기회였다.

주변국과 서방에 강한 러시아의 힘을 보여주고,

숨겨온 야망을 실현할 수 있어서다.

러시아는 ‘제국주의의 부활’란 비판까지 받으며

강공을 선택했다. 물론 다목적 포석이다.

친서방 행태를 보이던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체제에 본때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우크라이나 등 주변 국가들에도 “이렇게 될 수있다”는 본보기로 삼았다.

또 영국의 가디언지 등이 전쟁 초기 ‘파이프라인 전쟁’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 지역을 장악함으로써 유럽의 에너지원인 카스피해의 원유, 천연가스 등의 수송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지금까지는 러시아가 승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는 서방의 반발에 하나씩 대응해가며 실속을 챙겼지만,

EU와 미국은 내부 분열로 솜방망이 대책에 그쳤다.

EU의 경우 초기 회원국인 ‘올드 유럽’은 유연한 대응을,

새로 가입한 동유럽 등 ‘뉴 유럽’ 국가들은 강경대응을 주장하는 등 분열됐다.

또 부시 미 행정부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 전쟁’에 발목이 잡힌 데다 ‘레임 덕’까지 걸리면서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이유로 꼽힌다.

차가운 평화의 시대, 그 전선들


러시아와 서구는 자신의 손에 쥔 카드들을 하나씩 내놓으며 신경전을 벌이고,

위험한 수위를 오락가락하는 경고 성명까지 주고 받으며 곳곳에서 부딪치고 있다.

평화이긴 하나 차갑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현 상황의 가장 적절한 표현은 차가운 평화”라고 분석한다.

러시아 전문가 알렉산드르 라르도 “러시아가 부활하면서 차가운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극적인 화해가 없을 경우

양측은 또 다른 패를 내놓으며 차가운 평화의 전선(戰線)을 연출할 전망이다.
서구는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저지할 수 있다.

또 선진 8개국(G8, 선진 7개국을 뜻하는 G7+러시아)에서 러시아 배제,

경제적 파트너십을 확대하기 위한 양측 간 각종 회담의 연기나 지원 취소, 사업활동 제한 등

각종 경제적 제재안이 있다. 또 유럽행 비자 제한, 각종 국제기구에서 러시아 제명,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보이콧, 그루지야에 대한 각종 지원 확대 등도 서구가 가진 패로 분석된다.

러시아의 패도 절대 만만하지 않다.

시리아에 이어 이란, 베네수엘라 등 반미 국가들에 무기를 판매할 수 있다.

특히 냉전 시절 맹방이던 중동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는

곧 미국의 보호 아래 견디고 있는 이스라엘에 직접적 위협이다.

 

안젤라 스텐트 조지타운대 교수는

“미국보다 러시아가 지금까지 쌓아온 미국의 이익을 더 크게 잠식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냉전 종식 후 체결한 각종 무기 감축 협정 취소,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서방이 벌이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수송로 지원 폐쇄,

핵확산 금지 활동 방해 등도 가능하다.

러시아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에너지다.

러시아와 카스피해 지역은 EU 원유 소비량의 3분의 1, 천연가스 소비량의 40%를 공급하고 있다.

인터내셔널트리뷴(IHT)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는 지금까지의 국제 질서를 통째로 뒤흔들 수 있다”고 보도했다.

양측 모두 냉전 시대로 회귀하기와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미국의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의 지적처럼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아이팟만큼이나 그동안 세상은 많이 변해

냉전 회귀가 서로 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화 속에 이미 양측은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히면서 “적이자 경쟁자이면서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르게이 라고딘스키는 “양측 사이의 불신이 문제”라면서

“차가운 평화의 시대에는 편가르기는 물론 향후 사사건건 충돌이 일어날 우려가 높다”고 분석한다.

일극체제가 양극·다극체제로 변화하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슈피겔은 “이제 차가운 평화의 시대를 맞아

러시아와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국제부/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 2008 09/23   뉴스메이커 79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