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하나씩 추억의 샘물을 가지고 있지요.
잊고 살던 어느 날, 불쑥 고개 내미는 기억을 흔들게 되는 날,
그 추억의 샘물에서 한 두레박 퍼 올려볼 때,
떠오르는 그리운 이름들이 참 많습니다.
참 그립게 다가오는 보고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첫눈이 왔습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도 어느 곳은 진눈깨비가,
어느 곳에서는 빗방울이 내린다는데...
내가 사는 이곳 남양주는 공기가 맑아서인가요. 하늘이 깨끗해서인가요.
우리 집 주변을 감싸안은 산들이 한 곳으로 모아줘서 그런가요.
하얀 눈이 한순간 펑펑 내렸습니다.
금새 온통 하얗게 변해버렸습니다... 와.. 우.. 첫눈이예요.
작은 흥분으로 좀처럼 잠들지못해 책장을 더듬다가, <혼불>이 눈에 띄었습니다.
책장 가까운 쪽으로 두어 자주 들여다보고, 좋아하기도 하지만,
<혼불>과 함께 아련함을 건너 찾아오는 반가움.
여고 2학년때 국어담당 교생선생님으로 오신 최명희선생님.
더더구나 교생실습기간 동안 우리반을 맡아 인연맺은 선생님.
어느 날부터인가
종례까지 다 마친 우리반 교실에서는
바깥이 어둑해져서야 못내 아쉬움에 돌아가야 하는 일들이 종종 생겨났지요.
최명희 교생선생님이 들려주는 그 턱받치고 들어야 했던 이야기들 때문이었습니다.
자주빛 교복에 앙증맞은 하얀 칼라의 여고생 소녀들에게는
너무나도 신비롭고 유쾌하기만 했던 시간들이었지요.
그렇게, 그 가을날 한 마음으로 뒤엉켜 신났던 추수감사절, 체육대회, 가장행렬 등 . . .
너무도 흥겨웠던 순간들이 아련하게 생각납니다.
우리반이 추수감사절 꾸미기 심사에서 전학년 최우수상을 받았던 것도
최명희선생님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까만 커텐과 촛불로 교실을 장식한 때문.
최명희선생님.
첫눈 내리는 날, 지나간 그리움의 샘물 한 바가지 길어내면서
더욱 몹시도 그리워지는 선생님.
그 선생님을 생각하며
<혼불>을 두 손으로 가만가만 그저 다독입니다.
‘교사 최명희’의 추억
- 정성희 / 논설위원
‘흔들리는 상여의 사방에 매달린 색실 매듭 유소(流蘇)와 위 난간에 드리운 수실들이, 망인의 혼백이 흔드는 마지막 손처럼 나부낀다. (중략) 곡성과 상여 소리가 서러운 물살을 이루어 마당에 차오르고, 휘황한 비단 공단 만장(輓章)들은 바람에 물결처럼 나부끼는데, 상여는 그 물마루에 높이 뜬 채로 저승의 강물 저 먼 곳으로 떠나고 있었다. 마지막 가는 길이어서 이다지도 곱게 치장을 하고 가는 것일까.’
많고 많은 우리 문학작품 중에 상여행렬조차도 이토록 아름답게 묘사한 글이 또 있을까.
최명희(1947-1998)의 ‘혼불’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소설가 최일남 씨가 ‘혼불’에 대해 “미싱으로 박은 이야기다 아니라 수바늘로 한 땀 한 땀 뜬 이바구”라고 한 이유를 알 만하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씨는 “우리 겨레의 풀뿌리 숨결과 삶의 결을 드러내는 풍속사이기도 한 이 소설은 소리 내어 읽으면 판소리 가락이 된다”고도 했다.
하지만 내게 최명희란 이름은 1977년 어느 겨울날, 눈발이 흩날리던 교정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게 한다. 세상만사가 마뜩하지 않던 이 사춘기 여중생의 국어 선생님이 최명희였다. 긴 단발머리와 단정한 스커트 차림의 선생님은 다정다감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어쩌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잘 안 받아 줄 정도였다. 천방지축 찧고 까부는 우리를 늘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우리들은 국어시간이면 순번을 정해 수업 시작 전에 시(詩) 한 편을 칠판 가득 써놓아야 했다. 릴케건 이육사건 어떤 시인의 시도 좋았다. 선생님은 10분 정도 운율에 맞춰 시를 낭송하게 한 후 시의 배경과 특징 등을 설명해 주었다. 서정주나 윤동주의 시가 적힌 날은 시로 시작해 시로 수업이 끝날 때도 있었다. 눈이라도 내리면 교과서는 덮어버리고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부르거나, 시를 외우도록 했다.
우리는 또 ‘연상수첩’이란 작은 노트를 한 권씩 마련해야 했다. 선생님은 시 낭송이 끝나면 연상수첩을 펴게 한 후 매일같이 그날의 ‘단어’를 불러 주었다. 우리는 연상수첩에다 그 단어로부터 연상되는 단어들을 써 내려갔다. 연상 작업이 끝나면 선생님은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연상한 단어들을 읽게 했다. 우리는 ‘봄’이라는 단어가 20회쯤 연상을 거듭해 어떤 아이에게는 ‘죽음’이 되고 다른 아이에겐 ‘사랑’이 되는 언어의 마술을 경험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문학수업에 필수적인 이미지 훈련법이었다.
요즘엔 학교마다 논술 준비에 허덕이고, 가정에선 비싼 돈 들여 논술과외까지 하느라 난리라는데 우리는 저절로, 공짜로 ‘문학의 바다’에서 놀았던 것이다. 훌륭한 선생님 한 분의 힘이 이토록 크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느낀다.
혼불의 무대가 되었던 전북 남원시 사매면의 삭녕 최씨 폄재공파 종가(宗家)가 지난주(2007년 5월15일) 화재로 불타고 종부(宗婦) 박증순(93)씨가 숨졌다고 한다. 생전에 선생님은 이 집에 자주 놀러 가 혼불 속의 효원 아씨의 모델로 알려진 박 씨와 얘기를 나누며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박 씨의 참변에 얼마나 마음 아프셨을까. 졸업 후 한 번도 찾아뵌 적 없는 무심한 제자지만 슬퍼하실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오래 아릿했다.
- 2007년 5월21일, 동아일보 <광화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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