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일상)

임의진 / 시골편지's (1)

Gijuzzang Dream 2007. 11. 19. 11:54

 

 

 

 

 

 

 주렁주렁 눈물방울  

 

“눈물이 없는 자의 영혼에는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 인디언의 경구다.

곱씹을수록 위로가 된다.

다사다난 모진 풍파 헤쳐 가는 세월인데, 아프고 슬픈 일 겪지 않을 자 어디 있으랴.

심약한 우리들은 웃음과 행복, 건강과 무사안녕뿐이길 기원하지만,

인생길 고갯마루가 그렇게 간단하거나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친구야! 울고 싶은 일 있으면 마음껏 울어.

꺼윽 꺼윽 울다보면 어느새 눈가에 무지개가 뜰 거야.” 

 

 

마당 한 구석 감나무에 달린 마지막 잎새는 오 헨리의 단편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새들이 먹다만 꼭대기 붉은 홍시가 뚝하니 땅에 떨어졌다.

바닥에 으깨어진 홍시를 보자니 붉디붉은 눈물방울 같구나.

하늘도 울고 싶은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 아랫집 형님이 큰 화상을 입고, 광주를 거쳐 서울까지 응급 이송되었다.

그 일로 이웃 사촌들마다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입원 보따리를 싸들고 올라가는 형수는 주렁주렁 눈물방울이었다.

가까운 정류장까지 모셔다 드리면서, 달랑거리던 은행잔액을 눈 찔끔 감고 비웠다.

“감사해서 이 빚을 다 어찌케 갚을라는지…올라오는 길 눈물이 막 나가꼬 혼나부렀네요.”

전화기 저편에서 또 훌쩍이신다.

〈글·그림/ 임의진 시인 · 목사〉

 

 

 

 

 

 봄 비  

 

눈 녹은 물로 개울이 찰찰거렸는데 오늘은 비까지 내린다. 봄비로구나.

누구 노랫말처럼, 나를 울려주는 봄비.

 

이거 집에 가만 있을 수 있나. 한데 막상 밖에 나가자니 쩐이 없네 쩐이.

그럼 파전이나 부쳐 먹을까. 에잉 이젠 또 부침가루가 없네. 그냥 두벌잠이나 한숨 때릴까?

빗소리가 쿵쾅쿵쾅 가슴을 치네. 이 통에 잠이 오겠니 오겠어. 비구경이나 하자고.

 

 

 

창 밖에 반가운 친구들 보이네.

산새 두 마리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짝꿍인 모양이지.

냉장고도 없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너희들. 비 내리는 통에 오늘은 굶는 거 아닌지.

금방 그칠 비도 아닌데 이왕 깃든 몸, 편히 쉬었다 가려무나.

바스락장난도 못치고 살살 창문을 닫았다.

 

 

머잖아 아기 새들 데리고 나들이 오겠지.

머잖아 봄꽃도 우르르 피겠지.

밖에는 봄비가 하염없고, 나는 숨죽이며 기대할 따름이다.

이 비가 그친 뒤 마주치게 될 모든 찬란한 것들, 성성히 끝내 살아남아준 것들.

〈임의진 /시인 · 목사>

 

 

 

 

 

 정자에 앉아  

 

뽀짝 옆마을 궁산리에서 이장까지 지냈던 고재종 시인은 언젠가 이런 시를 남겼더라.

“아래께선 요 근래 부시의 일방적 폭격이 있었다/ 이렇게 높다란 데서 우리는 두루두루 웃고/

아래께로 다시 고추 모종 놓으러 간다 (‘정자에서’ 가운데)”

 

이곳 담양은 유독 정자가 많다.

소쇄원이 대표격이고, 송강정, 식영정, 환벽당 같은 유서 깊은 정자들 말고도

큰 마을마다 기품 있는 정자가 하나쯤 서 있다.

 


 

 

가끔 정자에 앉곤 한다.

저수지 뒷길에 자주 찾아가는 낡은 정자가 있는데, 기와가 허물어져 천막으로 덮어놓은 상태다.

나는 거기 툇마루에 앉아 저수지에 내린 싯푸른 하늘과 오색 단풍, 그리고 산새들의 아카펠라를 듣고는 한다. 어쩌다 시 한수 담아오는 횡재의 날도 있다.

 

오늘은 깨밭에 일나온 아낙들이 정자를 차지하고 수다로 백분토론중이었다. 무슨 재미난 얘기를 하시나 금방 숨이 넘어가게 까륵 까르륵. 나도 같이 끼어들어 지줄거리고 싶었지.

 

전화 통화에 만족할 수 있을까. 눈을 마주보고, 눈부처를 보면서 얘기를 나눠야 옳지 않을까.

정자에 앉아 한숨 돌리면서,

 

가까운 벗이랑 니캉 내캉 속이야기 나누고픈,

사람이 그리워서 영판 답답한 늦가을 오후.

〈글·그림/ 임의진 시인 · 목사〉

 

 

 

 

 

 

 마중물 

 

 

 


 

오래전 ‘마중물’이란 시를 쓴 일이 있었다.

변변한 시집 한 권 없다보니 작자 미상으로 입에서 입으로들 떠돌밖에.

그러다 여쿵저쿵 첨삭을 당하기도 하고, 한편 좋은 뜻의 모임이나 각오들을 낳기도 하고.

이미 나를 떠났으니 내버려두며 혼자서 기억할 뿐이었다.

 

용면 돌짝밭으로 귀농한 젊은 부부가 ‘마중물’을 알고 있었다.

마중물을 닮고 싶어요.” 선한 부부의 기도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오늘날 농촌에 산다는 게 마중물인지 구정물인지 헷갈릴 때가 가끔 있다.

하여도, 시대의 마중물이라 믿으며 낮고 캄캄한 생명살림의 외길을 두려움 없이 끝내 걸어가고 싶구나.

 

“우리 어릴 적 작두질로 물 길어 먹을 때 마중물이라고 있었다.

한 바가지 먼저 윗구멍에 붓고 부지런히 뿜어 대면

그 물이 땅 속 깊이 마중 나가 큰 물을 데불고 왔다.

마중물을 넣고 얼마간 뿜다 보면 낭창하게 손에 느껴지는 물의 무게가 오졌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마중물이 되어준 사랑이 우리들 곁에 있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무저갱으로 제 몸을 던져 모두를 구원한 사람이 있다.

그가 먼저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기에,

그가 먼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꿋꿋이 견뎠기에.”

임의진/ 목사 · 시인〉

 

 

 

 

 

 

 고추잠자리  

 

 

 

머리에 불이 붙을 만한 땡볕에도 고추잠자리는 하늘을 빨갛게 덮으며 날고 있다.

어느새 고추밭도 빨개졌다.

푸르던 고추마다 붉은 절정을 향해 익어 가는 걸 보면 올여름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싶다.

벌써 고추를 따서 햇살마당에 넌 집들이 여러 농가다.

 

빨간색 여름에 나타난 빨강 고추잠자리.

조용필 아저씨의 ‘고추잠자리’란 노래를 부르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 싶지.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 싶지…”

 

대서 지나고 입추, 처서 접어들면 하늘은 높아지고 바람도 자주 불고 뜬금없이 울고만 싶어졌다.

정말 어렸기 때문이었을까. 이후로는 눈물이 잘 나지 않더라.

사랑이 식어버린 때문인지, 사랑을 잃어버린 까닭인지…

 

 

고추잠자리가 백일홍나무 붉은 꽃을 한참 바라보다 저편으로 날아갔다.

여한 없이 타오른 사랑, 붉고 신성한 사랑의 계절 여름도 그렇게 사라지고 말리라.

 

그러하니 그대여! 이승에서 마지막 붉어지고 싶지 아니한가.

찬바람 불어와 가슴까지 식기 전에, 한번 뜨겁게 사랑하고프지 아니한가.

〈임의진/ 목사 · 시인〉

 

 

 

 

 

 

 

 바지랑대  

 

 

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루는 날이 반짝 개고 무지개가 높이 떴다.

벼르고 벼르던 빨래를 했지. 멀리서 손님들이 잔뜩 찾아오신다고.

깨끗한 이불 내어 드리고파 장롱 깊이 퀴퀴하던 이불더미를 꺼냈다.

옷가지는 세탁기에 돌리고, 이불과 베개는 빨간 고무대야에 담아 맨발로 꾹꾹 빨았다.

행여 얄궂은 소나기라도 쏟아질까봐 염려하였다. 그러나 빨래가 다 마르도록 볕은 쨍쨍하였다.

 

오후쯤 물기가 날아가고 옷과 이불보에서 햇살냄새가 배어났다.

바지랑대에 걸린 옷가지며 이불을 보자니 ‘오지다’는 말, 그 말이 뻐근하게 차올랐다.


 

 

다시 빨랫줄은 텅텅 비었고, 바지랑대는 자그만 바람에도 휘청휘청.

일이 없어져 기운이 쪽 빠진 얼굴들이다.

 

잠깐 솜털구름이 빨랫줄에 걸리기도. 이불인 양 착각하고 바지랑대는 있는 힘을 꽉 준다.

바보다 바보! 바지랑대야, 장마 그치면 다시 이불빨래며 모시옷이며 널어줄게.

애먼 구름에다 헛힘 쓰지는 말거라.

내일 밤부터 다시 비가 내릴 거란다.

 

바지랑대는 소망할 것이다.

어서 장마가 그치고 햇살 아래 빨래를 널게 해달라고.

소임을 다하며 살게 해달라고.

바지랑대의 기도 때문에라도 장마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임의진/ 목사 · 시인〉

 

  

 

 

 

 허수아비

 

노란 황금 오이, 늙은 오이를 들고 걸어가는 할매 뒤로 허수아비가 늠름하구나.

동네는 시방 허수아비가 주민들보다 여나무명은 더 많아 보인다.

 

삼계의 미소를 짓는 부처님 관상을 한 허수아비,

빨간 모자에 빨간 웃옷을 걸치고 마치 삼복더위에 찾아온 산타클로스 같은 허수아비.

새가 머리끝에 앉아도 드르렁 코를 곯아대는 잠보 허수아비,

외다리로 서서도 휘청거림이라곤 일절 없는 ‘요기’ 허수아비.

우리 집 뒤편 사래밭에 보면 청청한 하늘을 정답게 이고 진 부부 허수아비도 보인다.

마주보고 서서 윙크가 간지럽구나. 정녕 허수아비 마을이고 허수아비 세상이로다.

 

 

 

문설주를 막 나서면 허수아비가 맨 먼저 반긴다.

저녁나무가 외롭지 않게 해거름엔 그림자로 달려와 덥석 안기고는 한다.

모주망태, 허위허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허수아비에 대고 실없는 소리를 엥긴다.

 

“어이 봉산 양반. 날도 저물었는디 거그서 뭐하고 계신다요.

집서 기다린디 밭일 접어불고 싸게 들어 가시장게라”

물때 절은 툇마루에 푸덕 앉았을 그 아재,

재작년 하직한 단짝친구 봉산 양반이 그리도 보고 싶었던 모양인 게지.

〈임의진/ 목사 · 시인>

 

 

 

 

 

 

 

 종소리  

 

해남 땅 미황사에 가면 아름다운 범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남녘교회 목사로 있을 때 이웃교회보다 더 가깝게 지낸 절집이다.

범종불사를 한다는 소식에 성령강림절 헌금을 모아 절집에 건넸다.

종소리가 산사를 넘어 세상의 어두운 곳에 명명히 울리기를 기도했다.

그랬더니 우리 교회 교종이 낡아 못쓰게 된 것을 안 미황사에서 새 교종을 달아주었다.

 

“절에서 교회 종을 달아줬닥 하믄 시상에 누가 믿겄서.”

“절에 종도 우리가 째깐 보탰응게 그나마 면목은 서구만.”

스님 모시고 첫 타종 예배도 가졌다.

“내가 먼저 쳐볼라요.”

“아따매 시님 오셨응게 시님도 한번 쳐보시락 하장께.”

 

서로 종지기가 되겠다며 난리다가 스님 차례, 다음은 목사 차례.
 

 

그 예쁜 교회당을 떠나 나는 산골로 들어와 ‘임씨’로 살고 있다.

가끔 종지기가 되어 울렸던 종소리가 그립다.

산사의 범종소리도 그립긴 마찬가지.

이번 주에는 장마도 깊고, 할일도 없고, 석 삼년 만에 산사로 나들이를 갈까 벼르는 중이다.

가는 길에 남녘교회도 들러 낮게 엎드려 기도해야지.

 

맑은 종소리가 나를 부른다.

불신하고 다투는 세상, 선하고 다정한 종소리로 귀를 씻고 오리라.

〈임의진/ 목사 · 시인〉

 

 

 

 

 

 

 천체망원경

 

몇 해 전, 생일이라고 친구가 선물해 준 천체 망원경,
성능이 꽤 좋아 계수나무와 토끼씨의 달나라 분화구쯤 바로 코앞이다.
“감기 걸리시니 밖에 자주 들고 나가진 마시길.”
“우후훙. 염려 따윈 붙들어 매세요. 창문이 넓으니까 방에서 보면 되지.”
그러나 눈보라와 장맛비가 아니면 허구한 날 밖에 나가 오돌돌 떨면서 별구경이었다.

 

 

별볼일 없는 사람들은 정말 별을 보지 않고 살아간다.
짙은 매연과 황사, 날로 검은 밤이 되고 있지만 눈에 불을 켜면 보이지 않을 게 어디 있으랴.
동네 꼬마들은 천체 망원경에 군침을 흘린다. 그러나 밤마실이 쉽지 않으니 별구경은 독차지.
어린이날이라도 하룻밤 밖에 내다놓을 걸 그랬어.
 
남몰래 흐뭇해하며 지폐를 세고, 주식 시장의 동태를 살피고, 복권 당첨번호를 대조하는 눈 말고,
그대여- 별자리를 찾아보는 건 어떠신지. 머지않아 죽어서 별이 될 사람, 사람들이여-

 

나는 형이 둘 있었는데, 일찍 별이 되었다. 아버지도 별이 되시어 밤하늘 총총,

어머니도 곧 떠나시려는지 온몸에서 별빛이 흐른다.

나도 죽으면 별이 될 테지. 별자리도 없는 떠돌이별.

그대가 길을 잃고 헤맬 때 맨먼저 달려가 밝혀주려고….

 

 

 

 

 

 

 하나씩의 별

 

나는 이용악 시인을 좋아한다.

그의 시집 ‘낡은 집’은 표지가 닳을 만큼 읽었다.

 

특히 성탄절 즈음엔 북방의 시인이 더욱 그립다.

 

“무엇을 실었느냐 화물열차의/ 검은 문들은 탄탄히 잠겨졌다/

바람 속을 달리는 화물열차의 지붕 우에/

우리 제각기 드러누워/ 한결같이 쳐다보는 하나씩의 별”을 암송하기도 한다.

 

“두만강 저쪽에서 온다는 사람들과/ 쟈무스에서 온다는 사람들과/

험한 땅에서 험한 변 치르고/ 눈보라 치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남도 사람들과/

북어쪼가리 초담배 밀가루떡이랑/ 나눠서 요기하며 내사 서울이 그리워/

고향과는 딴 방향으로 흔들려간다…”

‘하나씩의 별’이라는 시가 눈보라처럼 불어친다.

 

 

성탄절을 보내며,

땅의 사람들 모두가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으면 바랐다.

땅바닥에 고개를 떨구고서 먹고사는 일에 찌들어 살며,

‘사람다움’  ‘인간성’을 잃어버린 세대를 같이 아파한다.

 

저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람다움을 찾아나선 동방박사를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제국과 자본에 경배하며 살 때, 그들은 마구간에 누운 아기 예수를 찾아다녔다.

하나씩의 별들을 만나러 다녔다.

 <임의진/ 시인, 목사>

 

 

 

 

 

가로수 길

 

동네로 들어오는 가로수에 까마귀 떼가 까맣게 앉았다.

고흐가 그린 까마귀 떼 풍경 같다.

 

군내 곳곳으로 길게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게다가 우리 면에는 삼나무, 회화나무, 벽오동나무, 플라타너스, 벚나무, 백일홍까지 ….

줄줄이 멋들어진 가로수 길.

담양의 자랑이며 외딴 집 들어오는 병풍산길 자랑이다.

 

 

 

특히 메타세쿼이아는 일부 베어 사라질 뻔하였는데,

군민들이 관과 싸워 지켜낸 가로수 길이라 애정이 남다르다.

오히려 지금은 군에서 가로수 길을 관광 코스로 첫손에 꼽는 걸 보면

무슨 일이건 주민들에게 먼저 여쭙고 실행하는지, 재차 물어보고 싶어진다.

 

 

가로수 길 따라 면으로 내려갔다.

며칠 손님들 등쌀에 반찬이 동이 나서, 점심을 사먹으러 나간 길이었다.

 

“아들네가 저지금(딴살림) 내가꼬 읍으로 나가부렀는디,

단칸방이라도 장만해줄라고 일차 깨묵어불고…. 요새가치로 장사가 안되므는,

깐딱 허다가는 마이나쓰는 고사하고 쫄딱 엎어불게 생겼는디….”

단골 추어탕집에서 옆상 이야기를 엿듣는다.

 

그러다 궁궁한 인생들은 가로수 저 멀리로 총총 사라져갔다.

 

‘기운 내서 삽시다들. 짱짱하게 기운 내서….’

속으로, 속으로 비나리손을 모아드렸다.

그 참, 어디선가 만종이 울릴 것 같은 오후의 시작이었다.

<임의진/ 시인, 목사>

 

 

  

 

 

 

 

  

 

 

 

- 안개꽃 / 나윤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