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렁주렁 눈물방울
정자에 앉아
뽀짝 옆마을 궁산리에서 이장까지 지냈던 고재종 시인은 언젠가 이런 시를 남겼더라. “아래께선 요 근래 부시의 일방적 폭격이 있었다/ 이렇게 높다란 데서 우리는 두루두루 웃고/ 아래께로 다시 고추 모종 놓으러 간다 (‘정자에서’ 가운데)”
이곳 담양은 유독 정자가 많다. 소쇄원이 대표격이고, 송강정, 식영정, 환벽당 같은 유서 깊은 정자들 말고도 큰 마을마다 기품 있는 정자가 하나쯤 서 있다.
가끔 정자에 앉곤 한다. 저수지 뒷길에 자주 찾아가는 낡은 정자가 있는데, 기와가 허물어져 천막으로 덮어놓은 상태다. 나는 거기 툇마루에 앉아 저수지에 내린 싯푸른 하늘과 오색 단풍, 그리고 산새들의 아카펠라를 듣고는 한다. 어쩌다 시 한수 담아오는 횡재의 날도 있다.
오늘은 깨밭에 일나온 아낙들이 정자를 차지하고 수다로 백분토론중이었다. 무슨 재미난 얘기를 하시나 금방 숨이 넘어가게 까륵 까르륵. 나도 같이 끼어들어 지줄거리고 싶었지.
전화 통화에 만족할 수 있을까. 눈을 마주보고, 눈부처를 보면서 얘기를 나눠야 옳지 않을까. 정자에 앉아 한숨 돌리면서,
가까운 벗이랑 니캉 내캉 속이야기 나누고픈, 사람이 그리워서 영판 답답한 늦가을 오후. 〈글·그림/ 임의진 시인 · 목사〉 |
마중물
|
오래전 ‘마중물’이란 시를 쓴 일이 있었다. 변변한 시집 한 권 없다보니 작자 미상으로 입에서 입으로들 떠돌밖에. 그러다 여쿵저쿵 첨삭을 당하기도 하고, 한편 좋은 뜻의 모임이나 각오들을 낳기도 하고. 이미 나를 떠났으니 내버려두며 혼자서 기억할 뿐이었다.
용면 돌짝밭으로 귀농한 젊은 부부가 ‘마중물’을 알고 있었다. “마중물을 닮고 싶어요.” 선한 부부의 기도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오늘날 농촌에 산다는 게 마중물인지 구정물인지 헷갈릴 때가 가끔 있다. 하여도, 시대의 마중물이라 믿으며 낮고 캄캄한 생명살림의 외길을 두려움 없이 끝내 걸어가고 싶구나.
“우리 어릴 적 작두질로 물 길어 먹을 때 마중물이라고 있었다. 한 바가지 먼저 윗구멍에 붓고 부지런히 뿜어 대면 그 물이 땅 속 깊이 마중 나가 큰 물을 데불고 왔다. 마중물을 넣고 얼마간 뿜다 보면 낭창하게 손에 느껴지는 물의 무게가 오졌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마중물이 되어준 사랑이 우리들 곁에 있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무저갱으로 제 몸을 던져 모두를 구원한 사람이 있다. 그가 먼저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기에, 그가 먼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꿋꿋이 견뎠기에.” 〈임의진/ 목사 · 시인〉
고추잠자리
| ||||||||||||
하나씩의 별
<임의진/ 시인, 목사>
가로수 길
동네로 들어오는 가로수에 까마귀 떼가 까맣게 앉았다. 고흐가 그린 까마귀 떼 풍경 같다.
군내 곳곳으로 길게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게다가 우리 면에는 삼나무, 회화나무, 벽오동나무, 플라타너스, 벚나무, 백일홍까지 …. 줄줄이 멋들어진 가로수 길. 담양의 자랑이며 외딴 집 들어오는 병풍산길 자랑이다.
특히 메타세쿼이아는 일부 베어 사라질 뻔하였는데, 군민들이 관과 싸워 지켜낸 가로수 길이라 애정이 남다르다. 오히려 지금은 군에서 가로수 길을 관광 코스로 첫손에 꼽는 걸 보면 무슨 일이건 주민들에게 먼저 여쭙고 실행하는지, 재차 물어보고 싶어진다.
가로수 길 따라 면으로 내려갔다. 며칠 손님들 등쌀에 반찬이 동이 나서, 점심을 사먹으러 나간 길이었다.
“아들네가 저지금(딴살림) 내가꼬 읍으로 나가부렀는디, 단칸방이라도 장만해줄라고 일차 깨묵어불고…. 요새가치로 장사가 안되므는, 깐딱 허다가는 마이나쓰는 고사하고 쫄딱 엎어불게 생겼는디….” 단골 추어탕집에서 옆상 이야기를 엿듣는다.
그러다 궁궁한 인생들은 가로수 저 멀리로 총총 사라져갔다.
‘기운 내서 삽시다들. 짱짱하게 기운 내서….’ 속으로, 속으로 비나리손을 모아드렸다. 그 참, 어디선가 만종이 울릴 것 같은 오후의 시작이었다. <임의진/ 시인, 목사>
|
- 안개꽃 / 나윤선
'하루하루~(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그리고 2007년이 저뭅니다. (0) | 2007.12.20 |
---|---|
첫눈이 오는 날 - 최명희 선생님 (0) | 2007.11.20 |
문득 듣고싶은 노래 (0) | 2007.11.17 |
그 때 . . . (0) | 2007.11.17 |
"마누라"는 아내를 높여부르던 호칭 (0) | 2007.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