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전 [神機箭]
화차의 복원 모습. 구멍 속에 끼인 막대 같은 것이 신기전이다.
발사하면 다량의 적을 섬멸할 수 있다.
고려 말엽(1377∼1390)에 최무선에 의하여 제조된 ‘달리는 불’이라는 뜻의 로켓병기인 '주화(走火)'가 1448년(세종 30) 개량되어 신기전(神機箭)으로 바뀌었다. 기화전(起火箭)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과 함께 숨은 무기로 활약했다고 <병기도설>에도 기록되어 있다.
종류에는 대신기전(大神機箭) · 산화신기전(散火神機箭) · 중신기전(中神機箭) · 소신기전(小神機箭)
등으로 나뉜다.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병기도설’의 신기전에 관한 기록은
15세기 이전의 로켓 병기에 관한 기록 중 세계에서 가장 자세하면서 오래된 기록이다.
특히 대신기전은 약통(藥筒)을 종이로 만든 로켓 병기로서 영국의 콩그레브(Congreve,W.)가
1805년 제작한 6-파운더(6-Pounder) 로켓보다 더 큰 세계최대의 종이통 로켓이다.
① 대신기전:
대신기전은 윗둘레 1촌(30.7㎜), 아랫둘레 3촌(92㎜)에 길이 17척(5,210.5㎜)의 긴 대나무(竹) 윗부분에 길이 2척2촌2분5리(682.0㎜), 둘레 9촌6분(294.2㎜), 안지름이 2촌2리(61.9㎜)의
원통형 종이통(로켓엔진)이 부착된 구조이다.
원통형 종이통(藥筒) 속에는 화약(추진제)을 채우고
아래에는 지름 1촌2분(36.8㎜)의 분사구멍(nozzle)이 뚫려 있어
이곳으로 종이통 속 화약의 연소가스가 밖으로 분출되며 로켓이 스스로 날아가는 것이다.
긴 대나무는 로켓이 앞으로 똑바로 안정되게 날아갈 수 있도록 하는 안정막대기이며
그 끝부분에는 조그만 날개가 붙어 있다.
종이통의 앞부분에는 종이통폭탄인 대신기전발화통(大神機箭發火筒)이 부착되어 있어
목표지점에서 폭발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고,
세종 때 90개가 제조되어 의주성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다.
② 산화신기전:
산화신기전의 규모는 대신기전과 같으나 대신기전발화통을 사용하지 않고
약통의 윗부분에 빈 곳을 만들고 그 속에 지화(地火)와 발화(發火)를 묶어서 넣은 것으로
적군을 혼란에 빠뜨리는 데 사용된다. 대신기전과 산화신기전의 사정거리는 1,000m 이상이다.
③ 중신기전:
중신기전은 길이 4척5촌(1,379.3㎜) 되는 대나무앞에 쇠촉을 달고, 그 조금 위에
길이 6촌4분(196.2㎜), 둘레 2촌8분(85.8㎜), 안지름 5분3리(16.2㎜)의 종이약통을 부착하였다.
약통의 앞부분에는 종이폭탄 소발화(小發火)가 끼워져 있고
아래의 중앙에는 지름 2분3리(7.0㎜)의 분사구멍이 있다. 뒷부분에는 새털로 만든 깃이 있다.
④ 소신기전:
소신기전은 길이 3척3촌(1,011.5㎜)의 대나무 앞에 쇠촉을 달고,
그 뒤에 길이 4촌7분(144.0㎜), 겉둘레 2촌1분(64.4㎜), 안지름 3분7리(11.3㎜)의 약통을 달았다.
약통의 양쪽 끝은 종이로 막으며 아래의 끝면에는 지름 1분3리(4.0㎜)의 분사구멍이 있다.
화살의 아래 끝쪽에는 중신기전과 같이 새털로 만든 깃이 있다.
소신기전은 대 · 중신기전과는 달리 폭발물이 장치되어 있지 않다.
중 · 소신기전의 발사는 한개씩 빈 화살통 같은 곳에 꽂아 발사하기도 하였으나,
문종이 1451년(문종 1)에 화차를 제작한 뒤로부터는 화차의 신기전기(神機箭機)에서 주로 발사되었다.
신기전기는 한번에 100발의 중신기전이나 소신기전을 장전하여
차례로 발사할 수 있는 로켓발사틀이다.
로켓제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약통에 화약을 넣어 빈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끝이 뾰족한 송곳을 약통 아래의 분사구멍에 끼우고 화약을 아래부터 다져서 넣는다.
그 다음 송곳을 빼내는 방법을 택하여 약통 속의 화약에 빈 공간을 만들어,
불로써 점화를 하면 동시에 화약이 타들어가는 면적을 넓게 하여 로켓의 추진력을 강력하게 해주었다.
중 · 소신기전의 사정거리는 중신기전이 150m, 소신기전이 100m 가량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신기전은 임진왜란 때에도 사용된 기록이 보인다.
≪참고문헌≫ 國朝五禮序例
≪참고문헌≫ 韓國初期火器硏究(蔡連錫, 一志社, 1981)
- empas 백과사전
[화차(火車)]
조선 초기에 발명되어 조선 중기까지 사용된 화포의 일종이다.
오늘날에는 '화차'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당시에는 '화거'라 하였다.
태종 이후로 꾸준히 개발되어 일종의 로켓형 무기를 쏠 수 있는 연장포대가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의 태종실록에는 태종 9년(1409)에 만들어 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군기소감 이도와 군기감승 최해산 등이 만들었다.
그러나 이 화차는 실전에 쓰이지 않았으며, 실제로 크게 유용하지 않았다.
철령전 수십개를 달아 화약으로 발사하는 수레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문종이 화차를 개량케 하였으며,
그 이후엔 1592년 변이중이 화차에 100개가 넘는 구멍을 뚫어 심지에 불을 붙여 발사하게 하였다.
이 때까지는 실전에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
이렇게 큰 역할을 하지 못하던 화차가 진가를 발휘한 것은 임진왜란 때이다.
구멍에 꽂은 신기전을 발사하여 적군을 살상하는 한편, 군사 물품을 옮기는 수레로서도 사용하였다.
신기전은 대나무로 만든 화살에 약통을 붙여 약통 심지에 불을 붙이면 폭발하여
그 추진력으로 날아가는 무기이다.
화차는 실제 권율의 행주대첩 때에도 비격진천뢰와 함께 유용하게 쓰였다.
화차는 한 명만으로는 움직이기 힘들어서 두 명 이상이 함께 움직였다고 한다.
스크린 속에 살아난 세종시대 로켓, 신기전 |
세계 최초의 ‘탄도미사일’ 복원 한창 |
- 과학동아, 2008년 09월호
- 글, 전승민 기자 ㆍ enhanced@donga.com
‘신기전’에 대한 오해 그리고 진실
신기전은 세계 최초의 로켓?
세종 때 만들어진 화약무기를 다룬 영화 ‘신기전’의 반응이 사뭇 뜨겁다. 추석 극장가를 휩쓴 흥행작으로서 관객들의 호응을 이어오고 있는 이 영화의 주연은 설주 역을 맡은 정재영과 최무선 장군의 손녀 딸인 홍리 역의 한은정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구체적이면서도 집요하게 신기전에 대해 파고든다. 물론 영화 속의 스토리와 상황 설정은 모두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신기전에 대한 과학적ㆍ역사적 사실은 많은 고증을 거친 흔적이 역력하다.
원통해하는 분들이 간혹 있다. 그러나 신기전은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져 있는 유명 인사이다. 신기전 발사대인 화차의 사진과 함께 신기전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그는 최무선의 아들로서 태종 때 관리로 특채되어 화약 무기의 제조를 담당했다. 조선 초기에 만든 화포는 사정거리가 최대 1천 보에 이르렀으며, 바퀴가 달린 화차는 신기전이라는 화살 100대를 잇따라 발사할 수 있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소 채연석 박사팀이 신기전을 복원하여 발사함으로써, ‘5백여 년 만에 다시 부활한 조선의 로켓’이라며 국내외 언론에 크게 보도된 바 있다.
영화 ‘신기전’을 만든 김유진 감독도 그때 신기전의 위력을 직접 구경한 후 영화로 만들 결심을 했었다고 한다.
1232년 중국 금나라에서 만든 비화창이다. 날아가는 불화살이란 뜻의 이 무기는 칭기즈칸의 셋째 아들인 오고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에게 사용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연소하며 스스로 날아가는 달걀’이라는 이름의 로켓이다. 이 로켓을 사용한 사례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데, 납작한 두 개의 냄비를 포개놓고 그 가운데 2개의 큰 로켓을 장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로케타’이다. 이 무기에서 오늘날의 ‘로켓’이란 이름이 유래했다. 주화는 화살 앞부분에 종이를 말아서 만든 종이통에 화약을 쟁여넣고 점화선에 불을 붙이면 화약이 타면서 연소가스를 분출해 날아가는 로켓 무기였다. 복원이 가능한 최초의 로켓이라는 의미이다. 채연석 박사가 1975년 최초로 발견한 신기전의 설계도는 조선 중종 때 편찬된 예절서 ‘국조오례서례’의 병기도설 속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국제적으로도 공인을 받았다.
영화 속에서 본 것처럼 둥그런 바퀴의 수레와 그 위에 로켓발사장치처럼 생긴 나무틀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신기전의 발사 및 이동장치인 화차이지 신기전이 아니다. 거기에 장착되는 화살이 바로 신기전이다. 방향을 정확히 잡게 되고 한 번에 많은 신기전을 발사할 수 있게 되어 신기전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화차의 수레는 보통 수레와 달리 상판이 바퀴보다 매우 높게 설계되어 신기전의 발사각도를 0도에서 43도까지 조절해 사정거리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문종은 자신이 직접 만든 화차를 1451년(문종 1) 전국 각지에 700여 대나 배치했다. 일종의 화포 매뉴얼인 ‘총통등록’을 여러 도의 절제사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아전의 손에 맡기지 말고 홀로 있을 때 비밀히 펴볼 것을 강조했다. 그 나머지 도에서는 2년마다 한 번씩 총통등록 속의 화포를 쏘는 연습을 하도록 지시했다. 그때 나열한 화포의 종류를 보면 팔전총통ㆍ사전총통ㆍ장총통ㆍ세총통에 이어 신기전은 맨 마지막에 언급하고 있다. 맨 앞의 팔전총통은 한 번에 세전 8발, 차세전 12발을 장전하여 동시에 발사할 수 있었다. 또한 신기전기와 더불어 화차에 장착되는 총통기에는 사전총통 50개를 장착할 수 있어서 한 번에 세전 200발, 차세전 300발을 발사할 수 있었다. 즉, 한 번에 100발을 장착할 수 있는 중ㆍ소 신기전보다 더 위력적인 다연발 화포였던 셈이다. 석환이나 철탄자ㆍ화살 등을 속에 넣고 쏘는 화포인 총통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더불어 영화의 라스트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적진에 날아간 중신기전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발화통의 화약이 다시 폭발하므로 매우 위력적이었다.
현대의 로켓과 모양이 똑같아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허나 옛날과 똑같이 복원해 사용한 중ㆍ소 신기전과 달리 영화 속에 나온 대신기전은 작은 로켓으로 대신해 촬영한 다음 컴퓨터그래픽으로 마무리한 장면이다. 대신기전의 복원이 어려운 이유는 약통의 재료인 질기고 질 좋은 전통한지를 구할 수 없기 때문. 길이 70㎝ 지름 10㎝의 약통이 연이어 부착된 모양이다. 약통의 추진력에 의해 대신기전이 적진에 도달하면 발화통의 화약이 터지게 된다. 시간 차를 두고 공중에서 지화통이 먼저 터진 다음 발화통이 폭발하게 되어 있어 적진을 더욱 혼란에 몰아넣었다. 대신기전은 주로 압록강변에서 사용된 걸로 보아 강변의 성에서 압록강 건너 오랑캐를 향해 발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100% 전통한지 대신 펄프를 약간 첨가한 한지로 대신기전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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