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세종시대의 로켓 - 신기전

Gijuzzang Dream 2008. 9. 3. 15:21

 

 

 

 

 

 

 

 

 

 

  신기전 [神機箭]

 그림:Hwacha2.jpg

화차의 복원 모습. 구멍 속에 끼인 막대 같은 것이 신기전이다.

발사하면 다량의 적을 섬멸할 수 있다.

 

 

〔유래 및 역사〕

고려 말엽(1377∼1390)에 최무선에 의하여 제조된 ‘달리는 불’이라는 뜻의 로켓병기인 '주화(走火)'가 1448년(세종 30) 개량되어 신기전(神機箭)으로 바뀌었다. 기화전(起火箭)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과 함께 숨은 무기로 활약했다고 <병기도설>에도 기록되어 있다. 

종류에는 대신기전(大神機箭) · 산화신기전(散火神機箭) · 중신기전(中神機箭) · 소신기전(小神機箭)

등으로 나뉜다.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병기도설’의 신기전에 관한 기록은

15세기 이전의 로켓 병기에 관한 기록 중 세계에서 가장 자세하면서 오래된 기록이다.

특히 대신기전은 약통(藥筒)을 종이로 만든 로켓 병기로서 영국의 콩그레브(Congreve,W.)가

1805년 제작한 6-파운더(6-Pounder) 로켓보다 더 큰 세계최대의 종이통 로켓이다.

 

〔내용 및 특징〕

① 대신기전:

대신기전은 윗둘레 1촌(30.7㎜), 아랫둘레 3촌(92㎜)에 길이 17척(5,210.5㎜)의 긴 대나무(竹) 윗부분에 길이 2척2촌2분5리(682.0㎜), 둘레 9촌6분(294.2㎜), 안지름이 2촌2리(61.9㎜)의

원통형 종이통(로켓엔진)이 부착된 구조이다.

원통형 종이통(藥筒) 속에는 화약(추진제)을 채우고

아래에는 지름 1촌2분(36.8㎜)의 분사구멍(nozzle)이 뚫려 있어

이곳으로 종이통 속 화약의 연소가스가 밖으로 분출되며 로켓이 스스로 날아가는 것이다.

긴 대나무는 로켓이 앞으로 똑바로 안정되게 날아갈 수 있도록 하는 안정막대기이며

그 끝부분에는 조그만 날개가 붙어 있다.

종이통의 앞부분에는 종이통폭탄인 대신기전발화통(大神機箭發火筒)이 부착되어 있어

목표지점에서 폭발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고,

세종 때 90개가 제조되어 의주성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다.

② 산화신기전

산화신기전의 규모는 대신기전과 같으나 대신기전발화통을 사용하지 않고

약통의 윗부분에 빈 곳을 만들고 그 속에 지화(地火)와 발화(發火)를 묶어서 넣은 것으로

적군을 혼란에 빠뜨리는 데 사용된다. 대신기전과 산화신기전의 사정거리는 1,000m 이상이다.

③ 중신기전:

중신기전은 길이 4척5촌(1,379.3㎜) 되는 대나무앞에 쇠촉을 달고, 그 조금 위에

길이 6촌4분(196.2㎜), 둘레 2촌8분(85.8㎜), 안지름 5분3리(16.2㎜)의 종이약통을 부착하였다.

약통의 앞부분에는 종이폭탄 소발화(小發火)가 끼워져 있고

아래의 중앙에는 지름 2분3리(7.0㎜)의 분사구멍이 있다. 뒷부분에는 새털로 만든 깃이 있다.

④ 소신기전:

소신기전은 길이 3척3촌(1,011.5㎜)의 대나무 앞에 쇠촉을 달고,

그 뒤에 길이 4촌7분(144.0㎜), 겉둘레 2촌1분(64.4㎜), 안지름 3분7리(11.3㎜)의 약통을 달았다.

약통의 양쪽 끝은 종이로 막으며 아래의 끝면에는 지름 1분3리(4.0㎜)의 분사구멍이 있다.

화살의 아래 끝쪽에는 중신기전과 같이 새털로 만든 깃이 있다.

소신기전은 대 · 중신기전과는 달리 폭발물이 장치되어 있지 않다.

중 · 소신기전의 발사는 한개씩 빈 화살통 같은 곳에 꽂아 발사하기도 하였으나,

문종이 1451년(문종 1)에 화차를 제작한 뒤로부터는 화차의 신기전기(神機箭機)에서 주로 발사되었다.

 

신기전기는 한번에 100발의 중신기전이나 소신기전을 장전하여

차례로 발사할 수 있는 로켓발사틀이다.

로켓제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약통에 화약을 넣어 빈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끝이 뾰족한 송곳을 약통 아래의 분사구멍에 끼우고 화약을 아래부터 다져서 넣는다.

 그 다음 송곳을 빼내는 방법을 택하여 약통 속의 화약에 빈 공간을 만들어,

불로써 점화를 하면 동시에 화약이 타들어가는 면적을 넓게 하여 로켓의 추진력을 강력하게 해주었다.

중 · 소신기전의 사정거리는 중신기전이 150m, 소신기전이 100m 가량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신기전은 임진왜란 때에도 사용된 기록이 보인다.

≪참고문헌≫ 國朝五禮序例
≪참고문헌≫ 韓國初期火器硏究(蔡連錫, 一志社, 1981)

-  empas 백과사전

 

 

[화차(火車)]

조선 초기에 발명되어 조선 중기까지 사용된 화포의 일종이다.

오늘날에는 '화차'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당시에는 '화거'라 하였다.

태종 이후로 꾸준히 개발되어 일종의 로켓형 무기를 쏠 수 있는 연장포대가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의 태종실록에는 태종 9년(1409)에 만들어 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군기소감 이도와 군기감승 최해산 등이 만들었다.

그러나 이 화차는 실전에 쓰이지 않았으며, 실제로 크게 유용하지 않았다.

철령전 수십개를 달아 화약으로 발사하는 수레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문종이 화차를 개량케 하였으며,

그 이후엔 1592년 변이중이 화차에 100개가 넘는 구멍을 뚫어 심지에 불을 붙여 발사하게 하였다.

이 때까지는 실전에 많이 사용되지 않았다.

 

이렇게 큰 역할을 하지 못하던 화차가 진가를 발휘한 것은 임진왜란 때이다.

구멍에 꽂은 신기전을 발사하여 적군을 살상하는 한편, 군사 물품을 옮기는 수레로서도 사용하였다.

신기전은 대나무로 만든 화살에 약통을 붙여 약통 심지에 불을 붙이면 폭발하여

그 추진력으로 날아가는 무기이다.

화차는 실제 권율의 행주대첩 때에도 비격진천뢰와 함께 유용하게 쓰였다.

화차는 한 명만으로는 움직이기 힘들어서 두 명 이상이 함께 움직였다고 한다.

 

 

 


스크린 속에 살아난 세종시대 로켓, 신기전

세계 최초의 ‘탄도미사일’ 복원 한창

 

 

 

백여 명밖에 되지 않는 조선군.

여진과 명나라가 연합한 수천 명의 군사와 맞서고 있다.

여기서 무너지면 뒤를 이어 10만 대군이 조선을 침공하게 된다.

절체절명의 상황. 수적 우세를 앞세워 공격해 오는 연합군.

쉬익~ 쉬익~. 갑자기 수백 발의 화전(火箭, 불화살)이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는다. 보통화살보다 2배가 넘는 거리에서 날아드는 이 화살은 헤아려 보니 반경 70m 내에 100발 이상 쏟아지고 있다.

방패로 막아 보았으나 무용지물.

이 신묘한 화살은 목표물에 도달한 즉시 굉음을 내며 폭발한다.

“이것이 조선이 개발했다는 신무기란 말인가.”
아비규환. 더는 전열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연합군 지휘관이 내릴 수 있는 명령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퇴각명령!

달아나는 것도 잠시. ‘슈슈슉~’ 기묘한 소리가 천지를 울린다.

하늘을 쳐다보니 조선군 측에서 거대한 불덩어리

하나가 연기를 뿜으며 2km가량의 거리를 날아들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철편이 사방으로 튄다.

정신을 차려 보니 주위에 살아남은 병사는 거의 없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 ‘신기전’(神機箭)의 한 장면이다.

2003년부터 기획해 5년 8개월간 총 100억 원을 들여 제작한 이 영화에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조선 초기의 무기 ‘신기전’이 등장한다.

 

 

15세기 세계 최초 로켓 병기, 영화에 구현

신기전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조선시대 여성과학자 홍리.

배우 한은정 씨는 영화 ‘신기전’에서 로켓무기 개발자인 ‘홍리’역을 맡았다.

신기전의 역사는 고려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4세기 발명가이자 과학자인 최무선이 만든 무기 중에 ‘주화’란 로켓 병기가 포함돼 있다.

이 주화를 세종 시절 개량한 무기가 바로 ‘신기전’이다.

세종 말 1477년 편찬된 ‘국조오례서례’의 ‘병기도설’(兵器圖說)에 상세한 설계도가 전해지고 있다.

  

  

 

신기전은 실존했던, 조선 초기 첨단과학기술의 상징 같은 무기다.

영화 신기전의 시나리오는 ‘신기전의 아버지’로 불리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채연석 연구위원이 고증했다.

채 연구위원은 국조오례서례에 포함된 신기전의 설계도가 ‘로켓’이라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세상에 알린 인물. 그의 노력 덕분에 신기전 최초의 설계도는

세계우주항공학회(IAF)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로켓 설계도로 공인받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중신기전 발사시험 장면.

10발을 연속으로 쏠 수 있는 이 발사대는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특수효과팀이 직접 고안했다.

영화 제작팀은 이처럼 모든 시대적 상황에 대해 철저한 고증을 거친 것도 모자라 한번 더 욕심을 냈다.

신기전은 크기에 따라 대·중·소신기전 3가지로 나뉘는데, 3가지 신기전을 모두 제작해 영화를 촬영한 것.

영화에서 강을 건너 날아가 폭발하는 불덩이가 장거리 공격용 무기인 대(大)신기전이고,

하늘을 뒤덮은 수백 발의 불화살이 중·소신기전이다.

구체적으로 중(中)신기전은 끝에 폭약을 장착한 중거리 공격용 화살이며,

소(小)신기전은 약통(추진장치)의 힘을 빌려 보통 화살에 비해 2배 더 날아가는 화살이다.

 

 

과학적 고증 의미에선 ‘절반의 성공’

 

제작팀은 신기전의 발사대로 쓰일 화차(火車), 중 · 소신기전 100발을 한꺼번에 장착할 수 있는

거치대인 신기전기(神機箭機)까지 만들었다.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기 위해

전통수레 장인인 이대길 옹과 그의 제자 이민우 씨에게 자문을 구하고, 국립중앙과학관의 조언을 얻었다.

홍리의 작업실.

신기전 재료가 어지럽게 널려있고, 벽에는 각종 도면이 붙어 있다.

당시 조선은 1리(길이, 0.3mm) 단위까지 측정이 가능한

정밀 과학을 보유하고 있었다.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팀 윤용현 연구관은

“조선시대 목재기술은 현대의 건축기술에 견줄 만했다”며

“화차의 바퀴, 수레의 축 등을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찾기 매우 어려울 정도”라고 설명했다.

영화에 나오는 신기전 발사장면은 모두 실사지만,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촬영 이후 컴퓨터그래픽(CG) 보정작업을 거쳤다.

영화를 찍기 위해 제작한 화차는 총 5대. 이 장비들은 영화 개봉 뒤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영화 제작팀이 만든 신기전기 화차. 이 소품은 문종 1년 보급이 시작된 ‘문종화차’를 복원한 것이다.

 

 

 

물론 제작사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과학적 복원과는 차이가 있다.

화차의 모습은 과거 그대로지만 신기전의 발사대인 신기전기는 화면에서 웅장해 보이도록

실제보다 조금 더 크게 제작됐다.

또 영화에 등장하는 대신기전 발사대 2대는 영화제작팀이 직접 고안한 것이다.

발사대의 모습이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여주인공 홍리(한은정 분)가 신기전 개발과정에서 사용했던,

10발을 연속 발사할 수 있는 시험용 발사대도 모두 영화사 자체 기획에 따라 만든 창작품이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전통 화약 대신 현대 화약을 사용했다.

이런 관점에서 철저한 과학적 재현보다는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시각적 복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총감독을 맡은 김유진 감독은 8월 7일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스토리는 가상이지만, 시대적 배경과 무기(신기전)만큼은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고

자랑하면서도 “복원 자체만 볼 때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설명했다.

 

 

15년 전 다연발로켓화포 재현

1, 2 국방과학연구소가 복원한 대신기전 발사장면.

현대의 로켓 발사 모습과 크게 다르지않다.

발사대의 모습은 문헌에 남아있지 않아 국방과학연구소가 자체 제작했다.

과학에 관심 많은 독자라면 신기전과 화차가 대전 엑스포가 한창인 1993년 복원된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채연석 연구위원이 당시 다연발로켓화포인 중 · 소신기전을 실제로 복원한 뒤

100발을 연속으로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재현된 신기전과 화차는 각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립중앙과학관 등에 전시돼 있다.

중·소신기전은 화살에 추진체를 연결한 ‘로켓화살’이다.

당시 일반 화살의 사정거리는 100m. 소신기전은 200m 이상을 날아가고

중신기전은 이보다 더 긴 250m까지도 날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중신기전은 폭발기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약통에서 연소되던 불꽃이 발화통(탄두)으로 옮겨 붙어,

추진력이 사라질 무렵 자동으로 폭발하도록 제조됐다.

현대의 지연신관 개념까지 도입된 첨단무기였던 셈이다.

발화통 내부에 철가루가 포함돼 있어 제한적이지만 적군에 부상을 입히는 효과도 있었다.

중 · 소신기전의 또 다른 장점은 화차와 결합시킬 경우 당시 찾아보기 힘든 연속발사가 가능하다는 점.

특별 제작된 수레인 화차 위에 신기전기라는 발사대를 얹으면 도화선의 길이를 조정해

중 · 소신기전 100발을 한꺼번에 발사할 수 있다. 발사된 100발의 신기전은 모두 반경 70m 안에 떨어진다.

신기전에 ‘세계 최초의 다연발로켓화포’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화차 자체만으로도 과학적 의미는 크다.

300개 이상의 부속품으로 이뤄진 정밀기기로, 현대에도 전통방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흥미롭게도 화차는 손잡이를 바닥에 놓으면 각도가 43~45°가 된다.

이는 이론적으로 최장거리 발사각도에 가깝다.

 

 

대신기전, 국방과학연구소 이어 항우연 복원 중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채연석 연구위원이 ‘대신기전’의 약통을 설명하고 있다. 채 연구위원은 최대한 전통방식으로

대신기전을 복원할 계획이다.

대신기전은 강 건너까지 날아가는 최초의 장거리 미사일이다.

몸체(안정막대)는 대나무로 만들어지며 길이는 5.6m 정도로 긴 편이다.

뒷부분에는 가죽으로 만든 깃(안정날개)을 달았다. 약통은 전통 한지를 탄탄하게 감아 만든다.

역사학자들은 대신기전이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 이민족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장거리 공격무기가 전무한 시대인 만큼 현대의 탄도미사일 개념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미다.

윤용현 연구관은 “대신기전의 사정거리는 2km에 이르러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였다”고 설명했다.

대신기전의 또 다른 종류인 ‘산화신기전’의 경우는

길이가 5.3m로 약간 짧지만 사정거리와 폭발력 자체는 대동소이하다.

다만 탄두에 철편을 내장하고 있어 살상효과를 높인 것이 특징이다.

대신기전은 중 · 소신기전이 복원된 지 15년이 지난 최근에야 완벽한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주도적으로 연구해왔다.

한 발 앞서 대신기전을 복원한 측은 ADD다.

ADD 측은 지난 4월, 1년간의 연구개발을 거쳐 대신기전 복원을 마쳤다.

가장 까다로운 부분인 전통 흑색화약도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다만 화약 내부에서 산소를 공급하는 물질인 염초만큼은 그 주성분인 질산칼륨(KNO3)으로 대처했다.

몇 개월에 걸쳐 흙, 동물의 소변, 나뭇재 등을 섞어 정제해야 하는 전통방식을 사용하는 방법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로켓에 쓰이는 화약은 일정한 양이 천천히 타 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폭탄과 다른 제어기술이 요구된다.

산화제인 염초의 비율과 구성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이 때문에 연구기관에서도 화약 재현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채연석 연구위원팀에서도 현재 대신기전을 복원하는 연구가 한창이다.

채 연구위원은 화약 제조를 비롯한 중요과정을 모두 전통방식에 따를 계획이다.

그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신기전 복원을 미뤄뒀던 이유는 뭘까.

그는 “1990년대 당시에는 대신기전을 복원하고 싶어도 전통 한지 같은 재료를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면서

“대신기전을 비롯한 각종 고대무기를 복원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제작과정까지 철저히 고증하지 않으면 복원의 의미가 없다”는 그에게

겨레과학을 살리려는 장인정신이 묻어난다.



신기전에 필적한 무기, 최초의 샷건 ‘사전총통’

국립중앙과학관에 전시 중인

총통기 화차.

      

 

신기전과 동시대에 등장했던 조선 초기 무기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사전총통’이다.

화약의 힘으로 여러 발의 화살을 한꺼번에 날릴 수 있는 개인용 화포로 현대의 산탄총(샷건)과 유사하다.

길이 26.1cm, 구경 2.2cm 정도의 소형 화살(세전) 4개를 한꺼번에 발사할 수 있었다.

사전총통은 소신기전과 유사한 성능을 갖췄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신기전이 로켓의 원리로 날아가는 반면

사전총통은 화약이 폭발하는 힘으로 화살을 밀어낸다는 차이가 있다.

사정거리 역시 200m 정도로 소신기전과 큰 차이가 없다. 세종 14년 완성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사전총통은 신기전과 유사한 형태로 연속발사가 가능하다.

화차에 ‘신기전기’를 올리면 신기전 화차가 되고,

‘총통기’(銃筒機)를 올리면 사전총통 발사대로 변모하는 식이다.

총통기에 50개의 사전총통이 장착되는 만큼, 200발(50×4)의 화살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었다.

화차와 신기전기, 총통기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문종 1년으로,

이미 세종 때 개발이 완료돼 보급이 시작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신기전과 사전총통은 임진왜란을 거쳐 조선후기까지 사용됐다.

현재 총통기 화차는 외형만 복원돼 대전국립중앙과학관에 전시돼 있다.  

- 과학동아, 2008년 09월호

글, 전승민 기자 ㆍ enhanced@donga.com

 

 

 

 

 

 

 

 

 

 

 

‘신기전’에 대한 오해 그리고 진실

 

신기전은 세계 최초의 로켓?

세종 때 만들어진 화약무기를 다룬 영화 ‘신기전’의 반응이 사뭇 뜨겁다.

추석 극장가를 휩쓴 흥행작으로서 관객들의 호응을 이어오고 있는 이 영화의 주연은

설주 역을 맡은 정재영과 최무선 장군의 손녀 딸인 홍리 역의 한은정이다.
그러나 기자가 보기엔 ‘신기전’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신기전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구체적이면서도 집요하게 신기전에 대해 파고든다.

물론 영화 속의 스토리와 상황 설정은 모두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신기전에 대한 과학적ㆍ역사적 사실은 많은 고증을 거친 흔적이 역력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신기전의 이미지와 역사 속의 진짜 신기전이 어떻게 다른지 짚어본다.

 


옛날에 이런 훌륭한 무기가 있었다는 말은 처음 듣는 걸?

영화를 본 관객들 중 조선시대에 이런 훌륭한 무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왜 알려지지 않았냐고

원통해하는 분들이 간혹 있다. 그러나 신기전은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져 있는 유명 인사이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병서편찬과 무기제조’ 항목을 보면

신기전 발사대인 화차의 사진과 함께 신기전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조선 초기 화약 무기의 제조에는 최해산이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최무선의 아들로서 태종 때 관리로 특채되어 화약 무기의 제조를 담당했다.

조선 초기에 만든 화포는 사정거리가 최대 1천 보에 이르렀으며,

바퀴가 달린 화차는 신기전이라는 화살 100대를 잇따라 발사할 수 있었다.”

또한 지난 1993년 대전엑스포 개막식에서는

한국항공우주연구소 채연석 박사팀이 신기전을 복원하여 발사함으로써,

‘5백여 년 만에 다시 부활한 조선의 로켓’이라며 국내외 언론에 크게 보도된 바 있다.

 

영화 ‘신기전’을 만든 김유진 감독도 그때 신기전의 위력을 직접 구경한 후

영화로 만들 결심을 했었다고 한다.

 


신기전은 세계 최초의 로켓?

기록상 전해지는 세계 최초의 로켓은

 

1232년 중국 금나라에서 만든 비화창이다. 날아가는 불화살이란 뜻의 이 무기는

칭기즈칸의 셋째 아들인 오고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에게 사용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두 번째 로켓은 1290년 무렵 아라비아의 알하산 알람마하가 만든

‘연소하며 스스로 날아가는 달걀’이라는 이름의 로켓이다.

이 로켓을 사용한 사례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데,

납작한 두 개의 냄비를 포개놓고 그 가운데 2개의 큰 로켓을 장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 번째 로켓은 1379년 이탈리아의 제노아 군대가 카이오자 성의 베니스 군을 공격할 때 사용한

‘로케타’이다. 이 무기에서 오늘날의 ‘로켓’이란 이름이 유래했다.

신기전은 고려 말 최무선이 만든 ‘주화’를 개선해 만든 무기로 알려져 있다.

주화는 화살 앞부분에 종이를 말아서 만든 종이통에 화약을 쟁여넣고 점화선에 불을 붙이면

화약이 타면서 연소가스를 분출해 날아가는 로켓 무기였다.

신기전이 세계 최초라는 것은 다른 고대 로켓들과는 달리 설계도가 남아 있어서

복원이 가능한 최초의 로켓이라는 의미이다.

채연석 박사가 1975년 최초로 발견한 신기전의 설계도는

조선 중종 때 편찬된 예절서 ‘국조오례서례’의 병기도설 속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이 설계도는 1983년 헝가리에서 열린 제34차 세계우주항공학회에 소개되어

국제적으로도 공인을 받았다.

 


신기전과 화차는 같다?

신기전을 위력을 잘 보여준

영화의 라스트 신 

흔히 신기전이라고 하면

영화 속에서 본 것처럼 둥그런 바퀴의 수레와 그 위에

로켓발사장치처럼 생긴 나무틀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신기전의 발사 및 이동장치인 화차이지

신기전이 아니다.

거기에 장착되는 화살이 바로 신기전이다.

신기전은 자체 추진력으로 날아가므로 발사장치가 없어도 된다. 하지만 문종이 화차를 개발함으로써 발사각도와

방향을 정확히 잡게 되고 한 번에 많은 신기전을 발사할 수 있게 되어 신기전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화차는 바퀴가 있는 수레와 신기전의 발사틀인 신기전기 및 총통의 발사틀인 총통기로 이루어져 있다.

화차의 수레는 보통 수레와 달리 상판이 바퀴보다 매우 높게 설계되어

신기전의 발사각도를 0도에서 43도까지 조절해 사정거리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문종은 자신이 직접 만든 화차를 1451년(문종 1) 전국 각지에 700여 대나 배치했다.

 

신기전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강력한 화약무기였다?

세종은 1448년(세종 30) 9월 13일 새 화포의 주조법과 화약 사용법 등을 상세히 기록한

일종의 화포 매뉴얼인 ‘총통등록’을 여러 도의 절제사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아전의 손에 맡기지 말고 홀로 있을 때 비밀히 펴볼 것을 강조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양계(북방 지역의 평안도와 함경도)에서는 매년 한 번씩,

그 나머지 도에서는 2년마다 한 번씩 총통등록 속의 화포를 쏘는 연습을 하도록 지시했다.

그때 나열한 화포의 종류를 보면 팔전총통ㆍ사전총통ㆍ장총통ㆍ세총통에 이어

신기전은 맨 마지막에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신기전은 그 당시 비중이 제일 큰 무기는 아니었다.

맨 앞의 팔전총통은 한 번에 세전 8발, 차세전 12발을 장전하여 동시에 발사할 수 있었다.

또한 신기전기와 더불어 화차에 장착되는 총통기에는 사전총통 50개를 장착할 수 있어서

한 번에 세전 200발, 차세전 300발을 발사할 수 있었다.

즉, 한 번에 100발을 장착할 수 있는 중ㆍ소 신기전보다 더 위력적인 다연발 화포였던 셈이다.

그러나 신기전은 스스로 추진력을 갖고 있는 로켓이라는 점에서

석환이나 철탄자ㆍ화살 등을 속에 넣고 쏘는 화포인 총통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더불어 영화의 라스트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적진에 날아간 중신기전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발화통의 화약이 다시 폭발하므로 매우 위력적이었다.



대신기전은 로켓과 모양이 똑같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복원한

대신기전의 발사 모습 

영화 속에서 발사된 대신기전을 보면

현대의 로켓과 모양이 똑같아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허나 옛날과 똑같이 복원해 사용한 중ㆍ소 신기전과 달리

영화 속에 나온 대신기전은 작은 로켓으로 대신해 촬영한 다음 컴퓨터그래픽으로 마무리한 장면이다.

1993년 대전엑스포 때 이미 중ㆍ소 신기전을 복원한 채연석 박사도 아직 대신기전은 복원하지 못했다.

대신기전의 복원이 어려운 이유는 약통의 재료인 질기고 질 좋은 전통한지를 구할 수 없기 때문.

신기전보다 1세기 앞서서 로켓무기인 ‘화전’을 만든 화약의 종주국 중국보다 앞서가는 대신기전을 조선이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우수한 제지술로 만든 전통한지 덕분이었다는 설도 있다.

대신기전의 진짜 모습은 5.3m의 매우 길고 큰 화살에다 맨 앞의 화살촉 대신 길이 22.8㎝, 지름 7.46㎝의 발화통과

길이 70㎝ 지름 10㎝의 약통이 연이어 부착된 모양이다.

약통의 추진력에 의해 대신기전이 적진에 도달하면

발화통의 화약이 터지게 된다.

대신기전과 비슷한 크기의 산화신기전은

시간 차를 두고 공중에서 지화통이 먼저 터진 다음 발화통이 폭발하게 되어 있어

적진을 더욱 혼란에 몰아넣었다. 대신기전은 주로 압록강변에서 사용된 걸로 보아

강변의 성에서 압록강 건너 오랑캐를 향해 발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2008년 4월 국방과학연구소에서는

100% 전통한지 대신 펄프를 약간 첨가한 한지로 대신기전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이성규 기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08.09.23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