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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며(시,서,화)

사경서예(寫經書藝)

Gijuzzang Dream 2008. 8. 22. 20:56

 

 

 

 사경(寫經)서예의 재조명

 

- 예술정신과 다양한 양식의 보고(寶庫) -

 

 

김수천(원광대)


 

머리말

 

최근 들어 서예의 새로운 방향 모색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실용서예(實用書藝)’와 서예치료(書藝治療), 그리고 때를 같이하여 ‘사경서예(寫經書藝)’에

관심을 가진 서예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조선미술전(鮮展 : 1922)과 국전(國展) 이후

줄곧 전시용 서예를 중심으로 일관되어온 서단을 일신(一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

 

공모전 서예의 단초(端初)라 불리는 선전(鮮展)과 국전(國展) 이전의 서예는

‘생활 속의 서예’가 주류를 이루었다.

선전을 기점으로 서예인들은 전통적으로 이어져내려 온 ‘생활 속의 서예’ 보다는

출품을 목적으로 하는 전시용 서예에 비중을 두게 되었다.

그 결과 전문작가의 양산이라는 측면에서는 기여한 바 있지만,

한편으로는 서예문화의 진로를 좁히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생활 속의 서예’는 훨씬 더 폭이 넓고 건강했다. 그에 대한 예는 과거에 ‘생활 속의 서예’의 큰 맥을

이루었던 사경(寫經)에서 충분히 제시될 수 있다고 본다.

사경은 한갓 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한갓 감상을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었다. 개인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모두가 당시 사람들의 신앙생활의 필수품으로 발생한 것으로,

그날 그날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사경의 제작정신

 

사경은 일반적인 서예와 비교할 때 제작태도가 다르다.

예로부터 사경에서 행해졌던 일자일배(一字一拜), 일자삼배(一字三拜),

일행일배(一行一拜), 일행삼배(一行三拜)는 다른 서사행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사경제작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실례라 하겠다.

 

사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새기고 익혀 실천하는 데 그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사경의 과정은 바로 수행의 과정이 된다. 고려에서는 사경을 공덕경(功德經)이라고 불렀다.

 

「법화경」 제4품인 ‘법사품’에 보면

‘사경에 대한 공덕은 십만 억 부처님께 공양한 것과 같은 공덕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법화경」 권발품에는 “법화경을 서사하면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날 수 있다”고 했다.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에는

“어떤 사람이 이 법화경을 듣고, 제가 쓰거나 사람을 시켜 쓰게 하면 얻는 공덕이

부처님의 지혜로 그 수효를 헤아려도 끝을 다할 수 없느니라”는 구절이 있다.

 

사경의 제작 과정에 대해서는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발원문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경을 하는 법은 닥나무 뿌리에 향수를 뿌려 자라게 하고,

닥나무가 다 자란 연후에는 닥나무 껍질을 벗기는 사람, 종이를 만드는 사람,

경문(經文)을 쓰는 사람, 표구하는 사람, 불보살을 그릴 때 심부름하는 사람들은

보살계를 받고 불가에서 먹는 밥을 먹어야 한다. 이상의 사람들은

만약 대소변을 보거나, 잠을 자거나, 밥을 먹었을 때는 향수로 목욕을 해야만 한다.

 

사경을 쓸 처소에 들어가서 사경을 할 때는 안을 깨끗이 하고,

깨끗한 바지․수의(水衣)․ 비의(臂衣)를 입고, 천관(天冠)을 써서 장엄할 것이고,

두 청의동자가 관정침을 받들고, 한 사람은 기악인 네 사람을 따르면서 음악을 연주하고,

다른 한 사람은 향수를 뿌리고, 또 한 사람은 꽃을 받들고 가면서 길에 뿌리고,

또 한 법사는 향로를 받들고 인도하고, 또 한 법사는 범패를 부르며 인도한다.

 

모든 경문 쓰는 스님들은 각기 향과 꽃을 들고 사경소에 도착하면

삼귀의과 삼반정례를 올려서 불보살․ 화엄경에 공양한 다음 올라가 앉아서 경문을 쓴다.

경심을 만들 때도 이와 같이 하고, 불보살상을 그릴 때는 청의동자와 음악 하는 사람은 빼고

몸을 깨끗이 한 사람만 함께 한다. 경심 안에는 사리 1매를 넣는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사경의 제작을 위해 동원되는 삼엄(森嚴)한 진행과정이다.

인용문에서 보듯이, 사경의 제작은 경문을 쓰는 사경사 한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지극정성이 결집되어 이루어지는 성(聖)스러운 행위다.

우리는 발원문에 나타난 내용을 분석해봄으로써 사경의 정신에 대해 한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1. 사경의 정성은 사경에 쓰여 질 종이를 제공해주는 닥나무의 재배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닥나무 뿌리에 향수를 뿌려 자라게 했다.

2. 사경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집단재계(集團齋戒)에 참여하고 있다.

    닥나무가 자라 종이를 만드는 단계에 들어서면 종이를 만드는 사람, 사경을 하는 사람,

    표구하는 사람, 심부름하는 사람은 모두 재식(齋食, 음식의 재계)에 들어간다.

3. 사경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청정(淸淨)한 몸을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소변을 본 후, 잠자리에서 일어난 후, 식사를 한 후에 향물로 목욕재계를 했다.

4. 사경은 장엄한 의식절차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사경소를 청결하게 하고, 사경제작시에는 특수한 의복을 입고,

    기악인들이 음악 연주를 하고, 향을 뿌리고, 길에 꽃을 뿌리고, 향로를 받들고 범패를 부르고,

    사경소에 도착하여 삼귀의와 삼반정례를 올려서 불보살․ 화엄경에 공양하는 의식을 마친 후 

    비로소 사경이 시작된다. 

 

작품의 제작에 앞서 심신의 재계(齋戒)와 수양(修養)을 강조하는 내용은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의 경전이나 서론(書論)과 화론(畵論)에서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본 발원문과 같이 구체적인 예를 가지고 제시된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경을 제작하는 방법은 일반적인 서사행위와 구별되는 특별함이 있다.

그러나, 그 특별함은 사경제작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작품을 지향하는 예술인들이

꼭 참고해야할 심오한 정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사경의 다양한 표현양식

 

사경의 특징 중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것은 서사재료와 표현양식의 다양함이다.

따라서 사경은 서체의 연구뿐만 아니라, 염직․ 문양․ 회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 사경은 묵(墨) 외에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사경의 서사 재료는 크게 묵서(墨書), 금니(金泥), 은니(銀泥), 자혈(刺血) 등으로 구분된다.

    이외에도 사경의 서사재료로 경면주사, 송화가루, 황토, 호분 등이 서사 재료로 사용됐다.

    

     자혈(刺血)은 혈서(血書)로 쓴 사경으로 혈서사경(血書寫經)이라고 한다.

    주로 손가락의 피를 내어 오랜 시일에 걸쳐 사성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태원시(太原市) 숭선사(崇善寺)에는

    明代에 승려 규정결(叫淨潔)이 자신의 혀끝을 바늘로 찔러 피로 12년간 걸쳐 썼다는

    <혈서화엄사경(血書華嚴寫經)>이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성한 자혈사경이 최근에 일본에서 반입되어 공개됐다.

    금강산 건봉사 보림암(普琳菴)에서 사미(沙彌) 인원(仁元)이 손가락의 피를 뽑아 사성한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보현행원품다라니(普賢行願品陀羅尼)> 합부(合部)

    선장본(線裝本, 1715년 추정) 사경이 바로 그것이다.

  
2. 종이에 있어서도 흰 종이만을 쓰지 않았다.

   묵서의 경우에 백지(白紙)와 황지(黃紙) 바탕에 서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금니(金泥)로 사경을 할 경우 백지를 사용하게 되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염색한 바탕지 위에 서사함이 일반적이었다.

   이때는 주로 자지(紫紙, 붉은색), 감지(紺紙, 감색, 쪽빛), 상지(橡紙, 갈색)에 서사했다.

   드물게는 옅은 홍색(紅色)의 염색을 한 바탕지를 사용한 경우도 있고, 흑지(黑紙)를 사용한 경우도 있다.

 

3. 사경은 다양한 재료위에 서사되어졌다.

   종이와 비단에 쓴 사경 외에 판경(板經), 석경(石經), 와경(瓦經), 동경(銅經), 옥경(玉經) 등이 있다.  

 

4. 사경은 장정(裝幀)이 다양하다. 사경의 장정은 권자장(卷子裝, 두루마리), 절첩장(折帖裝),

   호접장(胡蝶裝), 포배장(包背裝), 선장(線裝), 양장(洋裝) 등으로 분류된다.

 

5. 사경은 글씨와 더불어 문양과 변상도(變相圖)를 곁들인 것들이 많다.

   문양은 보상화문(寶相華紋), 연화문(蓮花紋)․ 석류문(石榴紋)․ 목단문(牧丹紋)․ 당초문(唐草紋) 등으로

   장엄하여 문양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변상도는 경문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그림으로 장식경(裝飾經)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서예의 새로운 출구

 

최근 들어 종교계에서는 사경을 신앙에 접근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종교사상사를 연구하는 김철 교수는 요즘 종교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자문자답(自問自答)이고 둘째가 사경행위(寫經行爲)라고 했다.

 

불교사경은 특히 21세기의 사경문화 발전에 있어서 그 연구가치가 크다.

앞에서 밝혔듯이 신라의 사경사들은 작품의 제작에 앞서 심신의 재계와 수양에 철저했다.

사경사뿐만 아니라, 종이를 만드는 사람, 표구하는 사람, 심부름하는 사람 등

사경제작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집단재계의식(集團齋戒意識)에 참여했고,

심지어 닥지의 재료가 되는 닥나무에게도 향수를 뿌려 정성을 들였다.

이와 같이 일의 진행과정을 중시하는 사경문화는 거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신비로운 성(聖)의 세계로 안내했다.

 

정신적인 가치와 더불어 사경이 주는 또 하나의 의미는 재료와 제작기법의 다양함이다.

사경은 먹(墨) 외에도 금니(金泥), 은니(銀泥), 자혈(刺血)을 사용했고,

종이에 있어서도 흰 종이 외에 황지(黃紙), 자지(紫紙), 감지(紺紙), 상지(橡紙), 홍지(紅紙), 흑지(黑紙)를

사용했다. 또한 종이와 비단에 쓴 사경 외에

판경(板經), 석경(石經), 와경(瓦經), 동경(銅經), 옥경(玉經) 등이 전해지고 있다.

장정(裝幀)에 있어서도 권자장(卷子裝), 절첩장折(帖裝), 호접장(胡蝶裝), 포배장(包背裝), 선장(線裝),

양장(洋裝) 등 장정법이 다양하다.

사경은 글씨와 더불어 문양과 변상도(變相圖)를 곁들인 장식경(裝飾經)이 많으며,

이들은 모두 다양한 표현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같은 사경의 서사재료와 표현기법의 다양성은 서예의 가능성을 확장시켜 줄 뿐만 아니라,

염직, 문양, 회화사의 연구 나아가 동양적인 ‘Book Art’의 개척을 위하여

좋은 연구의 대상이 되어줄 것이다.

사경제작의 정신적인 측면․서사재료적 측면․ 표현양식적인 측면은

오늘날 딜레마에 빠진 서예의 새로운 출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본다.       




권하고 싶은 책과 논문

 

김경호, 『한국의 사경』, 한국사경연구회.

박상국, 『사경』, 대원사.

장충식, 『한국의 불교미술』, 민족사.

권희경, 『고려사경의 연구』, 청주고인쇄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