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오딧세이]

[간도 오딧세이] 35. 선인들 기상 깃든 시조 속의 '백두산'

Gijuzzang Dream 2008. 8. 1. 20:24

 

 

 

 

[간도오딧세이]선인들 기상 깃든 시조 속의 백두산

 

 

 

 

 

 

 

 

 

조선 세종시절 북방을 개척한 김종서(金宗瑞 : 1390-1453)는 두 수의 시조를 지었다.


 

(1)
장백산에 기를 꽂고 두만강에 말을 씻겨
썩은 저 선비야 우리 아니 사나이냐!
어떻다 인각화상(麟閣畵像)을 누가 먼저 하리요.

 

長白山에 旗를 곳고 豆滿江에 말을 싯겨

서근 져 션�야 우리 아니 사나희냐

엇덧타 麟閣畵像을 누고 몬져 하리오

- <청구영언(靑丘永言)> 珍本 14

 

(2)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 데,
만리 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 파람 큰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朔風은 나모긋태 불고 明月은 눈속의 찬듸

萬里邊城에 一長劒 집고셔셔

긴 파람 큰 한소�에 거칠 꺼시 업세라.

- <해동가요(海東歌謠)> 주씨본(周氏本) 21

 

김종서는 조선 초기에 여진족을 몰아내고 압록강과 두만강에 이르는 영토를 개척했다.

그 과정에서 말을 타고 백두산을 오르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이와 비슷한 시조를 남긴 장군이 있다.

 

 

남이 장군(南怡 : 1441-1468) 역시 백두산을 소재로 두 수의 시조를 남겼다.


 

(1)
백두산의 숱한 돌, 칼을 갈아 다하고    白頭山石磨刀盡

두만강의 푸른 물, 말을 먹여 잦아졌네 豆滿江水飮馬無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 평정 못할진대  男兒二十未平國

뒷날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일컬을까.     後世誰稱大丈夫

- 호기가(豪氣歌)

 

(2)

장검을 빼어들고 백두산에 올라 보니
대명천지에 성진(腥塵)이 잠겼어라.
언제나 남북풍진을 헤쳐볼까 하노라.

長劒을 빠혀들고 白頭山에 올라보니

大明天地에 腥塵이 잠겨세라

언제나 南北風塵를 헤쳐볼고 하노라.

- <청구영언(靑丘永言)> 珍本 106


남이는 세조 때의 인물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후 여진족을 정벌했다.

그 역시 백두산과 두만강에서 나라를 생각하며 호연지기를 키웠을 것으로 보인다.

 

 

1885년 청나라와 감계담판(국경회담)을 했던 이중하도 이와 비슷한 시구를 남겼다.

눈 내려 빈 강에 가득하고 달은 하늘에 가득한데
표연히 백두산 봉우리에서 말을 세웠네.
사람의 힘으로 여기에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임금님의 영험이 앞으로 인도함이었네.


땅을 개척하려 한들 이제는 이목 같은 이가 없고
근원을 찾는 데는 예로부터 장건을 말하였네.
궁궐은 이 밤에 얼마나 차거우실까
머리 돌려 궁궐을 바라보니 한 곳이 아득하여라.


사람의 힘으로 올 수 없는 백두산


이중하는 청의 대표자들과 함께 백두산 정계비를 찾았다.

제대로 된 경계를 확정하기 위해서였다.

이 시에서 ‘사람의 힘’으로 올 수 없었다는 구절은

얼마나 백두산에 오르는 것이 험난했는지 잘 보여준다. 땅을 잃기는 쉬워도 되찾기는 힘든 법이다.

나라의 땅을 지키기 위해 백두산을 올랐던 선인들의 기상이 오늘에도 이어져야 할 것이다.
-  윤호우 기자

-  2008 11/25   위클리경향 8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