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오딧세이]선인들 기상 깃든 시조 속의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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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시절 북방을 개척한 김종서(金宗瑞 : 1390-1453)는 두 수의 시조를 지었다.
(1)
長白山에 旗를 곳고 豆滿江에 말을 싯겨 서근 져 션�야 우리 아니 사나희냐 엇덧타 麟閣畵像을 누고 몬져 하리오 - <청구영언(靑丘永言)> 珍本 14
(2)
朔風은 나모긋태 불고 明月은 눈속의 찬듸 萬里邊城에 一長劒 집고셔셔 긴 파람 큰 한소�에 거칠 꺼시 업세라. - <해동가요(海東歌謠)> 주씨본(周氏本) 21 김종서는 조선 초기에 여진족을 몰아내고 압록강과 두만강에 이르는 영토를 개척했다. 그 과정에서 말을 타고 백두산을 오르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이와 비슷한 시조를 남긴 장군이 있다.
남이 장군(南怡 : 1441-1468) 역시 백두산을 소재로 두 수의 시조를 남겼다.
(1)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 평정 못할진대 男兒二十未平國 뒷날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일컬을까. 後世誰稱大丈夫 - 호기가(豪氣歌)
(2) 장검을 빼어들고 백두산에 올라 보니 長劒을 빠혀들고 白頭山에 올라보니 大明天地에 腥塵이 잠겨세라 언제나 南北風塵를 헤쳐볼고 하노라. - <청구영언(靑丘永言)> 珍本 106
그 역시 백두산과 두만강에서 나라를 생각하며 호연지기를 키웠을 것으로 보인다.
1885년 청나라와 감계담판(국경회담)을 했던 이중하도 이와 비슷한 시구를 남겼다.
제대로 된 경계를 확정하기 위해서였다. 이 시에서 ‘사람의 힘’으로 올 수 없었다는 구절은 얼마나 백두산에 오르는 것이 험난했는지 잘 보여준다. 땅을 잃기는 쉬워도 되찾기는 힘든 법이다. 나라의 땅을 지키기 위해 백두산을 올랐던 선인들의 기상이 오늘에도 이어져야 할 것이다. - 2008 11/25 위클리경향 8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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