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오딧세이]

[간도 오딧세이] 34. 조선지도에 표기된 '온전한 백두산'

Gijuzzang Dream 2008. 8. 1. 20:23
 

 

 

 

[간도오딧세이] 조선지도에 표기된 ‘온전한 백두산’ 

 

 

 

 

 

규장각 소장지도
관동지도, 대동여지도, 조선지도, 여지도(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백두산 인근 지도를 보면

백두산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천지를 둘러싼 산의 모습을 그리고,

그 속에 천지를 그린 것이 실제 전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산줄기를 표시한 대동여지도에서나 천지의 물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조선지도는 인상적이다.

실제 전경과 아주 가까운 여지도에서는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하다.

이들 지도를 통해 백두산 인근의 산줄기와 물줄기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명칭도 장백산보다 백두산이 많아

 

조선시대 지도이니만큼 이들 지도는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 오류를 드러내고 있다.

조선과 청의 국경선이라고 할 수 있는 토문강, 정계비를 잇는 울타리, 두만강의 모습 등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대동여지도의 경우 정계비의 울타리를 두만강의 지류와 연결해 놓아 명백한 오류를 범했다.

지금의 항공 사진 또는 지도와 비교해보면 대동여지도가 어떻게 틀렸는지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이들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나타난다.

장백산이라는 표기보다는 백두산이라는 표기를 많이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 장백산이라는 중국식 표기보다는 백두산이라는 우리나라식 표기가

더 많이 쓰였다고 볼 수 있다. 천지의 경우도 대택(大澤)으로 널리 불려졌다는 것이다.

대동여지도에 표기된 대지(大池)도 사실상 대택처럼 ‘큰 연못’이라는 점에서 대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런 표기 외에도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알아챌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두만강 건너 북쪽 지역을 지도에 그려넣지 않은 것이다.

물론 만주 지역을 그려넣은 지도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지도 속 그림과 표기는 두만강 아래에 머물고 있다.

여기에는 두만강 이북을 그릴 경우 당시 청나라와 마찰로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의식이

잠재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비교적 정확한 지리를 그려넣은 여지도의 경우에도

백두산 인근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강은 끊어진 채로 나타나 있다. 이 강이 바로 토문강이다.

조선시대 지도에서 두만강 이북이 그려져 있지 않은 반면

백두산의 모습은 영락없이 전체가 묘사돼 있다. 물론 천지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이 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백두산은 천지를 포함해 모두 우리 땅이라는 영토적 인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조선시대 지도에서 백두산의 모습이 표현되지 않은 지도는 없다.
- 윤호우 기자

- 2008 11/04   위클리경향 798호

 

 

 

 

 


 

  백두산 봉우리 제이름 찾아줘야

 

 

 

 

 

백두산에 오른 KBS TV ‘1박2일’ 팀.

2008년 6월 인터넷은 백두산 열기로 뜨거웠다.

KBS2TV에서 ‘1박2일’ 팀이 백두산을 다녀온 것을 방영하면서

일반인의 관심이 ‘갑자기’ 백두산에 쏠렸다.

2007년 초 장춘에서 열린 동계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의 쇼트트랙 선수단이 시상식에서

‘백두산은 우리 땅’이라는 세레모니를 하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중국은 백두산(중국명 장백산) 천지에서 성화를 채화했다.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백두산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남다르다.

비록 중국을 통해 백두산 천지에 오르더라도 그 감격은 감출 수 없다.

누가 그렇게 감격하라고 말을 하지 않더라도 백두산에 오르면 무엇인가 뿌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만이 갖는 보편적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감격에 비한다면 백두산에 대한 연구는 부끄러울 정도다.

물론 연구자들이 백두산을 실제로 밟을 수 없는 한계가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백두산 연구는 너무나 빈약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일제강점기 36년, 해방 후 3년, 북한 인민공화국 수립 후 60년이라는 세월 속에

백두산은 우리나라 땅이면서도 거의 100년가량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100년 전은 백두산에 대한 근대적인 영토 인식조차 싹트지 않은 시기였다.

북한 · 중국 · 일본서 지은 이름 혼용


역사적으로 불행한 상황 속에서 백두산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너무나 먼 곳에 위치한 탓에

우리는 백두산 봉우리의 이름조차 헷갈릴 정도다.

일제는 일제대로 백두산 봉우리의 이름을 자기 식으로 붙여버렸으며,

북한은 주체사상에 맞춰 자기 식으로 멋대로 이름을 바꿔버렸다.

백두산 천지의 북쪽을 차지한 중국 역시 중국식으로 봉우리의 이름을 다르게 부른다.

우리나라는 봉우리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잘 모를뿐더러 이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가장 높은 봉우리인 장군봉은 일제강점기 때 천황의 연호를 따서 대정봉이라고 불렸다.

북한에서 장군봉이라고 부르자

한때 김일성 주석을 호칭하는 장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최남선이 ‘백두산 근참기’에서

장군은 하늘을 뜻하는 고어인 ‘당굴’이 변해 장군봉이 된 것이라고 말해

북한 이전에 이런 이름이 불렸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병사봉이라는 또 다른 이름은 일제가 장군봉을 격하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라는 주장이 있다.

일부 땅이름 전문가는 백두봉이라는 이름이 정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망천후는 북한이 이름 자체를 바꾸었는데, 지금은 향도봉으로 불리고 있다.

이 봉우리 자락에는 ‘혁명의 성산’이라는 커다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대부분 향도봉으로 쓰고 있지만

‘향도의 태양, 김정일’이라는 호칭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향도봉이 아닌 제 이름을 찾아야 할 것이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태어난다고 주장하는 백두산 밀영의 뒷산인 장수봉을 정일봉으로 바꾸었다.

천지의 북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중국령에 속한

청석봉 · 백운봉 · 녹명봉 · 차일봉 · 천문봉 · 백암봉 등의 백두산 봉우리에는

각각 한두 가지 씩 다른 이름이 있다. 여기에는 중국식 이름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백두산의 봉우리 이름이 제대로 기록된 책을 찾아보기 힘들다.

백두산에 있는 봉우리가 제 이름을 찾을 때, 백두산은 진정한 우리의 땅이 될 것이다.

남의 땅이름으로 불리는 마당에 수백 번 우리땅이라고 외쳐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윤호우 기자

- 2008 11/18   위클리경향 80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