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일상)

'곽탁타의 나무 기르는 법'

Gijuzzang Dream 2007. 11. 9. 17:25

 

 

성은 곽씨요, 이름은 탁타. 곽탁타의 본 이름이 무언지 알지 못한다.

곱사병을 앓아 굽히고 걸어 다녔기 때문에 그 모습이 낙타와 비슷한 데가 있어서

마을사람들이  ‘탁타’라 불렀다.

탁타가 그 별명을 듣고 매우 좋은 이름이다, 내게 꼭  맞는 이름이라고 하면서

자기 이름을 버리고 자기도 탁타라 하였다. 그의 고향은 풍안으로 장악 서쪽에 있었다.

 

탁타의 직업은 나무 심는 일이었다.

당시 장안의 권력자와 부자들이 부자들이 정원의 관상수를 돌보게 하거나

과수원 주인들이 과수를 돌보게 하려고 다투어 그를 찾았다.

그럴 만한 것이 탁타가 심은 나무는 옮겨 심더라도 죽는 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잘 자라고 열매도 일찍 맺고 많이 열렸다.

다른 이들이 그 비법을 훔쳐내고자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도무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결국 그들은 탁타에게 그 까닭을 직접 물었다.

 

 

탁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나무를 오래 살게 하거나, 열매가 많이 열게 할 능력이 없다.

나무의 천성을 따라서 그 본성이 잘 발휘되게 할 뿐이다.

무릇 나무의 본성이란 그 뿌리는 퍼지기를 원하며, 평평하게 흙을 북돋아주기를 원하며,

원래의 흙을 원하며, 단단하게 다져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심고 난 후에는 움직이지도 말고 염려하지도 말 일이다.

가고 난 다음 다시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심기는 자식처럼 하고, 두기는 버린 듯이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나무의 천성이 온전하게 되고, 그 본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성장을 방해하지 않을 뿐이며

감히 자라게 하거나 무성하게 할 수가 없다.

그 결실을 방해하지 않을 뿐이며 감히 일찍 열매 맺고 많이 열리게 할 수가 없다.

 

다른 식목자는 그렇지 않다.

뿌리는 접히게 하고 흙은 바꾼다. 흙 북돋우기도 지나치거나 모자라게 한다.

비록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랑이 지나치고 그 근심이 너무 심하여,

아침에 와서 보고는 저녁에 와서 또 만지는가 하면 갔다가는 다시 돌아와서 살핀다.

심한 사람은 손톱으로 껍질을 찍어보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사하는가 하면

뿌리를 흔들어보고 잘 다져졌는지 아닌지 알아본다.

이렇게 하는 사이에 나무는 차츰 본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비록 사랑해서 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나무를 해치는 일이며,

비록 나무를 염려해서 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나무를 원수로 대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달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상은 '고문진보'에 실린  당송팔대가의 하나인

유종원(柳宗元, 773-819, 中唐詩人)의 ‘종수곽탁타전(種樹郭駝傳)’ 에 나오는 내용이다.

 

   : 여기까지 (참고) 신영복의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중에서 

                 (참고) 카페, 전원속 농막짓기(이지장원)

 

 

 

" 르네 마그리트 作"

 

 

 

 

 

부모들의 지나친 자녀보호 -

이 글을 읽으면 많은 이들이 혹은 무릎을 치거나 혹은 속이 뜨끔할 것이다.

나무를 기르는 법에서 곧바로 자식을 키우는 일이 오버랩될 터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듯, 요즘 부모들은 자식을 끔찍하게 아낀다.

하루의 일상이 거의 아이들의 스케줄에 맞춰져 있다.

아침에 깨워주는 일에서부터 음식과 옷가지, 학용품까지 일일이 다 챙겨줄 뿐더러

웬만한 곳은 다 자가용으로 이동시켜 준다.

게다가 친구관계 및 정서적 변화까지 면밀히 체크하여 세심하게 살펴보고 어루만져 준다.

그러면서도 조금이라도 결핍이 있을까 전전긍긍한다.

 

탁타의 말을 빌리면, 아침에 돌아보고 저녁에 다시 헤집어 보는 식인 것이다.

결과는? 본성으로부터 한참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 청년들에게서 열정이나 패기를 찾아보기란 참으로 어려워졌다.

외모나 체격은 눈부시게 개량(?)되었지만, 청춘이 내뿜는 특유의 포스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청년실업, 경쟁의 심화 등을 원인으로 꼽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가족관계가 더 근본적인 것처럼 보인다.

경제적으로야 지금보다 이전세대가 훨씬 더 열악했다.

그때는 다들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탓에 가족의 결속력이 느슨했고,

그 덕분에(?)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집 밖에서 각자 나름의 네트워크를 구성해야만 했다.

골목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길거리에서 인생을 배우는 식으로.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사회는 정글이지만 가족의 내부는 완전 온실이다.

말하자면, 우리 시대 청년들은 온실의 화초로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정글로 내몰리는 코스를 밟는 셈이다.

 

 

 

- 스스로 삶의 기술 터득하게 -

한데, 정글에서 살아가려면 자신의 두 발로 당당하게 설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부모의 전면적 배려 하에서 그런 신체적 능력을 터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탁타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사랑의 이름으로 원수를 짓는 일’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정말로 자식이 튼실하게 자라길 바란다면 온갖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골몰하기보다

스스로 삶의 기술을 터득할 수 있도록 기본을 잡아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곽탁타의 지혜가 큰 울림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경향포럼, 2007년 11월4일, 고미숙 /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 수니(Soonie) / 나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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