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詩 : 정희성 작곡 : 백창우 노래 : 백창우 & 나무(이수진)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 아메리카 원주민 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 라 부른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정희성 시인이다. 현실을 일깨우면서도 가슴이 젖어있는 시를 썼던 그 시인이, 투박하면서도 담담하게 이야기했던 그 시인이, 11월을 그리고 사랑을 노래하니 이런 시가 나왔다. 1978년과 2005년의 간극은 이런것인가. 대놓고 언급한 "사랑", 케케묵은 그 단어 "추억", 게다가 "그대".. 하지만, 오늘같이 하늘 어두운 날, 소리내어 읽어보면, 이 시가 가진 진실의 힘이 내 안에서 툭툭 발길질을 해대는 것이 느껴진다. 현실참여의 시로 유명했던 그가 사랑을 노래했다해서 현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랑이나 추억이니 그대를 늘어놓았다해서 진실성이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진실없인 사랑없고, 그것은 신기루도 아닐테니까. 시간을 외면할 일이 아니라, "우두커니 혼자 있도록" 해 줄 일이다.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 詩 : 정희성, 노래 : 백창우 & 이수진
인디언의 달력과 우리의 달력 차이
인디언 달력
‘인디언 달력’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디언들이 각 달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를 헤리온이라는 사람이 모아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쉽고 간단하게 1월, 2월, 3월…12월이라고 부르는 달을 과연 인디언들은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하나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입니다. ‘나뭇가지가 눈송이에 뚝뚝 부러지는 달’, ‘한결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달’, ‘머리 밑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 ‘천막 안에 앉아 있을 수 없는 달’,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 ‘늑대가 달리는 달’ 등, 인디언의 달력에는 자연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 ‘오래 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무소유의 달’ 등,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달 이름이 많았습니다.
숫자에 의해서만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가늠하는 우리의 시간 개념이 얼마나 메마르고 빈약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도 우리의 시간에 의미 있는 이름을 붙여보면 어떨는지요? - 한희철
11월,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홀로 의젓한
이후경 (소설가)
Prologue
창 너머 먼 산을 본다.
지금 저 숲에 들어서면 숲의 황금빛 비늘이 눈처럼 흩날리는 황홀한 풍경과 만날 수 있으리라. 사라져가는 것이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찬란하고도 슬픈 인사.
아름다움이란 언제라도 안개처럼 사라질 것 같은 불안스러움을 품고 있는 것 사라지는 것에 나는 늘 마음이 끌렸다. 사라진다는 것은 그것이 사물이든 인간이든 곧 헤어져야 함을 말하기에 또한 늘 마음이 아렸다.
외갓집에서 유치원을 다니던 내가 갓 시집온 외숙모를 몹시 따른 것은 어딘가 그녀에게선 곧 사라질 사람 같은 느낌이 풍겼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외숙모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아름답다’는 말만이 어울렸다. 유치원의 한 친구가 외숙모를 보고 “와, 참 예쁘다!” 하고 감탄했을 때도 나는 그 말을 정정했다. “예쁜 게 아니라 아름다워!” 내 손을 잡고 있던 그녀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던가.
비록 어렸지만 내게 그 두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예쁜 것이 견고하고 야무진 느낌이라면 아름다움은 곧 사라질 불안스러움을 품고 있었다. 이 세상 사람 같지 않게만 여겨지던 그녀. 나는 그 아름다운 외숙모가 어느 날 훌쩍, 소리도 없이 자기 세상으로 가버릴 것만 같은 느낌에 내내 시달렸다.
숫기 없었던 나는 대놓고 졸졸 따라다니지는 못했지만 외숙모가 방에 들어가면 살금살금 다가가 문틈으로 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을 내리쓸었고, 외숙모가 내 손을 잡고 유치원에 바래다주거나 시장에 데리고 갈 때면, 그 손을 더 힘주어 잡곤 했다. 그것이 내가 그녀를 이 지상에 붙들어두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버지도 내게는 그런 사람이었다. 점잖았지만 얘기도 재미있게 하고, 농담도 잘 해서 늘 식구들을 재미있게 해주던 아버지도 내게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주는 존재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는 꿈을 꾸고 베개가 젖도록 펑펑 울다 깨는 일이 잦았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꿈은 반대니까 내가 아주 오래 살 모양인 걸” 하며 허허, 웃었다. 당시의 다른 아버지들과 달리 어머니보다 더 자상했던 그는 어린 우리들한테도 늘 동등한 어른을 대하듯 당신 속의 얘기들을 찬찬히 들려주곤 했다. 그럴 때도 나는 얘기의 내용과 상관없이 늘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아버지 역시 세상의 아버지들과 달라 보였다. 어머니가 땅에 발붙이고 단단히 서 있는 세상 사람으로 여겨졌다면 아버지는 언제라도 안개처럼 사라질 딴 세상의 사람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버지가 죽는 꿈을 꾸면 얼른 안방으로 달려가 살아 있는 아버지를 확인하며 눈물을 닦는 일이 어린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닌 달’이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세상을 떴을 때 나는 만삭의 몸이었다.
생명의 탄생을 매번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일과 동시에 치러야 했으니 제대로 슬퍼할 수조차 없었다. 내 속에는 새로 태어나야 할 엄연한 존재들이 함께 있었으므로 그들이 무사히 이 땅에 도착하여 환영의 인사를 할 때까지 사라지는 것에 대한 통곡의 인사는 미루어야만 했다. 슬픔은 결코 미뤄서는 안 되는 것. 잠시 미룬 슬픔은 앙금이 되어 온 핏줄로 퍼진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것을 다 쏟아내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조금만 흔들리면 그 앙금들은 다시금 떠올라 내 온몸을 찔러댄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라졌으되 사라지지 않고 남았다.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11월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한 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달, 그러나 동시에 삶과 죽음을 다 품고 있는 달, 태어난 것은 언젠가는 사라지고, 사라지는 것은 언젠가 태어났던 것이니.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닌 달’이라고 말한다. 사라져가되 아직 모든 것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닌 때. 낮과 밤의 사이에서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니면서 낮과 밤을 다 품고 있는 저녁처럼, 11월은 가을과 겨울의 사이에서 홀로 의젓하다.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니지만 동시에 늦가을이면서 초겨울인 11월.
곧 사라질 것만 같았던 외숙모와 아버지에게 내가 깊이 이끌렸듯이 나는 11월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고요히 사라지고 있는 것들의 대열이 보인다. 저 먼 길을 향해 사라져가는 것들의 뒷모습, 그러나 아직은 사라지지 않은 아스라한 존재들. 11월에는 모든 것이 안녕, 안녕, 작별인사를 보낸다. 소멸하지 않는 것이라면 애틋함도 생기지 않으리라. 모든 견고하고 불변인 것들에게는 정중한 경례를 보낼 뿐.
겨울이 오면 이 모든 것은 다 사라진다. 곧 사라질, 그러나 아직 사라지지 않은 존재들에게 손을 내밀어본다. 내 손아귀의 힘을 이기고 그들은 사라지리라. 나 또한 언젠가는 누군가가 붙든 손에서 스르르 빠져나와 이곳을 떠나가리라.
Epilogue
백과사전은 11월을 ‘가을은 깊어가고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계절’이라고 말한다. 나는 백과사전이 이렇게 고즈넉한 어조로 어떤 단어의 뜻을 풀이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평생 반듯한 길을 걸은 노신사가 말년에 낭만적 연애에 빠져 무심코 뱉는 말 같다.
가을은 깊어가고 낙엽은 지기 시작한다. 추수동장(秋收冬藏)이라 했다. 가을에는 거두고 겨울에는 그것을 보관한다. 생명의 논리로 보더라도 가을에는 늙고 시들어 겨울에는 죽는다. 그 과정의 중간에 11월이 끼어 있다. 거두되 아직 보관하지는 않는다. 늙고 시들어가되 아직 죽지는 않는다. 음력으로는 시월. 우리의 조상은 이 정점의 달을 가장 좋은 달로 여겨 시월상달이라고 불렀다.
태어나는 것의 환성보다는 소멸하는 것의 적막에 어쩔 수 없이 더 마음이 이끌리는 11월. 억새가 바람에 나부끼는 오래된 무덤 앞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소주 한 잔 간절히 기울이고 싶다. 그러나 그 무덤가에는 저물어가는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리라. 11월은 끝까지 가혹할 수는 없는 달이므로, 아직은 차마 모든 것을 보낼 수 없는 모질지 못한 달이므로.
이제 곧 잔인하고도 아늑한 12월이 올 것이다. 12월이 오기 전에 나는 손아귀의 힘을 풀어 이 아름다운 11월을 놓아 보내주어야만 하리라.
Profile
소설가 이후경 1960년 진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람 / 한국외국어대학 불어교육과 졸업 / 1992년 문화일보 동계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과거순례」가 당선되어 등단 / 200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진흥기금 받음 / 2006년 소설집 「저녁은 어떻게 오는가」 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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