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아직 모든 게 사라진 것은 아닌 달
Autumn
- Emily Dickinson(1830-1886)
The morns are meeker than they were, 아침이 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졌네요.
The nuts are getting brown; 개암과 도토리도 갈색으로 변했구요
The berry's cheek is plumper, 오얏 열매 뺨이 통통해지고
The rose is out of town. 장미는 이제 볼 수 없고
The maple wears a gayer scarf, 단풍나무는 야한 색 스카프를 두르고
The field a scarlet gown. 들판은 주홍색 드레스를 입었어요
Lest I should be old-fashioned, 구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
I'll put a trinket on. 팔찌라도 하나 차야겠네요
가을이 깊어갑니다.
아침안개가 피어오르고 찬 물에 손을 담그면 섬짓 차가운 기운이 온몸에 감돕니다.
한데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 따가운 볕에도 마르지 않고 그 세찬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던 나무들이
이제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곧 떠날 세상에 미련이 남는 듯,
푸른 젊음의 옷보다 더 화려한 자지러질 듯 노랗고 빨간 야한 색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인디언 달력에서 11월은 ‘아직 모든 게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로 부른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아직 모두 다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11월은 그래서 곧 사라질 해를 준비하는 달입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아직 마무리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달입니다.
시인은 이 가을에 ‘구식’이 되지 않기 위해 새롭게 예쁜 팔찌 하나를 차야겠다고 말합니다.
아마 그것은 새 해를 더욱 평화롭고 아름답게 시작하기 위해 마음을 예쁘게 꾸미라는 말,
올해가 가기 전에 사랑하지 못한 사람을 더 사랑하고
화해하지 못한 사람과 화해하라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월간 <에세이플러스> 2006년 11월호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 / 제6회 시인의 연가
******* <백창우님의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노래를 연거퍼 듣다가
문득 작년 가을에 보았던 Emily Dickinson의 "Autumn"이 생각나서 뒤적거리다 . . .
김용택 시인의 "11월"도 함께 더듬었다.
■ 11월의 노래 / 김용택
해 넘어가면
당신이 더 그리워집니다
잎을 떨구며 피를 말리며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이 그리워 마을 앞에 나와
산그늘 내린 동구길 하염없이 바라보다
산그늘도 가버린 강물을 건넙니다.
내 키를 넘는 마른 풀밭들을 헤치고
강을 건너 강가에 앉아
헌옷에 붙은 풀씨들을 떼어내며
당신 그리워 눈물납니다.
못 견디겠어요.
아무도 닿지 못할 세상의 외로움이
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와 닿습니다.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
내마음은 저문 강물처럼 바삐 흐르지만
나는 물 가버린 물소리처럼 허망하게
빈 산에 남아
억새꽃만 허옇게 흔듭니다.
해 지고
가을은 가고 당신도 가지만
서리 녹던 내 마음의 당신 자리는
식지 않고 김납니다.
******* 기주짱이 참 좋아하는 인디언들의 달력,
그 중에서도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의 그 말은 정말 좋다.
"인디언들은 달력을 만들 때 그들 주위에 있는 풍경의 변화나 마음의 움직임을 주제로
그 달의 명칭을 정했다. 그들은 외부세계를 바라봄과 동시에 내면을 응시하는 눈을 잃지 않았다.
인디언들은 정확히 열두 달로 나눈 것은 아니었으며
달의 주기가 대략 28일로 정해졌기 때문에 열세 달 정도가 한 해를 이루었다." 라고,
류시화의 ‘너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에서 인디언의 달력에 대해 짧게 나타내고 있다 ....
- 그림 : 정승호, 자작나무, 동양화랑
[자작나무(백석 詩 <백화白樺> / 백창우 곡, 노래)]
산골 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山) 너머 평안도(平安道)땅도 뵈인다는 이 산(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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