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일상)

할미꽃

Gijuzzang Dream 2007. 11. 13. 19:55
 

내가 사는 남양주는 교통 사정이 수월하지 않아

늦은 약속시간 때문에 허덕이다 보면 이쪽으로 자리 옮긴 것을 수백번도 후회하지만

눈을 뜨면 보이는 여유로운 산과 변화 많은 들판이 있어 이내 위로를 받습니다.


이곳의 어른들은

건물 주변의 평지, 언덕들, 심지어 큰길가 가까운 곳에도 빈 터가 보이기만 하면

텃밭들을 가꿉니다. 때 따라 돌 고르고, 흙 메우고 갈아엎고. . .  시절을 알게 합니다.

흙과 친한 그런 것에는 도통 무디기만 한 나는 그저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지요.


터지려는 산수유 꽃망울에 눈길 손길 주며 흐뭇하게 마음을 건네고 있을 때,

지나가던 어른이 "어, 생강꽃이 피는구나". . . . 아우 . . . .

난, 산수유도 생강나무도 잘 구분 못하거든요.

컴 화면으로는 잘 이해가 되던데 왜 실물은 헷갈리죠?!!


어머나, 오늘 보니까

하루이틀 사이에 벌써 어수선하고 복잡하게 너저분하던 텃밭들이

말끔하게 고른 모습을 하고 있네요.

이른 곳에는 아주 자그마한 까만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구멍을 뽕뽕 뚫어놓은 모습도 . . .

그런데 씨앗 뿌리지도 않은(어쩌면 뿌렸는지도 모르지만^^)

모종을 옮겨 심지도 않은 그 작은 오종종한 공간에

내 땅, 네 땅 하면서 영역 표시를 참 재미있게도 합니다.

 

그러나 땅과 땅 사이에 돌무더기들로 확실하게 쌓아두는 것은 이해하는데

왜 그렇게 키높이의 나뭇가지들을 세우고 비닐끈 같은 것들로 둘러놓는지

에둘러 생각해도 딱합니다. 텃밭에서 키가 훌쩍 자라는 식물들 때문이겠요 아마.

속좁고 실없는 내 생각으론

잘 여문 옥수수 옆 영역으로 좀 넘어가면 어때, 툭 꺾어서 먼저 내밀어줄 수도 있을텐데 . . .

하며 투덜대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전부터 내것 네것에 대한 논란은 있었지만, 살가운 정만큼은 논란이 없을 듯.

담 넘어온 감나무 가지에서 감을 따먹게 되는 문제로 인해

옆집 주인의 방 안으로 주먹을 내밀어 '따지기' 하던 어린 이항복의 그 멋진 승리가 생각납니다.

 

요즘 시절, 발 아래 눈길을 주면 아주 작은 움직임들이 분주합니다.

여린 쑥, 진해지는 냉이, 여러 새싹들 옹송옹송거립니다.

며칠전엔 얼레지도 보았습니다.

 

이른 봄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은 꽃은 할미꽃입니다.

이번 봄에는 아직 못 만나러 갔습니다.

보들보들 비로드 같은 그 이쁜 몸에 솜털이 보송보송

엎드려 가만 들여다볼라치면 그만 콕 쥐어보고 싶어져서

그럴땐 손가락과 윗니 아랫니에 힘을 주지요. 너무 자주 아웅, 아웅. . .  흐흐^^


양지 바른 무덤가에서 흔히 만나기 쉬운 할미꽃.


그 할미꽃을 떠오르게 하는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간단한 몇 가지 슈퍼에서 사들고서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텃밭의 변화에 눈길을 주며 건드렁 쉬엄쉬엄

있는대로 발길을 느리게 걷다가

집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릅니다.

 

우리집은 하늘(天)에 있습니다.

33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거든요^^

하나 지옥, 둘 축생, 셋 아귀, 넷 아수라, 다섯 인간세계 하면서,

여섯 번째 계단에서 한번 섭니다.

천상의 욕계 사천왕천이구나 . . . . 그래, 지금부터 하늘(天) 시작이다.

일곱 도리천, 여덟 야마천, 아홉 도솔천, 열 화락천, 그리고 열하나 타화자재천, 여기까지가 욕계 6천(天).

 

열둘, 지금부터는 색계 18천(天)으로 곧장 올라간다 투다다닥 . . . 

그리고 무색계 4천(天)째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까지의 서른셋 계단까지 아무 생각 않고 막 오릅니다.

열하나 넘어가면 더 이상은 하나하나 또박또박 짚을 수 있게끔 잘 외우질 못하거든요.

 

저는 이렇게 집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놉니다. 아주아주 바쁠 때 빼고는요^^

특히 늦은시간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달 밝은 밤,

하늘(天)로 올라가는 그 계단은 정말 끝내줍니다.

그런 날엔 아무리 피곤해도 그냥 올라가지 않습니다. 한참동안 달을 올려다보며

한 발, 한 발, 한 계단, 한 계단, 제대로 하늘(天)로 올라갑니다.  ^ㄴ^

 

그 계단에서 할미꽃을 떠오르게 하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딱 하늘로 올라가는 여섯 번째 계단에서 난간을 잡고 서서

혼자 웅얼웅얼 따박따박 계단을 세고 있는 저를 보고 계셨습니다. 

저보다도 더 작은 키에 쇠잔한 몸집의 그 할머니 곁을 지나 일곱 번째 계단을 오르려는데

순간 그 할머니도 일곱 번째를 향해 몸을 돌리시더군요 . . . .

아, 할미꽃이다. 그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완전 90도로 꺾여진 할머니에게는 발밑밖에 보이지 않을겁니다.

하늘도 난간 밖의 야트막한 골목 길도 아파트 동호수의 글씨도 볼 수 없을겁니다.

내 허리쯤에서 접혀진 할미꽃 할머니.

내가 좋아하는 그 할미꽃을 콕 쥐어보고 싶어 참느라 윗니아랫니 힘주던 대신

순간 톡 떨어질 것 같은 내 눈물땜에 윗니아랫니 힘주었습니다.


할머니 손에 들린 깜장 비닐봉지 안의 소주병을

내 손에 들린 몇 가지의 물건과 함께 옮겨잡고

할머니 오른팔과 어깨를 붙잡아 하늘(天)로 올려드렸습니다.

한 발 한 발 하늘(天)로 올라갈수록 죄송한 나의 곧은 작은 키

내 작은 키도 크게 느껴지던 하늘(天)에서의 순간입니다.


내 작은 키에 항상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겸손하겠습니다.


이번 서삼릉, 서오릉 답사 때 왕릉에서는 할미꽃을 만나기 힘들겠지요?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무덤가의 할미꽃도 왕릉은 감히 비켜갈까요?


보면서 배우고, 느끼면서 배운게 많은 색다른 봄날 일요일 아침의 이야기였습니다. 기주짱 드림(Gijuzzang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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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희 / 할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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