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혜원 신윤복 - 밀회(月下情人)

Gijuzzang Dream 2008. 7. 10. 16:43

 

 

 금지된 사랑의 만남 ‘밀회’  

 
 
신윤복의 그림 ‘밀회’다. 때는 초승달이 뜬 밤.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서정주 ‘동천’
 
초승달은 우리님의 고운 눈썹이다. 해서 초승달은 ‘우리님’의 사랑을 떠올린다.
이 그림 역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그림의 왼쪽에는 기와집이 꼭 반만 그려져 있다.

그리고 기와집에 이어서 담이 있는데, 흙담이 아니고 제대로 깎아서 만든 돌담이다.

그리고 그림의 중앙에서 돌담은 꺾이고 있으니, 아마도 도시의 골목길일 터이다.

또 도시의 골목이라면, 필시 서울의 골목일 것이다.

신윤복 ‘밀회’ (간송미술관 소장) 

희미한 초승달 아래 내외하듯 서 있는 남녀의 모습이 애틋한 정을 느끼게 한다.

 

 

그림의 위쪽에는 초승달이 떠 있고, 그 아래에는 나무를 그려 담을 슬쩍 지우고 있다.

어쨌거나 초승달이 희미하게 비치는 한밤중이다.

그림 오른쪽에는 남녀가 있다. 이 그림의 핵심은 이 두 남녀다.

 

먼저 여자를 보자. 여자는 쓰개치마를 쓰고 있지만, 얼굴은 다 보인다.

쓰개치마는 여성이 내외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옷이다.

내외를 위해 여성이 뒤집어쓰는 옷은 다양하지만 장옷이 으뜸이고,

장옷보다 간단한 것이 쓰개치마다.

(장옷은 신윤복의 또다른 그림 ‘장옷 입은 여인’에도 여실히 묘사돼 있다)

 

한데 여자는 저고리 깃과 소맷부리에 자주색 회장을 대고 있으니,

삼회장으로 제대로 갖추어 입은 차림이다. 그리고 신발을 보라. 맵시 있는 가죽신이다.

여성은 필시 지체 있는, 부유하게 사는 집안의 여성이다.

 

오른쪽의 남자를 보자. 넓은 갓을 쓰고 중치막을 입었다.

이 남자는 수염도 나지 않았고 또 얼굴이 앳되며,

갓끈이 아무 장식 없는 헝겊으로 만든 것을 보아, 아직 벼슬하지 않은 양반가의 젊은이다.

여자와 마찬가지로 가죽신을 신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이 젊은이 역시 체모를 차리는,

산다 하는 양반가의 자제가 분명하다.

 

한데 초승달 희미하게 비치는 한밤중에 이 두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남자가 왼손을 품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떤 물건을 여자에게 건네기 위해 여자를 불러낸 것인가.

아니면 여자를 불러내어 둘이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인가.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가. 그림만으로는 알 길이 없다. 어딜 가고 있는가.

 

그림 왼편에 있는 화제를 보자.

 

 달빛 어둑어둑한 밤 삼경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月沈沈夜三更,兩人心事兩人知)

 

화제처럼 두 사람의 마음속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삼경이랬다. 삼경은, 밤 11시에서 새벽 1시까지다.

알다시피 조선시대에는 통금이 있어서, 초경(밤 8시)에 인경종을 33번 치면 성문이 닫히고

시내의 통행이 금지된다. 인적은 완전히 끊기고 도성은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가

5경(새벽 4시)이 되면, 다시 33번 울리는 인경종에 성문이 열리고 통행이 시작된다.

 

이 그림의 시각은 3경이니, 통행금지 시간에 해당한다.

통행금지 시간에 사방등을 들고 젊은 두 남녀는 조심스러운 얼굴로 어디를 가고 있는가.

두 사람은 부부인가. 부부라면 무엇이 아쉬워서 통행금지 시간에 길거리에서 만나겠는가.

이 두 사람이 부부가 아닌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인가.

위에 인용한 시에 바로 이 그림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있다.

 

화제는 이 시기에 유행한 시조에서 따 왔다.

 

창외(窓外) 삼경 세우시(細雨時)에 양인심사양인지라

신정(新情)이 미흡한데 하늘이 장차 밝아온다

다시곰 나삼을 부여잡고 훗기약을 묻더라

 

삼경이라 한밤중이다. 창 밖에는 가랑비가 소리도 없이 내린다. 남자와 여자는 빗소리를 듣는다.

 

위 시조의 중장에 등장하는 신정(新情)이란 말은 새로 사귄 정이란 뜻이니,

이제 막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단계다. 둘은 만나서 하룻밤 내내 사랑을 나누었다.

이내 날이 밝을 것이다. 남자는 떠나려 하니, 여자가 옷깃을 잡고 뒤에 만날 날을 묻는다.

 

시조는 원래 노래의 가사다. 이 노래는 워낙 인기가 있었다.

조선후기의 웬만한 시조집에는 모두 실려 있는 유명한 작품이다.

보다시피 남녀 간의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을 토로하고 있기에 대중의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팔도 도원수 지낸 김명원의 일화

신윤복 ‘장옷 입은 여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여성의 장옷은 신분이 높거나 경제적으로 넉넉한 계층임을 말해준다. 아이를 업고 있는 여성의 맨발이 눈길을 끈다.

 

한데 이 시조의 사랑은 어떤 금지된 바를 범하고 있다.

삼경은 밤 11시에서 다음날 새벽 1시까지다.

밤은 밤이지만, 사람들의 활동이 완전히 멈추는 그런 시간은 아니다. 한데 남자는 날이 밝아올 것을 의식하여 자리를 털고 일어서고 여자는 남자의 옷을 잡고 다시 만날 날을 묻는다.

 

둘이 부부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떤 금지된 사연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시조는 원래 한시를 다시 풀어 쓴 것이다.

 

한시는 다음과 같다.

 

삼경 깊은 밤 창 밖에 가는 비 내리는데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환정(歡情)이 미흡한데 하늘이 밝아오니

다시금 나삼 잡고 뒷날 기약을 묻는다

 

窓外三更細雨時,兩人心事兩人知

歡情未洽天將曉,更把羅衫問後期

 

어떤가. 시조는 한시를 온전히 풀어서 다시 쓴 것이다.  

시조로 풀어 쓴 사람은 알 길이 없지만, 한시를 쓴 사람은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팔도 도원수를 지낸 김명원(1534∼1602)이다.

 

이 시를 쓴 김명원의 젊은 시절이 이 시의 내용과 관계가 있다.

김명원은 젊은 시절 어떤 어여쁜 기생을 좋아했다. 이 기생이 권세가의 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기생은 관청에 매인 계집종이기 때문에,

권력을 쥔 자가 예쁜 기생을 차지하고 다른 여자를 계집종으로 대신 넣는 일이 허다하였다.

 

김명원은 기생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해서 그 권세가의 집 담을 넘어 기생과 만나 통정을 하던 중, 발각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법은, 자신의 아내나 첩이 다른 남자와 통정하는 것을 현장에서 잡았을 경우

즉시 타살해도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죽일 요량으로 묶어 놓고 한참 분풀이를 하고 있는데,

소식을 들은 김명원의 형 김경원이 달려와 자기 아우의 인물을 보라고 말한다.

요컨대 장차 나라에 크게 쓰일 인물이 아닌가, 제발 젊은이의 앞날을 위해 살려만 달라고.

김경원의 호소가 주효했던지, 주인은 망설이다가 포박을 풀고 술대접까지 해서 보낸다.

김명원은 임진왜란 때 팔도 도원수로 공을 세우고 좌의정까지 지냈으니, 과연 형의 말과 같았다.

 

김명원의 일화가 이 한시와 관계가 있는지는 미상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담장을 넘고, 떠나야 하는 처지는

위의 한시와 여합부절로 들어맞는다.

 

 

조선시대 남녀도 금지된 사랑을 했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자.

 

화제를 볼 때 이 그림의 여자와 남자는 역시 사회적으로 공인된 그런 사이는 아니다.

여자의 표정은 어딘가 수줍어하면서도 조심스럽다.

남자 역시 나직한 목소리로 무슨 말을 건네고 있다.

남에게 알려지면 안 되는 관계, 금지된 사랑을 이 두 남녀는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랑은 합법적인 것일 수도 있고, 합법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합법적인 것이라면 처녀 총각이 만나는 것이겠지만,

신윤복이 살던 시대에 양반가의 젊은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한밤중에 몰래 만나는 것은,

유가의 도덕이 금지하는 것이었다. 불법적인 것이라면, 그야말로 두 사람 다 결혼한 상태이거나, 한 쪽만 결혼한 상태일 것이다. 어느 쪽도 모두 비윤리적인 것이다.

 

불법적이건 비윤리적이건 사랑은 사랑이고, 연애는 연애다.

자유연애가 금기시되어 있었을 뿐 조선시대 남녀도 사랑을 하고 연애를 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인간이 지구상에 생겨난 이래 변하지 않았다.

다만 사랑의 방식이 지역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달리 나타날 뿐,

사랑하는 감정과 남녀의 만남 자체가 사라진 적은 없었다.

 

금기를 넘는 사랑의 행위는 얼마든지 있었다.

조선왕조실록과 ‘추관지’ 등의 사료에는 금지된 사랑, 곧 간통의 행위가 허다하게 실려 있다.

혜원은 그 금지된 사랑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절묘하게 잡아냈을 뿐이다.

-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서울신문, 2008-02-25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