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신윤복 - 목욕하는 여인(端午風情)

Gijuzzang Dream 2008. 7. 10. 16:27
 

 

 

 목욕터 풍경(端午風情)  

 
 
신윤복의 그림 ‘목욕하는 여인들’
 
단옷날 여성의 목욕 장면을 그린 것이다.
왼쪽 아래에 젊은 여인 넷이 시냇물에 몸을 씻고 있다. 네 사람 모두 윗도리를 벗었고,
그 중 맨 왼쪽에 서 있는 여인이 치마를 걷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아마 속옷도 입지 않고 있는 광경이다.

신윤복 ‘목욕하는 여인들(단오풍정)’ (간송미술관 소장)

젊은 여인들이 젖가슴을 드러내놓고 목욕하고 있는 풍경이 사뭇 에로틱한 느낌을 자아낸다.

 

조선시대 여성 목욕 장면 담은 유일한 그림

 

오른쪽 위에는 붉은 치마와 노란 저고리로 한껏 멋을 낸 젊은 여인이 그네를 뛰고 있고,

그 옆의 여성은 참으로 거창한 크기의 어여머리를 풀어 매만지고 있다.

두 여자의 옷은 고급스럽다. 저고리의 끝동, 깃, 곁마기, 고름을 모두 자주색으로 하면

삼회장이라 하여 가장 잘 차려입은 것으로 치는데,

그네를 타는 여자와 어여머리를 만지고 있는 여성은 모두 삼회장이다.

다만 맨 오른쪽의 여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흰 저고리를 입고 있는데,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다.

오른쪽 아래의 보퉁이를 이고 오는 여자는 짚신을 신고 행주치마를 두른 것을 보건대 입성이 초라할 뿐만 아니라, 남들 노는 데 심부름이나 하고 있으니, 계집종임이 분명하다.

이고 온 보퉁이에 술병 모가지가 비쭉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옆에 보이는 물건 역시 안주를 담은 찬합일 것이다. 요컨대 단옷날 시내로 나와 목욕하는 여성들(기생으로 짐작된다)이 마시고 먹을 술과 안주를 나르는 참이다.

 

 

이 그림은 놀랍도록 충격적이다.

조선조 500년에 걸쳐 유사한 그림은 없다.

그 충격의 이유는 여성의 나신을 드러내 놓고 있다는 것이다.

흰 피부에 진홍의 젖꼭지와 입술은 너무나도 선명하다.

특히 여성의 유방을 보라.

인터넷이 온갖 영상을 퍼 나르는 시대에 여성의 나신은 그다지 별스럽지 않다.

하지만 때는 유가의 도덕이 시퍼런 조선시대다.

어찌 충격이 아닐 수 있겠는가.

 

여성의 젖가슴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이다.

그것은 성의 두 가지 기능과 관계된다.

인간에게 있어 성은 쾌락이면서 생식이다.

여성의 가슴 역시 그것에 대응한다.

가슴은 성적 쾌락의 도구, 곧 성기일 수도 있고, 또한 자식을 기르는 수유의 도구이기도 하다.

수유의 도구는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과거 여성들이 공개된 공간에서 자신의 가슴을 열어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을 보고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것은 모성의 가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퉁이를 진 여성의 젖가슴은 신기하게도 성적 상상을 유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목욕하는 여성의 분홍빛 유두와 흰 가슴은 성적 쾌락을 상상케 한다.

저 숨어서 훔쳐보는 젊은 까까머리 스님들의 시선도 분명 성적 쾌락을 향해 있다.

 

이 그림이 또한 희한한 것은

여성의 조선시대의 목욕 장면을 형상화한 유일한 시각자료라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회화는 인간의 구체적 일상을 담은 그림이 참으로 희소하거니와,

이 그림 외에는 목욕이라는 재제가 등장하는 그림은 없다.

 

게다가 목욕 자체에 대한 문헌의 언급도 희소하다.

과거 기록에서 목욕은 온천과 관련하여 주로 등장한다.

눈병으로 고통을 겪었던 세종과 심한 피부병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세조는

자주 온천을 찾았다. 따라서 이들의 온천행과 관련된 목욕이란 어휘가 더러 등장한다.

 

30년도 더 된 예전의 일이다.

나는 창덕궁에 갔을 때 궁궐 안에 있는 목욕탕을 보았는데, 그것은 신식이었다.

과거 사람들은 어떻게 몸 전체를 씻었던 것일까.

제사를 지내기 전에 목욕재계하라는 말이 허다하게 나오지만,

나는 정작 그 ‘목욕’재계가 이루어지는 공간과 방법, 도구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세종실록’ 7년 7월19일조를 보면,

세종은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습진과 같은 피부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는 보고를 듣고

선공감에 명하여 욕통(浴桶)을 만들어 지급하게 한다.

이 욕통이란 것이 조선시대의 목욕문화의 핵심일 것이다.

지금처럼 대중탕이나 혹은 집안에 따로 욕실을 만들지 않고, 욕통을 만들어 적당한 공간에

비치하고 물을 데워서 목욕을 하는 것이 목욕문화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것조차 일반적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보편적이었을 것 같지는 않다.

인구의 대부분이 소작농이거나 극히 적은 농토를 소유한 자작농이었으니,

삶의 수준이란 것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판에 집집마다 욕통을 갖추어 놓고 물을 데워 목욕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에는,

단독주택에 욕통을 비치할 공간을 거의 마련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린다면,

조선시대의 목욕문화를 대개 짐작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자신의 몸을 어떻게 청결히 했을까 하는 것은 더욱 궁금한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도 아무런 문헌적 해답은 없다.

상상하건대 아마도 부엌 바닥에 물을 데워놓고 아무도 없는 한밤중에 몸을 씻지 않았을까.

 

 

개울에서 목욕하는 것은 오랜 전통

 

다만 여성이 비교적 자유롭게 몸을 씻을 수 있는 곳은, 개울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을 선택한다. 하기야 늘 그렇듯이

남성의 관음증은 여기서도 멈추지 않아, 훔쳐보는 사람(스님 둘)이 있기 마련이지만.

개울에서 목욕을 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다.

 

1123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옛날의 역사책에 고려에 대해 실어놓은 기록에 의하면,

그 풍속이 모두 다 깨끗하다 하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고려 사람들은 늘 중국 사람들이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

그러므로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반드시 먼저 목욕을 한 뒤 집을 나선다.

또 여름에는 날마다 두 번 목욕을 하는데, 거개 시내에서 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내외를 하지 않고 의관을 모두 벗어 언덕에 던져두고

물가를 따라 벌거벗되 괴이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위쪽 부분이다.

고려 사람은 청결하고 중국인이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는 말을 중국인 스스로 하다니 말이다.

서긍의 말에 의하면, 고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목욕부터 하고 외출을 하고,

여름에 하루 두 번 목욕을 한다 하니, 조선과는 사뭇 다른 풍습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여름철 시내에서 목욕을 하되,

남자 여자가 내외를 하지 않고 나신을 드러내고 목욕을 했다는 것이다.

이 기록을 믿는다면, 고려시대에는 남녀의 분별이 없이 옷을 언덕에 벗어놓고 몸을 씻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위의 엿보는 선비도 이런 유구한 전통을 이어받았는지 모를 일이다.

 

 

각설하고, 이렇듯 자유롭던 개울가의 풍경이 바뀐 것은 조선조가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조선조는 알다시피 양반-남성 국가다.

양반-남성의 국가는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을 분할,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양반-남성은 ‘소학’의 규정대로 여성의 역할을 조리와 의복에 제한했다.

조리와 의복 마련은 조선에서도 여성이 맡아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고려와 달라진 것이 있었다.

조선의 국가이데올로기 성리학은 남성과 여성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여성을 오직 가정 내부에 유폐할 것을 요구했다.

여성은 밖으로 나다니지 말아라. 여성은 뜰 밖에 나와서도 안 된다.

이것이 양반-남성의 요구였다.

 

 

감추라 하면 더욱 드러내고 싶은 인간의 본능

 

‘고려도경’의 언급처럼 고려사회는

시냇가라는 동일한 공간에서 남자와 여자가 옷을 벗고 목욕을 하는 것을 허락했다면,

조선사회에서는 그와는 정반대의 길로 치달았다.

몸을 가려라. 이것이 여성에 대한 주문이었다.

사대부가의 여성이 외출할 때면 장옷과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렸고,

처녀의 경우 비단보자기를 씌워서 업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럴 형편이 되지 않으면 할 수 없지만, 만약 형편이 된다면,

남성의 시선으로부터 여성의 신체를 완벽하게 차단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것이 도덕의 명령이었다.

 

하지만 감춘 것은 더욱 보고 싶은 법이고,

감추라 하면 더욱 드러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양반-남성의 도덕은 여자의 몸을 죄의 근원처럼 여겼다. 과연 그런가.

여성의 몸이 죄의 근원이라면 모든 인간은 죄의 근원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보다 더 큰 거짓이 어디 있겠는가. 혜원은 바로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서울신문, 2008-02-04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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