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 기존지도 편집해 제작"
조선의 지도학을 집대성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1804-1866 추정)가
대표작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보물 850호)’를 직접 전국을 답사해 제작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리서와 지도를 편집해 만들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기봉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서울대 인문주간 행사로 9월29일 열리는 규장각 학술대회를 앞두고
9월28일 발표한 ‘조선의 고지도와 김정호’라는 강연록을 통해 주장했다.
강연문에서 “김정호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대동여지도’를 제작했다는 통설은 잘못됐다”며
“그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문헌비고(文獻備考)> 등 조선시대 지리지와
정상기의 <동국지도(東國地圖>, 신경준 주도로 제작된 <군현도(郡縣圖)> 등
당시 지도들을 참조해 자신의 집에서 각종 지리 정보를 취합해 <대동여지도>를 제작했다”
고 주장했다.
그는 이에 대한 근거로
▲ 대동여지도에 나오는 1만8천여 개의 지명위치를 혼자 직접 측량할 수 없다는 점,
▲ 당시 조선은 각 지역에 대해 상당히 자세한 지리정보를 확보하고 있었던 점,
▲ 다른 지역에 비해 위치 정보가 부족했던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이
상대적으로 부정확한 점 등을 들었다.
실제 가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잘못된 지리정보가 계속 등장하는 문제에 있어서,
실례로 김정호가 제작한 청구도나 동여도, 대동여지도에는
충청도 해미현(海美縣) 근처의 서면(西面) 지역이 잘못 표기돼 있고,
한양에서 아주 가까운 곳의 지명도 수십년간 잘못 기재돼 있는데,
이는 기존의 잘못된 지리지와 지도를 참조했기 때문에 잘못을 답습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한지리학회 학회지에도 김정호가 백두산을 여러 차례 오르고
전국을 돌아다녔다는 내용이 실릴 정도로 잘못된 학설이
일제시대 이후 수십 년 동안 사실로 받아들여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정확한 고증 없이 일제시대에 등장했던 전국답사설 등의 통설을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될 것”
이라고 하면서, 김정호의 '전국답사설' 등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그의 업적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정호는 대중에게 정확한 지리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일념으로 평생을 바친 위대한 학자”라며
“김정호는 남북 6.6m에 이르는 조선에서 가장 큰 ‘대동여지도’를
민간 수요자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목판본 지도로 제작해 조선의 지도를 집대성했다는데
그 위대함이 있으며, 그는 지도 범례를 표로 따로 만들어 예시하거나
찾기 쉽게 색인표를 제시하고 큰 지도를 엇갈리게 2권으로 나눠 출간하는 등
지도제작의 선구자이자 우리 문화의 자랑” 이라고 강조했다.
- 2006년 10월, 경향, 서울, 연합, 조선, 국민, 한국 등의 기사정리
|
'알아가며(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구려고분벽화] 세계문화유산 고분벽화 (0) | 2007.11.06 |
---|---|
[고구려고분벽화] 덕흥리 고분벽화의 <견우와 직녀> (0) | 2007.11.06 |
[고구려고분벽화] 지축일신양두(地軸一身兩頭) (0) | 2007.11.06 |
[고구려고분벽화] 척목(尺木)이란 ? (0) | 2007.11.06 |
[고구려고분벽화] 고구려인의 모자(冠), 절풍, 책 (0) | 2007.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