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며(자료)

[고구려고분벽화] 척목(尺木)이란 ?

Gijuzzang Dream 2007. 11. 6. 20:04

 

 

◆ 하늘로 오르는 디딤돌, 청룡의 척목  



- 전호태(울산대교수)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어떤 소설의 제목이다. 하늘로 비상하려면 날개가 있어야 된다는 관념, 날개가 없으면 날 수 없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중근동과 유럽 사람들에게 하늘은 날개가 있는 존재에게만 허용된 세계였고, 날개 달린 것의 도움 없이는 이를 수 없는 공간이었다. 천사도 등에는 반드시 날개가 달려있었고, 신들도 천상과 지상 사이를 오갈 때에는 거대한 새나 날개달린 말의 힘을 빌렸다.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 우주적 크기의 산이나 거대한 나무를 두 세계의 통로로 삼을 수는 있었지만 무한한 창공을 날아다니려면 날개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공룡과 비슷한 모습을 한 그리스나 북유럽신화 속의 드레곤이 등에 박쥐의 가죽날개 같은 것을 달고 있는 존재로 묘사되는 것도 이러한 관념 위에서이다.

 


(그림 1) 오회분4호묘 : 청룡


집안의 오회분4호묘 벽화에는 아름다운 오색청룡이 등장한다.

화려하고도 복잡한 연속무니 위에 묘사된 까닭에 창공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앞발을 크게 내닫으며 포효하는 모습에서 우주적 수호신 특유의 힘과 기세는 완연히 느껴진다. 벽면에 가득 차게 그려진 청룡의 몸은 온통 비늘로 덮여있고, 몸통 부분은 색동주름치마를 입은 것처럼 긴 띠를 이루며 오색으로 채색되었다. 목과 몸통의 경계는 녹색, 적색 두 줄 목띠로 구분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연속마름모꼴 색띠가 차곡차곡 이어진 것처럼 묘사된 목 위에 덧그려진 불꽃모양의 무늬이다. 양 어깨에서 날개처럼 뻗어나가는 불꽃 형태의 무늬가 사신이 뿜어내는 상서로운 기운을 나타낸 것이듯이 목 위의 무늬도 청룡의 기운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 부분에 굳이 눈길을 모을 필요는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신과 같은 신수(神獸)를 둘러싼 상서로운 기운은 어깻죽지나 허리, 네 발의 무릎 근처처럼 힘이 강하게 나타나는 데에 묘사하는 것이 상식이고, 실제 고분벽화나 전각화(塼刻畵)에서 이와 같은 표현방식이 적용된 사례를 찾아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벽화 속 청룡 목 위의 불꽃모양의 가운은 무엇을 나타낸 것일까. 어떤 의도를 담은 표현일까.


중국 한대의 문헌 《논형(論衡)》에는 ‘용은 한 치의 나무, 곧 척목(尺木)이 없으면 하늘로 오르지 못한다’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시대를 한참 건너뛴 뒤 쓰인 당대의 문헌 《유양잡조(酉陽雜俎)》에는 ‘용의 머리 위에 한 가지 물체가 있으니 박산(博山)처럼 생겼고 이름을 척목이라고 한다. 용은 척목이 없으면 하늘로 오르지 못한다’는 글이 실려 있다.

수백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용이 하늘로 오르기 위해 디딤대로 삼았던 한 치 크기의 나무가 용의 머리 위에 붙어있는 박산 모양의 승천 장치로 바뀐 것이다.

 

 

--- 박산향로

 

박산은 바다 위에 떠있다는 신선의 세계로 한 (漢)대에는 향로뚜껑 도안에 많이 쓰인 전설상의 산이다. 박산향로는 한대에 특히 많이 만들어졌지만 남북조시대의 전각화에도 자주 등장할 정도로 후대에까지 애용되었던 기물 가운데 하나이다.


당(唐)대 이전 어느 시기부터인가 척목이 용의 머리 위에 있는 물체로 인식되고 표현되기 시작했음은 고분벽화나 전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남북조시대의 전각화 등에서는 화염보주 형태로 묘사된 척목을 청룡 뿐 아니라 백호의 목 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림 2) 중국 강소 상주 척가촌 남조묘(南朝墓) 전각화(塼刻畵) : 백호


박산의 형태가 아닌 화염보주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전하는 화염보주에 대한 인식 때문일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척목이 처음 발견되는 것은 장천1호분 앞방 천장고임에 그려진 청룡에서이다. 청룡의 엉치 위쪽에 표현된 척목은 삶은 계란을 어슷하게 잘라서 올려놓고 그 주위에 가는 털들을 붙인 듯한 모습이다. 물론 가는 털들처럼 표현된 것은 상서로운 기운이 어려 있고 뻗어 나가는 모습이라고 하겠다.

 

(그림 3) 청룡모사도

덕화리1호분 벽화에 이르러서야 척목은 청룡의 목덜미 위에 묘사된다. 형태도 화염보주의 외형과 비슷하다.

(그림 4) 덕화리1호 벽화 : 청룡

오회분4호묘 청룡에 이르면 화염보주의 보주에 해당하는 부분은 보이지 않고 상서로운 기운이 강한 불꽃형태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그려져 또 한 번 변화를 보인다.


동아시아에서 하늘을 나는 존재에 대한 관념은 서아시아 및 유럽의 그것과 달랐다. 중국이나 한국 옛 왕조의 화가들이 용이나 백호와 같은 신수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그릴 때에 등에 날개를 덧붙이지 않은 데에서 이런 관념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도 날개를 달지 않은 채 하늘을 날 수는 어렵다고 생각했음을 용의 승천에 척목이 필요하다고 상정한 글과 이에 바탕을 둔 회화적 표현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승천을 위한 매개물에서 몸에 달아야 하는 장치로 바뀐 척목의 형태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변화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승천장치로 보기 어려운 강한 기운의 표현으로 바뀌는 것이다. 아마도 고구려 화가들은 청룡과 같은 우주적 신수에는 승천을 위한 최소한의 보조 장치나 매개물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 한국역사연구회 2005년

 

 

 

 

 

< 참고 >

 

(그림 5) 강서대묘 청룡


                    

(그림 6) 강서중묘 백호


 

 

 


 

◆ 《한국미술, 그 분출하는 생명력》, 강우방 / 월간미술 / 2001년


1. 척목 없이는 용이 승천할 수 없다.


용의 등에 있는 보주(寶珠) 같은 것을 척목(尺木)이라 하는데, 그에 관한 가장 오랜 문헌은 왕충(王充, 27-90)의 《논형(論衡)》<용호(龍虎)> 편이다. 거기에 “척목없이는 용이 승천할 수 없다”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당(唐)대의 글에 “용머리 위에 한 물건이 있는데 박산(博山) 모양으로 척목이라 하며, 이것 없이는 하늘로 오를 수 없다”고 하여 척목이 박산 모양임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다.

 

실제로 당(唐)대의 그림에는 등과 꼬리 부분에 화염보주(火焰寶珠) 모양이 붙어있다. 그러면 척목은 박산 모양인데 왜 보주 모양이 되었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박산향로의 모양을 추상(抽象)하면 보주모양이 된다. 향로의 몸체는 둥글고 그 위에 산이 있으니 꽃봉오리 모양의 보주 모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척목이 무엇인지, 또 척목이 왜 박산 모양이며 또 보주 모양의 되었는지 지금으로는 자세히 알 도리가 없다.


척목이 여의보주가 되고, 여의보주가 왜 용의 등에 있는지도 까닭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성덕대왕신종의 등에 있는 것이 척목이란 것을 알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림 7) 성덕대왕신종의 용 등위에 있는 여의보주와 같은 모양의 보주가 보인다.

        : 성덕대왕신종, 통일신라 8세기, 국보 29호, 국립경주박물관

 

아마도 여의보주의 원형이 척목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의보주가 없으면 용은 승천하지도 신통력을 부리지도 못한다. 보주(寶珠)란 동물 가운데 용과 봉황만이 지닐 수 있는 물건이다. ~~ (pp 156-157)




2.

 

~~ 중략 ~~


척목의 모양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문헌에 의하면 박산로 같은 형상인데 머리 위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박산로의 형태를 추상하면 끝이 뾰족한 보주(寶珠) 모양이 된다. 그것이 없으면 하늘을 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이므로, 성덕대왕신종의 용에서는 목덜미 위에 연화좌를 마련하고 하트 모양으로 변형된 척목을 안치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 용의 오랜 도상에는 목덜미나 꼬리 부분에 불꽃무늬로 둘러싸인 보주가 얹혀져 있는데, 문헌에서는 그것을 척목이라 했다.

그리고 성덕대왕신종의 용의 입에는 별도로 입 안 가득히 커다란 둥근 여의주(如意珠)가 물려 있다.



여의주가 없는 용은 생각할 수 없다. 입에 물고 있지 않을 때는 발로 여의주를 높이 받들고 있다. 때때로 봉황도 여의주를 지닐 수 있으나 긴 부리에 여의주를 물리기가 어려워 생략하는 것이 보통이다. 근래 부여 능산리 능사(陵寺)에서 발굴되어 세계를 놀라게 한 백제대향로(百濟大香爐)의 봉황은 가슴과 턱 밑 사이에 여의주를 끼고 있다.

 

용은 길어서 흔히 측면에서 보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림이든 조각이든 긴 윗입술, 입에서 길게 널름거리며 뻗어 나오는 혀, 네 다리, 목덜미와 꼬리 부분의 척목 혹은 박산로, 파도처럼 굴곡진 긴 몸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구름 혹은 덩굴식물 모양의 기(氣), 입에 물거나 한 손으로 받들어 올린 여의주 등등, 이 모든 것을 표현하려면 옆모습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용의 옆모습에서 살펴보았듯이 용이 용이게끔 하려면,

첫째로 입에 물거나 앞발로 받쳐 든 여의주가 있어야 하고,

둘째로 입에서 발산되는 구름모양 혹은 덩굴식물 무늬의 기(氣)표현이 있어야 하고,

셋째로 목덜미 위에 척목 혹은 박산로가 있어야 한다.

넷째로는 용은 반드시 두 뿔이 있고,

다섯째로 입 주위에 기(氣)의 또 다른 표현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말린 갈기들이 있다.


그런데 안압지에서 출토된 녹유 용 얼굴은 이 모든 것을 온전히 갖추고 있다. 특히 목덜미의 척목은 앞에서 보면 두 뿔 사이로 보이므로 여기서는 두 뿔 사이 공간에 하트 모양의 척목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옆모습에서는 한 줄기의 기(氣)밖에 표현될 수 없는데, 여기서는 양 입가에서 덩굴식물 무늬로 발산되어 좌우대칭으로 뻗치고 있다. 이러한 기 표현은 다른 동물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봉황이나 기린 같은 상상적 영물(靈物)의 입에서도 드물게 표현될 뿐인데, 어떻게 도깨비 입에서 나올 수 있는가.

그러나 이 녹유 용 얼굴에는 입에 여의주가 없고 혀를 표현하고 있다.


(그림 8) 경주 안압지 출토 녹유용면와, 통일신라 7세기, 국립경주박물관

 

통일신라 용면와 가운데는 실제로 여의주를 물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둥근 여의주를 물고 있거나, 한 개가 여러 갈래로 갈라진 이면(二面)보주·삼면(三面)보주·사면(四面)보주 등을 입에 문 것도 있다.


(그림 9) 위 / 경주 감은사지 출토 용면와, 통일신라 7세기, 국립경주박물관

         : 입에 사면보주를 물고 있다.

(그림 10) 아래 / 경주 안압지 출토 녹유용면와, 통일신라 7세기, 국립경주박물관
          : 여의보주를 입 안에 물고 있다.

이 경우에는 용의 입을 크게 벌려야 되므로 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다. 그래서 그런지 용면와에서 입에 문 여의주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사다리꼴 모양의 사래기와에 압축된 용의 얼굴이 바로 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자의 모습이므로, 신라의 조각가는 온 심혈을 기울여 생명력에 충만한 작품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 생략 ~~

 

 


*** 사진, 그림들은 도움되시라고, 기주짱이 임의로 덧붙이고 바꾸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