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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과 운현궁사람들> 고종황제 가족사진 '조작'됐다 (오마이뉴스)

Gijuzzang Dream 2007. 11. 4. 21:06

 

 

 

 

 

고종 황제 가족사진 '조작' 됐다

 

 

몇 해 전에 이른바 '고종황제 가족사진'이란 것이 세상에 홀연히 그 존재를 드러냈다.

그러나 각 신문지상에 이 사진이 소개되자마자 이것의 진위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부에서 제기되었다. 말하자면 합성사진이라는 것이다.

인물의 배치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통칭 '영친왕'(의민황태자, 일제 때는 이른바 '이왕세자'로 격하되었다가 1926년 이후 '이왕'을 승계)이 옹색하게도 고종과 순종의 사이에 끼어있는 듯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 영 어색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독 영친왕의 시선만 사진기 쪽을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것도 가짜를 의심케 하는 빌미가 되었다.

역사적 사실관계에 비춰보더라도, 이 사진은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문도 제기되었다. 이 사진의 최초제공자는 "1915년경 영왕의 일시귀국을 기념해 창덕궁 인정전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영친왕은 1918년 1월에야 조선에 돌아오게 되므로 이러한 설명은 전혀 잘못된 것이다.

몇 가지 논점에 따라, 이 사진의 진위여부가 의심된다는 내용은 그 당시 <동아일보> 2004년 5월 6일자에 "[줌인] 고종황제 가족사진 이것이 궁금하다"는 기사로 비교적 소상하게 요약 정리된 바 있었다. 하지만 이 기사에서 이런저런 논점에 대한 의혹만 지적하였지, 감히 '조작'사진이라고까지 단정 짓지는 못했던 것은 아쉬운(?) 대목이었다.

▲ 2004년 4월말경에 느닷없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 문제의 '황실관련 사진'이다. 하지만 이 당시는 사진상태가 조악하고 배경이 어둡게 처리되어 있어 정확한 사진판독이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사진 속 인물은 왼쪽부터 의친왕 이강, 순종, 영친왕, 고종, 순종비, 의친왕비, 의친왕 장자 이건이고, 앉아있는 아기가 덕혜옹주이다.) ⓒ 이순우

그런데 세상일이란 게 때로는 참 묘한 것이, 이 사진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여러 의혹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케도 살아남았다. 아니, 오히려 사진의 존재가 널리 공인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지난해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보았더니 첫 번째 진열실로 들어가는 초입에다 이 사진을 확대한 것으로 벽면전체를 장식해놓은 광경이 눈에 띄었다. 이번에 2월 27일부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흥선대원군과 운현궁 사람들> 전시회에 둘러보았더니, 이곳에도 그 문제의 사진이 버젓이 걸려있었다.

일간신문을 통해 합성의혹이 제기되고 또한 조금만 역사자료를 고증해보더라도 사실관계에 전혀 맞지 않은 저런 사진을 어떻게 국공립 박물관에 버젓이 걸어놓을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을 퍼뜩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조작의 이유, 오려붙인 흔적 역력

단언컨대, 이 사진은 명백한 '조작사진'이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크게 세 가지 논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

▲ 이번에 서울역사박물관의 '흥선대원군과 운현궁 사람들' 전시회장에 출품된 사진자료이다. 고종과 순종 사이의 어깨너머로 영친왕의 다른 사진을 오려붙인 흔적은 육안으로도 쉽사리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진은 서울역사박물관의 상설전시관에도 진열되어 있다.

ⓒ 서울역사박물관

첫째, 이 사진은 아주 원시적인 방법으로 '조작'되었다. 이 사진이 합성이네 마네 하지만, 그건 어느 정도의 기술적인 합성능력이 게재되어 진위여부를 가려내기가 어려울 때나 사용되는 말이고, 이 사진의 경우는 전혀 그러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번에 서울역사박물관에 진열 전시되어 있는 문제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원래의 사진에다 영친왕의 다른 사진을 따로 오려붙인 흔적이 역력하다. 이건 사진학 전공자들을 동원할 것까지도 없고, 두 눈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확연히 가려낼 수 있을 정도였다.

2004년도에 각 신문지상을 통해 소개된 사진은 인화상태가 조악하고 배경부분도 너무 어두운 것이어서 별개의 사진을 오려붙인 흔적을 판별하기가 어려웠지만, 이번에 "흥선대원군과 운현궁사람들"에 출품된 해당 사진은 인화상태가 매우 선명하여 가까이서 쳐다보면, 다른 사진을 오려붙인 것이란 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어떠한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인위적으로 오려붙인 게 명백하다. 이로써 멀쩡했던 원래 사진까지 그 가치를 현저하게 훼손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누가 이런 짓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역사자료의 조작행위에 대한 책임추궁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덕혜옹주 나이를 거꾸로 먹어?

이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는 두 번째 논점은 '역사적 사실' 그 자체이다.

먼저, 위의 사진은 언제 어디에서 촬영된 지가 분명하지 않다. 처음 사진이 세상에 소개될 때에 "1915년경 영왕의 일시귀국을 기념해 창덕궁 인정전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 정도가 주어졌을 뿐이다. 물론 잘못된 설명이다. 사진제공자라고 해서 그런 부분까지 정확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잘못 추정하였다고 그 부분까지 책임을 추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몇 가지 기초적인 사실관계들을 검증해보면, 이 사진은 "역사적으로"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 금세 드러난다.

이 부분을 하나씩 설명하면, 이러하다.

사진 속에 고종황제(1852-1919)의 모습이 보이므로, 이건 1919년 이전에 촬영된 게 확실하다. 그리고 영친왕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은 그가 국내에 되돌아왔을 때에 촬영된 기념사진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아울러 고종이 일본으로 건너간 적은 결코 없었으므로, 이건 결단코 국내에서 촬영된 것이다.

그렇다면 고종황제가 세상을 뜰 때까지 영친왕은 몇 번이나, 그리고 언제 조선으로 되돌아왔던 것인가?

대한제국 시절 황태자였던 영친왕은 일본유학이라는 명분으로 이토통감과 더불어 일본으로 건너갔으니, 이때가 1907년 12월 5일이다. 그 이후 그는 부왕인 고종황제와 딱 세 차례 상면할 기회를 가졌다. 아래는 이른바 이왕세자의 귀선(歸鮮, 그 당시는 조선에 돌아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에 관한 연혁이다. (다만, 날짜는 서울체류일자를 기준으로 정리하였다.)

제1차 귀선, 1911.7.23~8.5, 생모인 순헌귀비 엄씨의 장례(1911.7.20일 엄비 훙서, 8.2일 장의 거행)
제2차 귀선, 1918.1.13~1.26, 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 및 육군소위 임관 후 귀국
제3차 귀선, 1918.8.28~9.2, 고종 환후 위문차 귀국(이후 1919.1.22일 고종 훙거로 1919.1.24일에 급거 귀국)

이렇게 보면, 영친왕이 등장하는 이 사진은 1918년 1월 이전에 촬영된 것일 수는 결코 없다. 더구나 같은 사진 속에는 덕혜옹주의 모습까지 보인다. 덕혜옹주의 출생일자는 1912년 5월 25일이다. 여동생 덕혜옹주와 오빠인 영친왕의 첫 대면은 당연히 1918년 1월에야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이 사진이 엉터리라는 명백한 증거자료가 있다. 바로 아래에 나오는 별개의 사진자료(<매일신보> 1918년 1월 22일자 수록)가 그것이다. 이 자료 역시 황실관련사진으로서는 제법 많이 알려진 것으로, 이번 서울역사박물관의 전시회에도 출품되어 위의 조작사진과 나란히 걸려있다.

▲ <매일신보> 1918년 1월 22일자에 수록된 이른바 '이왕가(李王家)' 일족의 사진자료이다. 이 사진은 촬영일자가 분명하고,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첫 대면 사진이라는 점에서 사진조작여부를 가려내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 이순우

이건 영친왕(당시 이왕세자)이 귀국하면서 고종황제(당시 이태왕), 순종황제(당시 이왕), 순종황후(당시 이왕비), 덕혜옹주와 더불어 1918년 1월 20일에 덕수궁 석조전에서 일본요리를 시식한 후에 기념 촬영한 사진이다.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첫 대면이나 다를 바 없었던 이날의 촬영장면에 보면, 덕혜옹주는 여섯 살 미만의 나이였으나 덩치만큼은 앉은키로 어른들의 어깻죽지 정도까지 성장했던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른바 '고종황제 가족사진'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거기에 보이는 덕혜옹주는 거의 유모차나 다를 바 없는 의자에, 돌잔치나 겨우 지났을 법한 정도의 유아로 보인다. 따라서 공식 확인된 첫 대면 때의 모습보다 덕혜옹주의 덩치가 오히려 더 줄어져 있다는 것은 나이를 거꾸로 먹었거나 인위적인 조작이 있지 않고서야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진이라는 점은 이로써도 저절로 드러나는 셈이다.


영친왕 사진 다른 데서 가져왔을 가능성 높아

정리하자면 이렇다. 이른바 '고종황제 가족사진'의 원본은 영친왕과는 전혀 무관하게 1918년보다 적어도 두어해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점에서 촬영된 별개의 기념사진이었으나, 여기에다 어떤 사람의 인위적인 '조작'으로 영친왕의 사진을 오려붙인 조악한 '가짜사진'이 탄생한 것이다.

누가,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단지 고종황제, 순종황제, 영친왕, 의친왕, 덕혜옹주까지 구황실의 구성원이 한 자리에 모여서 찍은 사진자료라면 그만큼 더 사료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에 벌인 일이 아닌가 짐작해 볼 따름이다.

이 사진자료가 '조작품'이라는 세 번째 판단근거는 사진조작에 이용된 영친왕의 사진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고종황제 가족사진이 조작된 것이 확실한 마당에 원본사진에 오려붙여진 '영친왕' 사진의 출처까지 명확하게 드러난다면, 더 이상 논란을 벌인다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을 줄로 믿는 바이다.

그럼 사진조작에 이용된 영친왕의 사진출처는 확인될 수 있는 것인가?

▲ <매일신보> 1916년 8월 3일자에 수록된 이왕세자와 이본궁방자여왕의 혼인계획에 관한 보도에는 바로 이 사진자료가 소개되었다. 고종황제 가족사진의 '조작'에 동원된 사진과 동일한 원판을 사용했음을 엿볼 수 있다. ⓒ 이순우

▲ <매일신보> 1916년 8월 4일자에 수록된 이왕세자와 이본궁방자여왕의 사진자료이다. 앞의 것과 동일한 원판을 사용한 것인데, 시선처리가 정면이 아닌 것은 여기서도 확인된다. ⓒ 이순우
이 점에 있어서 사진원본까지는 추적할 수 없으나, 영친왕의 모습과 동일한 사진이 <매일신보>를 통해 1918년 1월 이전에 벌써 몇 차례 소개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매일신보> 1916년 8월 3일자와 8월 4일자에는 이른바 이왕세자(영친왕)와 일본 이본궁방자여왕의 혼인발표에 관한 기사가 잇달아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영친왕의 사진자료가 낯익다. 그러니까 사진조작에는 바로 이 사진의 원본이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로써 이른바 '고종황제 가족사진'은 더 이상 거론하는 것이 입이 아플 정도로 '조작사진'인 것은 명백하다. 그럼 이것으로 끝인가?

앞에서 이미 지적했지만, 이 사진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전면 확대사진으로, 그리고 이번에 진행 중인 서울역사박물관 <흥선대원군과 운현궁사람들> 전시회의 출품 자료로, 나아가 서울역사박물관의 상설전시관 진열유물로 두루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진이 처음 세상에 소개될 때에 '합성사진'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또한 이 내용을 담은 일간지의 보도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전시자료로 활용하는 국공립 박물관 측의 무심함이 그저 의아할 따름이다. 논란과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한번이라도 전해 들었다면, 이러한 문제성 사진을 전시자료로 채택하는 것은 그만큼 더 신중하고 확실한 검증과정을 거쳤어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한다.

나아가 전시회에 반복 출품되거나 관련도록을 통해 이 사진의 존재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현실도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잘못된 사실과 자료가 더욱 퍼져나가고 뿌리를 내리기 이전에, 이른바 '고종황제 가족사진'은 조작된 가짜사진이라는 점이 세상에 널리 공지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박물관의 전시물품 또는 연구자료 등에서도 서둘러 '영구퇴출'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누군가의 잘못된 욕심 때문에 공연히 '영친왕' 사진까지 오려붙여 조작사진을 만드는 바람에, 사료가치가 높은 멀쩡한 원본사진까지 마치 쓰레기 사진처럼 취급되게 만들어버렸다는 것은 두고두고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고종황제 가족사진'은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의 상설전시관 및 '흥선대원군과 운현궁사람들' 전시장, 그리고 국립고궁박물관 등에 진열전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이 조작된 증거는 너무도 명백하므로 해당 박물관에서는 마땅히 이에 대한 진위검증과 아울러 전시공간에서 퇴출하는 조치를 내려주시기를 기대합니다.
  2007-03-08
ⓒ 2007 OhmyNews

  

 - 이순우(takehome)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