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연재자료)

승정원일기 연재 - 7. 왕의 건강관리

Gijuzzang Dream 2007. 11. 3. 18:19

 

 7. 왕의 건강관리  



   <‘동의보감’에 실린 신형장부도>

 

 국가 안위에 직결 날마다 체크, 한의학 최고의 '임상보고'

국왕이 국가와 거의 동일시되는 왕정체제에서 국왕의 건강은 국가의 안위에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따라서 국왕의 건강 상태는 날마다 꼼꼼하게 확인되었고, 국왕의 건강을 유지시키거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한 다양한 처방이 지속적으로 강구되었다. 국정의 거의 모든 부분을 상세히 담고 있는 ‘승정원일기’(이하‘일기’)에서도 국왕의 건강 상태는 중요한 관심사였으며, 자연히 거기에 관련된 기록도 풍부하게 실려 있다. ‘일기’는 조선시대 최고 수준의 한의학 시술이 적용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상세한 임상 보고서이기도 한 것이어서, 최근 관련 연구자들의 커다란 관심을 끌고 있다.

‘일기’에는 당시 궁중의 의료 체계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기사가 많이 나온다. 우선 다양한 약재의 이름이 발견된다. 매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약재의 이름 중에서 명칭을 통해 그 효능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것만 몇 개 들어보면, 탕약으로는 현재도 널리 알려진 십전대보탕을 비롯해 가감보중익기탕(加減補中益氣湯), 건비탕(健脾湯), 인삼양위탕(人蔘養胃湯) 등이 있다.

고약으로는 경옥고(瓊玉膏), 계고(鷄膏), 대황고(大黃膏), 사즙고(四汁膏) 등을, 환약으로는 청심환(淸心丸), 곤담환(滾痰丸:가래를 뚫어주는 환약), 안신환(安神丸) 등을, 가루약으로는 생맥산(生脈散), 소서패독산(消暑敗毒散:더위와 독기를 제거하는 가루약), 통순산(通順散)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밖에 교감단(交感丹), 금단(金丹), 우황해독단(牛黃解毒丹), 구미청심원(九味淸心元) 등도 자주 처방된 약재들이었다.


극히 일부분 밖에 들지 않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약재를 동원한 국왕의 진찰과 건강관리는 ‘약방(藥房)’이라고도 하는 내의원에서 맡았다. 영의정 등 주요 대신들은 도제조와 제조를 겸직하면서 실제적인 의료 행위보다는 상징적인 차원의 감독을 맡았고, 내의원의 실무적인 운영과 관리는 부제조를 맡은 승지가 책임졌다. 승지들은 닷새마다 한번씩, 그러니까 한 달에 모두 6번 있게 되는 문안진후(問安診候)에서 어의와 함께 입시해서 국왕의 건강 상태를 세밀하게 점검했다. 물론 이것은 승정원의 업무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은대조례(銀臺條例)’에 실린 공식적인 규정이고, 앞서 국왕의 하루 일정에서 보았듯이 실제로는 거의 매일 국왕의 안부가 확인되었다.


현재 인조 원년(1623)부터 영조 52년(1776)까지 153년 동안의 ‘일기’(전체의 절반가량)가 전산화되어 있는데, 거기서 내의원이 입진했다는 의미의 ‘약방입진(藥房入診)’기사를 검색해보면 각 국왕의 건강관리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현종은 재위 15년 동안 49회밖에 내의원의 입진을 받지 않았고, 숙종은 46년의 재위 기간 동안 865회, 경종은 재위 4년 동안 180회를 기록한 데 견주어 영조는 재위 52년 동안 무려 7,284회(연평균 140회)의 입진 기사가 나오는 것이다. 특히 영조 49년부터 승하하는 52년까지 4년 동안은 무려 1,817회(연평균 454회)의 입진을 받았다(하루에 1.2회).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좀 더 엄밀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이런 자료는 각 국왕이 자신의 건강에 쏟은 관심의 크기를 계량적으로 보여준다. 경종의 경우는 그의 병약함을 나타내는 방증이겠지만, 숙종이나 영조가 조선 국왕 중에서 오랜 재위와 수명을 누릴 수 있었던 데는 이런 특별한 관심과 관리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특히 재위 52년 3월5일 경희궁에서 승하한 영조는 마지막 열흘 동안 모두 21회의 입진을 받았는데, 특히 건공탕(建功湯)이라는 탕약이 29회나 처방된 것이 흥미롭다. 이런 사실 또한 해당 국왕의 사망 원인과 관련해서 눈여겨 볼만한 측면이 될 것이다.


‘일기’는 국왕의 건강관리와 관련해 다양하게 접근하고 해석할 수 있는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전산화와 번역을 계기로일기’를 이용한 다각적인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조선시대의 실상이 입체적으로 밝혀지기를 기대해 본다.

- 김범/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 경향, 2006년 10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