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영남 터미널’ 명성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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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길목이던 영천 이젠 쇠락한 고장 … 조양각, 호연정 등 말없이 과거 영화 증언 |
<8월15일(기해)
망궐례(望闕禮)란 말 그대로 궁궐, 즉 왕이 있는 곳을 향해서 절을 하는 것이다. 이는 임금을 공경하고 충절을 나타내기 위한 의식으로, 주로 궁궐에서 멀리 떨어져 근무하여 직접 왕을 배알할 수 없었던 지방 관리나 원행의 관리, 과거에 낙방하고 귀향하는 선비, 유배지에 있는 관리 등이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행했는데, 가끔 지방관의 취임식 및 이임식 때도 행해졌다.
원래 지방관의 주최로 치러지는데, 조엄은 행차 중 보름을 맞아 참여하게 된 것이다.
망궐례는 왕과 궁궐의 상징인 전패(殿牌)를 모신 객사에서 행해졌다. 객사의 중앙에는 왕 내외를 대신하는 전패가 모셔져 있고, 사람들이 마당에서 예를 올리는 것이다. 따라서 절하는 방향이 꼭 서울은 아니었다. 조엄이 망궐례를 한 장소는 의성 객사였을 것이다. 지금의 의성중앙초등학교 자리인데, 이젠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낮에 의흥현에서 쉬는데, 주수(사또) 김상무와 성주목사 한덕일이 들어와 뵈었다.>
의성에서 통신사 길은 중앙선과 같이 남하한다. 탑리 기차역을 지나고 청로역이 있었던 청로마을을 거치면 의흥읍에 들어선다. 의흥은 일제시대에 군위에 합병되었다.
영천까지 마중 나온 경상감사
<저녁에 신녕현에 이르니, 주수 서회수와 군위현감 임용, 성현찰방 임희우, 지례현감 송부연이 보러 왔다.>
신녕도 원래 독립된 읍이었으나 지금은 영천시 일부가 되었다. 현재까지 도시가 발달되지 않아서 찰방역(察訪驛)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이날은 90리를 갔다. 16일(경자) 맑음. 영천에 닿았다. 내가 비록 복제(상복 차림) 중이나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풍악을 울리고 상을 받을 때엔 방 안으로 피해 들어갔다. 반나절 동안 순상(도백)과 세 사신은 이야기를 하였다. 대개 이는 영남의 성대한 모임이므로 구경하는 사람이 거의 만명으로 헤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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