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 신화기행]윈난이야기
⑤ 지눠족 | ||||||||
영혼으로만 맺어질수 있는 금지된 사랑 한없이 이어지는 노래를 부르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슬픈 연인들의 길고긴 노래가 시작된다. 윈난성 남부 시솽판나(西雙版納) 부근 지눠족(基諾族) 마을에 전승되는 오래된 이야기.
그들의 가슴 저린 이야기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류이(劉怡)의 글, ‘지눠산 절창(基諾山絶唱)’에서였다. 류이가 오랜 현지 답사를 통해 소개한 지눠족 연인들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는 나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그 슬픈 연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죽은 여인은 여신이 되어 이승으로 자신의 연인을 찾아온다. 그 기나긴 사연을 읊은 노래가 바로 ‘조가비의 노래(貝殼歌)’이다. (이 노래는 선차(沈洽)가 채록했다)
총 인구가 2만명도 안 되는 지눠족은 1979년, 중국 정부에 의해 중국의 제56번째 민족으로 등록되었다.
지금은 길이 잘 뚫려있어 마을들이 길가로 나와 있지만 그들이 모여 사는 지눠산(基諾山)은 구불구불한 란창강을 지나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울창하고 깊은 열대우림지대에 자리하고 있었다.
외부와 격리된 지눠족 마을에서는 한씨족이 대나무로 만들어진 큰 집인 ‘대장방(大長房)’에서 살기도 했는데 무려 70~80명이 한 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고립된 씨족마을에서 함께 자라던 아이들은 때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마을의 법칙에 의해 엄하게 금지되었다. 씨족 내부의 근친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아는 마을 장로들은 엄격한 법을 정해 씨족 내의 혼인을 막았다. 그러나 외부 사람들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마을, 젊은 남녀 사이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게 마련이었고 그런 경우 마을에서는 그들을 마을 공동체에서 내쫓아버렸다. 하지만 금기는 늘 위반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아무리 가혹한 처벌을 한다 해도 씨족 내부의 연인들은 언제나 생겨났다. 결국 장로들은 그들에게 비상구를 마련해주었다. 서로를 가슴 속에 품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은 인정해주되 외부인과 혼인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자신들이 정성껏 만든 정표(남자가 직접 깎아 만든 ‘구현(口弦)’이라는 작은 하모니카 같은 악기, 여자가 직접 수놓은 허리띠 등)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 그것을 평생 간직하다가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날, 함께 묻어달라고 한다.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은 저승에서 이루어진다.
그들의 영혼이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맺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조건이 있다.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하다가 자살이라도 하게 되면 그 영혼은 조상들의 땅으로 갈 수 없다. 그러니까 아무리 아픈 사랑을 한다 해도 절대 자살해서는 안된다.
이승에서보다 더 긴 삶이 저승에 남아있는데, 그곳에서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려면 이승에서의 삶을 함부로 끝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죽지도 못하는 사랑. 그런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연인들은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평생을 견뎌낸다. 그리고 1년에 한번 열리는 축제날, 그들에게는 서로의 손을 잡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날만은 남편도 아내도, 자신들의 사랑과 손잡는 것을 간섭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날,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그렇게도 애절했다고 한다. 사실 지눠족의 창세신화에도 바스 연인은 등장한다. 아모샤오보 여신이 자신이 만든 세상의 인간과 동물들이 서로 다투며 증오하는 꼴이 보기 싫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홍수를 일으킨다. 그러나 마음 약한 여신은 착한 남매인 마니우와 마헤이를 큰 북 속에 숨겨 살아남게 하고, 홍수가 지나간 후 마니우와 마헤이가 혼인하여 인류의 시조가 된다.
신화 속의 남매는 혼인하여 인류의 시조가 되지만 실제 지눠족 마을에서 씨족 내부의 혼인은 금기 중의 금기이다. 해서는 안 되는 사랑에 빠진 바스 연인들, 남자가 먼저 마을의 법칙에 따라 외부의 여성과 혼인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는 절망에 빠져 노래 부른다. 가련한 나/ 옛정을 잊지 못해 다른 사람 찾지 못해요 다른 남자들이 아무리 나를 찾아와도/ 나, 당신을 잊지 못해요 페이모 여신이 세상에 보내신 나/ 당신을 얻지 못해/ 마음이 이렇게 슬퍼요 얼마나 많은 날을 이렇게 그냥 보내야 하는지…. 인간은 원래 천상의 세계, 신들이 사는 세상의 여신 페이모가 만든 작품이다. 일곱 개의 얼굴을 가진 페이모 여신은 석 달에 걸쳐 인간을 만든 뒤 자신이 만든 인간의 이마와 손바닥에 검은 숯으로 무늬를 그려 그들의 운명과 생명을 새겨 넣는다. 그것이 바로 이마의 주름이며 손금이다. 여신이 그려 넣은 무늬가 아직 지워지지 않았지만 여자는 이제 그만 숨을 멈추려 한다. 어쩔 수 없이 외부의 여자와 혼인하게 된 남자는 그런 연인을 이렇게 달랜다. 우리가 살아서는 짝이 되지 못했지만/ 죽어서는 조상들의 땅으로 함께 돌아가야지요 사랑하는 나의, 가엾은 나의 연인이여/ 죽지 말아요/ 제발 그 길로는 가지 말아요 우리 함께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만이라도 남겨두어요, 제발….
그러나 상심에 빠진 여자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여자의 영혼은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하염없이 연인을 기다린다. 하지만 남자의 이마에 새겨진 페이모 여신의 표시가 아직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는 여전히 이승에 남아있다.
새가 된 여자는 때로 사랑하는 남자의 곁에 와서 울고 남자는 그것이 그녀의 영혼임을 안다. 그렇지만 그들은 서로 함께 할 방법이 없다.
마침내 여자는 천상의 세계, 신들의 세상에 살고 있는 대장장이 여신을 찾아가 수련을 하여 자신이 대장장이 여신이 되고, 연인의 꿈에 나타나 향기로운 풀로 만든 철화(鐵花)를 그의 귀에 달아준다. (지눠족에게는 남자든 여자든 귀에 구멍을 뚫어 아름다운 꽃 귀고리를 매다는 습속이 있다)
그러면 그는 대장장이 여신의 남편이 되어 마을의 대장장이가 된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지눠족의 축제가 ‘철을 두드리는 날’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면 그가 왜 ‘대장장이’로 선택되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고대에 철을 다루는 ‘대장장이’는 신과 통하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수렵과 채집의 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접어들면서 대장장이는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를 만들었다. 또한 농경에 필요한 인력을 위해 종족의 번식은 필수적이었다. 씨족 내부의 혼인은 인구를 줄어들게 만들었을 것이고 그런 경험 때문에 마을의 장로들은 바스 연인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자는 마침내 구베이(페이모), 즉 조가비의 여신이 되어 사랑하는 남자 곁에 온갖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게 한다. 가장 독특한 것은 남자가 밥을 먹을 때 그 속에 갑자기 조가비, 즉 이소우(이것은 조개 중에서도 특히 카우리(cowry)로서 여성성을 상징한다)가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조가비 여신의 징조가 나타나면 남자는 마을 전체에 이 사실을 공개하고 지눠족 최고의 샤먼인 바이라파오(白臘泡)를 불러다가 조가비 여신과 혼인하는 의식을 거행한 후 자신이 바이라파오가 된다.
여신의 도움으로 영험한 능력을 갖게 된 바이라파오는 신의 뜻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일을 하며 그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평생을 살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들 사랑하는 바스 연인을 잃어버리고 그녀를 평생 동안 가슴에 품으며 살아가는 늙은 바이라파오의 가슴 속을 스쳐가는 서늘한 바람이 잠재워질까.
때론 이렇게 이성적 머리가 아닌 감성적 가슴으로 신화를 읽을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 경향, 2008년 03월 19일 - 김선자, 중국신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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