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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황금의 나라, 페르시아 특별전 - 특별강좌

Gijuzzang Dream 2008. 5. 16. 16:13

 

 

 

 

국립중앙박물관 ‘페르시아’ 특별 강좌

 

 

 ‘페르시아 및 이슬람 문화의 이해’

 

 

(1) 이슬람의 실천 윤리 -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은 없다

 

“이슬람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이슬람권에 가서 무슬림들에게 이 말을 전하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묻습니다.

이슬람 교리에 이런 말은 없어요. 서구가 이슬람에 대한 편견으로 만든 말이 전해진 겁니다.”

최초의 세계 제국을 건설했던 페르시아(지금의 이란).

5월 16일 오후 2시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 대강당.

‘이슬람의 실천윤리’를 주제로 한 김정명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강연내용이다. 

 

김 교수는

“인구 증가율이 가장 높은 종교인 이슬람이 머지않아 인구수 기준으로 세계 제1의 종교가 될 것”

이라면서

“세계 인구의 30%를 차지하게 될 우리의 이웃, 무슬림을 언제까지 테러리스트로만 볼 것인가”

라고 청중들에게 물었다. 이어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취지로 이슬람의 기원, 이슬람권의 문화 등

이슬람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슬람이 기독교와 뿌리를 같이한다는 김 교수의 설명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성경에도 나오는 아브라함은 후처인 하갈과의 사이에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 따르면

하갈은 이스마엘을 데리고 집을 떠나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메카에 도착합니다.

이슬람을 창시한 마호메트는 이스마엘의 후손이지요.

그래서 무슬림도 기독교도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이슬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의미,

무슬림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슬람권에선 국가가 나서서 다른 종교의 신자들을 핍박한 적이 없다는 역사에서 알 수 있듯

이슬람은 다른 종교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며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서구 중심의 역사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란 말은

십자군 전쟁 때 아랍권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유래한 말이라는 것.

 

모로코에서 공부한 김 교수는 자신의 경험담을 곁들여가며

예배, 종교세 등 이슬람의 5가지 실천윤리를 소개했다.

 

“무슬림은 하루 5번 메카를 향해 예배를 하는데

이슬람권 호텔에 가면 메카 쪽을 표시하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무슬림은 소득의 2.5%를 종교세(자카트)로 냅니다.

과거 중동의 동방기독교도들이 이슬람으로 많이 개종했는데 10분의 1을 내는 기독교의 십일조보다

이슬람의 종교세가 싸다는 점도 개종의 이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어 김 교수가 “낮 동안 금식을 해야 하는 라마단 기간에 어떤 동네에선 오전 3시가 되면

‘좀 있으면 날이 밝으니 어서 일어나 한 끼 더 먹으라’는 뜻에서 북을 울리기도 한다”고

경험담을 전하자 폭소가 터져 나왔다.

- 동아, 2008년 4월18일,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2) 이슬람과 유럽 문명 - 르네상스의 꽃은 이슬람이 피웠다

 

중세 암흑기 그리스사상 홀대

이슬람세계선 번역-연구 활발

결국 사상 역수입 현상 일어나

 


김정명 한국중동협회 사무차장은

이날 이슬람 제국의 역사를 설명한 뒤 오랜 갈등 관계로만 알려진 이슬람과 기독교의 역사 뒤에 숨겨진 철학, 과학의 폭넓은 교류 양상을 소개했다.

 

7세기 사산조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등장한 이슬람 제국은 페르시아, 이집트를 지배한 정통 칼리파 시대(632∼661)와 북아프리카,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까지 영토를 확장한 우마이야조 시대(661∼750),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한 아바스조 시대(750∼1258), 비잔틴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융합된 오스만튀르크 시대(1517∼1924)로 나뉜다.

 

이슬람 제국이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서 화려한 문명을 꽃피운 우마이야조와 아바스조의 역사를 집중 소개했다.

 

아바스조 시대 때 이슬람 세계엔 고대 그리스 학문이 대거 수입됐다.

9세기 바그다드에 ‘지혜의 전당’이라는 학술번역 연구기관이 설립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히포크라테스 의학,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등

고대 그리스의 거의 모든 작품이 아랍어로 번역됐다.

 

이슬람 세계는 이런 학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코란을 재해석해

이성을 중심으로 이슬람 교리를 정립했다.

같은 시기 중세 유럽은 고대 철학을 홀대했던 ‘암흑의 시대’였다.

이슬람의 학문 성과는 유럽 스콜라 철학(신학 중심의 철학)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사실은 유럽의 르네상스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 로마를 부흥시킨 새로운 시대정신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초기 유럽에는 고대 그리스 사상을 제대로 공부한 학자가 거의 없었다.

그 결과 아랍어로 번역된 고대 서양 철학이 라틴어로 다시 번역되는 사상의 역수입 현상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유럽에서 스타 학자로 대접받은 이슬람 학자도 생겨났다.

이슬람 의학자이자 철학자인 이븐시나(980∼1037)는 유럽에서 ‘의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이븐루시드(1126∼1198)는 당대 최고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로 인정받았다.

이와 관련해 김 사무차장은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들 두 사람을 빼놓고는 서양 철학이 연결이 안 된다"

고 말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단테(1265∼1321)는 ‘신곡’에서 이븐시나와 이븐루시드를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과

‘동급’으로 묘사했을 정도였다.

 

김 사무차장은 “유럽이 종교적으로 이슬람 세계를 배척한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유럽의 인문학자들이 이슬람 세계를 자신들의 스승과 학문적 동료가 사는 곳으로 봤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동아, 2008년 4월25일, 윤완준기자

 

 

 

(3) 실크로드와 페르시아 문화

                               - 페르시아 없이 西 만남 없었다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 왕궁 유적의 부조.

병사들의 행렬 위로 조로아스터교의 최고 신인 아후라 마즈다의 상징 장식이 보인다

 

신양섭 한양대 문화재연구소 연구교수는

페르시아 민족의 인종, 실크로드를 통한 페르시아 문화의 전파, 중국에 미친 영향 등에 관해

설명했다.

 

신 교수가 먼저 언급한 것은 페르시아인의 인종.

페르시아 문명의 이란 민족은 ‘인도유럽어족’의 일파인 아리안족이다.

 

기원전 3000년∼기원전 2000년경 아리안족이 이란 고원으로 이주했는데,

대표적인 민족이 메데, 사카, 파르스인이었다.

 

메데인들이 메디아 왕국(기원전 1000년∼기원전 559년)을 세웠고

스키타이 민족으로 알려진 사카인들은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유목 제국을 세웠다.

파르스인들이 바로 아케메네스 왕조를 건설해 찬란한 페르시아 문명을 이뤄낸 민족.

 

신 교수는 “페르시아인들이 중국과 유럽 사이에서 동서 문명 교류의 중개자 역할을 했다”면서

특히 동서 문명의 종교 교류에 주목했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 인도의 불교, 기독교 일파인 네스토리우스교가

실크로드를 따라 동으로는 중앙아시아 중국,

서로는 유럽까지 전래되는 데 페르시아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란계 민족인 소그드인들이

실크로드를 무대로 중국과 로마 사이의 중개 무역에 종사하면서 종교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원전 6세기에서 기원후 7세기에 이르는 1000년간

페르시아인들의 정신을 지배한 조로아스터교는

당대 이란인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7세기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하고 이슬람제국 시대가 시작된 지 140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이란 곳곳의 사원에선 조로아스터교 최고의 신 아후라 마즈다의 장식을 만날 수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기원전 4세기 초 아케메네스 왕조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멸망한 뒤

주춤했다가 서기 3세기 사산조 페르시아가 국교로 채택하면서 번창했다.

조로아스터교는 중국까지 전파돼

621년 수도 장안()에 조로아스터교 사원이 세워질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마니교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뿐 아니라 로마 제국, 유럽,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까지 전래됐다.

중국 측천무후가 마니교에 호의를 보여 장안에 대운사()라는 사원까지 생겼다.

당 왕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중국 각지에 마니교 사원이 생겨나면서 불교와 융합됐다.

현재 중국의 마니교 사원에 있는 마니의 모습이 불상과 비슷한 것은 이 때문이다.

- 동아, 2008년5월2일, 윤완준기자 

 

           


 

(4) 이란-중앙아시아의 문화읽기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에 전시 중인 ‘조로아스터교 상징 무늬 벽 장식’(사산조 페르시아).

구슬로 이어진 원 안에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이 표현돼 있다.

이 상징은 페르시아의 새해를 축하하는 내용으로 추정된다.

 

이슬람 명절 위에 전통 신년제

 

신규섭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페르시아 전통의 세시풍속인 신년제() 노루즈(No Ruz)를 통해

이란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페르시아 문화를 소개했다.

 

신 교수는 “페르시아어로 ‘노’는 ‘새로운’을 뜻하고 ‘루즈’는 ‘날’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낮과 밤의 길이 같은 춘분(3월 21일)에 해당한다.

페르시아인들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이하는 날을 신년으로 기념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봄이 선()이고 겨울은 악()을 뜻한다는 페르시아 문화의 이원론이 투영돼 있다.

 

페르시아 문화권에서 노루즈가 제례 의식으로 본격 정착된 때는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조로아스터가 출현한 기원전 7세기 이후.

신 교수는 “이란인들은 이둘 아드하(Idul Adha·메카 성지순례를 기념하는 축제) 등 이슬람 명절보다

노루즈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노루즈를 앞두고 이란인들은 몸을 깨끗이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가족들이 함께 집에 있다가 노루즈가 되면

집안의 어른을 찾아다니며 인사하고 존경의 표시로 입맞춤을 한다.

각양각색의 음식을 차려 마을마다 잔치가 벌어진다.

현대에도 대가족 제도가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는 이란과 중앙아시아 사회에서

노루즈는 가족들의 끈끈한 유대를 확인하는 날이다.

 

명절 상에는 사과(Sib), 마늘(Sir), 식초(Serke) 등 ‘S’자로 시작하는 음식 일곱 가지를 골라 올린다.

페르시아 문화권에서는 이를 ‘하프트 신(Haft Sin)’이라 부른다.

‘하프트’는 숫자 7, ‘신’은 영어 ‘S’를 뜻하는 페르시아어다.

 

 ‘S’자와 7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신 교수는 “조로아스터교에서 ‘죽지 않고 성스러운 것’을 뜻하는 말이

‘아메샤 세판드’이고 ‘S’는 성스러움을 뜻하는 ‘세판드’의 첫 글자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7은 조로아스터교의 최고 신 아후라 마즈다와 여섯 천사를 합친 것.

 

이란인들은 새해가 되기 전 마지막 화요일 밤에 불을 뛰어넘는 행사를 벌인다.

이 행사의 기원도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르시아 세시 풍속은 여전히 조로아스터교의 영향권 아래 있는 셈이다.

신 교수는 “이슬람 축제는 최근 한국에도 어느 정도 알려졌으나

페르시아 전통 명절과 풍습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며

“페르시아의 고유 종교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 2008-05-09 동아일보

 

 

 

 

 '7S'로 시작하는 이란의 독특한 새해

 

 

이란은 이슬람 국가면서도 다른 나라와 달리 이슬람력(曆)을 쓰지 않고

자신만의 이란력을 절기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란력에 따르면 올해는 1387년이며 새해는 오는 3월 20일부터 시작한다.

20일부터 23일까지 나흘간 이란은 한국의 설과 같은 새해 연휴인 '노루즈'를 맞는데

이들만의 독특한 풍습이 눈길을 끈다.

 

이란력으로 1월(파르바르딘) 1일 아침이 되면

이란 가정에선 `하프 신(7개의 S)'이라는 장식을 한다.

한국에서 설에 차례상을 차리는 것과 비슷한데

이는 차례상처럼 조상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하프 신이란 영어로 치면 `S'발음으로 시작하는 사물을 상에 올려놓고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고대 페르시아부터 이어진 풍습이다.

따라서 이슬람과도 관계없는, 이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이다.

 

하프 신을 차리는 방법은

먼저 네모난 상에 비단같은 화려한 천을 덮고 윗부분 가운데에 거울을 놓는다.

이후 비로소 `S' 발음으로 시작하는 사물을 배치하는데

이는 생명력을 상징하는 잔디(사브지), 부(富)를 기원하는 동전(세케)를 비롯해

사과(시브), 마늘(시르), 향기나는 꽃(손불), 이란에서 나는 열매(센제드),

케밥에 뿌려먹는 양념가루(소목) 등 7가지가 바로 그것이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S'로 시작하진 않지만 활기찬 생활과 건강을 바라는 의미에서

산 금붕어를 담은 어항도 빼먹지 말아야 한다.

 

이 풍습때문에 새해를 앞둔 거리에선

하프 신에 올리는 이들 7가지 품목과 금붕어 어항을 파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란에서 가장 긴 연휴인 노루즈엔 한국처럼 귀향해 친척을 만나기도 하지만

해외 여행이 절정이 이른다.

보통 이웃 터키나 두바이로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비행기표를 구하기가 무척 어렵다.

 

새해를 맞기 전 한 해의 마지막 화요일(올해는 3월18일) 밤엔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묵은 해의 잡귀를 물리치는 뜻으로 화약과 폭죽을 일제히 터뜨려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하프 신은 이란력으로 1월13일까지 집안에 차려놓는 데

13일째 되는 날은 `자연의 날'(4월1일)이라고 해 온 식구가 야외로 나가

텐트를 치고 소풍을 간다. 이 때 하프 신 중 잔디를 밖에 버린다.

 

자연의 날엔 잔디를 차의 지붕이나 앞 창문에 놓은 차로

도로가 온통 막히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각급 학교는 보통 누르즈 휴일부터 자연의 날까지 봄방학을 보낸 뒤 새 학기를 시작한다.

- 2008-03-17, 연합뉴스, 강훈상 테헤란특파원, hskang@yna.co.kr

 

 

 


 

 

 

 

 (5) 이슬람의 관혼상제()

 

강사로 나선 최진영 한국중동협회 사무총장은

이란(옛 페르시아)을 포함한 이슬람 사람들이 일생 동안 겪는 다양한 통과의례 문화를 소개했다.

 

○ 탄생

이슬람 사회에서 출산은 신의 은총, 가계의 승계, 노동력의 증가, 전사()의 확보를 뜻한다.

최 사무총장은 “오랫동안 유목 문화가 지배해 인구 부족을 겪었던 이슬람 사회에는

군사와 노동력 확보를 위해 출산을 장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슬람인들은 아기가 태어난 지 7일째 되는 날 희생제를 연다.

남자 아이의 경우 양 두 마리, 여자 아이일 때는 한 마리를 잡는다.

이슬람인들은 이때 양을 잡지 않으면 자녀가 일찍 죽거나

부모가 죽은 뒤 ‘최후 심판일’에 자녀가 부모를 변호해주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 결혼

이슬람 사회에서 결혼은 사회적, 종교적 의무다.

신랑감은 아버지가, 신붓감은 어머니가 고르고 최종 결정권은 아버지에게 있다.

이슬람 사회에서 결혼은 대부분 중매로 이뤄진다.

최 사무총장은 “이슬람 사회에는 혼납금이 있어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에게 지불하며

이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이혼이나 사별을 대비한 여성의 ‘사회 보험’인 셈이다.

 

○ 죽음

이슬람인들은 죽음을 종말로 여기지 않는다.

단지 영혼과 육체 사이의 일체감이 소멸되는 과정으로 여긴다는 게 최 사무총장의 설명.

화장을 하면 영혼의 안식처가 없어진다고 생각해 주검을 화장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이슬람인들은 주검의 얼굴을 메카(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태어난 이슬람 최고의 성지)로

향하게 한다. 묘실은 서너 명이 매장될 수 있게 넓게 판다.

다른 가족이 죽으면 함께 매장하는 관습 때문이다.

최 사무총장은 “남편과 사별한 부인은 넉 달 열흘간 다른 남성과 접촉을 피해야 하고

1년 뒤에야 재혼이 허용된다”고 말했다.

 

○ 가족제도

이슬람인들의 이름은 어떻게 구성될까.

‘무하마드 아메드 이브라힘’이라는 긴 이름의 이슬람 남성을 예로 들어보자.

무하마드는 자신의 이름, 아메드는 아버지의 이름, 이브라힘은 할아버지의 이름이다.

할아버지 이름 대신 가문의 이름을 쓰는 경우도 있다.

여성은 결혼 뒤에도 아버지, 가문의 이름을 그대로 쓰지만 남편의 이름은 쓰지 않는다.

이는 가족을 중시하는 이슬람인의 문화를 보여준다.

이 덕분에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대가족 제도가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다.

 

최 사무총장은

“양자를 들이는 건 금지돼 있지만

고아나 부모가 생활 능력이 없어 양육이 불가능한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것은 권장한다”고 설명했다.

 - 2008. 05.16, 동아, 윤완준 기자

 

 

 

 

 

(6) 이슬람의 경제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전에서 선보이는 사산왕조 페르시아(3∼7세기)의 금화(276∼293년·위)와 은화(241∼272년).

사산왕조 페르시아시대에 이미 화폐경제가 발달했음을 알려준다.

앞면에는 왕의 얼굴을, 뒷면에는 조로아스터교 상징인 불을 모시는 제단을 새겼다.

상하기 쉬운 상품 거래 천시

생선-야채 등 유통 발전 더뎌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은하문화학교 ‘페르시아 및 이슬람 문화의 이해’의 주제는 ‘이슬람의 경제’.

 

강사로 나선 장건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란(옛 페르시아) 등 중동 지역 경제의 특징과 최근 동향, 한계와 가능성을 소개했다.

 

장 교수는

△지난 5년간 석유 생산과 거래로 축적된 오일 머니가 2조 달러에 이르고

△1조 달러에 이르는 세계 건설 시장 자금이 흘러 들어갔으며

△최근 정보기술(IT) 시장이 연평균 15%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중동 경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장 교수는 “중동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경제 교두보”라며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종교 문화 교역의 교차로 역할을 해 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원전 6세기 이 지역을 지배한 페르시아 제국은

로마와 인도 중국 한국 일본을 잇는 고대 동서 문화 교류의 허브였다.

페르시아 상인들은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양을 활보하며 세계 전역의 문화 교류에 기여했다.

 

장 교수는 이슬람 사회의 금융에서만 보이는 특징도 소개했다.

이슬람 사회는 이자 사업을 고리대금업으로 간주해 이자를 받지 못하게 한다는 것.

돼지고기 알코올 도박 등 샤리아(이슬람법)에 반하는 사업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도 특징이다.

장 교수는 “이슬람 금융기관에는 보통 이슬람학을 공부한 샤리아 학자들로 구성된

샤리아 자문위원회가 있어 모든 거래가 샤리아에 적합한지 심의 승인한다”고 말했다.

 

상업 유통에서 부패하지 않는 견과류 향료 소금 같은 상품은 선호되지만

생선 야채 육류 등의 거래는 하급 상행위로 취급돼

이들 유통의 발전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장 교수는 이란 등 중동 경제의 문제점으로

인플레 비율이 10%를 넘고, 실업률도 10%에 이르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란은 국내총생산(GDP)의 10∼20%가 석유 경제이고,

석유가 전체 수출량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지만

유전이 노후화돼 석유 생산 능력을 확대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조업이 취약한 것도 중동 경제의 특징. 이란 GDP 중 제조업의 비중이 12.5%에 불과해

대부분의 공산품은 수입에 의존한다.

이란에는 현재 한국의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이 대거 진출해 높은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장 교수는 “1965∼2007년 우리나라의 해외 건설 수출에서 중동의 비중이 58%에 이를 정도로

중동은 대표적인 교역 지역”이라며

“경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중동을 21세기 새로운 동반자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2008. 05. 23, 동아, 윤완준 기자

 

 

 

 

 

(7) 페르시아의 신화

 


페르시아 신화에서 소는 신이 가장 먼저 창조한 동물이다.

페르시아 지역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토기도 소 모양을 본뜬 것이다.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에서 선보이는 흑소 모양의 주자(기원전 1200년∼기원전 1000년).

사진 제공 : 국립중앙박물관

선-악의 신, 태초부터 격렬한 대립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은하문화학교 ‘페르시아 및 이슬람 문화의 이해’의 주제는 ‘페르시아의 신화’.

 

강사로 나선 최혜영 전남대 사학과 교수는 페르시아의 창조신화를 성서, 우리나라의 신화와 비교하며 소개했다.

 

페르시아의 창조신화는 이렇다.

 

페르시아의 신은 달, 해, 바다, 땅, 식물, 동물, 인간, 불을 차례로 창조했다.

최초의 동물은 달처럼 밝고 흰 황소였다.

악의 신 앙그라 마이뉴(아리만)가 깨어나 황소를 공격해 죽인다.

 

앙그라 마이뉴는 최초의 인간 기요마르트도 공격해 죽인다.

기요마르트의 사지에서 황금이 나온다. 황금은 40년간 땅의 보호를 받는다.

이 황금으로부터 부부가 태어나고 부부는 몸을 씻으며 아후라 마즈다가 세상을 창조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곧 타락해 앙그라 마이뉴가 창조주라고 말하고 양과 암소를 죽인다.

이후 이들이 결합해 쌍둥이 아들과 딸을 출산했지만 너무 사랑한 나머지 먹어버린다.

훗날 다시 쌍둥이 아들과 딸을 낳는데 이들이 페르시아인의 원류다.

페르시아 신화에서 아후라 마즈다는 선의 신이고 앙그라 마이뉴는 악의 신이다.

 

최 교수는 “성서의 창세기에서는 아담이 사과를 따먹으면서 악이 등장하지만

페르시아 신화에는 처음부터 선의 신과 대적하는 악의 신이 존재하는 선과 악의 이원론이 나타난다”

고 말했다.

 

페르시아 신화에는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신화와 달리 신의 형상이 분명하지 않고 그리 많지도 않다.

강과 다산의 여신인 아나히타, 바람의 신 바유, 불의 신 아타르, 풍작의 신 하오마가 있다.

최 교수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인들은 신보다는 바람, 강, 산 자체를 숭배한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아후라 마즈다의 오른팔인 미트라 신은 유럽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 미트라 신을 숭배하는 비밀집회가 열렸을 정도. 미트라는 전쟁의 신이다.

사산조 페르시아가 강성하던 시기 로마 군인들을 통해 미트라 신이 유럽에 전래됐다.

 

최 교수는 “미트라는 12월 25일에 태어나 무화과나무로 만든 옷을 입고, 

인류 멸종의 위기 때 배를 만들어 인간을 보호하는 등 기독교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며

“기독교가 없었으면 미트라교가 세계를 지배했을 거라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교수는 페르시아의 전성기였던 아케메네스 왕조 키루스 대왕의 탄생 설화도 소개했다.

메디아 왕국의 공주였던 키루스 대왕의 어머니는 어느 날 자신의 소변이 온 나라를 휩쓰는 꿈을 꾼다.

최 교수는 “신라 태종무열왕(김춘추)의 처형도 같은 꿈을 꿨다고 전해졌다”며

“페르시아의 신화는 우리 신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 2008. 5. 30, 동아, 윤완준 기자

 

 

 

 

 

(8) 페르시아의 음악

 


바이올린도 피아노도 조상은 페르시아

태평소 등 우리 전통악기도 인도 - 중국 거쳐 전파된 것

 

“1990년대 페르시아 음악을 연구하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떠받들어 마지않는 유럽 음악의 뿌리가 페르시아 음악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이올린, 피아노 모두 조상이 페르시아 악기입니다. 그런데도 서양 음악계는 이를 감추고 있어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 연계 ‘페르시아 토요 강좌’.

이날 강사로 나선 전인평 중앙대 국악과 교수는

페르시아 음악이 “한국 중국 인도 유럽 등 전 세계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비파를 예로 들었다.

비파는 삼국시대 때 한반도에 전해져 1930년대까지 연주되다가 전통이 끊겼지만

중국 일본에서는 지금도 연주되는 악기.

 

전 교수는 “비파의 조상이 페르시아 현악기 바르바트”라고 말했다.

바르바트는 서양배(pear) 모양을 닮아 아래가 통통하고 위쪽이 잘록한 4줄짜리 악기다.

“페르시아 왕실에서 연주된 고급 악기입니다.

페르시아를 포함해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바르바트 연주 실력이 뛰어난 왕실 궁녀가

신분이 높아졌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바르바트가 중국에 전해져 비파가 된 뒤

당나라 황제 현종(685∼762)의 비() 양귀비(719∼756)도 비파 연주 솜씨가 뛰어나 총애를 받았어요.”

 

비파 역시 페르시아의 다른 문화처럼 실크로드를 따라 인도 중국을 거쳐

멀고 먼 한반도, 일본에까지 전파된 것이다. 신라의 범종에 새겨진 비천상에 비파 연주 장면이 나온다.

 

페르시아의 다른 전통 악기 가운데도 우리 전통 악기의 원형이 많다.

산투르는 양금의 원형. 사다리 모양의 몸통을 지닌 현악기다.

몸통 위에 두 개의 줄 받침대가 있고 이 위에 쇠줄을 얹었다.

연주자는 가느다란 나무채를 양손에 들고 줄을 쳐 소리를 낸다.

산투르는 유럽에도 전해져 피아노로 발전했다.

 

수르나는 태평소와 오보에의 조상이다. 35cm 길이의 원추형 몸통 관악기로,

끝부분은 태평소처럼 깔때기 모양으로 생겼다.

 

카만제는 해금처럼 활로 줄을 문질러 소리를 내는 페르시아의 대표적 7현 악기.

유럽에 건너가 바이올린이 됐다.

 

네이는 단소처럼 세로로 잡고 부는 관악기다. 몸통 앞에 구멍 6개, 뒤에 구멍 1개가 있다.

 

바르바트와 비슷한 형태의 페르시아 현악기인 우드는 16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악기 류트로 발전됐다.

 

전 교수는 “한국의 음악 연구는 유럽에 경도돼 있다”며

“음악의 뿌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페르시아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페르시아 고대 문명과 역사, 미술 등 5가지 주제로 열리는 ‘페르시아 토요 강좌’는

8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4시에 만날 수 있다. 02-2077-9358

- 2008.06.06, 동아, 윤완준 기자

 

 

 

 

 

 

(9) 중동,오해와 진실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전에 선보인 ‘피라미드 모양 추’는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 다리우스 1세의 말을 고대 페르시아 문자, 엘람 문자, 바빌로니아 문자로 새겨놓았다. “나는 위대한 왕, 왕 중의 왕, 제국의 왕, 이 땅의 왕, 다리우스 왕이다”라는 내용이다.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에 선보이는 유물의 고향 이란은 아랍 국가일까. 또 이란은 아랍 국가들의 주권과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1945년 창설된 아랍연맹에 속해 있을까.
답은 전부 ‘아니다’다.
 

‘페르시아 및 이슬람 문화의 이해’의 주제는 ‘재미있고 유익한 중동이야기’.

강사로 나선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는 이란 등 중동의 문화 종교 정치 경제 등에 대해 잘못 알려진 점을 조목조목 짚으며 중동의 진짜 모습을 소개했다.

 

특히 중동을 단일체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 대표적 예가 이란. 이란은 아랍 민족인 다른 중동 국가와 달리 페르시아 민족이다. 언어도 다르다.

이란은 중동 국가이자 이슬람 국가이지만 아랍 국가는 아니라는 말이다.

여성의 얼굴을 가리는 히잡 역시 이슬람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는 게 서 교수의 설명. 이슬람교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중동 지역의 유대인 여성도 천으로 얼굴을 가렸다.

중동의 기후와 관련된 문화로 봐야 한다.

 

중동은 여성을 억압하는 문화가 강하다는 것도 편견이다.

예멘처럼 얼굴과 몸 전체를 가리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이집트는 여성 공무원 수가 전체의 40%에 이르고

레바논은 여성이 얼굴과 몸을 드러내고 다닐 뿐 아니라 의사 표현도 자유롭다.

정치체제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왕정인 반면 이집트는 공화정일 정도로 다양하다.

 

서 교수는 이슬람 국가들이 정교일치 체제라는 인식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이슬람 역사상 종교권이 왕권 위에 선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슬람 주류인 수니파에는 성직자가 없을 뿐 아니라

수입의 40분의 1을 내도록 돼 있는 규정도 모스크에 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지인에게 주는 것이다.

서 교수는 “이런 차이를 모른 채 우리 외교부에서 이란 이스라엘 터키를 제외한 아랍 국가와 교류할 때

‘한-중동’이라고 표현했다가 '한-아랍'이라고 써 달라는 항의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 2008.06.13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10) 고대 페르시아 문명과 역사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에 출품된 토기 잔(기원전 4000년경).

염소와 염소의 뿔을 도식화해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이 토기가 발견된 곳은 최초 도시 문명이 탄생한 지역 가운데 하나인 수사다.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오리엔트는 세계 문명의 뿌리”
 

“유럽인들은 오리엔트(서아시아)의 고대 문명이 유럽 문화의 뿌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인색합니다. 이런 유럽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세계 문명의 진정한 역사를 바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최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 토요 강좌에서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페르시아 고대 문명과 역사를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이 교수는 먼저 페르시아 문명이 발원한 오리엔트(서아시아)는 세계 문명의 뿌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오리엔트 문명은 1만 년 전 이미 곡식 재배, 동물 사육이라는 혁명적 삶의 변화를 시작했고 이를 유럽과 주변 세계에 전했다.

 

오리엔트 문명에는 페르시아, 수메르, 히타이트, 아시리아, 헤브라이, 바빌로니아, 페니키아 등 수많은 고대국가가 포함된다.

오리엔트 문명은 크레타 문명에 영향을 줬고 크레타 문명은 그리스 문명의 바탕이 됐다.

그리스 문명의 바탕 위에 로마가 세워졌다.

페르시아 제국이 번성했던 이란은 인류의 조상이 살았던 곳이다.

 

이 교수는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인류의 조상이 이란 카스피 해 남부를 거쳐 전 세계로 퍼져갔다는 것이 현 세계 고고학계의 견해”라고 설명했다.

 

조로아스터교 경전인 아베스타에 따르면 고대 이란에는 최소 12개 이상의 왕조가 번성했고

각 왕조는 평균 2000년 이상 유지될 정도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

기원전 4000년 후반∼기원전 3000년 초반 엘람인들이 이란 서남쪽의 고원지대인 수사에서 번성했고

기원전 2000년대에는 이란 지역의 종족이 메디아인, 파르티아인, 페르시아인으로 분화됐다.

페르시아라는 이름의 기원에는 여러 학설이 있다.

이란 학자들은 이란 서북부 우르미아 호수 서쪽의 파르수아에서

남쪽 고원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페르시아인이라 불렀다고 말한다.

페르시아 만 동쪽 해안의 서남부 지역 중 하나인 파르스라는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이 교수는 “페르시아인들은 한 번도 나라 이름으로 페르시아를 쓰지 않았다.

오로지 언어 이름으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인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도 소개했다.

고도 1500m의 황량한 평원에 수많은 열주와 초석, 성벽 계단, 궁전 등이 펼쳐진 모습은 일대 장관이다.

대표적인 건축물은 왕들의 대접견장이었던 아파다나 궁.

조공을 바치러 온 수많은 외국 사신이 페르시아 왕 앞에 일렬로 늘어서

진상품을 가득 들고 기다리는 조각은 보는 이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 2008.06.20 동아일보,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11) 다리우스 1세와 '비시툰 비문’에 대한 예술사적 궤적

 


“왕위 등극 과정 기록해 놓으라”

쐐기문자 만들어 절벽에 새겨

부조도 걸작… ‘오리엔트 예술 결정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 토요 강좌의 주제는

‘다리우스 대왕의 비시툰 비문에 대한 예술사적 궤적’.

이날 강사로 나선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오리엔트(서아시아)의 광활한 영토를 지배한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 다리우스 1세 대왕

(기원전 549∼기원전 486)의 왕위 등극 과정을 새긴 ‘비시툰 비문’의 역사적 가치를 설명했다.

비시툰은 이란 케르만샤 동쪽의 고대 도시.

배 교수는 먼저 페르시아 제국의 특징인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을 설명했다.

페르시아 왕들은 정복지 민족의 정치, 문화, 종교적 자유를 허락했다.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 제국을 이룩한 다리우스 1세는 ‘거룩한 산’이라고 불린 비시툰 산에

자신의 등극 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비문을 새기기로 했다.

그런데 당시 페르시아는 문자가 없었다.

배 교수는 “다리우스 대왕은 고대 페르시아 쐐기문자를 급히 만들었고

이는 왕의 지시로 문자가 만들어진 최초의 예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대 페르시아 쐐기문자는 주로 영구 보존될 재료인 돌 위에 새겼고 왕조 비문에만 사용됐다.

이처럼 고대 페르시아 문자는 제국의 왕들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였다.

1837년 이 문자가 처음 해독되면서 페르시아 연구가 획기적인 진전을 이뤘다.

이전까지는 다리우스 대왕을 알기 위해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나 성서 등

2차 자료를 이용해야 했다.

‘비시툰 비문’은 높이 69m의 절벽에 새겨져 있다.

비문 자체의 크기는 가로 7m, 세로 1.8m. 함께 새겨진 부조 석상은 가로 5.5m, 세로 3m에 이른다.

비시툰 산은 실크로드의 원형이 됐던 페르시아 ‘왕의 길’에 있다.

‘비시툰 비문’에서 다리우스 대왕은 신하 2명과 함께 서 있다.

왼쪽 신하는 페르시아 창을 들고 있는 고브리야스이며 오른쪽은 활을 들고 서 있는 인타페르네스다.

다리우스는 정적이었던 가우마타를 밟고 있으며 가우마타 뒤로 포승줄에 묶인 포로가 줄지어 있다.

비문은 페르시아어뿐 아니라 엘람어, 고대 메소포타미아 언어의 하나였던 아카드어로 쓰여 있다.

비문은 따로 돌에 새겨져 페르시아의 정복지들에 보내져 왕의 위엄을 과시했다.
배 교수는 ‘비시툰 비문’이 “오리엔트 예술사의 결정체”라고 평가했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 수 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일요일 공휴일은 오후 7시까지. 월요일 휴관. 어른 1만 원, 학생 9000원, 어린이 8000원. 02-793-2080, www.persia2008.com
-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황금의 나라 <페르시아>

 


약 3년여의 준비를 거쳐 지난 4월 21일 개막식을 갖고 공개에 들어간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 기획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전시실 두 곳에서 열리는 이번 특별전은

유물 전시 외에도 전시품과 연계한 실습체험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며

페르시아 문화의 진면목을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하여 특수영상을 제작, 상영 중이다.

 전시관 1실에서는 ‘페르시아의 황금’이라는 주제로

대형 금제용기와 각종 보석, 금ㆍ은으로 만들어진 장신구들을 전시한다.

특히 이란국립박물관 최고의 소장품이자 이란을 대표하는 국보 ‘금제뿔잔’이 포함된

하마단 황금보물과 정교한 세공이 눈길을 사로잡는 의식용 금제그릇들이 주목된다.

 

주최측은 이 황금보물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리면서

관람객들이 모든방향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특수 진열장을 새로 제작하였고

전체 황금유물을 원형으로 배치하였다.

그 외에 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신분과 증명의 상징으로 사용했던 다채로운 인장들과

아케메네스왕조(BC 559~330)에서부터 사산왕조(AD 224~651)까지 만들어진 금화와 은화가

같이 전시된다. 이 부분에는 인장의 사용방법과 대표적인 페르시아 주화를 보여주는

특수 영상물이 관람객의 흥미를 더한다.

2실에서는 이란과 페르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도록 조성되었다.

전시실의 중심부에 페르시아 세계제국을 세운 아케메네스왕조의 유적과 유물을 배치하였다.

이 유물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페르세폴리스의 건물에서 모티브와 색상을 따온

진열장 안에 전시하여 분위기를 살렸으며

대형 석조유물들은 노출 전시, 그 질감을 생동감 있게 관람할 수 있게 하였다.

그 밖에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파르티아'와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다양한 유물을

살펴볼 수 있으며 신라시대 경주에서 출토된 다양한 페르시아와 서역계통 유물을 진열하여

실크로드를 통해 이루어진 동서교류의 양상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하였다.

- 2008-05-01

 

 

 

 

 

 

 

 

 

- 'Moonlight' / Piano(박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