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의 통일교, 세계로 뻗어가다 | |||||||||||||||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로 출발… 1994년 교명 바꿔
처음의 교명은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교회의 첫 간판을 달면서 문선명 총재는 “하루 빨리 이 간판을 떼는 날이 와야 한다”고 했다. 1994년 드디어 그 간판을 떼고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교명을 바꾸었다. 문선명 총재의 막내아들인 문형진 목사로 전해졌다. 세계 회장과 한국 회장직을 물려준 것이다. 그의 형인 문국진씨는 통일교 사업을 주관하는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다. 통일교에서는 문형진 목사의 등장을 ‘섭리의 실현’을 향해 한걸음 더 나간 역사적인 일로 보고 있다.
통일교를 일으킨 문선명 총재는 1920년 평안남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문용명(文龍明). 여덟 남매의 차남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 동네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다. 15살에 오산보통학교에 편입하여 신학문을 배웠고, 그해 가족을 따라 장로교 신자가 되면서 기독교인이 됐다. 통일교의 역사를 기록한 ‘통일교회사’에 따르면 예수가 문선명 총재에게 자신의 인류구원 사업이 실패했음을 알리고 그 대명을 맡아줄 것을 거듭 부탁했다는 것이다. 민족종교의 억압뿐 아니라 기독교에도 미쳐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있을 때다. 기독교계는 이 시기를 종교적으로 철저하게 유린된 시기로 보고 있다. 바로 그런 때 문선명 총재의 종교적 각성이 일어났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1930년대 후반의 기독교는 일제로부터 정신적 강간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종교적 가르침이 작동불능 상태가 되자 일부는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찾아나서게 됩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고, 반대자들은 사탄의 영에 접했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쪽이든 공통점은 강력한 종교적 체험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서울로 유학 와 경성 상공실무학교 전기과에 입학하여 중학교 과정을 공부했다. 이때 흑석동의 명수대교회를 다니면서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한다. 주일학교 교사를 맡고 창경궁과 서울역 등에서 노방 전도를 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경기 파주군의 ‘이스라엘 수도원’에 들어가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했다. 6개월간 머물면서 그 계열인 상도동 집회소의 인도자로 일한다. 수도원은 신비주의적인 성향으로 인해 기성교단으로부터 배척받고 있었다. 지도자인 김백문은 ‘성신신학’과 ‘기독교 근본원리’를 지어 독특한 성서해석을 펴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통일교의 교리인 ‘원리강론’의 뿌리가 그로부터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통일교는 그런 지적을 일축하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평양은 한반도에서 당시까지 기독교 교세가 가장 큰 도시였다. ‘동양의 예루살렘’이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기독교의 활동이 활발했고 한국에 새로운 재림 예수가 나타난다는 신비주의 운동도 널리 퍼져 있었다. 그중 일부는 재림 예수가 입을 옷을 준비해놓고 끼니마다 밥을 지어 기다릴 정도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재림 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광야교회’라는 이름의 이 교회에서 신도들에게 새로운 해석의 성경 원리를 가르치며 함께 예배를 드리던 문선명 총재는 몇 달 후 사회질서 문란 혐의로 체포되고 100일간 구속된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기성교회와 다른데다 간판도 없이 집회를 여는 그가 여러 모로 의혹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1948년 초에도 같은 죄목으로 체포되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번에도 주변의 신고가 결정적인 단서였다. 흥남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던 중 한국전쟁이 터져 운좋게 석방됐다.
문선명 총재는 피난생활을 하던 부산 범내골에서 통일교의 경전인 원리강론을 집필했다. 원리강론엔 새로운 진리가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새 진리가 나와야 한다는 주장은 종교인들, 특히 기독교 신도들에게는 못마땅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서가 이미 그것만으로써 완전무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진리는 유일하고 영원불변하며 절대적이다. 그러나 경서란 진리 자체가 아니고 진리를 가르쳐주는 하나의 교과서로서,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점차 그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높아진 각 시대의 인간들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진리를 가르쳐주는 범위나 그것을 표현하는 정도와 방법은 시대에 따라서 달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경은 진리를 가르쳐주지만 시대의 흐름에 비추어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든 것이 원리강론이라고 주장한다. 1954년 5월 1일 서울 성북구 북학동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의 이름으로 교단을 창립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세간의 주목을 끄는 일이 발생한다.
문명이 발달한 시대의 젊은이들이 갖는 종교와 과학의 충돌, 신념과 이성의 상충에 대해 적극적으로 답한다.
통일교는 논리와 이성과 성서의 현대적 해석을 무기로 대학 사회에 선교활동을 폈다. 결과는 연세대학교 박상래 교수와 학생들의 통일교 개종, 이화여자대학교 양윤영 교수 등과 학생 수십 명의 통일교 개종으로 나타났다. 소위 말하는 ‘연대사건’과 ‘이대사건’이다. 더욱이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파견한 이대 김영운 교수도 개종해버렸다. 기독교계가 발칵 뒤집힌 것은 물론이고 연세대학교에서는 김 교수가 파면되고 학생 2명이 제적됐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도 관련 교수 5명이 파면되고 학생 14명이 제적되고 말았다. 이 사건에 위기를 느낀 개신교단에서는 통일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다. 무죄 판결로 석 달 만에 석방되지만 여론은 통일교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일단 사회적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통일교는 본격적인 선교활동에 나섰다. 1957년 전국 116개 지역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그 이듬해부터 일본과 미국에 선교사를 파견했다. 국내 기성 교단의 비난을 딛고 해외 선교에 성공하는 발판을 이때부터 마련하기 시작한다.
58년 일본·미국에 선교사 파견 남과 북, 이념의 대립이라는 당시의 시대상과 맞물려 통일교는 승공(勝共)을 내세웠다. 국제승공연합을 조직하고 반공 이데올로기의 확산에 공을 들였다. 마침내 이념을 바탕으로 국내 조직을 확산하는 데 안착한다. 원리강론의 설명이다.
“마지막 싸움이란 어떠한 싸움인가? 그것은 이념의 싸움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유물사관을 완전히 전복시킬 수 있는 진리가 나오지 않는 한, 민주와 공산 두 세계의 싸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문 총재는 당시 40여 나라를 순방했고 1972년 도미하여 미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1961년 문선명 총재의 주례로 36쌍의 부부가 탄생한 이래 해마다 계속되어 수십만 쌍의 국제 부부를 만들어냈다. 국제합동결혼식은 세계 평화를 이루는 시발점이고 통일의 길이라는 주장이다. 가정은 구원의 최소 단위이며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기본 단위고 가족구성원의 통일을 통해 세계의 평화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1988년 10월 3일 천주통일국(天宙統一國)의 개천을 선포하고 자신이 그 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선포사에서 이렇게 밝혔다.
“남북의 해방부터 아시아의 해방, 세계의 해방, 지상세계의 해방은 물론이요, 천상의 지옥 해방, 그리하여 참부모의 소원 해방과 더불어 하나님의 참다운 해방 세계까지 미칠 수 있게 하기 위해 120개 국가에 사랑의 깃발을 높이고 이제 새로운 통일의 등대를 세워 불을 밝히옵니다.” 하나님의 창조 원리와 섭리가 이 땅에서 완전히 이루어지는 지상천국이다. 그것은 이제까지 고난을 딛고 살아온 모든 인간의 꿈이기도 하다. 가정연합의 가르침대로 이 땅에서 그 위대한 꿈이 이루어질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2008 05/06 뉴스메이커 7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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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독자적 경전인 원리강론 만들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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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교류 통해 얻은 계시 엮어… 신·구약에 견주어 성약(成約)으로 불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통일교)의 뿌리는 기독교다. 기독교 성서를 기본적인 경전으로 삼고 있으며 기독교의 신인 하나님을 신앙하고 있다. 문 총재를 이어 한국회장과 세계회장을 맡은 문형진 회장은 취임사에서 자신을 목회자로 표현했다. “아버님은 북한에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도할 때도 목사로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모든 섭리적인 내용을 행하실 때도 목사로서 행하셨습니다. 지금도 새벽 2시 반에 일어나 우리를 성장시켜주시는 것도 목사로서 그렇게 하시고 있습니다. 참부모님이시지만 목사로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문 총재뿐 아니라 자신도 종교적으로 목사의 신분이라는 것이다. 통일교가 기독교를 배경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문선명 총재가 성서를 해석한 내용과 신과 직접 영적 교류를 통해 얻은 계시를 엮어 원리강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통일교에서 원리강론은 신·구약에 견주어 성약(成約)으로 부른다. 세상을 창조한 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신·구약이 미완성이라면 성약에 해당하는 원리강론은 완전한 구원을 약속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원리강론이 성약이라는 주장은 통일교의 역사관에서 비롯됐다. 아담의 창조로 시작된 인류는 아브라함까지의 역사가 후대를 준비하는 기반이 된 시대라고 설명한다. 그 이후 예수까지의 시기를 인간의 지성과 심성이 막 자라나기 시작한 구약의 시대로 보고 있다. 예수 이후의 때를 인류 역사가 장성해간 신약의 시대라고 한다. 즉 인류가 자라온 유년기와 청소년기, 청년기가 지금까지의 역사라는 것이다. 통일교의 주장이다. 이들은 인간의 타락 이후 실패해온 신의 뜻이 완전하게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성서에 대한 상이한 이해와 해석에 있다. 어떤 종교든 경전은 절대적이고 신성하다고 믿는다. 진리를 담고 있으며 현실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이 경전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원리강론과 같은 해석의 바탕에는 성서와 계시에 대한 오해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기존의 신앙과 어긋나는 것일까. 그러므로 구원의 상징으로 여기는 십자가 역시 실패의 상징이라고 본다. 통일교에서는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은 타락한 인간을 완전히 구원하려한 신의 뜻으로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지상천국을 먼저 완성해야 했다고 설명한다. 결국 그 실패를 딛고 신의 뜻을 이룰 사람이 따로 있다고 믿는다. 원리강론은 이 부분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미 이 땅 위에 인생과 우주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게 하시기 위하여 한 분을 보내셨으니, 그 분이 바로 문선명 선생이시다.”
“선생은 혈혈단신으로 영계(靈界)와 육계(肉界)의 억만 사탄과 싸워 승리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비롯한 낙원의 수많은 성현과 자유로이 접촉하시며, 은밀히 하나님과 영교하는 가운데서 모든 천륜의 비밀을 밝혀내신 것이다.” 현실세계뿐 아니라 영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신과 영적인 교류를 꾸준히 해오며 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다분히 한국적이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인간 세계와 교통하는 영적 존재는 기존 기독교의 설명과는 다르다. 오히려 접신과 강력한 신비를 주장하는 동양의 신비적 종교과 닮아 있다. 특히 음양(陰陽) 철학을 바탕으로 한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설명은 전통적인 동양의 세계관이다. 원리강론의 내용은 이렇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자체 내에서뿐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 사이에서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이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비로소 존재한다.” 통일교는 이성성상이 존재를 형성하는 근본 원리임을 주장한다. “아버님은 자연을 살펴보면서 이성성상의 원리를 깨달으신 것 같습니다. 전자와 양자, 식물의 암술과 수술, 남자와 여자, 몸과 마음. 세상은 이렇게 두 가지 상대적인 원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화와 통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오셨습니다.”
신의 섭리가 완성된 행복한 세상이 온다고 본다. 그것이 외형적으로 가장 잘 드러나 있고 직접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남자와 여자가 만나 이루는 가정이니, 가정의 행복을 결국 세계 평화가 이루는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남과 북, 한국과 일본의 적대적 관계도 그런 점에서 반드시 해결하고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강증산의 가르침은 이후의 모든 종교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역사의 전개를 원한을 풀어나가는 해원의 과정으로 설명하는 점과 창종자 자신이 우주 최고주 자재거나 그 대리자임을 자각하는 점이 그렇습니다. 통일교에서 말하는 이상세계 천일국도 결국 후천개벽의 사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상생(相生)이나 해원(解寃) 등의 가르침은 통일교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해원시켜주는 것이 통일교인의 사명이라고 한다. 지상천국을 이루는 것으로 예수의 해원이 되며 그것이 복귀섭리를 통한 해원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통일교 양창식 미국총회장은 통일교의 동양적인 가치관은 미국 사회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젊은이들이 정신적 공허 속에서 혼란을 겪을 때 통일교에서 가르치는 순결과 가정의 가치는 엄청난 반응을 불러왔습니다. 성적인 문란, 이혼과 가족의 붕괴에 대한 확실한 메시지를 준 것이 문 총재의 가르침입니다.” 통일교는 이것을 인간의 성적타락으로 해석한다. 통일교가 벌이는 순결운동은 이런 교리를 바탕으로 한다. 기성교회의 강력한 비난을 받는다. 게다가 통일교 비판자들은 이것을 피가름 논쟁의 근거로 삼으며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단초가 됐다. “성서의 내용은 현대에 와서 과학과 이성적 판단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졌습니다. 기존 기독교에서는 문구에 매달려 성서를 해석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물음에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 총재는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받아 성서의 원리를 해석했습니다. 인간 타락의 근원을 밝히는 것이야 말로 신의 섭리로 복귀하는 근본이 되며 통일교의 타락론은 그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앙의 영역이다. 이 세상에 새로운 종교가 나타나는 것은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문제와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교를 뿌리로 기독교의 가지가 뻗어났고 그 배경으로 이슬람교가 나타났다. 팔레스타인의 사막으로부터 이 땅에까지 그 씨앗이 날아와 통일교가 태어났다. 통일교는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해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있다. 그 종교를 믿는 한 사람의 행동을 보는 것이 더 쉽고 빠른 경우도 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을 알기 위해 그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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