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전통회화와 서양화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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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회화기법을 습득하는 방법은 실재하는 자연이나 대상을 상대로 하여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앞시대의 선인들이 그려놓은 작품들을 감상하고 이를 여러 번 옮겨 그리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법이나 화풍을 형성하는 것이 통례였다.
이에 비해 서양에서는 자연 풍광이나 그 대상을 직접 관찰하고 보면서 화폭에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대상을 그린다고 하더라도, 서양화는 그리는 사람이 대상을 보는 위치나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작품들이 완성되었다.
사물을 대하는 입장이 달랐던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동양에서는 문인들이 자연을 관조(觀照)의 대상으로 여기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이를 다시 시(詩)나 그림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서양처럼 실물의 재현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동양에서는 그림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심오한 감정이나 심회(心懷)를 드러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동양과 서양에서 그림 그리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에서 회화작품을 그리면서 점차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해 갔던 과정과 연결되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먼저 ‘모’(摹)는 원래 그림 위에 투명한 종이를 대고 그대로 그려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는 원래 명화(名畵)가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복제본을 만드는 경우에 주로 사용되었던 방법이며, 후대에는 그 성격이 변질되면서 고의적으로 위조품을 만드는 데 악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청대(淸代) 사왕(四王)의 작품은 후대에 널리 추숭되면서 모작(摹作)이 적지 않아 진위 감별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임’(臨)은 대화가들의 작품을 배우기 위한 것으로 원본을 옆에 놓고 보면서 그린 경우로 구도나 필법까지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예를 들어 청대의 문인화가 우지정(禹之鼎, 1647-1716)이 그린 <임황공망구봉설제도>는 원말사대가인 황공망(黃公望, 1269-1354)이 그린 <구봉설제도>를 보고 그린 것으로 임작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전통화법 습득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무색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방(倣)은 모(摹)나 임(臨)의 단계를 거쳐 어느 정도 자신만의 화법(畵法)을 터득한 다음에 본받고자 하는 특정 대가의 필법이나 화풍을 차용하면서도 자신의 스타일로 새로운 작품을 그리는 것이다. 따라서 倣作은 화가가 역대 명화에 버금가는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풍을 형성하는 단계로, 전통을 바탕으로 그 시대상을 반영하며 특정 화풍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예로는 원대 궁정화가 당체(1296-1364)가 북송 곽희(郭熙, 1020-약 1100)의 <조춘도>를 방한 것으로 보이는 <방곽희추산행려도>를 꼽을 수 있다.
항상 전통 화풍을 근간으로 시대상을 반영하며 변화를 모색하는 일정한 패러다임을 형성하게 하였다.
그 결과 특정 유명 작품은 시대를 달리하며 임(臨)이나 방(倣)의 대상이 되었으며, 현재 동양화의 이러한 학습양상은 위작(僞作)이라는 문제와 맞물리면서 감정에 있어서 적지 않은 어려움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동양 회화를 감정할 경우에는 각 시기별 특징적 양식이나 인장에 대한 상세한 지식은 물론 제발(題跋)이나 화면 위의 관지(款識)를 이해할 수 있는 한문 강독 능력도 절실하게 요구된다.
이와 더불어 동양화는 서양화처럼 보이는 대상을 옮겨 그렸다기보다는 그리는 사람의 정신성 반영을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문학은 물론 철학에 대한 이해도 필요로 한다.
문화재감정관실이라는 현장에 있는 감정위원으로서 동양 회화에 대한 제반 지식의 심화는 물론 수준 높은 감식안의 배양을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연구하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새삼 해보게 된다. - 문화재칼럼, 2008-03-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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