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나아가는(문화)

우리나라 최초 일기예보는 언제?

Gijuzzang Dream 2008. 3. 1. 11:01

 

 

 

 

 한국 최초 일기예보는 언제일까

 

 

 

1905년 11월 1일자 일기도 발견

  

      2004년 말 부산에 있는 국가기록원에서 1905년 11월 1일자 천기도(일기도)가 발견됐다.

      이는 기존 11월 2일자 일기도보다 하루 앞선 것이다.

 

 

한반도에서 일기예보는 언제 시작됐을까?

기상관측의 시점은 널리 알려진데 반해 기상예보의 시작을 기록한 자료는 지금까지 없었다.

 

‘1905년 11월 2일자’ 일기도 한 장만이 가장 오래된 일기도로 기록됐지만

그 내용이 상세히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1905년 11월 1일이 일기예보의 시작일까? 이를 결정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시각에 따라 시점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기상관측의 시작을 일기예보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가’

‘정기적으로 관측했거나 국가조직이 주도해야 하는가’

‘일제 침략사를 포함시킬 것인가’에 따라 시점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발견된 일기도가 그려지기 전까지는 기상관측만이 이뤄졌다.

1881년 2월부터 한성 주재 일본공사관은

하루 세 번 기상을 관측한 뒤 그 결과를 본국에 보고했다.

1883년부터는 인천, 부산, 원산에 들어온 청나라인이

매일 기상관측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근대기상의 시작은 일본의 기상관측과 맥을 함께 한다. 일본 근대 기상은 1875년 6월 1일 도쿄에 기상대가 처음 세워지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9년 뒤인 1884년 6월 일본은 일기예보를 시작했는데 이때 처음 부산에서 관측한 기상정보가 이용됐다.

다시 2주 뒤인 6월 16일부터 일본 중앙기상대가 일본전신국에 위탁해 부산에서 정기적인 기상관측을 시작했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 실시된 것이었다.

청나라와 러시아와 전쟁을 치뤄야 하는 일본은 대량 해상수송과 해상안전을 위해 기상관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전쟁을 시작한지 한 달 뒤인 3월초 도쿄 중앙기상대는 와다유지(和田雄治)를 조선의 기상관측 책임자로 발령했다. 그는 훗날 조선이 측우기를 발명했으며 빛나는 측우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처음 알린 자이기도 하다.

그가 부임한 뒤 기상관측소의 기구는 더욱 확장됐다.

은 해 9월에는 조선의 제주도와 울릉도, 중국의 다롄, 옌타이, 톈진에서,

10월에는 항저우, 난징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됐다.

그래서 1904년 10월까지 새로 세워진 기상관측소는 13개에 이르렀고

매일 세 차례 관측이 이뤄졌다.

 

그리고 일본 내 30여개 관측소에서도 매일 새로운 기상 관측 자료를 수집했으며

군대 집결지와 섬 지역의 일본 해군 감시 망루에서도 기상관측을 실시했다.
이 정도라면 일기도를 작성하고,

천기(일기)예보와 폭풍경보를 발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였다.

더욱이 와다유지는 도쿄에서 일기예보를 해왔던 유능한 예보관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작성된 일기도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대한제국도 이 무렵부터 자체적인 기상관측사업을 시작한다.

 

1907년(광무 11) 1월 평양과 대구측후소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했으며

2월1일에는 황제가 직접 기상관측을 독려하는 칙령을 내리기도 했다.

 

같은 날 경성에도 측후지소가 문을 열었는데 훗날 서울측후소의 전신이 된다.

 

하지만 이들 측후소들은 관측업무만 담당했을 뿐 예보기능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907년 4월 1일 마침내 일본은

일본 중앙기상대에 소속된 모든 임시관측소와 대한제국 소속의 모든 측후소를 흡수해

통감부 관측소로 만들었다.

1908년 4월 이들 통감부 관측소는 다시 일본 농상공부 관측소로 이름을 바꾸고

모든 업무를 일본인들에게만 맡겨 버렸다.

 

여기엔 두 가지 깊은 뜻이 담겨 있다.

1907년부터 1908년 3월 31일까지 대한제국에 기상전문인력이 존재했다는 것과

일본이 조선에 기상기술을 전수하지 않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농상공부 관측소는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점된 1910년 조선총독부관측소로 바뀌었으며

와다유지가 이 과정을 주도했다.


2005년 우리나라 정부는

2004년 3월 25일을 근대기상 100주년으로 정했지만 성급한 측면이 많다.

여러 다른 의견이 있었음에도 일본기상학회의 주장만을 따른 결과다.

물론 보는 각도에 따라 일본의 주장이 옳다 할 수도 있겠으나,

침략의 역사를 잔치까지 열어가며 기념한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기압계나 온도계의 사용 시점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1881년이 돼야 마땅하다.

국가 기관 설립 시점을 중시한다면 갑신정변이 일어난 1884년 6월이 될 것이다.

 

일기예보 기록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최초의 자료가 나타날 때까지 1905년 11월 1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단 침략사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만일 우리민족이 주도했는가를 중시한다면

대한제국 시기인 1907년 1월 1일 또는 2월 1일이거나 광복절을 시점으로 잡아야 한다.

성급하게 결정된 기념일이 200, 300년 잘못된 잔치로 이어지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 변희룡 교수의 ‘1905년 11월 1일 날씨 맑음’(2005년 12월호)에서 발췌 및 편집

- 2008년 02월 26일, 동아사이언스

 

 

 

 

 

 일기예보는 ‘디지로그’로 완성된다

 

 

  첨단 디지털 기술에 아날로그적 직관과 경험

 


슈퍼컴 예보, 디지털 예보…. 요즘 일기예보를 일컫는 말이다.

‘첨단’ 느낌이 한껏 묻어난다.

일기예보의 정확도에 대한 기대감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첨단 기술에도 불구하고

뜻밖에도 ‘아날로그’ 요소들이 일기예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데이터와 경험의 충돌


‘예보관 A 씨는 당황했다.

슈퍼컴퓨터가 내일 강수량을 자그마치 500mm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지역 최고 강수량은 300mm.

하루에 이렇게 많은 양의 비가 한꺼번에 내릴 가능성은 극히 적다.

그렇다면 첨단 슈퍼컴퓨터가 내놓은 데이터가 틀렸단 말인가.’

당신이 예보관이라면 경험과 컴퓨터 중 어느 쪽을 믿겠는가. 분명 쉬운 선택이 아니다.

만약 예보관이 개인의 지식과 경험에 더 비중을 두고

슈퍼컴퓨터가 제시한 강수량을 좀 줄여 예보했다고 하자.

다음 날 정말 슈퍼컴퓨터가 예측한 만큼 비가 온다면 일기예보는 잘못된 것이 된다.

실제로 2002년 태풍 ‘루사’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태풍 같은 재해기상의 경우

슈퍼컴퓨터의 데이터와 예보관의 경험이 어긋나는 경우가 종종 생길 수 있다.

슈퍼컴퓨터가 가동하는 수치예보 모델은

지구대기 공간을 바둑판처럼 일정한 간격의 수많은 격자로 나눈다.

기온, 바람, 수증기량 등 기상요소가 시간에 따라 바뀌는 모습을 나타낸

여러 개의 복잡한 방정식을 격자마다 몇 분 간격으로 계산한다.

어마어마한 계산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슈퍼컴퓨터가 필요한 것.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보관은 내일의 일기예보를 최종 결정한다.

수치예보 모델의 데이터는 근거자료일 뿐 최종 판단은 결국 사람의 몫인 것이다.

 

슈퍼컴의 데이터도 서로 다르면


‘예보관 B 씨는 여러 수치예보 모델이 내놓은 데이터를 받아 들고 고민에 빠졌다.

제각기 다른 데이터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평균값을 취해야 할까, 아니면 어느 특정 모델의 결과를 선별해 사용해야 할까.’


수치예보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기상요소의 변화에 대한 방정식을 다르게 만든 모델 여러 개를 동시에 가동하거나

같은 모델에서 변수의 초기값을 다르게 두고 여러 번 가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앙상블 예보’라고 부른다.

앙상블 예보에서 모든 모델의 결과가 특정 지역의 기상에 대해 비슷하게 나오면

신뢰도가 높아진다.

첨단과학이 다들 같은 결과를 예상하니 예보관도 수긍하게 된다는 얘기다.

문제는 모델들의 예측 결과가 각각 다른 경우.

수치예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예보관은 최종 일기예보를 결정할 때

이 결과를 크게 반영하지 않게 된다.

결국 정교하고 정확한 수치예보 모델을 도입할수록

예보관이 첨단기술에 근거한 예보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수치예보 모델의 격자 간격은 예측의 정확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다.

간격이 좁을수록 좁은 지역의 날씨까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현재 기상청이 운영하는 수치예보 모델(RDAPS)의 격자 간격은 30km.

기상청은 미국립대기과학연구소(NCAR)가 개발한 격자 간격 10km의 모델(WRF)도

곧 들여올 예정이다.

기상청 장동언 수치예보 담당관은 “5월부터 WRF 모델을 운영할 예정”이라며

“여름철 집중호우 같은 악(惡)기상 현상을 더 잘 예측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6일 문을 연 이화여대 국지재해기상예측기술센터 박선기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10km 이내의 규모에서 내리는 국지성 호우가 잦다”며

“우리 센터는 미국 오클라호마대와 협력해

격자 간격 1km의 재해기상전용 수치예보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측 결과 해석 기준 나라마다 달라


‘한국의 예보관 C 씨는 내일 오후 비가 올 거라고 예보했다.

일본의 예보관 D 씨 역시 같은 예보를 했다.

다음 날 두 나라 모두 오전부터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해 오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한국의 예보는 틀렸고, 일본의 예보는 맞았다. 왜 그럴까.’

강수량 관측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강수량이 0.1mm 이상이면 비가 온 것으로 치지만 일본은 1mm가 넘어야 한다.

오전부터 비가 와 0.1mm를 이미 넘으면

한국에선 오후에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어긋난 것이다.

일본에서는 오후 들어 강수량이 1mm를 넘으면 예보가 맞은 게 된다.

일본에 비해 한국의 기준이 엄격한 셈.

강수량은 관측 데이터를 통해 예보를 판단하는 기준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규정이 없다.

따라서 기후나 지역 특성 등에 따라 나라마다 다르게 정하고 있다.

- 동아사이언스, 2007년 4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