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푸른 소나무에 대한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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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준하고 척박한 바위 사이에 심하게 휘어져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멋지게 서있을 소나무의 절경을 기대하면서 우리 일행들은 명말 유민화가 석도(石濤, 1642~1717)의 황산그림을 가슴에 새겨두었으며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하지만 행운인지 불행인지 황산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눈 구경하기가 힘든 황산이었기에 많은 중국인들은 들뜬 마음으로 사진기를 들고 황산에 오르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발에 아이젠을 끼고 황산에 올랐다. 온통 눈으로 뒤 덮인 바위와 나무들만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세상처럼 보였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 뻗은 장송들은 온몸에 눈옷을 입고 있었다. 척박한 바위산에 하얀 눈으로 덮인 그야말로 혹한에 우뚝 서있는 소나무들이었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시문은 물론 그림 등에 즐겨 다루어졌다. 『논어』의 「자한(子罕)」에 ‘세한연후(歲寒然後) 지송백지후조야(知松柏之後凋也)’ 라는 문구는 ‘추운 시절이 된 후에야 송백이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는 내용으로 소나무의 지조와 절개 등의 덕성과 품격을 핵심적으로 묘사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의 굽이굽이 산길에서, 마을 앞 입구에서, 혹은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발산하는 강렬한 생명의 빛으로 인해 늘 우리의 눈길을 끌어왔다. 따라서 지천으로 자라는 소나무는 우리의 산수화에 늘 등장하는 단골 소재였다.
그림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조선 중기 이경윤(李慶胤. 1546~1611)의 작품으로 전하는 <설경도(雪景圖)>는 눈 덮인 설산을 배경으로 화면 왼쪽 아래에 아담한 집과 그 위로 각이 심하게 진 소나무 한 그루를 담고 있다. 이 때는 밖으로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전쟁을 치루었고, 안으로는 사화, 당쟁이 계속되어 혼란스런 시기로 탁족(濯足)이나 어부(漁父) 등 은일의 주제가 크게 유행하였다.
속세와 떨어진 깊은 산속 은자(隱者)의 집 위로 장송(長松)이 화면을 압도하며 우뚝 서 있다. 용트림하는 소나무 기둥과 솔잎들은 짙은 먹으로 강하게 표현되었는데, 설경의 배경으로 인해 그 푸르른 빛이 강조되었다. 아담한 집을 둘러싼 세한삼우의 대나무와 더불어 소나무는 은자의 고고한 기개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소나무의 상징성을 강조하는 그림은 조선후기에 더욱 다양하게 그려졌다. 특히 소나무만을 단독으로 그려 그 품성을 강조하려는 그림들이 많아졌다. 바로 이인상 자신의 내면의 지조를 유감없이 드러낸 것이다. 화면 가득 올 곧게 솟은 장송과 그 뒤로 크게 휜 소나무가 교차한 모습을 담았는데, 흰 눈에 덮여있어도 그 당당한 기개가 잘 드러나 있다. 특히 화면 아래 예리하고 각진 바위는 소나무가 뿌리 내린 곳마저 척박한 환경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인상은 인조조(仁祖朝)의 명신(名臣) 이경여(李敬轝)(1585~1657)의 현손(玄孫)이나 서자의 신분으로 사회적 편견 속에 살아야했던 인물로 바르게 살고자하는 자신의 지조를 설송(雪松)에 은유적으로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이인상의 <설송도> / 종이에 수묵, 117.2×52.6㎝/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소나무만을 압도적으로 그려낸 명작으로는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사직노송도(社稷老松圖)>를 들 수 있다. 화면 가득 구불구불 용트림 하며 올라간 노송을 세 줄기로 포치하였고 짙고 옅은 녹색의 솔잎들을 세세히 표현하였다. 늘어진 가지를 받쳐주는 받침대만으로 그 깊이감이나 높이 등 공간감을 제시할 뿐 일체의 배경 없이 반송(盤松)의 기고(奇古)한 모습을 요점적으로 부각시켰다.
줄기의 구불거림이나 솔잎 등은 현실감의 효과가 충분히 드러나도록 묘사하였다. 그러나 줄기의 흐르는 선은 ‘노(老)’자를 연상되도록 은밀히 구성하였으며 다양하게 뻗은 줄기의 포치나 무성한 잔가지들은 관자(觀者)를 위해 의도적으로 노출하여 부각시켰다. 이처럼 그림의 시점을 중요하게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정선이란 화가 자신의 독창성이 맘껏 발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 곁에서 장수, 그리고 사람에 대한 변함없는 지조, 절개 등 길상의 의미를 얻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그림 등 예술품의 소재로 즐겨 다루어왔다.
소나무그림은 너무도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살며 자신의 믿음과 지조가 무엇인지도 모르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인간의 덕성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굿굿하게 한계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넘치는 기개를 배울 수 있으며 변치 않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 지혜를 생각해보게 한다.
자연물에 인간의 덕성을 대비시켜 자신의 지조와 기개를 지키고 표현하고자 했던 우 리 조상들의 슬기를 소나무 그림에 대한 감상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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