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페테르 파울 루벤스 作 - 삼손과 델릴라

Gijuzzang Dream 2008. 1. 11. 00:40

 

 

 

[명화이야기] 사랑에 눈 먼 삼손, 돈에 눈 먼 델릴라



                 

                                                                   

'삼손과 델릴라', 1609년경, 목판에 유채, 185X205,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살면서 가장 좋은 것은 돈밖에 없다.

돈은 생존의 기본권을 지탱해주는 것은 물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다.

또한 삶을 우아하게 변화시켜주는 돈은 원하는 사랑도 갖게 해준다.

사랑은 삶의 환상을 선사하지만 꿈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연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부자일수록 꿈에 그리던 미인과 사랑에 빠질 가능성이 큰 것도 그 이유다.

거울을 좋아하는 미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품위유지비이기 때문에

가난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정설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반드시 돈이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항상 가진 것보다 또는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원하는 데서 비극이 시작된다.

그렇기에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랑도 팔아버렸던 여인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델릴라(데릴라)다.

돈에 매수된 델릴라를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삼손과 델릴라’ 다.

이 작품은 종교화지만 종교적 의미보다 관능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은 초인적인 힘을 지닌 남자였지만 금기가 있었다.

힘을 솟아나게 하는 머리카락을 절대로 잘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자를 좋아한 삼손은 많은 여자와 사랑에 빠졌어도 자신의 비밀을 결코 누설하지 않았다.

하지만 삼손은 예루살렘 근처 아름다운 팔레스타인 여인 델릴라를 사랑하게 된다.

그 사실을 안 팔레스타인들은 그녀에게 삼손의 비밀을 알려달라고 돈으로 유혹한다.

델릴라는 즉시 은 1000냥에 매수되어 몇 번의 시도 끝에 삼손의 비밀을 알아냈다.

삼손은 그녀의 배신에 두 눈을 잃고 머리카락이 잘려 힘을 쓰지 못한다.

루벤스의 ‘삼손과 델릴라’는 빛과 어둠을 이용해 사랑과 배신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델릴라의 침실에서 삼손은 사랑이 끝난 후 그녀의 배 위에 잠들어 있다.

가슴을 드러낸 채 데릴라는 삼손의 어깨를 어루만지고 있으면서도

돈을 받기 위해 이발사가 삼손의 머리를 자르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발사 머리 뒤에 있는 조각 장식품은 비너스와 큐피드로,

고개를 약간 비스듬히 숙이고 있는 비너스와 델릴라의 자세가 같은 것은

사랑에 빠진 삼손을 암시한다.

잠든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는 남자의 옆에 서 있는 노파는

그 장면을 놓칠세라 촛불을 밝히며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사창가 포주인 노파는 악을 상징하고 있지만

성서에서는 나오지 않는 인물로 루벤스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그려넣었다.

 

화면 오른쪽에는

횃불로 얼굴을 밝히고 있는 팔레스타인 병사들이 문밖에서 몰래 숨어 지켜보고 있다.

이 작품에서 델릴라의 붉은색 옷은 사랑의 열정과 앞으로 일어날 피의 비극을 암시한다.

 

루벤스는 이 작품에서 화려한 내부 장식을 그려넣어 고급 사창가의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28세 때 그린 이 작품으로 루벤스는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리는 화가가 된다.
- 박희수〈작가 · 아트칼럼니스트〉

2008 01/08  경향, 뉴스메이커 757호

 

 

 

 

 

  이십년 동안 이스라엘의 판관을 지낸 삼손은

  가자 지방의 매춘부인 델릴라를 사랑하게 되었다.

  삼손은 당나귀 턱뼈 하나를 휘둘러 천 명이나 쳐죽이고(판관기 15:16),

 

  성문을 두 문설주와 빗장째 뽑아 어깨에 메고 산꼭대기에 던져버릴 정도였다.

  (판관기 16:3).

 

  불레셋 추장들은 데릴라에게 삼손의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주면

  돈을 주겠다고 꼬드긴다. 델릴라가 날이면 날마다 악착같이 졸라대는 바람에

  삼손은 마침내 속을 털어놓고 만다.

  “나는 모태로부터 하느님께 바친 나지르인이야. 그래서 내 머리에는 면도칼이

  닿아 본 적이 없다. 내 머리만 깎으면 나도 힘을 잃고 맥이 빠져 다른 사람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이 되지.”

  결국 델릴라의 무릎에 누어 잠든사이 머리가 잘린 삼손은 불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혀

  눈이 뽑힌 다음 놋사슬 두 줄에 묶여 옥에서 연자매를 돌리게 된다(판관기 16: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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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과 데릴라'는 가짜일까?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걸려 있는

감정가 2백5십만 파운드(약 47억원)의 거장 루벤스의 작품 ‘삼손과 데릴라'가 가짜논쟁에 휩싸였다.

 

영국 일간지 '이브닝 스탠다드'에 의하면

논쟁의 대상인 ‘삼손과 데릴라’는 1609년에 그려졌고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공개된 것은 1980년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짜라는 논쟁은 이미 1996년부터 시작됐다.

가짜 논쟁의 발단은 그림의 구도나 스타일이

루벤스의 다른 그림들과 비교해 볼 때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신빙성을 더해주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237년 전 당시의 큐레이터가 붙인 것으로 보이는 그림 뒷면의 라벨에

“이 그림은 루벤스가 그리지 않은 것으로 여겨짐” 이라고 표시 되어 있는 것이다.

 

내셔널 갤러리 측에 의하면

‘삼손과 데릴라’는 그 동안 진위 여부에 대해 여러 번 조사해본 결과 진품이 확실하고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하며,

갤러리측 대변인은 이번 논쟁에 대해

“루벤스 전문가들이 과거 조사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이미 진품으로 받아 들여졌고,

내셔널 갤러리에 걸려 있는 ‘삼손과 데릴라’는 피터 폴 루벤스의 작품이다” 라고 짤막하게 논평했다.

 

이번에 다시 가짜 파문을 일으킨 역사학자 Euphrosyne Doxiadis는

내셔널 갤러리에 걸려 있는 작품은 루벤스 자신이 그린 것이 아니라

많은 루벤스의 제자들 중 한사람이 그린 것으로서 가치가 전혀 없는 작품이라고

그의 보고서를 통해 공식 제기했다.

 

내셔널 갤러리의 소장품 가운데 가짜 논쟁이 제기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가짜라고 판명되고 미술관측에서 인정할 경우

다른 여타 그림에 대해서도 학자들에 의해 가짜 논쟁이 이어진다면

미술관측은 매일 진위 여부에 시달려야 되고,

더 중요한 것은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가짜를 걸어 놓고 진짜라고 속였다는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아마도 가짜라고 해도 계속 진짜라고 우겨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다시 제기된 ‘삼손과 데릴라’의 가짜 논쟁이

여러 번 제기 되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08년에 그린 것으로 되어 있는

‘암굴의 성모’라는 작품의 진위 여부 때문에 시달렸던 악몽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작품도 아직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측에 의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품으로 의젓하게 걸려있고

많은 관람객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 그림 앞에서 감동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 한겨레, 200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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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화 속의 여성 中에서>

 

신화나 성서 속에서 가장 힘이 센 남성의 상징인 삼손,

그런 삼손의 엄청난 힘의 원천이 거친 머리카락에서 나온다는 비밀을 밝혀내

그를 실패의 나락으로 이끈 요부 데릴라.

 

두 사람의 이야기는 구약성서 ‘사사기’에 등장한다.

사랑과 배신으로 점철된 스토리는 많은 예술가의 감성을 자극했다.

17세기 최고의 거장으로 불리는 화가 루벤스 역시 성서 속 삼손과 데릴라를 화폭에 담아냈다.

 
그림 속 두 남녀를 보자.
핏빛 드레스를 입은 데릴라는 욕정으로 달아오른 가슴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정욕에 눈이 멀어 데릴라의 품에 잠든 삼손의 남성적인 팔과 매력적인 등판은 사실적이다.
 
루벤스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르네상스적인 인체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화폭에 담아냈다.
삼손이 잠든 찰나를 놓치지 않고 머리를 자르는 사내와
탐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노파가 들고 있는 촛불은
연극의 긴장된 클라이맥스를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벽면에 그려진 비너스와 큐피드의 안타까운 표정,
문 밖에서 훔쳐보는 병사들은 완벽한 조연 역할을 해내며 작품을 걸작으로 완성하고 있다.
 
데릴라의 꾐에 빠져 비록 힘을 잃고 눈까지 멀었지만,
삼손의 머리카락은 후대에도 영원히 남성적인 힘을 상징하고 있다.
 
과연 남성에게 머리카락은 어떤 존재일까?
신기하게도 남성의 나이와 탈모는 비례적인 함수관계를 맺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30대 남성의 30%가 50대엔 50%가 대머리가 된다고 한다.
매일 똑같은 스타일의 양복을 입는 남성에게 패션의 8할을 차지하는 것이 머리카락이라고 하니
그 중요성을 다시 말해 무엇할까?
 
결혼 전 여성에게 시아버지의 머리 스타일을 꼭 확인하라는 점이 불문율처럼 전해지는 시대에서
탈모로 고민하던 남성이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시도했다는 뉴스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일 터.
 
역사적으로도 머리카락이 없는 남성은 특별대우(?)를 받았다.
성경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내린 벌 중에도 포함되어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대머리환자들에게 비둘기 똥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염소 오줌을 처방하였다.
카이사르는 말의 이빨과 사슴뼈를 갈아 만든 약을 발랐으나 효험을 보지 못했고,
작전을 변경해 월계관을 썼다고 한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도 전투에 임할 때는 반드시 부분 가발을 착용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