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일상)

임의진 / 시골편지's (2)

Gijuzzang Dream 2008. 1. 11. 03:08

 

 

 

 

 

 어머니 흙  

 

 

강건하셨던 어머니가 급작스레 돌아가셨다.

팔순을 넘게 사셨으니 호상이며, 고생 없이 주무시듯 가셨으니 복된 줄 알라 위로를 주셨으나,

마음 한 켠 어찌 허전하고 섭섭하지 않으랴.

온후한 분이셨다. 임종 순간도 성품처럼 고요하셨다.

 

장례 절차마다 전에 살았던 남녘 식구들이 여차저차 애를 써주셨다. 지금 사는 대방리 동네 분들도,

이장님께 알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들으시고 조문하여 주셨다.

“낼이 지삿날이어가꼬 안에는 못들어간단 말이요. 요라고 부조만 허고 가도 서운히 생각지는 마시요이.”

뽀짝 아랫집 형수가 손을 잡아주셨다.

승용차로는 가까운 길을, 버스 여러 번 갈아타고 고생하여 찾아오신 눈치다.


내가 이 지구별로 불쑥 얼굴을 내밀 수 있었던 ‘문(門)’인 어머니,

어머니가 흙으로, 땅으로 돌아가셨다.

흙은 곧 문이 아니겠는가. 새로운 생명이 고개를 내미는 문,

그렇다 먼 하늘로 떠나는 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텃밭에 갈 때, 흙을 손으로 만질 때, 맨발로 해변 모래사장을 밟을 때,

예사롭지 않은 마음이 들게 될 것이다.

나 지금, 내 어머니인 흙을 지그시 바라본다.

<임의진/ 시인, 목사>

 

 

 

 

 커피 타임  

 

 

아랫집 형님이 퇴원해서 놀러갔더니 커피 한 잔 들고 가랜다. 인스턴트 봉지 커피다.

아버지 목사님도 저 봉지 커피 애호가셨다.

하관식 때 무덤에 평소 읽으시던 성경책과 함께 커피 한봉다리 넣어드렸을 정도.

누나가 땅을 치며 울면서 “커피 쓰다. 프리마도 넣어드려라” 하자,

곁에 있던 조카 왈, “프리마도 같이 들어있는 건데?” 했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무튼 아버지는 돌아가셔서도 커피와 함께….

 

어떤 할머니는 미국 사는 딸이 깨소금을 보내주어 먹고 계시는데 이후 도통 잠이 안온다고 했다.

한번 가져와 보시랬더니 갈아 만든 원두 커피였다. 할머니 죽을 뻔 보았지.

 

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 있었던 웃지 못할 일이었다.

교인 목숨까지 살린 기적의 목사가 바로 나였는데,

교인들은 치렁치렁한 옷을 걸치고 요상한 말투로 설교하면서

왕뻥에 구라로 먹고 사는 목사님에게 곁눈질을 자주 했다.

교회에선 좀 쇼를 해야 한다. 쇼를 해라 쇼를! 그러나 나는 체질이 아니어서….

 

난로 위에서 찰찰 끓은 주전자물이 아까워 커피를 한 잔 더. 그랬더니 잠이 안오네.

깨소금으로 알고 밥에 말아먹은 것도 아닌데….

<글·그림 / 임의진 시인· 목사〉

 

 

 

 

 

 풍 금

 

집에 풍금이 한대 있다. 초등학교에서 전자피아노에 밀려 버림받은 신세.

재활용 시장을 떠돌다가 우리 집에 더부살이 뒤부터 다시 ‘제 노릇’을 하고 산다.

풍금을 켜고서 동요를 부를라치면 금세 눈물이 아롱거리고 만다.

갓 부임한 처녀 선생님이 풍금을 켜서 가르쳐준 동요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얼얼한 추억이니까.

영화처럼, 나 홀로 집. 그러니 심심할 때가 무지 많다. 개들하고 이야기 하는 것도 질렸다.

새들은 저 시부렁거리다가 간다는 인사도 없이 푸르릉 날아가고 없다.

별들도 마찬가지.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멀리서 깜박거린다.

서리가 맺힌 날부터 보이지 않던 어르신들은 내년 봄이나 기지개를 켜실 듯.

나는야 집에서 풍금이랑 노는 수밖에.

 

구름이 깜장빛이면 ‘첫눈아! 어서 내리렴…’ 캐럴을 불러 본다.

간신히 화음이나 누르는 수준이어도 라흐마니노프나 되는 양 건반을 휘저으면서.

 

목회를 할 때는 낡고 닳은 풍금을 앞세워 예배 반주를 삼았다.

부잣동네 교회의 수억원 한다는 파이프 오르간이 하나 부럽지 않았다.

“꿈속에 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카드에 적어 보내는 방울 소리 흐르는

흰눈 쌓인 거리로 썰매는 간다. 꿈속에 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올해도 다시 돌아와…”

그대도 따라 부르실 줄, 내 알았지.

〈글·그림/ 임의진 시인 · 목사>

 

 

 

 

 

 꼬리연

 

살을 에는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저수지 둑길로 아이들은 달린다.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겨울방학이 며칠 남지 않은 때문인지 얼굴마다 달덩이.

‘웃는 얼굴이 공양’이라 써진 옆동네 절집의 오솔길 목각판은, 아이들 앞에선 부처님 잔소리렷다.

 

예전 반공 구호 중에, ‘웃는 얼굴 다시 보자’가 있었다.

불조심 구호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집에 가서 갓난 애나 보아야 한다.

그러나 저기 뜀뛰며 연날리면서 노는 애들은 진짜짜짜 하늘나라 간첩이 맞다.

다시보고 또 봐도 웃는 얼굴뿐.

게다가 소리도 나지 않는 정찰기를 하늘 높이 띄웠다.

꼬리연이 바람에 간닥간닥.


 

 

요즘은 학교앞 문방구에서 기성품 연을 판다더라.

전에는 아버지나 삼촌이 손수 대살을 쪼개어 뼈대를 짰다.

한지를 재단하여 펼친 뒤 밥풀을 이겨 붙이면 뚝딱 꼬리연, 방패연이 탄생했다.

설렌 한맘으로 빈들에 나가

멀리 저 멀리 바람찬 하늘에 연을 띄울 때면 새들도 뒤질세라 뵤뵤 날았지.

비행기는 “어쭈구리” 하면서 건방을 떨고, 낮달은 걸려 넘어질라 구름 뒤로 숨고….

 

짧은 삶이 아쉬워 꼬리를 길게 늘였다.

그랬더니 바람길을 잘 타면서, 저물녘까지 너끈히 날았다.

강아지가 꼬리를 치듯 연도 꼬리를 쳤다.

좋아한다고, 나 지금 행복하다고. 그 순간 우리는 모두 만족하였다. 그뿐이었다.

<임의진/ 시인, 목사> 

 

 

 

 

 

 귤

 

함경도나 자강도, 강원도나 경기도 말고 여기 아랫녘에도 눈사람 아저씨는 놀러오고 싶었으리라.

고대하던 첫눈이 사르르 내렸다.

미명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며칠 전 마련한 장작더미를 보며 흐뭇해하였다.

갑자기 추워졌으니 서두르기를 참 잘 했어.

 

의형제로 지내는 가수 김두수 형이 땔나무를 한차 나뭇광에 쟁여주고 가셨다.

오랜 은둔과 시골살이로 익힌 겨울나기 비법은 ‘나눔’ 바로 그것이리라.

고마운 사랑에 혹한과 폭설이 닥쳐도 두렵지 않구나.

이렇게 날름 받아먹고만 살아서는 아니 되리라.

 

면에 나가 귤 한 박스 사들고 와서, 옆집 아랫집 나눠 먹었다.

내게 남은 귤은 몇 개 아니다.

밤에 서너 개 먹고 아침에 두어 개 먹으면 노란 빛깔 열매는 방안에 보이지 않을 거야.

하여 아쉬워 물감을 꺼내 귤을 그려보았다.

껍질을 벗기다 순간 나는 첫날밤처럼 황홀해졌고,

입술을 닮은 귤은 마치 내 님의 보드라운 입술이나 되는 듯 주저하게 만들었다.

세상이 온통 나의 아리따운 신부이고,

목숨처럼 껴안고 사랑하는 일이 곧 내가 이 지상에서 해야 할 소임임을 다시금 깨물어 본다.

 

“당신의 옷을 한 올도 남김없이/ 벗길 수 있다니/ 신랑입니까, 내가 바로 신랑입니까.”

(귤은 나의 신부)

〈글·그림/ 임의진 시인 · 목사〉

 

 

 

 

 

 눈사람

 

겨울방학 때 교회당에 있는 동화책, 만화책들을 보러 찾아오는 꼬맹이들에게

애니메이션 영화 ‘스노우맨’을 구경시켜 주곤 했다.

흐르는 노래도 아름답지만,

눈이 펄펄 내리는 북극으로 눈사람과 손을 잡고서 날아가는 꼬마 주인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나도 그런 꿈을 꾸고 있는 듯.

 

친구가 영화 보는 기계를 선물해 주어 그런 호사를 누리면서 지냈다.

여자 친구들에게 이런 표독한 소리도 주절거렸다.

“여자 없인 살아도, 심야영화 없이는 못 살아!”

 

수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었다.

따시게, 뜨시게, 장작불을 지피고 벽에다 하얀 종이를 붙이고선 간만에 영화를 틀었다.

밖에 또다시 눈이 내리고, 스노우맨이 찾아온다.

 

지금은 떠나왔으나 뒤통수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눈사람이 녹을 때 안타까워하던 그 한숨들이 여전히 들려오는 것 같다.

 

 

내일 아침엔 눈뜨자마자 눈사람을 만들어야지.

영화 속 스노우맨처럼 목도리도 걸쳐주어야지. 무슨 목도리를 해줄까? 벌써부터 궁리.

 

사람이 그리워서 이 추운 겨울에 우리는 눈사람까지 만드는 거다.

사람이야 사람. 녹아 흘러 먼 바다로 흐르기 전까지,

우리는 이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있는 눈사람이야.

 

그리워하다보면, 어느 햇살 좋은 날 우리는 한 바다가 되어 얼싸안을 것이다.

<임의진/ 시인, 목사>

 

  

 

 

 

 까마귀

 

“당하(아직) 봄도 아닌디 온 아적(오늘 아침)은 날이 풀래가꼬 입춘대길을 부채야 쓰겄드랑게요.

그란디 요쪽은 안개가 까랑져가꼬(내려앉아) 포도시(겨우) 올라왔소야.

이거시 못이긴데끼 받아둔 김치잉게 아깨두고 드시쇼잉. 김치통도 돌래주지 말고 기냥 쓰랍디다.”

 

우연히 알게 된 분이 김장김치를 싸서 벗님에게 심부름을 맡겼다.

고마운 마음에 잘 안 먹던 아침밥을 지어 먹어야겠군.

창문을 활짝 열었다. 정말 봄 날씨로구나. 지난주는 정말 추웠는데,

눈도 무지하게 많이 내리고. 눈피해를 입은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어서 대설주의보 대설경보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쿵쾅거려.

 

 

“뭔 요 부락은 까마구가 이라고 많아분다요?

오다가 전깃줄에 시꺼멓게 달라붙어 있는 거시기들이 모다들 까마구드랑게요.

굶었는지 빼빼 말라가꼬 깍깍거리는 거이 기분이 요-해불드랑게요.”

 

“근래 유난히 많이 보입디다. 하얀 눈 내리고 검은 새 보면 운수가 대통이랍디다.

오늘만 보더라도 흉조가 아니라 길조 아닙니까.

보세요, 맛있게 생긴 김치가 생기고 좋은 일 벌어지는 거.”

 

“헤헤 맞소야. 뭐든지 맘 묵기 나름이재이.

까마구를 떼로 보았응게로 지도 올해 배달업체 사장님이 되든지 그라겄네요.”

 

둘이서 싱겁게 흐흐거렸다. 머리 위로 까마귀가 휙 지나갈 참.

 〈임의진 /시인 · 목사> 2008-01-09

 

 

 

 

 

 

- 김두수 / 들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