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일상)

떠돌이별, 어깨춤, 선무당(仙舞堂) 임의진

Gijuzzang Dream 2008. 1. 11. 00:43

 

 

 

 

 

 

 

 

 떠돌이별, 어깨춤, 선무당(仙舞堂) 임의진

 

삶이 그리운 삶, 사람이 그리운 사람

우리 어릴 적 작두질로 물 길어 먹을 때
마중물이라고 있었다

한 바가지 먼저 윗구멍에 붓고
부지런히 뿜어대면 그 물이
땅속 깊이 마중나가 큰물을 데불고 왔다

마중물을 넣고 얼마간 뿜다 보면
낭창하게 손에 느껴지는 물의 무게가 오졌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마중물이 되어준 사랑이
우리들 곁에 있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무저갱으로 제 몸을 던져
모두를 구원한 사람이 있다

그가 먼저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기에
그가 먼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꿋꿋이
견뎠기에

- 임의진 ‘마중물이 된 사람’


 

 

#1 참꽃 피는 마을


그는 목사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목사의 아들이었다.

그의 형은 다운증후군 환자였다.

그의 형이 하늘로 돌아갈 때까지 그는 ‘침묵하는 자기’ 안에 갇혀 있었다.

그가 17살 때, 그의 형이 마침내 하늘나라로 올라간 후 그는 겨우 침묵 속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는 이미 세상의 슬픔을 알아채버렸다.

조숙한 이 아이는 끊임없이 세상과 불화하면서도 사람을 그리워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장래 희망을 ‘사람’이라고 적었다가 담임에게 불려가 실컷 매를 맞았다.

그로써 그의 고교시절도 잠정 중단되었고, 그는 5년 만에 겨우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서울의 한 신학대학을 마치고,

‘마르크스의 머리와 예수의 가슴’을 지닌 채 강진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그의 아버지가 설립한 교회 중 하나가 있었다.

너무도 가난해서 전도사조차 둘 수 없었던 교회였다.

너무도 가난해서 교회조차 다닐 수 없는 마을에 있는 교회였다. 그는 그 가난에 안주했다.

그는 가난하면서 볕만 좋은 그 마을을 ‘참꽃 피는 마을’이라고 부르고,

그 언덕배기에 볕만 좋은 교회를 ‘남녘교회’라고 이름 짓고 마침내, 당연히 가난한 목자가 되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있다.

그는 멀리 남쪽마을에서 사랑하며 사랑받으며 가난한 이들과 이웃하여 살아가는 젊은 목사다.

어떤 날은 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부르면서 철새가 날아가는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곧 댐이 들어선다는 강에 나가 하루 종일 강물만 바라보고 앉아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동네사람들과 늦은 밤까지 술 한잔을 나누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집이 떠나가라 음악을 틀어놓고 눈을 감고 툇마루에 드러누워 있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쪽지로 묶어 나누고,

돈이 다 떨어져 본의 아닌 칩거에 들어간 그를 한동안 볼 수 없기도 했다.

그런 때는 그가 더욱 그리웠다.
- 그를 조금 아는 사람, 류시화


 

그는 가난하면서 오지게 오지랖만 넓은 목사였다.

월간 ‘참꽃 피는 마을’ 발간(1995), 풍물교실 ‘참꽃마을’ 개설(1996),

광주에 ‘작은 연못 교회’ 창립(1997), 비전향장기수 송환추진운동 전개(1997)…

무등산 보호 환경음악회 ‘풍경소리’ 증심사와 공동진행(2002) 등등등

통일마당으로, 환경운동으로, 유기농으로, 예술문화마당으로, 절마당으로 안 끼는 데가 없었다.

 

기여 작은 시골교회에는 참꽃이 피기 시작했고,

그 아름다움으로 1998년 독일의 슈피겔지가 이곳을 ‘아름다운 교회’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딱 10년 만에 마침내, 겨우 안식을 얻었다.

 


 

#2 여행자의 노래


그는 보헤미안이었다. 집시였다. ‘떠돌이별’이었다. 지구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말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친구가 많은 사람’인 덕분이라고 하지만,

이 땅을 벗어났을 때 그는 ‘국제 노숙자’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그 에트랑제를 모아

2003년부터 컴필레이션 음반 ‘여행자의 노래’를 내기 시작해 이제껏 4집에 이르고 있다.

1집에는 혼자 떠나는 여행길 동무가 되어준 노래 ‘Ohio’,

가슴에 품은 달빛 같은 노래 ‘La Luna’, 물거품이 된 날 고개를 떨구며 듣는 ‘Caruso’ 등이 수록되었고,

포크록 가수 김두수가 부른 ‘Danny Boy’에다

아예 자신이 직접 부른 ‘Wayfaring Stranger’를 삽입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 ‘그녀에게’의 베니그로를 만나러 가는 길.

바보는 식물인간이 된 아가씨를 사랑하다 죽은 베니그로뿐만은 아니리라.

세기의 바보 돈키호테는 어떠한가.

돈키호테의 고향 카스티야라만치, 그곳의 풍차를 바람과 함께 돌리다보면

나도 어느새 바보 같은 사랑에 빠지고 말았으리.


 

그는 내친 김에 의형제이자 ‘자유혼’의 신화적 가수 김두수의 부추김을 받아 ‘가수의 길’로 나섰다.

2004년 첫 노래모음집 ‘하얀 새’를 낸 데 이어

2006년에는 명실상부한 자작곡 위주의 독집 음반 ‘집시의 혀’를 내놓았다.

‘집시의 혀’는 일본의 정상급 만돌린 주자이며 기타리스트인 야노 토시히로와,

한국과 일본의 평화디딤돌이며 실험성 짙은 ‘접목음악’을 추구하는

록그룹 ‘곱창전골’의 리더 사토 유키에,

그리고 펀펀한 포크록 마당에서 새뚝 솟아오른 신인 여성 포키 수니,

그밖의 여러 집시족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작업에 참여했다.

 

그의 노래는 그의 표현을 빌자면 ‘한국에서는 홀대를, 일본에서는 인정을’ 받는다.

어차피 우리가 그의 노래에서 상업적 프로페셔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저 ‘한 예술가의 음악적 퍼포먼스’ 정도로 이해하면 될 일이다.

그의 질펀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독특한 핸드페인팅으로 화가의 반열에까지 오르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무당벌레를 즐겨 그리는 그는

얼마 전에는 사진작가 김홍희, 목판화가 류연복, 시인 박남준, 서양화가 한희원과 함께

‘우리 시대 전방위 다종예술가 5인의 오락가락전(五樂街樂展)’을 열기도 했다.

오五Oh! 다섯이어서 즐겁고五樂, 길에서 만나니 더더욱 즐거워라街樂!


 

#3 회선재의 선무당


그는 여전히 바쁘다.

‘오락가락전’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두수의 다섯 번째 음반 ‘열흘 나비’ 발매 기념 콘서트의 연출을 맡아 의기로 헤집고 다녔고,

홍대 앞 ‘요기가갤러리’에서 열린 불가사의한 음악회 ‘불가사리’에 전격 출연해

자신의 곡 ‘체 게바라’를 연주하는 아방가르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제 목사도 환경운동가도 시인도 수필가도 동화작가도 가수도 화가도 아니다.

더구나 혁명가도 아니다. 그냥 ‘노는 사람’이다.

‘노는 임씨’다. ‘어깨춤’이다.

 

그에게서 ‘노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 가장 평화적으로 싸우는 것이다.

게다가 그의 전위적인 ‘짓거리’들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억눌림’을

대리해 풀어주는 해방구기도 하다.


그는 목사직에서 해배되고 난 후 담양의 수북에 칩거를 마련했다.

집 이름은 ‘회선재(回仙齋)’고 당호는 ‘선무당(仙舞堂)’이다.

 

원래 알고 지내던 스님이 절터로 마련해둔 곳으로, 홀연 미국으로 떠나면서 그에게 맡겨두었다.

남향으로, 서재에 앉으면 무등산의 산그늘이 아련하다.

수많은 책 하며 2만 장이 넘는 CD 하며 온갖 잡동사니로 그야말로 무당집이다.

 

세상에서 돌아오면, 그는 이곳에서 티베트 발바리 ‘추’와 검정 차우차우 개 ‘마오쩌순’과 함께

‘중보다 더 중같이’ 산다. 아니다.

가끔은 이웃들과 스스럼없이 ‘임씨’로 어울리고,

간혹 읍내의 관방제 앞 할매국수집에 들러 자신의 안부를 전해주고,

삶은 계란을 먹으며 ‘삶은 계란’이라고 깨닫기도 한다.

경향신문에 짧은 글과 그림을 곁들인 ‘시골편지’를 써서 ‘사람’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나도 ‘잡’하기로 하면 어지간히 빠지지 않는 축에 들지만, 그 앞에서는 감히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아무래도 그의 ‘빽’에 하나님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가 ‘이제는 돌아와’ 회선재에서 선경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는 결코 사람 잡는 선무당이 아니고, 사람을 살리는 선무당이고,

그의 모든 ‘짓’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으로서

‘삶을 그리워하는 삶’으로서 자유분방임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제는 그가 그토록 소망하는 따뜻한 시 한 편이거나,

적어도 가끔은 스스로를 위무하는 그런 ‘마중물’로 고여 있을 때도 있었으면

하는 주제 넘는 바람 때문이다.

 

그는 임의진이다(www.sunmoodang.com).

 

- 글· 사진 /유성문<객원기자> rotack@lycos.co.kr

- 2008년 01/08, 경향, 뉴스메이커 757호

 

 

 

 

 

 

 임 의 진  

 

1995년부터 남쪽바닷가 강진에 머물고 있다.

발길 뜸한 시골 예배당의 종지기로, 한 뙈기 텃밭을 일구면서 글을 쓰고 지낸다.

수필집 <참꽃 피는 마을>, <종소리>와 동화책 <예수동화 1,2>를 펴냈고,

직접 부른 노래 모음집 <하얀새>,

수필이 있는 월드뮤직 선곡음반 <여행자의 노래>, <보헤미안>, <산>을 펴내

경이로운 주목을 받았다.

 

초이스 음반 <사비나 야나투-그리스 여행기>, <나오미 앤 고로 - 일본 북해도 여행기>를 발매했고,

그림을 그려 몇 차례 전시회도 가졌다.

 

임의진은 시처럼 산다.

밀레의 만종이 대번 떠오르는 새하얀 예배당의 남녘교회는 아득한 들판 너머 희부염이 서 있다.

시인과 시인의 집은 목마른 새들의 샘터이자 쉼터였다.

시인이 거처하는 목사관은 머리를 찧을만치 낮은 흙집이다.

동네와 자못 떨어진 이 외딴집에 병약한 노모와 둘이 지내며 아기자기 살림이 오지고도 재미졌다. 사계절 꽃들이 한들거렸고 잠자리 나비 사슴벌레 두꺼비가 찾아와

벽촌의 쓸쓸함을 나긋이 달래주곤 하였다.

가까운 친구들은 그를 ‘어깨춤’‘떠돌이별’이라 부른다. 

 

 

‘지구별을 사랑한 쓸쓸한 개구쟁이’
임의진 ; 참꽃 피는 마을에서 여행자의 노래, 그리고 <사랑>까지


찬바람이 밀려드는 겨울의 첫머리!

이 추위의 앞도랑에서 만나는 임의진의 <사랑>은 아랫목을 데우는 다스한 아궁이 군불만 같다.

남도의 젓갈 맛 나는 날것 그대로의 독특한 문장으로 ‘참수필’이라는 명예를 얻으며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었던 <참꽃 피는 마을> <종소리>에 이어

근 3년 만에 내는 세 번째 글집이다.

 

말 못할 사정으로 불운했던 ‘종소리’에 목이 잠겨 한동안 절필로 지냈던 시인이

<사랑>을 가슴에 안고 돌아왔다.

남쪽 바닷가의 펄펄 뛰는 기운이 여전한 근작 수필과

그만의 다정다감한 온기가 묻어 있는 시들을 모아 엮은 <사랑>은,

몇 차례 전시회도 가진 바 있는 저자의 ‘기기묘묘한’ 그림까지 곁들이고 있다.

마치 헤르만 헤세, 장 콕도, 칼릴 지브란처럼 자기 책에 보탠 그림과 사진, 시와 수필이

비빔밥처럼 잘 버무려져 꽉-차고 걸지며 웅숭깊고도 맛깔스럽다.

이것이 바로 남도의 그 절묘하다는 한정식인가!

 

임의진은 앞서 예로 든 헤르만헤세의 한국판마냥, 시와 수필과 노래, 그림, 종교적 영성을,

(헤세도 신학교 출신이다, 중도에 포기했으나… 임의진처럼 아버지 또한 목사였고…)

목가적 밭일, 세계 여행 등 어느 곳에서나 무슨 일에서나 헤세처럼 흥겹게 춤춘다.

또는 앤서니 퀸의 춤사위가 언뜻 떠오르는 희랍인 조르바를 현실 속에서 보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임의진은 아호가 둘 있는데 머물 때는 ‘어깨춤’이고 떠돌 때는 ‘떠돌이별’이란다.

 


길잡이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시인이 사는 전남 땅끝 마을 강진의 흙집은 너무 낮아서 머리를 찧기 일쑤다.

세상이 어떤 세상이라고 아직도 산에 올라가서 장작개비를 해와 아궁이를 살피고,

보통 근엄한 목사라는 직무와 관계없이, 티를 내는 일 없이 묻히고 섞이는 그다.

히피처럼 긴 머리와 수염, 털 스웨터와 환한 미소,

기존의 목사님 인상과는 아주 다른 파격의 만남이다.

 

그가 세운 남녘교회는 극히 보수적인 한국교회 지형에서 그나마 인간미가 나는 교회로 정평이 났다.

예스런 시골교회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종을 치는 종루가 아직 있으며,

장의자도 없는 나무마루에 방석을 깔고 앉는다.

성물인 십자가도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구부러진 십자가를 모셨고,

촛불을 켜서 예배를 마친다. 예배 때는 풍금 반주를 하고 찬송가와 김민기 노래를 더불어 부른다.

 

척 보아도 시인 목사의 교회당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촌티 줄줄 나는 ‘촌놈’만이 아니다.

농사일을 할 때 말고 나들이를 하는 날이면 뉴유커에 준하는 세련된 패션하며,

기성 화가들도 혀를 내두르는 그림 솜씨가 능란하고,

통기타를 안겨 주면 가수 뺨치도록 노래도 구성지다.

그런 끼 많은 그가 은둔을 고집하며 낙향거사로 오래 지냈다. 무려 십 년 세월을 그러했다.


작가이기도 한 이현주 목사는 그를 가리켜 “슬픈 개구쟁이”라 불렀다.

슬픔과 기쁨을 넘나드는 시인의 가녀린 마음과 우직한 행보를 제대로 포착한 눈썰미일 것이다.

 

번역가며 시인인 류시화는

“내가 조금 그를 아는 사람이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강가에 나가 강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하루종일 툇마루에 누워 있다가,

어떤 날은 동네 사람들과 밤이 이윽토록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고 술회한다.

 

물끄러미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일상을 그렇게 들려준다.

음악인 노영심은

“목사님은 맑은 포도주 같은 사람이다.

값비싼 포도주가 아니라 보졸레처럼 정답고 맛스러운 분이다.”고 말한다.

누구나 마실 수 있지만, 포도주의 맛을 잃지 않는 그런,

세간의 이웃으로 함께 하는 올곧으면서도 넉넉한 수행자라는 뜻이리라.

 

임의진은 오지에 파묻혀 있는 듯 하다가도 종종 월간<샘터>, <작은 것이 아름답다> 등에

탁월한 연금술사의 맛깔스런 글들을 발표했고,

가슴에 닿는 연정의 시어들을 샘물처럼 퍼다주고는 했다.

 

그의 다재다능은 경계가 없다.

음악광이기도 한 그는 선곡음반 <여행자의 노래> <보헤미안>으로

오랫동안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에서 음반매장 월드뮤직 부문 1위의 기염을 뿜어냈다.

 

친구 일철스님의 병구완을 위해 준비한 음반 <산>도 마니아 층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감성이 증폭된 아우라지가 바로 이 새로운 글집 <사랑>이다.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처음 정신’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자기 자신의 속내와 번민, 격정과 환희심을 담아낸 처음 정신이 오늘 이 <사랑>이라면

가히 반갑고 설레는 만남이 아닐 수 없으리라.

 

그는 의형제 사이이자 신비에 쌓인 언더그라운드 포크록 가수 김두수가

음악 감독으로 취입한 독집음반 <하얀새>를 지난여름에 낸 바 있다.

목소리가 부끄럽다 하여 비매품으로 지인들과 나누던 그 음반을,

<사랑>의 출간과 함께 ‘소량’ 독자들에게 선물로 삼기로 했다.

<사랑>을 서둘러 품에안은 이들에게는 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인터파크 제공]

 

 

 

 

 

 

 

::: 바닥이 빛나는 것들을 업고 :::

자작나무 숲으로 업히러 간다

나이테는 나이테를, 가지는 가지를 업고

마디 굵은 솔가지는 부엉이를 업고

곤충마저 휘어져라 업고 있다

 

그렇게 서로의 이름표를 업어주지 않았다면

서로의 체온과 슬픔을 업어주지 않는다면

바닥이 빛나는 것들을 업어주지 않는다면

어머니가 어부바 우리를 업어주지 않았다면

지금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으리

 

따뜻한 등을 껴안지도 못하였으리

나 몸무게를 줄이고 숲으로 들어간다

 

내 아이를 업고 잠재우는 여자에게로

여자가 업은 세월이

아이 하나 뿐이랴

바람 한 점 뿐이랴    - 노래 : 수니(Soon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