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카라바조 作 - 젊은 바쿠스(Bacchus)

Gijuzzang Dream 2008. 1. 2. 20:11

 

 

 

 

[명화이야기] 술 취한 관능적 남자의 모습 ‘젊은 바쿠스’

 

 


  ‘젊은 바쿠스’, 1597년경, 캔버스에 유채, 95×85,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하루에 한두 잔 정도 와인을 마시면 건망증이나 심장병을 예방하는 데 좋다고 알려지면서

지금 우리나라에는 와인 열풍이 불고 있다.

일명 신의 물방울이라고 하는 와인은

술의 개념에서 벗어나 이제 건강을 위해 하루에 꼭 한두 잔을 마셔야 하는 건강 음료다.

포도주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바쿠스 신을 상징한다.

유럽과 북아프리카, 아시아에서 포도나무 숭배를 관장했던 바쿠스 신은

가을을 상징하는 신으로 술에 취해 춤추는 추종자들을 거느린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바쿠스 신은 인간의 모습과 가장 비슷한 신이기 때문에

서양화에서는 바쿠스 신을 풍성하게 차려놓은 음식 앞에서 술에 취해 어울려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의 ‘젊은 바쿠스’는

전통적인 신의 모습보다는 인간의 모습과 가장 가깝게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젊은 신 바쿠스는

머리에 포도나무 가지로 만든 관을 쓴 채, 포도주 잔을 건네고 있다.

화면 왼쪽에는 포도주 병이 반쯤 비어 있고,

바쿠스 신의 앞에 놓인 탁자에는 사과, 포도, 석류 등이 담긴 과일 바구니가 놓여 있다.

사실적으로 묘사한 과일 바구니에 담겨 있는 썩은 과일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당시 사과에는 선악과를 상징하는 종교적 의미가 있었다.

사과를 썩은 과일로 묘사해 종교적 규칙을 무시한 이 작품은 당시 비판을 받았다.

이 작품에서는 반쯤 빈 포도주 병과

얼굴이 발그레한 신이 들고 있는 잔에 담긴 포도주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카라바조는 결실의 계절 가을을 상징하는 바쿠스 신을 전통적인 표현방법에서 벗어나

이 작품에서 획기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바쿠스 신을 술에 취해 불그스레한 얼굴과 손,

때가 낀 손톱 그리고 관능적인 입술과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묘사했는데

신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술 취한 건강한 젊은 남자의 모습이다.

이 작품의 모델은 카라바조가 로마에서 함께 살던 화가 마리오 몬티니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카라바조의 이 작품은 청년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그의 초기작 중 하나다. 로마에서 살던 시기에 제작한 이 작품은

 카라바조의 다른 작품과 달리 명암 대비가 강하지 않다.

로마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면서 살던 카라바조는 돈이 필요해 화상 발랑탱을 찾아간다.

카라바조의 재능을 아낀 발랑탱은 돈이 급한 카라바조에게

예수의 생애를 다룬 종교화를 의뢰한다.

하지만 그가 건네준 것은 ‘젊은 바쿠스’ 이 작품이었다.

관능적인 이 작품을 본 화상 발랑탱은 이 작품을 사지 않았다.

이 작품은 추기경 마리아 델 몬테가 페르디난도 메디치 1세에게 선물한 것으로

그 이후 사라졌다가 1916년 우피치 미술관 창고에서 발견되었다.
- 2007 11/13   뉴스메이커 749호
- 박희수〈작가 · 아트칼럼니스트〉

 

 

**** 바쿠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이다.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난 아들로,

술에 취하게 하는 힘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 사람들은 술에 취하는 원리를 몰랐으므로 그 힘을 바쿠스의 것으로 생각했다)

술의 사회적 역할인 문명의 촉진, 입법, 평화를 뜻하기도 한다.

 

 

 

***** 이탈리아 북부 출신의 화가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3-1609)

 

그는 아니발레 카라치와 같은 시기에 활동하였지만 고전주의의 고상함을 따르기보다는

오직 자신의 눈으로 본 것에 의지하여 추하더라도 현실을 그리고자 하였다.

이러한 카라바지오의 리얼리즘을 일반적으로 '자연주의'라 부른다.

 

카라바조는 밀라노 근처의 롬바르디 지방에서 태어났는데

이 곳은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보다 북유럽 사실주의의 영향이 강했던 곳으로

초기에 카라바지오는 이곳에서 정물화나 장르화를 주로 그렸다.

 

포도넝쿨로 관을 만들어 쓰고 포도주 잔을 건네는 그림의 주인공은

고대와 르네상스시대에 즐겨 다루어졌던 주신 바쿠스(Bacchus)이다.

그러나 볼이 발그레한 이 이탈리아의 소년은 어쩐지 신화 속의 불멸의 신이기보다는 분장한 소년같은데

화면에 바짝 다가앉은 주인공의 미묘한 시선과 내민 팔은 관객의 공간을 침범하기 때문에

보는 이들은 이 그림을 편안하게 감상하기 어렵다.

이같은 세밀한 관찰에 바탕을 둔 카라바지오의 자연주의는

압축된 공간과 강렬한 빛으로 보는 이들의 감정에 직접 호소하는 획기적인 표현방식을 구사하였다.

 

카라바조는 밀라노를 떠나 로마에 온 카라바조는

성 프란체지 교회의 콘타렐리 가족예배실 제단화를 주문 받아 본격적인 종교화를 그리게 된다.

이 그림 역시 <젊은 바쿠스> 그림과 마찬가지로 주문자에게 거절당했는데

그러나 카라바조가 그린 신앙인들의 모습이 비천하다해서

그가 당시 카톨릭 교회의 이념을 왜곡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예수의 생존 당시 그를 따른 가난한 무리들을 상상한다면

아마 카라바조의 그림이 오히려 성경에 더 가까운 전달이라고 해야 것이다.

이처럼 순진한 사람들에게 체험적으로 다가오는 종교를 강조하는 것은

당시 교회의 대중화를 추구하였던 반종교 개혁의 반영이기도 하였다.

 

동성애 성향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성격이 난폭하고 다혈질이어서 늘 다툼을 일으켰고,

사소한 놀이 끝에 동료를 살해한 경력과 잦은 투옥 등, 곡절 많은 생애를 살았던 카라바조는

평생 제자를 두거나 일가를 이루지 않았다.

그의 종교화는 인기를 끌었다고 하며, 시도하였던 혁신은 이탈리아에서 많은 추종자를 낳았으며,

스페인, 프랑스, 플랑드르 등 전 유럽에 큰 영향을 미쳐 카라바조화풍이 전 유럽으로 속속들이 퍼져나갔다.

 

17세기 로마에서 시작된 카라바조의 회화는

인접한 카톨릭 지역이었던 스페인은 물론이고 플랑드르 회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그림에서 절대적인 종교와 권력 이면의 어두운 부분이 드러나 있음을 보게 되는 것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