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지켜(연재자료)

[민통선 문화유산 기행] 6. 경기 연천군 30만년 전 세계 - 전기구석기시대

Gijuzzang Dream 2007. 12. 9. 13:58

 

 

 

 

 

(6) 경기 연천군 30만년전 세계

경기 연천군 삼곶리. 야트막한 구릉으로 올라가는 입구를 군 부대 포클레인이 마구 헤집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아, 지뢰탐지용 보호둑을 마련하는 겁니다.”
바로 앞에 수풀이 무성한 지형이 있었다.

 

연천 횡산리 용암대지. 임진강·한탄강 지역에는

이런 구석기 전기유물들이 널려있다. 연천/박재찬기자


“수풀이 무성한 곳은 절대 가지 말라”는 것은 민통선 이북지역에서는 불문율.

미확인 지뢰지대 때문이다. 수풀이 무성한 곳에 있는 문제의 미확인 지뢰를 탐지하려고,

바로 앞에 둑 같은 것을 쌓아 위험에 대비하려는 작업이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못마땅해한다.

이어진 구릉 위가 구석기 유물이 흩어진 곳.

따라서 유물 산포지를 마구 파헤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인지라

군 부대의 작업을 보면 자신의 가슴을 마구 파헤치는 것 같다.

포클레인의 굉음을 뒤로 한 채 구릉으로 올라가는 기자의 마음은 왠지 편치 않다.

넓은 구릉. 높은 지역인데 넓고 평탄한 지형이다.

동행한 한국국방문화재연구원의 조사원들은

제집 안마당 돌아다니듯 구석기 유물을 찾아 다선다.

하지만 지뢰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기자의 마음은 뜨악하기만 하다.

5분도 안됐는데, 조사원들은 구석기유물을 한아름씩 채집했다.

“이건 돌로 만든 대패이고, 이건 몸돌이고요. 어 이건 긁개네.”

그런데 저 편에서 고함이 들린다.
“이것 보세요.” 유태용씨(한국국방문화재연구원 학예실장)가 소리친다.

조사원들이 달려가더니 환호성을 지른다.
“이건 전형적인 주먹도끼네. 축하해요.”
“이런 걸 찾아야 진짜 찾았다고 하는거죠.”유태용씨가 우쭐댄다.

그럴 만도 했다. 그가 찾은 것은 전형적인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였기 때문이다.

시간을 돌려 1977년 4월.

미 공군 예후대에 근무하던 그레그 보웬 병사는

한국인 애인과 함께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애리조나 주립대에서 고고학을 전공했던 그였다.

애인(훗날 부인이 된 이상미씨)이 돌 하나를 주워 보웬에게 보여줬다.
보웬은 소리쳤다. “내가 뭘 발견했는지 봐!”

2005년 28년 만에 전곡리를 찾은 보웬의 회고.
“평소에도 구석기 유물에 관심이 많아 특이한 지형이 있으면 자세히 관찰했죠.

그런데 이곳에서 주운 돌을 보니 틀림없이 사람이 깎은 흔적이 있었어요.”
그는 범상치 않은 이 돌을 이듬해인 1978년 김원용 서울대 교수에게 보여주었다. 

주먹도끼가 바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였던 것이다.

이 발견은 고고학계의 혁명이었다.

대표적인 전기 구석기 유물인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프랑스 생 타슐 유적에서 처음 발견돼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다.

150만년 전부터 10만년 전까지 사용됐던 구석기였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모비우스의 학설이라 하여

이런 아슐리안형 석기문화는 유럽과 아프리카에만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동아시아, 그것도 한반도 전곡리에서 아슐리안형 도끼가 나온 것이다.

철통 같던 모비우스의 가설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 전곡리 유적은

훗날 구석기학의 최고 권위자 존 데즈먼드 클라크 버틀리대 교수가

“전기 구석기에 해당되는 유적”이라고 판정함으로써 세계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전곡리 유적은 그후 세계고고학지도에 당당히 등재됐을 뿐 아니라

미국 고고학 전공서적에도 포함됐다.

 

2001년 화산재 분석과 현무암에 대한 연대측정 결과

가장 오래된 석기면의 연대는 30만년 전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한반도에서 전기 구석기 유적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일본 학계의 초조감을 드러냈다.
‘한반도보다 일본 구석기 역사가 늦을 수 없다’는 그 초조감은

결국 2004년 저 유명한 후지무라의 구석기유적 조작사건으로 파국을 치닫는다.

이 사건으로 일본 구석기 역사가

70만년 전에서 후지무라 사건 이후 7만년 전(가네도리 유적)으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 24만평에 달하는 전곡리 유적뿐 아니라 임진강 · 한탄강 유역은

지금도 손쉽게 채집할 수 있을 정도로 구석기 유적이 널려 있는 곳이다.

임진강 중류지역만 해도 기자가 목격한 지역을 포함해서

연천 횡산리(11곳)와 삼곶리(5곳), 강내리(2곳) 등 무려 18곳에 구석기 유적이 흩어져 있다.

임진강·한탄강 유역은 30만년 전 구석기인들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강변을 따라 적당히 솟아있는 넓은 용암대지가 보인다면

 ‘아! 저건 구석기 유적이야’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다.

왜일까. 왜 이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이 많이 보일까.

전곡리 유적 발굴과 보존에 평생을 바쳐온 배기동 한양대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임진강·한탄강 유역은 

50만년 전 철원 · 평강에서 분출한 현무암이 흘러내려 평평한 대지를 이루고 있는 곳이죠.

이곳은 강이 흐르고 낮은 산지와 평야가 모자이크 같이 펼쳐져 있어서

인류가 생활하기 좋은 지형환경이 됐어요.”

사람이 살기 좋은 강가인 데다 현무암으로 융기된 지반 위의 퇴적층 또한 훼손 없이 남아 있어

구석기 시대 유적이 널려 있는 것이다.

거기에 6·25 전쟁 이후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이라는 점도 특기할 만한 사항.

그러면 30만년 전 이곳에 터전을 잡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한 마디로 말하면

전곡리와 횡산리, 삼곶리에 살았던 이들은 현생인류는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은 엄밀히 말하면 고인류였다.

배기동 교수는

“한반도에는 전기 구석기 중엽쯤 고인류,

즉 호모 에렉투스(직립원인)가 들어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 있다.

물론 화석인류가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국 베이징 교외 저우커우뎬(周口店)의 석회암 동굴에서

50만년 전의 원인(북경원인)이 발견된 점으로 보면 적어도 비슷한 시기가 아닐까.

그렇게 한반도에 첫 발을 내디딘 고인류는

임진강 · 한탄강 유역을 풍미했던 30만년 전에는 나름대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자르개와 긁개, 밀개로

갓 잡은 동물의 가죽을 자르고 벗기고 다듬어 뼈를 바른 뒤 요리를 해서 먹었을 것이다.

겨울엔 추위를 막으려 바람막이 움막을 지었을 것이고 먹이와 기후에 따라 이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의 인류와는 상관이 없다.

1987년 버클리의 유전학자들인 앨런 윌슨과 레베카 칸, 마크 스톤킹 등은

현생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 서열을 분석했다. 그런데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60억명의 조상은

15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한 여인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으니 말이다.

학계는 60억 인류의 어머니를 ‘미토콘드리아 이브’라 칭한다.

결국 아프리카의 반대편,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임진강·한탄강 유역은

‘우리’ 뿐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그러나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의 역사도 품고 있는 것이다.

구불구불한 만큼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임진강 · 한탄강에는

이렇게 인류 진화를 둘러싼 재미있는 수수께끼가 묻혀 있다.
- 2007년 4월 6일 경향 〈이기환 선임기자 / 연천 군남에서〉


 

 

 

 

 

 

 

 

한국인의 기원 논란 계속

지금부터 4만년 전쯤. 흥수아이가 친구와 진달래 꽃잎을 한잎 두잎 따며 장난을 치고 있다.

가까운 곳에서는 승리산인이 털 코끼리 가죽을 손보다가 흥수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흥수아이는 5세, 키는 110㎝, 승리산인의 나이는 35세이다.

충북 청원군 두루봉과 평남 덕천군 승리산에서 발견된 화석인류(흥수아이와 승리산인)를 통해

복원해본 한반도 후기 구석기인들의 삶이다.

이들은 물론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낳은 현생인류의 갈래일 것이다.

임진강 유역에도 이런 현생인류가 살고 있었다.

이보다 앞서 한반도는 30만 년 전 전기 구석기인들이 삶의 터전이었지만,

이들은 현생인류와는 관계 없는 ‘고인류’다.

고인류가 사라진 훨씬 뒤, 흥수아이와 승리산인 같은 현생인류는

한반도 여기저기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전기 구석기의 전형인 아슐리안형의 주먹도끼도 발견되지만

훨씬 정밀한 세석기를 사용하는, 즉 현생인류가 사용했던

후기 구석기 시대의 석기들도 무수히 확인되고 있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최근 출토된 구석기유물.


그렇다면 한번 곱씹어보자.

현생인류의 조상격인 승리산인과 흥수아이, 즉 호모 사피언스 사피언스(근대 호모 사피언스)가

한반도에서 확인되었으니 이들이 한국 사람의 직계조상이 아닌가.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현재의 우리-한국인이 존재하고 있을까.

그동안 우리는

북방기원설, 시베리아 혹은 바이칼 호수 기원설, 남북혼합설, 요령 자생설, 본토기원설 등

한민족의 기원에 대하여 많은 학설을 들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한민족의 기원을 북방에 두고 있으며,

이들이 신석기나 청동기 시대에 한반도로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다는 설이 주류의 학설로 돼 있다.

요즘엔 이 북방 기원설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신석기인이나 청동기인들이 한민족의 기원이라면,

우리와 같은 현생인류인 흥수아이와 승리산인은 과연 누구냐는 것이다.

한국인의 기원을 말할 때 왜 우리는 이들을 빼놓는 것일까.

더욱 궁금한 것은 한반도에서 혹독한 빙하기를 버텨온 흥수아이와 승리산인 같은 현생인류는

왜 신석기 시대(약 1만년 전부터)가 되면서 홀연히 사라졌는가.
기후가 따뜻해져 살기 좋아졌는 데도 어디로 떠나갔는가.

추위를 따라 북상한 동물만을 정신없이 쫓아가기만 했을까! 온통 수수께끼다.
〈차재동 / 한국국방문화재연구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