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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미륵전 미륵불

Gijuzzang Dream 2011. 12. 21. 05:33

 

 

 

 

 

 

산사 미륵전 미륵불

 

 

 
 1911년 촬영한 것으로

 1917년 발간한 ‘KOREAN BUDDHISM’에 실린 금산사 미륵부처님.

 

현재 금산사 미륵전의 미륵부처님

 
 
法衣와 손모습 현재와 차이
  
1934년 화재 이전 모습, 가장 오래된 사진 ‘확인’
 
 
천년고찰 김제 금산사 미륵전 미륵부처님 100년 전 모습이 확인됐다.

 

미국인 역사학자 프레드릭(Frederick)이 지난 1911년 촬영한 것으로

1917년 발간한 에 실린 흑백사진이다.

현존하는 금산사 미륵부처님 사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역사 문화적 가치가 높다.

 
프레드릭이 촬영한 이 사진에 따르면

미륵전 미륵부처님은 지금과 달리 좌우협시불과 거의 같은 크기이다.

현재 협시불의 높이가 8.79m이기 때문에 100년 전 금산사 미륵불은 9m 정도 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륵부처님의 수인(手印)도 차이가 있다. 현재 부처님은 오른손이 왼손보다 높게 올라가 있다.

하지만 1911년 촬영된 사진에는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부처님 어깨까지 올라와 있다.

 

미륵부처님의 법의(法衣)도 지금과는 다르다.

프레드릭의 사진을 살펴보면 주름이 아래를 향해 고르게 되어 있는데 비해,

현재는 윗부분이 가로 형태로, 아랫부분이 다리 선을 따라 세로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금산사 미륵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지금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1934년 실화(失火)로 미륵부처님의 법체가 일부 손상된 후 복원하는 과정에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1938년 진행된 복원에는 근대조각의 비조(鼻祖)로 손꼽히는 김복진(1901~1940)이 참여했다.

화재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미륵부처님이 목불(木佛)이 아닌 소조불(塑造佛)이었기 때문이다.

김복진이 복원한 미륵불에 대해 전문가들은

“거대한 입상이지만 균형과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평가한다.

 
김복진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에 나섰다가 옥고를 치렀다.

수감 중에 불교에 귀의한 김복진은 출옥 후 불상 조각에 적극 나서

금산사 미륵불, 법주사 미륵불, 계룡산 소림원 미륵불을 조성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금산사 미륵불은 20세기 근대한국불상의 걸작으로 정평이 나있다.

 
한편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가 미륵전을 조성할 당시 미륵장육상을 모셨다고 한다.

이후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해 금산사가 전소(全燒) 됐으며,

1601년 수문대사(守文大師)가 중창불사를 하면서 부처님을 다시 봉안했다.

그렇기 때문에 프레드릭이 촬영한 사진은 수문대사의 중창 당시 모셔진 부처님일 가능성이 크다.

 

- 기록으로 보는 한국불교 100년 연재

불교신문 2700호/ 2011년 3월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