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일상)

배려와 양보, 한국형 리더십의 핵심이다.

Gijuzzang Dream 2011. 12. 20. 20:21

 

 

 

 

 

 

 

 배려와 양보, 한국형 리더십의 핵심이다.

 

 

 

 

우리 옛사람들의 리더십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전통 리더십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라 각각의 견해가 다르지만

필자는 배려와 양보가 우리 전통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한국의 전통 리더십을 선비정신이라고 표현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 선비정신의 핵심이 바로 배려와 양보가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의 전공이 조선의 22대 국왕 정조이다 보니

그와 관련된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배려와 양보가 얼마나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다산선생의 자찬묘지명에 나오는 이야기다.

 

1795년(정조 19) 윤2월의 화성행차를 마치고 창덕궁으로 돌아온 정조는

신하들과 더불어 세심대에서 산책을 하고 술잔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정약용을 어막으로 들어오게 한 후 시를 쓰도록 하였다.

하지만 임시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보니 정약용이 시를 쓰기에는 공간이 좋지 못하였다.

아무래도 기울어진 땅바닥에 작은 책상을 놓고 쓰다 보니 좋은 글이 나오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때 정조는 자신의 책상으로 와서 시를 쓰도록 하였다.

임금이 자신의 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당연히 정약용은 그럴 수 없다며 한사코 나아가지 않았고,

정조는 그런 정약용을 설득해서 자신의 책상에서 시를 쓰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정조의 배려였다.

아랫사람들에게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것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 아닌가 한다.

 

 

 

손해 보면서 없는 자 돕는 것이 진정한 리더

 

필자가 정조의 어록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손상익하(損上益下)’란 말이다.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로

주역의 본뜻은 위에 있는 것을 덜어서 아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라는 것이다.

즉 공평과 연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본래의 뜻을 살리면서 정조는 약간 다르게 해석하였다.

“손해는 윗사람이 보고, 이익은 아랫사람이 보아야 한다.”라고 말이다.

가진 자들이 조금 더 손해를 보는 것이 아랫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며

그래야 세상은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정조의 생각이었다.

오늘날 가진 자들이 과연 손해를 보려고 할지 모르겠으되

정조와 그를 따랐던 사람들은 손해를 자신들이 먼저 보고자 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가 바로 채제공과 정약용이었다.

다산시문집을 살펴보면 조선 후기의 당쟁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바로 복식에 대한 내용이다. 관리들이 입는 관복이 각 당파마다 차이가 있었다.

노론의 복식이 다르고 소론의 복식이 다르고 남인 역시 달랐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실제 존재하였던 것이다.

탕평을 하고 싶었던 국왕 정조는 한 쪽이 희생하지 않고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채제공, 이가환, 정약용 등 세 명을 불러서 남인이 희생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들이 비록 정조의 사랑을 받고 정조를 위한 개혁정책을 지원하는 인물들이었지만

이 제안은 그리 쉽게 받아들일 내용이 아니었다.

조선 후기 당쟁은 다산의 표현대로 한 마을에 살아도 당파가 다르면 평생 인사도 안하는 형편이었으니

정조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세상의 평화를 위해 이들은 정조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남인들의 지도급 인사들과 협의하여 마침내 노론의 복식으로 변경했다.

소론 역시 대세에 따라 통일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양보가 거꾸로 세상을 이끌어가고 평화롭게 하는 리더십의 전형이다.

자기 것만을 고집하여 유지하는 것이 처음에는 승리하는 듯 보이지만 백성들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백성들의 지지없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것은 불가한 일이다.

그래서 양보를 하는 사람, 손해를 보며 자신보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진정 리더인 것이다.

 

 

 

털모자 하사한 정조, 화성을 걸작으로 만든 비결

 

그런 측면에서 수원 화성(華城) 건설을 바라보자.

세계문화유산 화성은 우리나라에 있는 그 어떤 문화유산보다 민본주의 정신에 입각해서 만든 성곽이다.

정조는 성을 쌓다가 다친 막일꾼부터 기술자에 이르기까지 화성 축성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정당한 급료를 주었다.

더불어 거중기, 녹로, 유형거 등 과학기기를 이용하여 10년 계획한 화성을 3년도 채 되지 않아 완성하였다.

 

이처럼 화성 축성 과정에서 모든 기술자와 일꾼들에게 임금을 지불한 것은 너무 잘 알려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정조가 기술자와 일꾼들에게 한겨울에 털모자를 선물한 일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정조는 무더위를 견디기 위해 ‘척서단(滌署丹)’이라는 약을 지급하였고,

노동에 힘들어하는 관련자 모두에게 ‘제중단(濟衆丹)’이라는 영양제를 하사하였다.

축성 기술자 및 인부들에게 이와 같은 애정을 보여주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일은 바로 털모자를 하사한 일이다.

한겨울에 털모자를 통해 머리와 귀를 동장군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은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그까짓 털모자를 하사한 것이 뭐 그리 대수라고 정조의 특별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정조의 털모자 하사는 참으로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정조가 얼마나 화성축성에 참여한 백성들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한겨울에 정3품 당상관 이상만이 귀마개를 할 수 있었다.

토끼털로 만든 귀마개는 정3품까지 올라간 나이 많은 관료들의 건강을 지켜주었던 귀한 물건이었다.

더불어 털로 만든 모자 역시 이들만이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지금이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조선시대는 모자를 아무나 쓸 수 없었다.

물론 유득공의 문집에 나오는 것처럼,

정3품 당상관 아래에 있는 일부 관료들이 건방지게 귀마개를 한다고 개탄하지만

그래도 일반 평민들은 절대로 쓸 수 없는 것이 바로 털모자였다.

 

지리산과 설악산 등에 호랑이를 잡는 포수들이 호랑이 가죽으로 털모자를 만들어 쓰는 것이 일부 있었지만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였다. 이처럼 감히 평민들은 만져보지도 못하는 털모자를

겨울에 성곽을 쌓는 기술자와 인부들에게 나누어준 것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만큼 정조가 화성에 대한 애정과 축성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당시 화성유수 조심태는 정조의 털모자 하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장계를 올렸다.

“공장ㆍ조역배(助役輩)들은 모두가 말하기를 ‘추위를 당하여 힘들여 일을 하고도 다행히 질병을 면하게 된

것은 이번 임금님의 따뜻한 효유(曉諭: 알아듣게 타이름)가 하늘로부터 거듭 일러 친절히 가르치시고

지성스러우신 때문이다. 의복 1벌, 모자 하나가 추위를 전혀 걱정 없게 한다’ 하였습니다.”

얼마나 따스한 국왕의 마음인가!

 

결국 화성은 정조의 따스한 마음과 정조의 마음을 이해한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세계 최고의 걸작으로 탄생된다.

정조의 깊은 배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신하들의 양보가 새로운 개혁의 터전인 화성을 만든 것이다.

 

결국 리더는 배려와 양보가 있어야 한다.

너무도 간단한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는 날이 갈수록 배려와 양보가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탐욕만이 지배한다. 배려와 양보가 없는 한 절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 2011년 12월 제41호, 리더십 에세이, 김준혁 교수(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 한국형리더십개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