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시작 입동(立冬)
지난 주말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역대 11월 중 최고치인 25.9도까지 올라갔다.
초여름이 절로 생각나는 날씨였다.
11월 달력에 뚜렷이 새겨진 입동(立冬)과 소설(小雪)이 초라하게 느껴질 법한 날씨였다.
하지만 아무리 초여름 날씨여도, 11월 8일, 절기상 입동(立冬)은 엄연한 겨울의 시작이다.
입동은 말 그대로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날이고, 소설(小雪)은 첫눈이 내린다는 날을 뜻한다.
이처럼 24절기는
한 달에 두 번씩 매년 같은 날, 혹은 하루 차이를 두고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는 ‘계절의 좌표’다.
여기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물음 한 가지.
24절기가 ‘계절의 좌표’라는데 겨울의 시작인 오늘은 왜 이렇게 따뜻할까.
이와 같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귀찮더라도 24절기가 무엇인지 알아야만 한다.
“24절기는 농사와 관련됐다”는 사실 외에
24절기에 대해 속 시원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24절기는 기원전 중국 주나라 때 만들어진 재래 역법이다.
재래 역법이란 예전부터 전해 내려온 시간이나 날짜의 순서를 매기는 방법을 의미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음력을 통해 날짜를 셌다.
음력은 달의 움직임을 보기 때문에 날짜를 세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는 농경시대로서 기후 예측이 필수적이었지만
음력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일어나는 기후의 변화를 반영할 수 없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중국인들은 지구의 태양 공전 주기를 24등분해 지구가 태양을 15°만큼 돌 때마다
황허강 주변 기후를 나타내는 용어를 하나씩 붙여 24개의 절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절기와 실제 날씨가 맞지 않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벌써 풀렸을지도 모르겠다.
중국 황허강 주변은 제주도와 부산 사이쯤에 위치한 따뜻한 남쪽 지역이다.
따라서 절기에서 의미하는 계절적인 현상은 서울과는 대략 보름 정도의 시간적인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즉, 절기상 입동이 와도 우리에겐 보름 후에나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이 와도 우리 개구리는 동면 중인 것이다.
이처럼 24절기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무궁무진한 이야기와 풍습 등이 담겨 있다.
마치 한 권의 역사책과도 같다.
오늘은 겨울의 시작 입동이다.
이를 맞아 한 달에 2번씩 알게 모르게 찾아오는 24절기에 대해 알아볼 예정이다.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24절기 안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4절기 한 눈에 이해하기
24절기(節氣) | |
봄(春) |
여름(夏) |
입춘(立春) : 봄의 시작 우수(雨水) : 비가 내리고 싹이 틈 경칩(驚蟄) : 개구리가 잠에서 깸 춘분(春分) : 낮이 길어짐 청명(淸明) : 하늘이 차츰 맑아짐 곡우(穀雨) : 농사비가 내림 |
입하(立夏) : 여름의 시작 소만(小滿) : 본격적인 농사 시작 망종(亡種) : 씨 뿌리기 시작 하지(夏至) : 낮이 가장 긴 날 소서(小暑) : 더위의 시작 대서(大暑) : 더위가 가장 심함 |
가을(秋) |
겨울(冬) |
입추(立秋) : 가을의 시작 처서(處暑) : 더위가 식음 백로(白露) : 이슬 내리기 시작 추분(秋分) : 봄이 길어짐 한로(寒露) : 찬이슬 내리기 시작 상강(霜降) : 서리가 내리기 시작 |
입동(立冬) : 겨울의 시작 소설(小雪) : 얼음이 얼기 시작 대설(大雪) : 큰 눈이 옴 동지(冬至) : 밤이 가장 긴 날 소한(小寒) : 가장 추운 때 대한(大寒) : 겨울의 큰 추위 |
도둑이 될 뻔한 선비 입춘 (농사일을 준비하는 우수)
비를 내리는 할아버지 경칩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
신성한 불을 일으키는 날 청명 (나무에 물이 오르는 곡우)
이 세상에서 가장 넘기 힘든 보릿고개 소만(여름이 오는 입하)
재미있는 기우제 하지 (거두고 뿌리는 망종)
개와 개장국 소서 (장마가 오는 대서)
옥황상제를 흉내 낸 백중 처서 (가을이 오는 입추)
도끼로 제사를 지낸 나무꾼 백로(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
산에 올라 단풍놀이를 즐기는 날 한로(서리가 내리는 상강)
옛 사람들의 겨울 준비 입동 (땅이 얼기 시작하는 소설)
서낭당 앞에 쌓아 두는 돌 대설 (팥죽을 쑤어 먹는 동지)
일 년 중 가장 추운 날 소한 (일 년 중 가장 추운 대한)
24절기를 모두 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단순히 암기하려고 하면 금방 잊기 마련이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을 이해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24절기를 쉽게 외우거나 기억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24절기는 계절을 구분하기 위해 만든 역법이다.
태양의 움직임에 맞춰 365일을 약 보름간격으로 24등분한 것이 24절기다.
24절기는 다시 12절기(24절기에 속하는 또 다른 절기)와 12중기로 나뉜다.
한 달에 2번 속해있는 24절기 가운데 4~8일 사이에 오는 것이 절기, 12~23일에 오는 것이 중기다.
11월을 예로 들자면 입동이 절기, 소설이 중기인 셈이다.
24절기인 만큼 4계절은 6개의 절기로 구성된다.
각 계절의 시작에는 설 립(立)자를 붙여
입춘(立春), 입하(立夏), 입추(立秋), 입동(立冬) 등 4립으로 구분한다.
낮과 밤의 길이, 즉 태양이 세상을 비추는 길이에 따라서
춘분(春分), 하지(夏至), 추분(秋分), 동지(冬至) 등 4절기로 구분을 했다.
춘분과 추분은 봄과 가을 밤낮의 길이가 똑같은 날을 의미하고,
하지는 낮이 가장 긴 날,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을 의미한다.
계절의 시작과 납과 밤의 길이를 뜻하는 8개의 절기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16개 절기는 계절의 변화로 인해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의미한다.
가령 경칩(驚蟄)은 개구리가 겨울 잠에서 깨는 시기를, 상강(霜降)은 서리가 내리는 시기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자연의 변화를 인간의 생활에 접목, 상징하는 절기도 있다.
소만의 경우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것이 1차적인 뜻이지만,
대개는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는 절기로 통하기도 한다.
이처럼 24절기는 계절의 변화로 인한 환경적, 실생활적 변화의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외우기보다는 그 뜻을 잘 헤아린다면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다.
11월의 절기, 입동(立冬)과 소설(小雪)속 사람 이야기
만약 지난 주, 혹은 이번 주에 김장을 했거나 예정 중이라면 탁월한 선택이라는 말을 듣기에 충분하다.
예로부터 “입동이 지나면 김장도 해야 한다”는 속담이 있기 때문이다.
입동 전후에 김장을 해야 제 맛이 난다는 의미인데,
입동이 한참 지나면 배추가 얼어붙거나 싱싱한 김장감이 없으며 일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이처럼 예로부터 24절기는 단순히 기후의 예측이 아니라
일상 생활 깊숙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는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입동에는 김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풍속이 있다.
입동에는 '치계미(雉鷄米)'라고 하여 마을 노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미풍양속이 있다.
본래 '치계미'란 사또의 밥상에 올린 반찬값으로 받는 뇌물을 뜻하는데,
마을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데서 나온 풍속이란 설도 있다.
올해 소설은 11월 23일이며, 20번째 절기로서 첫눈이 내리는 날을 의미한다.
흔히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고 말한다.
이 시기에 날씨가 추워야 다음 해 보리 농사가 잘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빚을 내서라도 추위를 사온다는 뜻으로
겨울 보리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는 선조들의 마음이 담긴 속담이다.
이처럼 절기가 포함된 속담에는 선조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선조들의 생활과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역사와도 같다.
다가오는 11월의 두 절기를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책으로 살펴보는 24절기의 의미
24절기는 자연을 관찰한 선조의 지혜임과 동시에 삶의 일부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농사를 짓던 선조들에게는 기후 변화의 예측은 매우 중요한 과제였고
그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역법이다.
사람들은 입춘이 되면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소만이 되면 모내기를 시작했다.
절기에 맞춰 농사를 짓는 것뿐 아니라 관혼상제를 치르기도 했고, 각 절기마다 미풍양속도 존재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24절기>는 24절기에 얽혀 있는 선조들의 삶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24절기에 담긴 조상들의 지혜와 삶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역사공부가 될 것이다.
24절기는 자연의 운행이자, 우리네 삶이다.
따라서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삼라만상을 열치다 - 한시에 담은 24절기의 마음>은 국문학자 김풍기 교수가
24절기의 모습이 담긴 한시 작품들을 골라 엮어낸 에세이다.
24절기에 얽힌 저자의 어린 시절 추억과 에피소드로 편안하게 시작해
절기에 맞는 한시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책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시인들의 다양한 한시와 함께 24절기를 문학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2011.11.08
- 인터파크 도서/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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