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 명성황후 제사 상차림서 잊혀진 우리 음식 177종 발견
'나복황볶기탕' '조아승' 등 궁중음식 매뉴얼 '발기' 찾아
1920년 4월15 일 고종의 혼백을 모신 효덕전에서 다례를 행할 때 들어간 음식목록을 담은 다례 발기. |
고종 황제(재위 1863~1907)와 그의 비 명성황후(1851~1895)의 장례기간과
사후 절기별 제사 때 바쳤던 궁중음식 498종의 명칭을 적은 목록 문서인 '발기'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특히 이 발기들에 기록된 궁중음식들 가운데
'속금배차탕'(배추탕의 일종) '잡과감태밀점증병'(여러 재료가 들어간 찐떡) 등 170여 종이
현재 전하는 문헌에 이름이 나타나지 않은 것들로 밝혀져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경남 진주 경상대 도서관은 지난 2002년 한 재일동포가 학교에 기증한 고문헌 자료들 중에서
1895년부터 1920년대 초까지 고종과 명성황후의 빈소 · 영전에 바친 음식 목록 문서인 발기류 205점을
최근 찾아냈다고 13일 밝혔다.
이 발기류는 이 학교 국문학과 박용식 교수와 한국기술교육대 정재영 교수 팀이
3년여 간 검색한 끝에 확인한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바친 음식 목록인 '상식발기'와
절기마다 다례 때 올린 음식 목록인 '다례발기'로 나뉘어진 것이 특징이다.
당시 올린 궁중 제사음식 498종의 명칭과 함께 음식을 바친 날짜, 제사 장소 등을
두루마리 종이에 궁서체 한글로 적었다.
음식을 준비한 상궁, 궁녀들 사이에서 '제례 음식 매뉴얼'로 돌려가며 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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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복황볶기탕'(무 볶음 탕), '골도가니 조리니(조림)', '진계탕'(닭), '염고도어'(염장 고등어), '티각증(찜)' '잡과임자설고증병 · 잡과쵸두임자설고병'(높이 쌓은 고임떡의 일종으로 추정), '조아승'(미상), '임자말간졍'(과자의 일종), '부감 · 단행'(미상의 과일) 등 재료별 유형별로 다양하다.
또 오늘날 제사상에는 올리지 않는 일상 반찬인 고등어가 올라갔고, 낯선 떡 이름들이 40개 이상 유난히 많이 확인되는 점도 특이하다.
이밖에 1895년 10월 을미사변으로 시해된 명성황후의 빈전(상가)이 설치될 때와 1달 뒤 황후의 관에 왕태자가 글씨를 써서 예를 표시하는 의례가 진행될 때에 각각 33그릇, 55그릇이나 되는 막대한 분량의 궁중음식들이 올라간 사실도 보인다.
정재영 교수는 "이번에 찾은 발기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 초기인 1910~20년대 조선왕실 궁중 제사음식의 현황을 상세히 보여주는 획기적인 사료"라며 "정월대보름, 삼월 삼짇날, 단오, 말복, 칠석, 추석 등의 절기마다 고인이 살아있을 때처럼 정성껏 음식상을 차려 올렸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궁중요리 전문가인 한복려씨는 이번 발견에 대해 "궁중음식들은 그동안 잔치 음식들이 주로 알려져왔던 만큼, 제사·일상음식 목록의 발견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하나의 궁중음식이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 왔던 사정을 감안하면,
발견된 음식 명칭들을 실제 음식 내용물과 비교하면서 좀더 정밀하게 고증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재까지 전해져온 기존의 궁중음식 발기는 모두 162점.
대부분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김치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한편 정재영 · 박용식 교수는 22일 경상대에서 열리는 배달말학회에 상세한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 2011.10.13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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