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조선이 담지 못한 '부용꽃'
"내 어찌 이 땅에 아녀자로 태어나 이 작은 틀 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던고.
죽어 다시 태어나면 저 너른 중원천지를 말 타고 달리는 남정네로 태어나리라."
천재도 과하면 독이 되는 것인지, 조선 중기 천재 여류 시인 허난설헌은
그 독(毒)으로 얻은 빛난 대가로 오랏줄로 꽁꽁 묶여 냉랭한 별채에 갇히고 소외당했다.
소설 <난설헌(다산책방)>은 이런 불우한 천재 허난설헌의 일생을 담아낸 작품이다.
시인으로서의 생과 여자로서의 생.
이 두가지 행로 어디에도 난설헌은 오롯이 자신의 이름으로 살지 못했다.
남편이 햇빛 찬란한 양지밭과 같지 않았기에 여자로서의 생에 늘 잿빛 어둠이 길게 드리웠고,
시인으로서도 그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해 시는 늘 한줌의 그리움으로 애달팠다.
소설 속에는 27년 짧은 생 동안 명주실을 뽑아내듯 써내려간 난설헌의 시들이 알알이 박혀있다.
종이와 붓만 있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써 내려간 시는
오직 여인에게만 한없이 가혹했던 조선을 향한 부르짖음처럼 여겨졌다.
양반가의 여성에게조차 글을 익히도록 하지 않았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
시를 쓰는 며느리가 달갑지 않았던 시어머니.
8세 때 이미 신동으로 소문난 아내 곁에서
별다른 재기 없는 자신을 자학하며 바깥으로 돌기만 하는 통 좁은 남편.
어깃장으로 서로 할퀴는 부부사이. 애뜻함이든 미움이든 눈길은 어긋나고,
난설헌의 진심은 반사되고 부서지기만 했다.
명주실을 뽑아내듯 영혼의 부르짖음으로 써내려갔던 시
난설헌은 꽃다운 젊은 시절 15세 조혼을 한 뒤 엄격한 법도에 눌려 일생 문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에 더해 시집살이의 고됨은
차라리 사회활동이 자유롭고 마음껏 자연과 창(唱)과 문(文)을 벗 삼아 사는 기녀의 삶이 낫겠다 싶다.
사간헌의 영수인 대사간인 아버지 허엽과 따르던 오빠 허봉의 잇따른 객사로도 부족해
허난설헌은 딸과 아들을 차례로 잃었다.
살림은 뒷전이고 서책이나 팔랑거리며 기녀들이나 하는 시나 나불대는 어미에게 물들 수 있다는
시어미의 엄혹한 규제 속에 제 자식 한 번 품에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했던 난설헌이었다.
이때의 슬픔을 그녀는 '곡자(哭子)'’라는 시로 남겨놓았다.
지난해 사랑하는 딸 여의고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 잃었네
슬프디 슬픈 광릉 땅이여
두 무덤이 마주보고 있구나
백양나무에 소슬한 바람 불고
도깨비불은 무덤가 나무 밝히네
종이돈 살라 너희 혼을 부르고
정화수를 올려 제사를 지낸다
너희 넋은 응당 오누이임을 알지니
밤마다 서로 어울려 놀겠지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어찌 잘 크기를 바랄 수 있으리오
부질없이 황대사를 읊조리고
피눈물 흘리며 소리 죽여 슬퍼한다.
- 허난설헌의 시 '곡자(哭子)'
손에 잡힐 듯 다가오지만 손가락 사이로 물처럼 새나가버리는 아이들이 그미의 가슴에 사무친다.
후드득, 뺨을 적시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그는 눈을 뜨고 일어나 서안을 끌어당긴다.
어느새 먹물이 말라버린 붓은 빗금 한 획도 그리지 못하고 마른다.
물처럼 새고, 먹물같이 사위는 것들…뜨겁고도 세찬 한숨이 토해진다. -소설 <난설헌> 중
소설 <난설헌>을 통해 다시 태어난 허난설헌.
저자 최문희 씨는 가슴에 돌덩이처럼 얹히며 마음에 박혀버린 허난설헌을 불러냈다.
저자는 작품을 쓰는 내내 난설헌과 소통했던 날들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간다고 고백했다.
귓전에 속삭이던 말들이 오롯이 한 권의 소설로 남았다고 전했다.
저자는 <난설헌>으로 혼불문학상을 탔다.
밋밋하게 자라난 창가의 난초
줄기와 잎새가 어찌 그리도 향그러웠건만
가을 바람 한바탕 흔들고 가니
가을 찬 서리에 서글프게도 떨어지네
빼어난 맵시 시들긴 해도
맑은 향기 끝끝내 가시진 않으리라
너를 보고 내 마음이 몹시 언짢아
눈물이 흐르며 소맬 적시네.
- 난설헌
난설헌의 세 가지 한(恨)…여자, 조선, 그리고 남편의 아내
“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난설헌의 너무 영민함도, 너무 다정함도, 지나친 나약함도 닫힌 세상이었던 조선은 배겨나지 못한 듯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요염하고 방만한 백일홍의 이미지와
단아하고 청초한 난설헌의 모습이 자주 오버랩된다.
껍질이 없어 미끄러운 나무 백일홍은 있는 그대로 발가벗고 서 있다.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것은 이름이 없는 여성이란 뜻인지.
칠거지악으로 겹겹이 억압하고 수 겹의 속곳으로 정절을 강요당하는 조선의 여인과 백일홍이 대비된다.
아련히 백일홍을 바라보는 난설헌의 눈빛이 선연하다.
규제와 억제된 삶의 한 모서리를 허물고 싶은 눈빛이다.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어렸을 때 이름이 초희(楚姬, 1563∼1589)였다. 자는 경번(景樊).
그녀는 ‘감우(感遇)’라는 시를 짓고 ‘허난설헌’이라는 당호를 지었다.
"난설헌이라…참으로 대단한 자기애를 지녔구나. 자고로 남자나 여자나 자아가 강하면 외로운 법…
아직은 어린 나이인데 아름다운 난초의 초췌해지는 추이를 그린 것은 너무 조숙함이 아닌가."
이름 없는 여인으로 살아야 마땅한 시대에 과도한 자아의식과 자기애를 가지고 성장했으니,
난설헌의 일생은 불행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다.
독자들은 최문희의 <난설헌>을 읽다보면 후드득 자목련이 붉은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민요의 슬픈 가락이 떠오르고, 고조 없는 시 한 수를 읊고 싶어질 수도.
가이 없는 보랏빛 절망을 만날 것이다.
한편 제 1회 혼불문학상 대상의 영예를 얻은 최문희 씨는
77살 늦깎이 작가임에도 힘찬 필력과 뛰어난 묘사 기법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허난설헌의 삶과 문학을 다룬 소설 <붉은 빗방울>로
정통적인 묘사 기법을 통해 허난설헌을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제1회 혼불 문학상 대상을 차지했다.
당시 심사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박범신씨는
"디테일하고 성실하게 이야기의 육체를 만들어냈다.
그 시대를 살아간 한 여자의 삶을 매우 꼼꼼하게 바느질한 느낌이다."라고 평가했다.
- 좋은 책의 발견 북스커버리
- 2011. 10.14 아이뉴스24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자, 난설헌
"나는 '우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고 싶었다.
시대를 건너뛰면서 두리번거리다가 조선의 시인 난설헌에게 머물렀다.
그것은 발견이었고, 계기였을 것이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외모와 빛의 알갱이처럼 영롱한 영혼의 소유자,
세속에 때 묻지 않은 순수, 원망이나 미움, 화를 자신의 내부로 끌어당겨,
시(詩)라는 문자를 통해 여과시켰던 난설헌이야말로 아름다움의 표상이었다."
- 소설 '난설헌'의 저자 최문희 씨의 말
현대 여성들이 유난히 사랑하는 조선의 여인들이 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이 바로 그들이다.
뛰어난 예술가적 기절을 타고났으며 꽃처럼 아름다웠던 여인.
유교적 여성상에 갇히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가졌던 대표적인 여인들이다.
약 60년 앞뒤로 태어난 두 여인은
모두 양반가에서 태어나 학문을 배워 부덕(婦德)과 교양을 갖춘 현부로 잘 자랐다.
특히 학문에 대해 자유로운 가풍에서 자란 허난설헌은
8세에 광한전 '백옥류상량문'을 지어 신동으로 소문이 났다.
신선세계에 있는 광한전에 백옥루를 짓는 상상을 하고 그 건물의 상량문을 쓴 것이다.
허난설헌의 이러한 글솜씨는 도교에 정통한 아버지 허엽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출가 후 두 여인은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두 여인의 외가가 우연처럼 강릉으로 동향이지만
결혼 후에도 어머니 이씨와 함께 오죽헌에 살면서 화가로서의 삶을 누렸던 사임당에 반해
난설헌은 빛도 안 드는 냉랭한 별채에 꽁꽁 묶여 시댁 식구들에게 일생 소외됐다.
三從之禮를 따르자니 몸 편할 날 없어
푸른 하늘 원망하니 죽은 낭군 탓이로다
서러워 백화정에 올라 바라보니
꾀꼬리 울어 대고 버들 푸른 봄은 저문다.
-백화당 부인
최문희 작가의 <난설헌(다산책방)>을 통해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난설헌'은
현대 여성들을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동시에 홀로 별채 툇마루에 걸터 앉아있는 외로운 한 여인을 떠올리며 뜨거운 한숨을 짓게 한다.
여인이라는 이유로 조선에게 배척당하고 엄혹한 규제 속에 자유롭지 못했으면서도
억압된 자아의식을 되살리며 자신을 사랑한 난설헌은 현대 여성에게 새로운 삶의 지표를 제시한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碧海浸瑤海)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靑彎倚彩彎)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芙蓉三九楹)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紅隋月霜寒)
-허난설헌이 결혼 후 자신의 아픔을 노래한 시
이 시에 등장하는 '난새'는 남조 송나라 범태의 '난조시서'에 나오는 새로 허난설헌 자신을 빗댄 것이다.
계빈왕에게 잡힌 난새는 새장에 갇혀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부를 운명에 처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삼 년 동안이나 한 번도 울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계빈왕이 거울을 비춰 난새가 스스로 자신을 보게 했다.
난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슬피 울다가 결국 거울로 날아가 부딪혀 죽는다.
비단 띠 비단 치마 눈물 쌓였음은
임 그리워 방초로 한 함이로다
거문고 옆에 끼고 강남 곡 풀어내니
배꽃은 비에 지고
대낮에도 대문 닫혀있네.
달 밝은 가을에 가을이 깊어 가고
둘러놓은 병풍 처절한데
서리 내린 간밤에 기러기 알리
거문고 타고 있으나 임은 오지 않고
연꽃만 연못위에 하염없이 지네.
남편(안동 김씨, 김성립)과 불화, 친정 집안(부-초당 허엽, 동생-허균)의 몰락,
금쪽같은 자식을 둘이나 잃은 불행에서 오는 고뇌와 슬픔을 시작(詩作)으로도 풀 수 없었던 난설헌이었다.
그 절망과 애달픔을 천재적 재능으로 표출하는 것조차 원천적으로 봉쇄된 자신의 상황을
시 한 편으로 남기고 허난설헌은 스물일곱 짧은 생을 마감한다.
허난설헌은
조선이 담기 어려운 최고의 페미니스트이며 조선 여성 중 독자적인 성취를 이룬 인물이다.
그는 꽃다운 스물일곱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묵묵히 작품을 남겼다.
그가 남긴 시와 문장이 집 한 간에 가득 찼다고 하니, 얼마나 불꽃같은 시혼(詩魂)인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모두 불태우라고 명했다.
난설헌은 못 다한 것들의 아쉬움, 객사한 아버지와 오라버니,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떠난 아이들,
그 모두를 가슴에 묻고 미련도 연민도 훌훌 떨쳐버렸다.
토닥토닥 분바르고 큰머리 만지자니
소상반죽 피눈물의 자국인 듯 고와라
이따금 붓을 쥐고 초생달 그리다보면
붉은 빗방울이 눈썹에 스치는가 싶네
-허난설헌이 덧없는 생과 불행한 결혼생활을 노래한 시
추천의 글
<난설헌>은 클래식한 소설작법을 세밀하고 성실히 쫓아간 작품이다. 애련하고 훈훈하다.
정통소설미학이 해체되다시피 돼가고 있는 요즘, 시대의 굴곡을 따라 산 한 여자의 인생을
이만큼 꼼꼼한 바느질 솜씨로써 이야기의 육체를 완성하긴 쉽지 않다.
고(故) 최명희 작가가 그랬듯이, 작가의 말을 믿어도 좋은 소설이다. _ 박범신(소설가)
지붕 밑에 갇힌 삶을 살며 생명을 기름 삼아 시를 짓고 다른 세계로 망명하듯 요절한 허난설헌의 생애를
조선 여인의 생생한 생활상 안에 담아 섬세하게 직조해냈다.
한 문장, 한 문장, 도도한 열정이 번뜩이는 애틋한 페이지를 넘기며
내 유전자 속에 난설헌의 슬픔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_전경린(소설가)
허난설헌은 두 번 태어났다. 사백여 년 전에 한 번, 작가 최문희에 의해 또 한 번.
죽었으되 죽지 않는다는 말의 뜻을 이제야 실감하겠다.
허난설헌에 관한 책을 수없이 접했지만 이제야 그녀의 얼굴이 또렷하게 그려진다. _ 하성란(소설가)
- 좋은 책의 발견 북스커버리 cbci 서하나 jindalae@cbcnews.co.kr
- 2011. 10.21. 아이뉴스24
조선 중기 여류시인 난설헌 허초희(許楚姬, 1563∼1589)의 삶을 소설로 옮긴
장편 <난설헌>(다산책방)은 제1회 혼불문학상 당선작이다.
당선자는 76세 최문희씨. 국내 문학상 공모 사상 최고령 당선이다.
2009년 여름, 강원도 강릉의 허난설헌 생가를 답사한 데 이어 관련 자료들을 수집한 그는 서울 진관동 자택에 틀어박힌 지 1년2개월 만에 소설을 완성했다.
“고택의 문턱을 넘는 순간,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백일홍나무였어요. 8월 땡볕에 만개한 백일홍은 너무 방만했고 너무 요염했지요. 백일홍과 난설헌. 나는 한동안 그 생각에서 놓여나지 못했지요. 백일홍의 이미지와 난설헌의 분위기가 엇박자를 튕기며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줄기로 매김질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경남 산청 태생의 작가는 10세 때 상경해 숙명여중·고를 거쳐 서울대 지리교육과를 졸업했다.
대학 동기였던 오홍석(76) 전 동국대 지리교육과 교수와 결혼해 2남1녀를 키우다 38세에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11년 만에 기관지염 때문에 학교를 떠난 그는
50세를 넘기면서 본격적으로 소설 공부를 시작했다.
그의 문재(文才)는 여고 1학년 때 나타났다. 국어교사이던 소설가 전광용의 추천으로,
월간지 ‘여성계’에 콩트를 실었던 것. 대학 시절엔 시인 지망생이었다.
오십이 넘어 문학에 재도전하면서 장르를 소설로 바꾼 그는
53세이던 88년 단편 ‘돌무지’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늦깎이로 등단했다.
상복은 이어졌다.
91년 KBS의 중편소설 공모에 당선됐고
환갑이던 95년엔 제4회 작가세계 문학상과
국민일보 제2회 장편소설공모에 '서로가 침묵할 때'가 당선되었다.
또한 같은 해 작가세계 제4회 장편소설공모에 '율리시즈의 초상'이 당선되었다.
그 해에만 상금이 1억2000만원이었다.
1995년에 소설집 '크리스탈 속의 도요새',
2000년에 소설집 '백년보다 긴 하루'를 출간하였다.
'어두운 손', '떠 있는 망루', '나비눈물' 등의 작품이 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쉽게 잊혀졌다. 그러다 붙든 게 <난설헌>이었다.
최근 혼불문학상 응모작 227편 가운데 그의 작품은 단연 돋보였다.
“내 한문 실력이 모자라는 부분은 남편이 보완해주었고
고물 컴퓨터가 기우뚱거릴 때마다 아이들의 손을 거쳐야 했지요.
이 소설은 나 혼자만의 작업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닙니다.
자료 수집에서부터 가족들의 협조로 조립된 작품이었기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전주문화방송이 제정한 제1회 혼불 문학상 대상작 <난설헌>에 대한 시상식이
2011년 10월10일 오후 전주 한옥마을 부채문학관에서 열렸다.
<난설헌>은 최문희 작가의 소설로 정통적인 묘사 기법을 통해 허난설헌을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주문화방송은 <난설헌>이 대중에게 더 쉽게 소설의 내용과 성격을 알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붉은 빗방울>이란 원제에서 제목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최씨에게는 상금 5천만원이 주어졌다.
그는 "작품을 쓰는 내내 시대적인 닫힘과 유교적인 사슬 외에도
내 안에 있던 과도한 자아의식에서 해방되는 듯 했다"면서
"감각의 제국에 살고 있는 우리 시대에 난설헌의 청정한 영혼을 거울처럼 비추고 싶었다"고
작품의 의도를 설명했다.
혼불 문학상은 고 최명희 작가의 작품인 <혼불>의 문학적 가치와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고
한국문학을 이끌어 나갈 문학인을 발굴하고자 전주문화방송이 올해 제정했다.
- 20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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