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섬, 민통선>
살아있는 한반도 박물관, 비무장지대에 숨은 역사의 흔적들
기자가 쓴 비무장지대 역사기행서 출간
민족분단과 냉전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 그곳에 남아 있는 건 근대사의 아픔만이 아니다.
구석기 한반도부터 초기 삼국의 발자취, 때묻지 않은 자연까지,
비무장지대는 한반도의 자연과 역사를 철책선 사이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분단의 섬, 민통선>(이기환 지음, BM책문 펴냄)은
이곳에 숨은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에 대한 기록이다.
일간지 문화재전문기자인 글쓴이가 2년 반 동안
일반인들의 접근을 좀체 허용하지 않는 유적을 직접 찾았다.
직접 서쪽 끝 강화도에서 동쪽 끝 고성까지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곳곳을 누비며 답사한 결과물.
비무장지대나 북측에 있어 답사가 어려운 태봉국 도성, 평강 오리산, 한국전쟁 당시의 고지들, 그리고 중국군이 쌓은 '지하 만리장성' 등을 멀리서라도 보고난 뒤 그 의미와 가치를 소개했다.
경향신문에서 문화유산 담당 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2007년 2월 신문기획을 위해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찾았다고 한다.
한반도 남부의 문화유산을 찾는 작업에서 출발한 이 여행은
지뢰밭과 철책으로 가로막힌 비무장지대 일원으로 이어졌고,
중무장지대가 된 그곳의 유산에 넋이 나가 평생의 공부로 삼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글쓴이는 한국전쟁으로 죽어간 각국 젊은이들을 비롯,
온조, 소서노, 궁예, 개로왕 등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난다.
이들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고대 백제의 적석총, 태봉국의 도성, 오두산성 등을
지뢰의 위험도 감수하고 직접 찾아 다니며 현장을 소개한다.
역사 유적뿐 아니라 지난 60년간 공개되지 않았던 고층습지 용늪 등 천혜의 풍경과, 고지와 지뢰밭 등
전쟁이 낳은 풍경들도 더불어 다룬다. 지형과 유물사진, 지도 등이 여러 장 함께 실려 이해를 돕는다.
민족 분단과 냉전의 상징으로 자리한 곳,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일원은
한국전쟁 후 50여 년 동안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되는 '금단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한반도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머금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구석기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자연 · 문화 유적들이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 철원군 근북면 유곡리와 김화읍 도장리에 걸쳐 있는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의 정비 및 복원 이전 모습.
일제의 수탈과 전쟁, 그리고 분단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새겨져 있다.
강원도 철원 동주산성 정상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북한의 평강 오리산은
한반도 고인류와 구석기 문화, 그리고 한탄강과 임진강의 절경을 탄생시킨 '어머니 산'이다.
오리산은 남북의 서로 다른 습곡대가 충돌한 한반도의 '배꼽'이었다.
4기 홍적세(200만년 전~1만년 전) 때 오리산과 검불랑에서 분출한 마그마는
평강 및 철원 일대의 광활한 현무암 지대를 형성했고, 빙하기를 겪으면서 한탄강과 임진강을 빚었다.
또 이 유역에서 한반도 선사시대가 열렸다.
30만년 전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사용했던 고인류가 출현했다.
1978년 연천군 전곡리 유적이 처음 학계에 보고된 후
임진강 및 한탄강 유역에서 20곳이 넘는 구석기 유적이 확인됐다.
이처럼 오리산과 그 산이 낳은 임진강과 한탄강은 '한반도에서 가장 젊고 뜨거웠으며 민감한 곳'이었다.
삼국시대 때는 고구려 · 백제 · 신라가 이곳을 놓고 쟁탈전을 벌였고,
신라와 당나라가 동북아의 패권을 놓고 국제전을 벌인 무대였다.
대동방국의 기치를 내건 궁예는 철원 풍천원 들판에 태봉국 도성을 정했다.
현대에는 한국전쟁의 접전지였다.
- 고구려 · 백제의 치열한 격전지였던 관미성으로 여겨지는 파주 오두산성의 잔존 성벽.
이 책은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인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일원의 주요 유적들을
깊이 있고 흥미진진하게 소개했다. 이 지역의 유적을 다룬 최초의 유적답사기다.
저자는 답사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함께 각종 기록과 연구 논문 등을 동원해
철책 너머 숨어 있는 유적을 충실히 소개하면서 역사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예컨대 연천 횡산리로부터 임진강변을 따라 일의대수(一衣帶水)로 분포한 적석총.
저자는 이들 적석총이
"고구려 추모왕(주몽)의 태자 유리에게 '용납되지 않을까 두려워' 어머니 소서노와 형 비류,
그리고 오간 · 마려 등 열 명의 신하들과 함께 남으로 내려와 백제를 세운 온조 세력의 흔적이 아닐까"
라고 추정한다.
또 고대사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인 온조 세력의 첫 도읍지로 임진강변의 육계토성을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논거를 담은 논문을 소개한다.
책은 특히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일원을 거대한 단일유적으로 개념화하하면서
이곳의 역사와 유산을 '전쟁고고학' 측면에서 검토했다.
저자는 "고대전쟁-한국전쟁-분단-냉전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는 비무장지대 일원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전쟁박물관으로 특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 경향신문 & 경향닷컴
천년 사직을 통째로 고려 왕조에 바친 신라 56대 경순왕은 태조 왕건보다 35년을 더 살았다. 그의 팔자는 기구했던 듯하지만, 그 자신은 물론이고 그 후손도 고려 왕조에서 더욱 번성했다. 하지만, 그의 저승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그가 개성에서 죽자 "신라 유민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경주로 장지를 잡았다. 유민들이 양식과 침구 일체를 지고 다 따라나서니 송도(개성)가 텅 빌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의 능묘 앞에 선 '신라경순왕지능'(新羅敬順王之陵)이라는 비석에는 곳곳에 포탄을 맞은 흔적이 역력하다. 한국전쟁이 남긴 상흔이다.
자칫 신라 부흥운동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 고려왕조는 "왕의 운구는 100리를 넘지 못한다"는 구실을 대고는 운구를 멈추게 한다. 이렇게 해서 그의 능묘는 경기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자리 잡는다.
그의 능묘는 잃어버렸다가 되찾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의 능묘로 향하는 입구 양쪽은 철망이 보호한다.
그 철망 곳곳에는 '지뢰'라는 경고판이 붙어 있다.
이런 처지를 현장을 답사한 경향신문 문화재 전문 이기환 기자는 "남방한계선을 알리는 철책과 지뢰 지대의 호위를 받으며 서 있다"고 묘사한다.
그가 쓴 <분단의 섬 민통선>(책문 펴냄)은 '비무장지대 역사기행'이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
근방에는 지뢰가 우글거리는 휴전선 남방 비무장지대(DMZ) 일대 문화유산을
"2년 6개월 동안 강화도에서 한반도 동단 고성까지 발품을 팔아가며" 샅샅이 뒤진 보고서이자
'풍요로운 자연사박물관'이자 '한반도의 역사박물관'인 민통선에 바치는 찬가다.
강원도 철원의 휴전선이 복판을 가르는 곳에 궁예 도성이 있다.
도성 유적은 북쪽에 3분의 2, 남쪽에 3분의 1 정도가 있다. 경원선 철도도 이곳을 통과한다.
한국전쟁 때도 많은 피해를 봤다.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다.
이곳에 직접 들어가지는 못한 채 철원 홍원리 평화전망대에서 먼발치로 이 도성 유적을 바라보면서
저자는 "1천100년 전에 쌓은 대제국의 도성을 후손들이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파괴하고 훼손시킨 것이다.
궁예를 폄훼한 고려와 조선, 그리고 파괴의 절정이었던 한국전쟁,
이렇게 해 놓고도 과연 역사와 전통을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분개한다.
하지만, 분단은 역설적으로 민통선 일대의 파괴를 막기도 했다.
"사람에게는 분단의 섬이지만 자연에는 낙원이 된 바로 이곳"이야말로
"철책을 열고 조심스레 한 발 내디디면
금강산이나 제주도 뺨칠 만큼 아름다운 주상절리와 폭포가 자리해 있고,
김유신, 허준, 경순왕, 관미성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도 차례로 만날 수 있다"고
저자는 민통선 구역을 찬탄한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2009년 9월
이 책이 지칭하는 ‘민통선’이란 개념은 하나의 ‘상징적인 개념’으로 보면 된다.
즉 이 책이 지칭하는 ‘민통선’이란
정전협정에 따른 군사분계선(휴전선)과 민간인통제구역, 접경지역, 군사보호구역을 합한 개념이다.
군사분계선을 기점으로 전쟁 및 분단,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의 행위에 제한을 받는 지역의 문화유산을 찾고자 한 것이다.
- 들어가면서
포천시 영북면 운천리. 한적한 논두렁을 따라 가는 길. 바로 그 옆에 한탄강 비경이 숨어 있을 줄이야.
논두렁에서 벗어나 수풀을 헤치고 몇 걸음 가자 별세계가 펼쳐졌다.
곧바로 30-40m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천계(天界)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리라.
- 1장
“야. 정말 대단하네!” 그야말로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사가 터졌다.
하늘을 뒤덮었던 짙은 구름 사이로 환한 햇빛이 펀치볼(해안분지)을 비추고 있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왜 구름은 저토록 초록의 분지만을 피했을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
아니면 환한 조명 아래 야간경기를 벌이는 축구장을 관중석 맨 꼭대기에서 바라본 느낌이랄까?
- 3장
연천 최전방 태풍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북한이 세운 임진강 댐이 또렷하게 보인다.
강은 어느덧 북한 땅을 빠져나와 커다란 곡류를 그리며 유장하게 흘러온다.
이우형 씨가 속삭인다.
“저기, 저 강변 좀 보세요. 뭔가 주변의 지형과는 어울리지 않게 봉긋한 지형이 있죠?
저 모양을 보면 혹시 적석총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4장
삼국시대 사람들은 이 중성산(重城山)을 칠중성(七重城)이라 했다.
그 뒤 1,300년 가까이 흐른 1951년 4월, 한국전쟁에 참전한 영국군은 캐슬고지(일명 148고지)라 했다.
벌목으로 시야를 확보한 고지에는 군부대의 참호 및 군사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당연히 옛 성벽은 군 시설물이 들어서면서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옛 성벽의 돌들은 참호를 만들 때 재활용된 것이 분명하다.
- 9장
전골총. 철책 너무 손에 잡힐 듯 조성된 대형 무덤이다.
작은 나무가 무덤을 에워싸고 있고 수풀이 봉토를 덮고 있는데,
무덤 꼭대기에는 큰 나무 한 그루가 무심히 서 있다. 그 앞에서는 군인들이 뭔가 작업을 하고 있다.
손에 잡힐 듯하지만 갈 수 없는 바로 그곳, 비무장지대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전골총이다.
전골총은
바로 병자호란 때 김화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조선군의 유해를 한데 모아 묻고 봉토한 무덤이며,
전쟁이 끝난 뒤 김화 현감 안응창(安應昌)이 조성했다.
- 14장
“혹시, 우리가 갔던 길이 미확인 지뢰지대는 아니었겠죠?”
“예전에 보림암을 조사할 때 지뢰탐지기를 써서 조사했어요.”
웃음이 나왔다. 이미 조사한 곳이라 괜찮다지만, 도중에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나. 등골이 오싹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계곡은 상류나 사방에 있을지도 모르는 지뢰가 흘러내려와 모이는 곳이지 않나.
만약 산행 도중에 이 대답을 들었다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16장
나라를 들어 귀부하여 갖은 영화를 누렸고, ‘고려’에 천년 사직의 정통성을 넘긴 경순왕은
왜 고향땅을 밟지 못했을까? 왜 경주가 아니라 고랑포구가 눈앞에 보이는 야트막한 산에 묻혔을까?
(중략)
“왕의 훙거(薨去) 소식을 듣고 신라 유민들이 장사진을 이뤄 경주로 능지를 잡았다.
유민들 전원이 양식과 침구 일체를 지고 다 따라 나서자 송도가 텅 빌 정도였다.”
그러자 고려 조정은 긴급 군신회의를 연 뒤 구실을 찾는다.
“왕의 운구는 100리를 넘지 못한다.(王柩不車百里外)”
고려로서는 참으로 ‘절묘한 구실’을 찾은 것이다.
‘왕의 대우’를 보장하는 대가로 운구의 임진강 도하를 막은 것이다.
- 19장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총 연장 250-287킬로미터에 폭 20-30킬로미터,
여기에 참호와 교통호까지 계산한다면 총 연장 4,000킬로미터의 지하 만리장성이 바로 그곳에 있다.
단순한 계산으로만 보더라도 5,000-7,000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단일요새가 자리한 것이다.
- 27장
최전방에 가서 그 군사분계선을 관측하려 한다면 그것은 낭패다.
정전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 군사분계선 표지물은
대부분 녹슬었거나 비바람 등으로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비록 이렇게 녹슬고, 훼손되었다지만
동서냉전의 상징이자 민족의 분단을 규정한 군사분계선 1,292개 자체가 ‘전쟁 및 분단 유물’인 것이다.
- 28장
<출판사 서평>
“세계에서 단 하나 남은 분단의 현장, 민통선”
우리 땅 절반을 가르는 곳에 떡 하니 자리한 철책.
민족분단을 상징하는 그 철책은 민통선이라는 이름의 공간을 만들었고
50여 년 동안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 될 금지구역이 되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한반도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담은 문화유적들이 곳곳에 자리해 있으니…….
화산과 용암의 자취를 간직한 천혜의 절경부터
선사시대 주먹도끼와 삼국이 형성될 당시의 유적,
그리고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근대 유적까지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곳.
이 책은 바로 그 민통선 일원의 역사, 문화유적을 행복하게 만나는 여정이다.
이제 저자가 발로 뛰며 담아낸 ‘살아 있는 한반도박물관’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 책을 소개하며
이 책은 비무장지대 및 민통선 일원의 주요 유적들을 깊이 있고 흥미롭게 다룬
사실상 최초의 유적답사기라 할 수 있다.
독자들이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일원의 주요 유적들을 보다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소개한 것과,
비무장지대 일원의 주요 유적들을 선별한 뒤에 역사적 내용을 충실히 반영해 설명함으로써
전문성과 권위까지 갖추게 되었다는 점에서 출간의의를 찾을 수 있다.
- 이재, 국방문화재연구원장
분단의 섬, 민통선을 걷는다!
남북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곳.
우리가 흔히 “비무장지대(DMZ)”라고 부르는 곳이다.
서로 확성기를 울리며 공격하던 풍경은 사라졌지만
지뢰지대와 한국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여러 고지의 풍경만으로도 살벌한 곳이 바로 비무장지대 일원이다.
민통선은 바로 이 비무장지대가 만들어낸 민간인 출입제한구역이다.
이 책이 말하는 비무장지대 혹은 민통선은 분단과 전쟁이 낳은 상징적인 개념이다.
그런데 요즘 이 금단의 땅이 뜨고 있다.
분단이라는 얼어붙은 공간이라는 인식을 넘어
생명과 평화의 땅, 역사와 문화가 보존된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60년 넘게 사람들의 통행을 가로막았던 철책은,
자연에게는 복이 되어 동식물들은 그 속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렸고
천혜의 자연경관과 역사유적들은 훼손을 면했다.
이렇게 사람에게는 분단의 섬이지만 자연에게는 낙원이 된 바로 이곳에,
한반도의 문화유산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철책을 열고 조심스레 한 발 내디디면
금강산이나 제주도 뺨 칠 만큼 아름다운 주상절리와 폭포가 자리해 있고,
김유신, 허준, 경순왕, 관미성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렇게 철책과 담장으로 가로막힌 민통선을 발로 뛰고 누비며
우리 민족의 역사, 문화유산을 세밀하게 답사한 지식기행이다.
우선 임진강과 한탄강을 끼고 금단의 땅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면,
화산인 오리산 및 검불랑의 용암이 빚어낸 수직단애를 비롯해 천혜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그곳은 바로 선사시대 사람들이 강이라는 고속도로를 오가며 문명을 일구었던 곳.
그 충적대지에서 무시로 주울 수 있는 주먹도끼가 30만 년 전의 세상을 열어젖힌다.
우리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한반도의 심장
뿐만 아니라 고구려 유리왕의 핍박을 피해 망명한 백제 온조왕이 700년 사직의 둥지를 튼 흔적을 비롯해, 군사분계선이 반으로 가른 궁예의 태봉국 도성까지 만날 수 있다.
이곳은 1,400년 전에 신라와 당나라가 동북아의 패권을 놓고 한판 국제전을 벌인 무대다.
바로 여기서 남북한을 포함한 19개국의 젊은이들이 “제3차 세계대전의 대체전”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전쟁을 치렀다.
특히 1,127일간의 한국전쟁 기간 중에 764일이 바로 이곳 비무장지대 일원의 강과 산에서 벌어졌으니…….
그 참혹한 전쟁이 낳은 고지들.
우리네 역사를 빼닮은 그 얄궂고 무시무시한 이름의 고지들을 먼발치에서 접할 수 있다.
하지만 포연이 사라진 ‘비무장지대’라는 이름의 그곳은 여전히 ‘중무장지대’다.
한국전쟁 때 중국군이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안에 이르기까지 구축한 지하 만리장성은
비무장지대를 5,000-7,000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단일 요새로 만들었다.
전쟁이 낳은 철책은 분단의 아픔을 낳긴 했지만
수풀더미 속에 온갖 자연유산과 역사ㆍ문화유산을 고스란히 보존해 주었다.
그리고 비무장지대 일원은 그대로 한반도 역사가 응축된 ‘살아있는 박물관’이 되었다.
이 책은 이렇게 2년 6개월 동안 강화도에서 한반도 동단 고성까지
발품을 팔아가며 비무장지대 일원을 답사한 기록이다.
역사 및 자연유산뿐만 아니라 전쟁유산, 말하자면 ‘전쟁고고학’ 측면에서
비무장지대 일원의 역사와 유산까지 치열하게 담아냈다.
그러면 이제 선사시대의 자연과 문화가 고스란히 보존된 ‘풍요로운 자연사박물관’,
고대와 중세의 역사가 꿈틀거리는 ‘한반도의 역사박물관’,
그리고 고대전쟁-한국전쟁-분단-냉전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는 ‘살아있는 전쟁박물관’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 이 책에 대한 찬사
인간의 역사는 숱한 전쟁사의 앨범인데,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는 그 앨범의 제일 나중 장면이다.
실패작으로 끝난 인간의 욕망을 증언하는 DMZ라는 광활한 무대에서,
저자는 시인이 되어 탁월한 인류학적 조사(弔辭)를 썼다.
-김병모(한양대 명예교수)
이 책은 “분단의 섬”에서 지뢰밭을 무릅쓰고 발품을 팔며 써내려간 답사보고서다.
민통선 일원의 역사는 구석기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이다.
이 책을 통해 “살아있는 박물관” 민통선 일원의 자연ㆍ문화ㆍ분단유산을 만나보길 권한다.
-조유전(경기문화재연구원장)
금단의 지역, 휴전선 일원! 지금은 동물원이나 식물원 같지만
언젠가는 우리 동포가 옛날처럼 함께 살아야 할 우리의 강토.
그 머나먼 미래를 위해 먼저 현장을 누빈 저자의 선구적 작업에 찬사를 보낸다.
-이형구(전 선문대 대학원장)
민통선 일원을 거대한 단일유적으로 개념화해 그 엄청난 인류사적 가치를 새로운 차원에서 확인했다.
민통선 일원의 유적과 유물을 전쟁유산을 중심으로 풀어내면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서의 가치도 함께 담아냈다.
또한 이 책은 신비로운 민족유산들을 들여다보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민족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잘 설명해 준다.
-배기동(한국박물관협회장,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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