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알아가며(자료)

冊 <조선의 서운관>

Gijuzzang Dream 2011. 8. 23. 00:12

 

 

 

 

 

 

 

 ‘푸른 눈’ 학자의 조선 천문학 관측기

 

 

 

아시아 과학사 관심깊은 조지프 니덤
기상대 ‘서운관’의 관측의기 상세분석
“15세기 조선 세계 최첨단 천문기상대 소유”

 

 

<조선의 서운관〉
조지프 니덤 등 지음 · 이성규 옮김/ 살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였던 조지프 니덤(1900~1995)은

발생생화학을 연구한 과학자이자, 과학의 역사를 파헤쳤던 과학사회학자였다.

특히 아시아 과학사에 깊은 관심을 뒀던 그는

중국 과학 문명의 뿌리를 캐고 서양의 과학 문명과 비교한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을 썼으며,

이 책은 ‘아시아에서는 과학 문명이 없었다’는 서양인들의 편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조선의 서운관〉

조지프 니덤 지음

1986년에 그가 루궤이전, 콤브리지, 메이저 등의 동료들과 함께 쓴 <조선의 서운관>은 조선시대 왕립천문기상대인 ‘서운관’(書雲觀)을 통해 본 조선의 천문학에 대한 연구서다.

 

서운관에서 제작된 의기들을 하나씩 뜯어보며 상세한 분석을 하면서도 중국 천문학으로부터 받은 영향도 함께 살펴보는 등 ‘과학의 계통’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니덤은 서문에서 “한국 천문학은 동아시아 천문학 전통의 독창적인 민족적 변형”이라고 정리했다.

 

니덤과 그 동료들은 15세기 초와 17세기 초가 조선 천문학이 큰 도약을 이룬 두 시기라고 봤다.

중국에서는 13세기에 대도약이 있었다.

원나라 최초의 황제 쿠빌라이 칸의 후원을 받은 궁정 천문학자 곽수경이 새로운 천문의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새로운 의기에 따라 더욱 정확한 천문관측이 가능해졌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수시력’이 공포됐다.

 

그러나 당시 왕권이 크게 약화됐던 고려는

이러한 혁신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고,

새로운 왕조인 조선이 들어선 뒤 과학에 관심이 많은 세종대왕의 주도로

천문학에서의 대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

니덤과 동료들은

“15세기 조선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첨단의 관측의기를 장비한 천문기상대를 소유했다”고 평가한다.

 

 

 ‘푸른 눈’ 학자의 조선 천문학 관측기

 

<세종실록>, <증보문헌비고> 등의 기록을 통해

당시 서운관에서 만들어진 의기들에 대해 상세한 분석을 펼친다.

 

특히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를 철저하게 분석했다.

 

자격루는 인형이 시간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자동시보장치’를 적용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장치로 평가받는다. 지은이들은 구슬을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기계장치를 작동시키는 점은

중국 원나라의 시계 장치와 아랍의 물시계 장치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들은 자격루에서 “모방이 아닌 영감”을 발견한다.

차오른 물이 구슬을 움직이는 방식이 아랍의 그것과는 달리 살대를 사용해

직접적이고 직선적이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의 특수성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바꿔 쓸 수 있는 구슬 선반을 사용한 것도

동아시아의 가변적인 시간 측정에 더 적합했다는 분석이다.

 

이밖에도 해시계 겸 별시계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천문을 관측하는 ‘간의’(簡儀), ‘측우기’(測雨器) 등

당시 만들어진 의기들에 대해 개별적인 분석을 펴고 있다.

 

17세기에 중국에 청나라가 들어서고 서양 과학의 영향을 받은 서양식 역법인 ‘시헌력’이 도입되자,

이는 다시 한 번 조선 천문학이 도약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런 맥락 속에서

이민철의 수격식 혼천시계와 송이영의 최초의 서양식 혼천시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지은이들은 이들이 고대 동아시아의 의기 제작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서구 시계 제작 기술을 합체하는 혁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시계학 역사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니덤과 동료들의 연구는,

서양 학자들이 빠지기 쉬운 문명에 대한 편견을 냉정하게 배격한다는 점에서 특히 뛰어나다.

유교 이념이 과학의 정체를 불렀다거나,

성과를 냈더라도 그것은 과학이라기보다 유교 통치의 결과물이라는 시각에 대해

“자연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인간의 지성이 조직적으로 응용된 것은

과학이라 부를 수 있는 보편적인 인간 활동”이라며 가차없이 비판한다.

 

조선 천문학의 특출난 면모를 재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연구자들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에서 비롯됐다.

 

 

다만 이 책은 몇 가지 논쟁의 불씨를 품고 있다.

먼저 니덤학파는 조선이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했다는 데 회의적이다.

또 자격루의 두 물병이 각각 시와 점 · 경을 알렸다고 주장해,

하나의 물병이 시와 점 · 경을 동시에 알려주고 나머지는 예비용이라는 국내 학자들과 의견을 달리한다.

송이영의 혼천시계에 있는 시계 장치가 일본에서 제작된 시계에서 비롯됐다는 의견도 국내 학계와 다르다.

옮긴이인 이성규씨는 “국내 학계의 연구와 다른 주장에 대해 아무도 정식 대응을 않고 있다”며

“앞으로 더욱 철저한 논의가 지체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10. 7.17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