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연재자료)

[기물명(器物銘)을 찾아서] 3. 사마광과 성호 이익의 이불

Gijuzzang Dream 2011. 6. 27. 15:14

 

 

 

 

 

 

 사마광과 성호 이익의 이불

 

 

자신의 신념을 이불에 새겨 덮고 자던 그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자치통감(資治通鑑)’은 ‘지난 일을 거울삼아 치도(治道)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뜻이다.

역사가들은 자치통감을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더불어 불후의 걸작으로 칭송한다.

이 책을 지은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왕안석(王安石)의 개혁에 반대하다가

낙양(洛陽)으로 물러나 있을 때, 누군가로부터 이불 한 채를 선물로 받았다.

둘은 천하를 놓고 서로 겨루던 명사였으니 그 이불이 귀하디귀한 것이었을 성싶다.

하지만 의외로 이불은 삼베로 짠 검소한 것이었다.

사마광은 이 삼베 이불을 특히 아꼈다.

그래서 존경했던 선배 범중엄(范仲淹)의 아들 범순인(范純仁)이 ‘포금명(布衾銘)’,

곧 ‘삼베 이불에 새긴 글’을 써 주자 이내 이불 테두리에 그 글을 써 넣었다.

‘거친 밥을 먹고 검소하게 살았어도 안회(顔回)는 만세의 모범이 되었지만,

살아서 호화를 누렸던 주왕(紂王)은 죽어서 외로운 인간으로 묻혔다’는 내용의 110자 예서였다.

사마광의 삼베 이불은 그의 임종 순간까지 함께했다.

범순인은 사마광이 내내 덮고 지냈던 이불로 고인의 시신을 고이 덮어 주었다.

살아서 검소했으니 죽어서도 검소함을 따르지 않겠느냐는 이심전심의 배려였던 것이다.

아마 사마광으로서는 피안의 길이 결코 춥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이불의 행간에는,

가난한 집 출신으로 재상을 지냈으면서도 지독할 만큼 검소했던 범중엄의 삶과

그런 부친의 자세를 흠모해 검소함을 추구했던 범순인의 사람됨,

그리고 사마광의 마음을 바닥까지 읽어낸 벗의 교감이 실려 있었다.

명인이 명인을 알아보는 이심전심의 릴레이가 바로 이 이불에 담긴 영원한 매력인 것이다.

 

 



○ 성호(星湖) 노인이 이불에 생긴 소망

700년쯤 흘러 경기 안산 바닷가 성호(星湖)라는 곳에 걸출한 학자가 살았다.

성호 이익(李瀷·1681∼1763), 우리나라 실학의 명실상부한 명인으로 꼽히는 바로 그분이다.

‘성호사설(星湖僿說)’을 비롯해 더 나은 세상을 염원했던 그의 꿈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도 사마광처럼 애중하는 이불이 있었으며, 손수 이불에 관한 명(銘) 두 편을 남겼다.

 

우선 ‘이불에 새긴 글’이라는 뜻의 ‘금명(衾銘)’은 이렇다.


 남이 알지 못한다고 속이지 말자.

털끝조차 천리(天理)에서 나옴을 잊지 말아야지

(莫誣人不知 須念毫髮皆從天理來)


 

 

자신을 속이지 않고 하늘과 사람의 바른 길을 찾고자 했던 그 의지가 서릿발처럼 매섭다.

또 하나는 ‘지피명(紙被銘)’, 곧 ‘종이처럼 허름한 이불에 새긴 글’인데,

이에 얽힌 사연은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성호 노인에게는 ‘동사강목(東史綱目)’의 저자로 알려진 안정복(安鼎福)이란 애제자가 있었다.

안산 곁의 광주(廣州)에 살았던 안정복은 사실은 평생 성호를 몇 번밖에 찾아뵙지 못했다.

하지만 편지를 왕래하며 때로는 스승의 비판자로, 때로는 스승의 벗이 되었으며 진정으로 스승을 존경했다.

때는 1756년, 당시 75세이던 성호 노인이 안정복에게 편지 한 통(‘答安百順 丙子’)을 보내왔다.

헌데 그 속에 근래에 지었노라며 지피명의 전문을 넣었다.

지피명에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정결(淨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을 전달한 대목이 있었다.

또한 ‘사마광도 이불 하나로 몸을 덮고 염(殮)했으니 가난한 내게라면 더욱 알맞지 않겠느냐’는

독백이 들어 있었다.



○ 우리는 무엇을 덮고 살아갈까

숲은 이슬방울을 데려가고 대지는 인간의 몸을 거두어 간다.

그것이 생명의 질서다. 우주의 생명체 중에 유독 인간만이 살아 있는 동안 이불을 만들어 덮고 잔다.

어떤 이는 이 이불에 수(壽)와 복(福) 수놓아 두고,

어떤 이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 장자가 말한, 어떠한 인위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낙토)의 태평한 꿈을 갈구하며,

또 어떤 이는 이불을 죽부인처럼 껴안은 채

고려 가요 <만전춘(滿殿春)>에 나오는 얼음 위 댓잎 자리 위의 춘몽(春夢)을 꾼다.

흥부네 식구들처럼 줄줄이 덮고 자는 이불은 참으로 정겹기도 하다.

그런데 사마광이나 성호 노인의 이불처럼 생사를 초극한 숭엄(崇嚴)한 이불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려본다. 성호 노인 또한 제자가 마지막 덮어준 그 이불로 정녕 흐뭇하게 웃었을 것이라고.

- 김동준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djk2146@ewha.ac.kr
- 2011-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