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

Gijuzzang Dream 2010. 12. 15. 10:59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

 

 

 

 

 

1908년 8월 13일 대한제국 순종(純宗)황제가 수집 · 보존한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보관 · 관리하고자

설립된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이 비록 대중에게 개방되는 내용은 아니지만

근대적 의미에서 우리나라 뮤지엄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1907년 고종 황제가 순종에게 양위하여 덕수궁에서 창경궁으로 이어(移御)하였으며,

이때 젊은 순종의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동 · 식물원과 뮤지엄 창설이 제의되어

1908년 9월 어원사무국(御苑事務局)이 발족되면서 일반에게 공개하려는 계획이 추진된 것이다.

 

따라서 다음해인 1909년 11월1일 제실박물관이 창경궁과 함께 일반에게 공개되기 시작하여,

2009년이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가 되었다.

 

그 후 1936년 8월 덕수궁에 새로운 뮤지엄을 착수하여 1938년 3월 준공한 이왕가미술관이 발족되어

4개의 전시실과 수장고를 갖춘 우리나라 뮤지엄 건축 최초의 것이 되었다.

1972년 비로소 경복궁내에 국립박물관(현 국립민속박물관)을 우리 손으로 신축하였으나(강봉진 설계)

그 기능을 만족할 수 없어서 중앙청(옛 조선총독부)을 증 · 개축하여 이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중앙청을 철거하기로 하여 용산으로 신축 이전하게 된 것이다.

 

세계 10대 규모가 된 국립중앙박물관의 신축 계획은 1994년부터 시작되었는데,

UIA가 공인하는 국제설계경기를 통해 당선 안을 선정하였으며,

1997년 착공되어 2005년 10월 준공 개관 되었다.

이로서 전 세계에 한국 뮤지엄 건축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최근에는 세계적 수준의 새로운 뮤지엄 건축들이 구현되고 있는 때이다.

 

 

2007년 말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한국 뮤지엄 현황은,

국립(National) 27, 공립(Public) 225, 사립(Private) 180, 대학(School) 79, 합계(Total) 511개이다.

한국은 인구 약 19만 명의 하나인 데 비해

미국 6만, 프랑스는 4만5천, 캐나다는 2만3천, 일본은 4만2천, 독일 2만, 바젤 1만 명에 하나 꼴이다.

 

 

 

『대한매일신보』1908년 1월 9일자

“궁내부 계획 궁내부에서 본 년도부터 제실박물관 동물원과 식물원들을 설치할 계획으로

목하에 조사하는 중이라더라”

 

 

『황성신문』1908년 2월 12일자

“帝室博物館을 設立한다 함은 已爲報道하였거니와(이미 보도하였거니와)

其目的(그 목적)인즉 國內 古來의 各圖, 古美術品과 現 世界에 文明的 機關 珍品을 收聚, 供覽케하여

國民의 智識을 啓蒙케 함이라더라”

 

 

 

『대한민보』1909년 11월 2일자

“物園觀覽日 旣報와 如히(이미 보도한 것과 같이)

動博植物園에서 昨日(어제)부터 一般人民에게 觀覽을 許(허락)하였는데

入場券을 大人(어른)은 十錢, 小兒(어린이)는 五錢式 賣票하였고

伊後로는 一週日間에 月·木 兩曜日만 除하고 其外 五僩日은 許하되

右兩日이 休暇日이면 伊日에도 觀覽케 한다더라”

 

『순종실록』3 융희 3년(1909) 11월 1일

“동물원과 식물원을 창경궁 내에 설치하고 개원식에 행차했다. 이어 공중이 관람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제실박물관 신축계획도(1910년 6월 1일)

경기도 성남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제실박물관 진열본관 신축도면(1910년 6월 1일)

경기도 성남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창경궁 환경전 : 제실박물관 전시실로 사용되었던 궁궐 건물 가운데 하나.

 

 

창경궁 환경전 내부

원래 생활공간으로 사용하기 이하여 방마다 온돌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나,

제실박물관 전시실로 사용하기 위해 온돌을 제거하고, 방들을 하나로 터서 마루로 만들었다.

 

 

 

 

-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2009. 5. 22) 내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