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연재자료)

<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 논에서 발굴한 금동대향로

Gijuzzang Dream 2010. 10. 21. 13:20

 

 

 

 

 논에서 발굴한 백제금동대향로

 

 

 

 

국립부여박물관을 찾아가면 전시품을 대표하는 유물이 백제금동대향로임을 알 수 있다.

이 향로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향로는 중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옛날부터 여러 나라에서 냄새를 제거한다거나, 종교의식을 행한다거나,

아니면 구도자의 수양정진을 위해 향을 피웠던 그릇이다.

중국에서는 훈로(薰爐) 또는 유로(鍮爐)라고도 하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것이 바로 박산향로(博山香爐)다.

 

박산(博山)은 중국의 동쪽에 불로장생의 신선과 상서로운 동물 들이 살고 있다는 상상의 이상향이다.

박산향로는 바다 가운데 솟아 신선이 살고 있다는 이 박산,

즉 봉래(蓬萊)ㆍ방장(方丈)ㆍ영주(瀛州)의 삼신산(三神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향로를 말한다.

 

박산향로는 중국 전국시대 말에서 한나라 초인 기원전 3세기 대부터 만들어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박산향로 중에서도 가운데 높이가 62cm에 이르는 대형향로는 발견된 예가 없기 때문에

이 백제향로야 말로 가히 세계 최대임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향로의 몸체와 뚜껑이 모두 조각품이어서

7세기 백제인들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의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 향로가 발견된 것은 1993년의 일이다.

부여 능산리에는 일제강점기 때 모두 도굴 당한 백제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이 있어

국가에서 사적13호로 지정하고 잘 정비해 보존해왔다. 

그런데 날로 관람객이 증가하자 부여군에서는 주차장을 확장하여 관람객의 편의를 제공하고자 했다.

주차장을 이 고분군과 부여나성 사이 계곡부에 있는 계단식 논을 닦아 조성하기로 하고

작업에 앞서 매장 문화재 조사를 하게 되었다.

 

부지는 계단식 논인 만큼 항상 물을 머금고 있어 질척거렸다.

그래서 이런 위치에 유구나 유물이 남아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겨울추위와 싸우면서 발굴구덩이에 흘러 드는 물을 임시방편으로 마련한 고랑을 통해 빼내면서

작업하던 중 1993년 12월 12일 오후 4시30분 질퍽거리는 땅 속에서 드디어 향로의 뚜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것이 향로라는 사실은 모르고 빨리 작업을 마쳐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조사원이 달려들어 8시30분경에 유물을 완전히 들어내는데 성공했다.

 

10여일 간의 처리 끝에 1,300여 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 향로가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들 그 자태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12월 22일 부여박물관에서 공식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그런데 그 때 명칭은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였다.

그러자 '백제금동용봉수미산향로'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 등 백가쟁명이 벌어졌다.

결국 1996년 5월30일 문화재위원회는 국보 제287호로 지정하면서 명칭을 '백제금동대향로'로 결정했다.

 

아무런 조사 없이 중장비가 동원돼 주차장이 조성됐다면 우리는 영원히 이 백제의 국보를 잃었을 것이다.

- 2009/11/25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