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연재자료)

<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 호우총 출토 화살통 장식품

Gijuzzang Dream 2010. 10. 21. 13:12

 

 

 

 

 

 

 호우총 출토 화살통 장식품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광복이 되고 제일 먼저 고고학적인 발굴조사는

경주에 소재하고 있는 신라시대 무덤인 호우총(壺玗塚)이다.

이 무덤 발굴은 광복이듬해인 1946년에 이루어졌고

광복 후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발굴이란 타이틀도 차지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일본인 고고학자의 지도아래 미 군정청의 허가와 자금지원

그리고 우리나라 국립박물관이 주관한 발굴조사를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패망한 일본인이 우리 땅에 와서 발굴 지도를 할 수 있었을까 의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광복이 되면서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우리나라 사람에게 인계할 당시

총독부박물관 책임자로 있던 사람이 아리미쓰(有光敎一)였다.

바로 초대국립박물관장이 된 김재원씨가 아리미쓰로부터 박물관의 업무는 물론 소장 유물에 대해

인수가 끝날 때까지 있게 했다. 그래서 아리미쓰는 일본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우리나라에 남아서 박물관 업무와 소장 유물을 인계하게 되었던 것이다.
김재원은 박물관을 인수하고 그 해 12월에 초대관장으로써 박물관을 개관했다.

그 때까지 아리미쓰는 박물관 개관을 도왔던 것이다.

개관 후 아리미쓰를 바로 일본으로 돌려보내야 하는데

김재원 관장은 보내지 않고 한국에 머물게 하면서 우리 손으로 발굴조사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학술적인 발굴조사는 단순히 유물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도의 전문적인 발굴지식이 필요해 경험이 있는 아리미쓰를 이용하고자 한국에 머물게 한 것이다.

이듬해 5월 아리미쓰의 발굴지도로 호우총이 발굴되었다.

이 때 출토된 많은 유물 가운데 뚜껑까지 갖춘 청동제의 항아리가 1점 있었다.

이 항아리 밑바닥에 새겨 놓은 한자를 통해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관계있는 유물임이 밝혀지게 되었지만

무덤의 주인공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이 청동항아리에 새겨진 글자 16자 가운데 마지막 '壺玗十(호우십)'에서 '호우'만 따다가

학술적인 무덤이름으로 '壺玗塚(호우총)'이라 정했다.

이 호우총 발굴은 광복 후 우리 손으로 고고학적인 발굴조사의 효시가 되었다.

그런데 유물가운데 방상씨 탈(方相氏面)로 여겨지는 특이한 유물이 있었다.

칠기로써 눈동자에 금으로 돌려 눈 꼬리를 치켜세운 모습을 대칭으로 장식하고 있어

이 유물이 주례(周禮)에 보이는 방상씨 탈로 생각했다.

방상씨란 곰의 가죽을 쓰고 황금의 두 눈을 가지고 있는데

무덤에 들어가 악귀를 쫓는다는 존재로 중국에서는 오랜 관습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에 이런 관습이 있었던 것을 증명하는 유물로 중요하게 생각했다.

발굴 후 호우총 발굴 단장인 김 관장의 꿈에 이 탈이 가끔씩 나타나 가위눌리곤 했다.

최근에 들어와 삼국시대의 무덤들이 많이 발굴되면서

이 유물이 고대의 화살통으로 밝혀지면서 두 눈의 형태는 화살통을 장식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발굴당시 화살통임을 알았다면 꿈에 나타나 가위눌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조유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
- 2009/09/22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