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떠나고(답사)

영암 월출산 - 구림마을, 도갑사

Gijuzzang Dream 2010. 9. 30. 07:44

 

 

 

 

 

 

 

 월출산 아래, 2천년 전 이야기가 흐르는 구림마을  

 

 

 

 


마을에는 수백년 됨직한 거대한 노송이 숲을 이루고 숲 속에는 멋진 정자와 고옥들이 즐비해 있다


마을의 중심인 회사정.

대동계의 오랜 전통이 담겨있다


구림천이 흐르는 마을의 수채화같은 풍경

 

 

‘남쪽 고을에 그림 같은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 오르지 않고 이 산에서 오르더라’
호남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월출산을 가리켜 매월당 김시습은 이렇게 노래했다.

남도 문화의 중심지로, 삼한시대부터 2200년간 역사의 한 가운데 서 있던 영암에 가면

매월당의 비유가 얼마나 적절했는가를 몸소 깨닫게 된다.

영암을 둘러싸고 있는 월출산은 그야말로 달이 떠오르는 산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월출산 구지봉 아래 옛 이야기를 오롯이 간직한 채

고향의 따뜻한 정과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며 살아가는 구림마을이 있다.

 

성균관 스캔들의 주 촬영지이기도 한 구림마을은

백제 때 일본으로 건너가 아스카 문화를 꽃피운 왕인박사와

풍수지리학의 시조 도선국사, 고려 건국 공신인 최지몽 선생 등이 탄생한 곳이다.

또한 500년 전통의 대동계 뿐만 아니라 청동기시대 유물과 가마 터 등을 통해

마을 역사만도 20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깊은 전통마을이기도 하다.


 

갖가지 설화와 전설을 담고 있는 바위, 그리고 포구 
 



 

 

 


↑ 포구의 전설이 남아있는 상대포

↖ 죽정서원에 세워진 정자 간죽정

← 품격이 느껴지는 구림마을의 고옥들


비둘기 구(鳩) 수풀 림(林)의 마을 이름에도 도선국사의 탄생 설화가 얽혀 있다.

성기동의 구시바위에서 빨래하던 최씨 성의 처녀가 떠내려 온 푸른 오이 하나를 먹고 아이를 가졌다.

처녀는 아이를 낳아 숲 속 바위에 버렸는데, 며칠 후에 바위에 가보니

비둘기 떼가 날개를 덮어 아이를 지켜주고 있었단다. 그 아이가 바로 도선국사다.

그 후 처녀가 빨래하던 바위는 국사암, 그 숲은 구림이라고 불리면서 오늘에 이른다.

현재 국사암은 낭주 최씨의 사당이 있는 마당에 남아 있는데, 가만보면 주먹만한 구멍들이 여럿 파여있다.

이는 아낙네들이 도선 국사 같은 영특한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린 흔적이라고.

영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왕인박사다.

도선국사가 태어나기 훨씬 전인 500여 년 전 백제의 왕인박사는

논어 10권, 천자문 1권, 도공과 제기 기술자들을 모은 후 일본으로 건너가 문물을 전달한 인물이다.

일본 고대문화의 시조로 불리는 왕인박사는 구림마을의 상대포에서 일본을 오가는 뱃길을 열었다.

상대포는 일제시대까지 선박이 드나들던 포구였으나

간척사업으로 인해 포구는 사라지고, 바다는 작은 호수로 바뀌었다.

 

담양에서 영산강 따라 굽이굽이 350리 길을 가면 영암이 바로 그 종착지다.

서해와 만나 부드러운 갯벌을 이루고 있는 영산강 끝자락에 자리한 구림마을은

비록 바다의 향수를 잃었지만, 남도의 넉넉한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돌담 하나하나에 스민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고옥과 정자들이 숨어든 돌담길을 느긋하게 걷는 여정이 구림마을을 제대로 구경하는 방법이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되라는 의미의 안용당

 
구림도기 가마터가 보존된 영암도기문화센터


골목따라 이어진 황토 돌담길이며, 돌담에 낀 이끼며, 고옥의 지붕이며 할것 없이

콘트라스트를 한껏 높이고 있다.

구림마을은 풍광이 수려한 월출산을 병풍 삼아 600여 채의 가옥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낭주 최씨, 함양 박씨, 해주 최씨, 창녕 조씨, 연주 현씨 등이 대대로 모여 살고 있다.

마을 중심은 굵은 노송이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회사정.

500여 년 째 연면이 이어져오는 주민자치조직인 대동계의 집회장이자

3.1운동때 독립만세를 불렀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금성별곡을 지은 박성건이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을 닦은 간죽정과  죽정서원,

그리고 400년 넘게 보존된 창녕조씨 종택도 남아있다.  

또한 옛 구림중학교 건물을 새단장해 만든 ‘영암도기문화센터’ 에는

3세기경 시신을 매장하는데 쓰인 옹관을 비롯해 구림도기, 사적지 338호인 구림도기 가마터 등이

잘 보존돼 있어 한국도자기의 유구한 역사를 가름케 한다.

그 외에도 육우당, 서호사, 조종수 가옥 등 마을 곳곳에 볼거리가 많다.

 

이 마을을 제대로 구경하는 방법은 최대한 느릿느릿 걷는 것이다.

그렇게 속도를 늦추며  정겨운 돌담길을 걷다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 전 그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떠나면서 다시는 못 올 고향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는 돌정고개를 넘으면

왕인박사의 자취를 복원해 놓은  왕인박사 유적지도 나온다.

이 곳에서는 매년 왕인문화축제가 열리는데,

100리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벚꽃 터널 속 문화의 향기도 느껴볼  수 있다.  

 

 

 

 

 월출산 도갑사

도갑사 해탈문 앞에 서니, 속세의 근심이 연기처럼 사라져 
 



해탈문에 서서 바라보는 도갑사의 전경은 그야말로 액자 속에 담긴 한폭의 수채화와 다름없다



독특한 미를 풍기는 도갑사의 해탈문

 
여름날의 배롱꽃이 가을바람에 흩날린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또 다른 촬영지는 바로 도갑사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인 도갑사는 무엇보다 봄날 흐드러지는 벚꽃길로 유명하다.

가을철 단풍이 들 때면 월출산 봉우리들과 어우러져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일주문을 통과한 후 만나는 구림천계곡은

고즈넉한 숲길과 함께 도갑사를 찾는 이들의 첫번째 동무가 되어준다.

그 길목 오른편 주지봉의 산중턱에는 백제의 왕인박사가 수학했다는 문산재가 있다.

도갑사 일주문을 지나 숲길을 2분여 오르면 국보 50호인 해탈문을 만나게 된다.

조선 성종 4년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로 주심포집에 다포집의 건축양식이 가미돼 독특한 미를 풍긴다.

그 이름대로 해탈문 앞에 서니 왠지 모르게 모든 근심 걱정들이 한줌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듯하다.




석조

 
균형미와 조형성이 돋보이는

고려 초기 5층석탑

  
화재로 소실된 후 5년만에 복원된 대웅보전의 웅장한 모습

 

 

석조여래좌상의 단아한 미소

 

해탈문을 통과한 후 경내로 바로 들어서지 말고, 그 자리에서 선 채 정면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해보자.

거대한 기암괴석의 바위산인 월출산에 쏘옥 안겨있는 듯한 도갑사의 고즈넉한 풍경에 진분홍빛 배롱꽃의 색감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 다름없다. 살랑살랑 부는 가을바람에 마치 여름과 이별을 고하듯 배롱꽃은 꽃잎을 한잎 두잎 떨군다. 바닥에 떨어진 그 처연한 모습마저도 아름답다.

 

도갑사 경내에는 대웅전과 석조 5층석탑 수미왕사비가, 절 100m 위 미륵전에는 단아한 얼굴을 한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도갑사는 원래 총 규모가 966간에 소속된 암자가 12개나 될 만큼 화려함과 웅장함으로 대변되는 사찰이었지만, 임진왜란과 6.25동란을 겪으면서 많은 건물이 불타버렸다. 지금도 대웅전 뒤 천여 평의 빈터에는 주춧돌이 선명하게 군데군데 박혀 있고, 앞뜰에는 5m에 달하는 석조의 크기가 도갑사의 옛 사세와 승려수를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 역사 읽기 - 실제 성균관은 어디 있을까?


조선시대 최고의 유학기관이었던 성균관. 서울 종로에 위치한 성균관 대학교 내 성균관이 있다.

유교를 집대성한 성인 공자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와 중국의 유명한 분들을 모신 곳으로

유교 건축인 대성전과 학교 건축인 명륜당, 기숙사였던 동, 서재

그리고 존경각, 향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륜당 앞쪽에는 천연기념물 제 59호인 은행나무가 있고,

봄과 가을에는 공자를 위시한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석전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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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U투어정보팀 손은덕 취재기자

-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