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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로 추정되며 공개된 '증도가자(證道歌字)'

Gijuzzang Dream 2010. 9. 2. 02:08

 

 

 

 

 

 

 

  '세계 最古 인쇄술’ 금속활자史 바뀌나

 증도가字(證道歌字), '직지'보다 훨씬 앞선 근거는?


 

 

 

 

독일 마인츠와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등 서양 여러 도시에는

여전히 요하네스 구텐베르크(398~1468)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는 '42행 성경'을 찍어냈고, 15세기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을 촉발했다.

그러나 '42행 성경'보다 78년이나 앞서 1377년 제작된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 같은 인류 기록역사가 또다시 바뀔 판이다.

2010년 9월2일 서울 경운동 다보성고미술전시관은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자(興德寺字)'보다 138년 이상 앞선 것으로 추정되는

'증도가자(證道歌字)' 금속활자 12점을 공개했다.

   

남권희 교수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실물이라고 주장한 ‘증도가자’의 활자들.

다보성고미술전시관 제공

 

 

 

인쇄본이 아닌 고려시대 금속활자 실물이다.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로 추정되며 공개된 '증도가자'(가칭)는 모두 12점이다.

명(明), 소(所), 어(於), 보(菩), 선(善), 평(平), 방(方), 법(法), 아(我), 복(福), 불(不), 자(子)다.

각각 가로 1~1.3㎝, 세로 1.2~1.5㎝, 두께 0.1~0.7㎝.

성분은 구리 40~80%, 주석 25~38%, 납 22~32%이다.

이들 활자는 글자의 획 사이에 먹이 확인돼 사용됐음을 알려주며,

일부 활자는 획이 떨어져 나갔거나 부식이 진행 중이다.

활자를 발견한 남권희 경북대 교수(한국서지학회 회장)는

"오랜 기간 매몰됐다가 출토된 것으로 보인다"며

"활자 획 등의 마모상태로 볼 때 다수의 책을 찍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증도가자' 12점 2010년 9월1일 공개

 

 

 

 

 

 '증도가자(證道歌字)'의 역사적 의미

 

활자 12자, 목판본 '증도가(證道歌)'와 서체 일치

 

 

고려시대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보물 제758호)’(이하 증도가)에 대한 기록은

삼성출판박물관에 소장된 목판본 ‘증도가’에 남아 있다.

이 책 끝 부분(권말)에 따르면 고려 고종 26년(1239)에 당시 무신정부의 1인자였던 최이(崔怡)가

'증도가' 의 원본은 남명선사가 문종 30년(1076)에 주자(鑄字. 금속활자)로 편찬했지만 더 전해지지 않아

각공(刻工)들을 시켜 더 이상 전해지지 않는 금속활자본 ‘증도가’를 목판으로 복각해 찍어 냈다고 한다.

목판본 ‘증도가’에 앞서 금속활자본 ‘증도가’가 제작 · 유통됐음을 명시한 것이다.

금속활자본인 증도가를 목판본으로 새로 찍어낸 시기는

고려가 몽골 침략에 대응하고자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로 옮긴지 8년 뒤 이다.

 

이 때 찍어낸 남명선사가 주석을 단 증도가는 지금까지 오직 삼성출판박물관 소장품 1점만 파악됐고

이는 한국 인쇄술사에서 중요성이 인정돼 1984년 5월30일 보물로 지정됐다.

   *** 증도가(證道歌) 

         : 중국 선종의 육조(六祖)인 혜능선사로부터 인가받은 당나라 영가 현각(665~713) 스님이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한 것을 1076년 송나라의 남명천 선사가 풀이하고 뒷글을 적어 찍어낸 책.

   

 


 

 

●목판 증도가에 금속활자본 명시

 

 

 

 

세계 최고(最古)금속활자로 추정되는

‘증도가자’의 세 활자 소(所), 불(不), 어(於)와

목판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글자(점선 안)를 비교한 모습

 

이번에 발견된 다보성미술관 소장 고활자 100여 점 중에서

남권희 경북대 교수가 주장한 고려시대 금속활자 12글자는

명(明), 소(所), 어(於), 고(苦), 선(善), 평(平),

방(方), 법(法), 아(我), 복(福), 불(不), 자(子)다.

 

남 교수는 목판본 ‘증도가’와 비교한 결과

글자 모양이 일치한다는 점을 근거로

이들 금속활자를 ‘중도가자(證道歌字)’라고 이름 붙였다.

특히 ‘명(明)’자는 지금의 글자와 다른 옛 글씨체(古字)로

쓰였는데 육안으로 봐도 그 모습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보통 한번 나온 책을 목판본으로 다시 제작하는

‘번각본’(飜刻本)은 기존의 책을 뜯어 각 페이지(葉)를

목판에 붙인 다음 그 글씨를 그대로 새기는 방법을

택하기 때문에 글씨체까지도 원본과 대부분 일치한다는 게 남 교수의 설명이다.

남 교수의 설명대로라면 현전하는 목판본 '증도가'는

'증도가자(證道歌字)'로 찍은 금속활자본 책을 뜯어내 목판에 새긴 판본이 된다.

 

 

●직지와 달리 주물사 주조 추정

  

남 교수는 이 금속활자(증도가자)가 13세기께 주조 및 사용된 것이며

주물방법은 1377년 '직지'를 찍어낸 활자인 청주의 흥덕사자(興德寺子)가 밀랍 주조방식인 것과 달리

증도가자는 모형이 주물틀의 상하로 분리되는 주물사 주조방식을 택한 것으로 추정했다.

또 흥덕사자가 지방에서 만든 활자인 반면 증도가자는 중앙에서 주조 · 사용된 점을 들어

고려시대의 주조기술과 조판 및 인쇄술을 조선시대와 비교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보성고미술 측에 따르면 이들 금속활자는 일제강점기 어느 시점에 출토돼

일본인 수장가가 일본으로 유출했다가 10년 전 한국 개인 수장가가 매입해 국내로 들여왔다.

남 교수는 금속활자의 제조 시기를 밝혀내기 위해 보존과학자들에게 성분 분석을 의뢰하는 등

3년 넘게 다각도의 분석과 검증을 거쳤다고 밝혔다.

 

현재 실물로 남아 있는 고려시대 금속활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복(산 덮을 복, 山+復)’ 자와

북한 개성역사박물관의 ‘전(顚)’자 2점뿐이며, ‘직지’를 찍은 흥덕사의 금속활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금속활자가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공인되면

'직지'의 발견에 이어 세계 인쇄술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정도로 큰 발견이지만

그에 이르기까지는 학계의 교차 연구ㆍ검증, 관련 논문의 증명이라는 중요한 절차가 남아 있다. 
  

●국내외 학계 검증 거쳐야

 

이와 관련, 문화재 당국은 신중한 입장이다.

이들 금속활자 중 일부에 대해서는 비파괴 성분 분석이 실시됐다. 
금속활자의 성분 분석만으로는 정확한 연대 추정이 어렵고,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 금속활자가 1개밖에 없어 비교할 근거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보존과학자인 이오희 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는

"고려시대 금속활자로 볼 수 있는 것은 구리, 주석, 납이 주성분이고 철이 불순물로 검출된 데 비해

다른 금속활자에서는 이와 다른 성분이 검출됐다"면서

"기존 고려시대 금속활자라고 해 봐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1점(복자)과

북한의 개성력사박물관 소장품 1점(전자) 뿐이어서 보존과학적으로 비교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 2010-09-02  국내 일간신문에서 종합 정리

 

 

 

 

 '증도가(證道歌)'는 선종(禪宗)의 고전

 

'증도가(證道歌)'는 당나라 영가 현각(玄覺. 665-713) 스님이

중국 선종(禪宗)의 6대 조사(六祖)인 혜능선사를 만나 질문하면서

하룻밤만에 깨달은 경지를 노래한 선종 시가집으로,

오랜 세월 선가(禪宗)의 고전으로 애송돼왔다.

증도가는 원래 247구, 1천814자라는 설도 있고 266구, 267구라는 설도 있으나

어떤 설에 의하든 총 글자 2천자가 되지 않는 길지 않은 운문(韻文)이다.

君不見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배움이 끊어진 하릴없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없애지 않고 참됨도 구하지 않으니)

無明實性 卽佛性 幻化空身 卽法身

(무명의 참 성품이 곧 불성이요 허깨비 같은 빈 몸이 곧 법신이로다)
 

 

증도가는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 송나라, 원나라 때 수많은 주석서들이 나왔고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에 전래된 이후 숱한 번역서, 해설서들이 발간됐다.


이번에 발견된 금속활자(증도가자)와 글자체가 일치한다고 판단되고 있는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보물 758호)'는

중국 송나라 남명 법천선사가 증도가에 게송을 붙인 것을 고려시대 때 들여온 것으로,

한국불교전서 6권, 고려대장경 47권에 포함돼 있다.

근현대 들어서는 탄허 스님이 번역한 '선종 영가집',

성철 스님이 주해한 '신심명/증도가 강설'등을 비롯해 많은 증도가 주해서들이 나와있다.
성철스님이 속가시절 '증도가'와 선종의 3대 조사 승찬스님이 지은 '신심명'을 접하고

눈이 번쩍 뜨이는 감동을 받으면서 출가를 결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고려 금속활자(金屬活字)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 금속활자는 딱 두 글자 뿐.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복'자와 북한 개성역사박물관이 소장한 '전'자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개성의 개인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복'활자 하나가 있고,

개성 고려박물관에도 고려의 왕궁이 있었던 개성 만월대 신봉문에서 출토된 '전'활자 하나가 전한다.
이들 활자는 한결같이 누가 무슨 용도로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지 않다.

다만 이들 '복'활자나 '전'활자는 여러 가지 특징과 정황을 고려할 때

고려후기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들 활자는 고려시대 금속활자의 주조와 책의 간행을 실증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활자들이다.

 

  

 

 

고려 '복' 활자

크기는 1.0㎝이며 이 글자는 자전에도 나타나지 않는 벽자이므로

일반적인 저작을 간행하기 위한 금속활자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활자의 주조방법이 아주 미숙하여 활자의 모양이 가지런하지 않고 자획이 고르지 않으며 네 변의 길이도 앞뒤로 차이가 있고

활자의 뒷면이 타원형으로 옴폭 파져 있다.

글자체는 송설체 계열인데 1975년 3월에 실시한 분석에 의하면
구리 50.9, 아연 0.7, 주석 28.5, 납 10.2, 철 2.2%의 금속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전'활자와 매우 형태가 거의 유사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산 덮을 (山+復)'활자는 
개성의 한 무덤에서 출토된 고려 금속활자이다.
 
 
고려 '전' 활자에 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다.
'이마 전(顚)' 활자의 크기는 가로세로 각각 10㎜이다.
주성분은 동, 주석, 연이며 부성분은 규소, 철, 알루미늄 등이다.
 
 
 
 
 
 
  
  
'전(顚)'자가 새겨진 고려시대 금속활자는
1958년 개성의 고려왕궁터인 만월대 신봉문 터
서쪽 약300m 지점에서 출토된 것으로
북한 개성고려박물관 소장. 
 

 

 

 

 

 

 

 

 

 

 

 

 

 

 

 

 

 

 

 

 

  

 

 

 


'증도가자(證道歌子)' 공개 파장

 

 


서지학자인 경북대 남권희(문헌학) 교수는

서울 인사동 고미술 컬렉션인 다보성고미술전시관이 소장한 금속활자 100여 점을 분석한 결과,

12점이 1377년 활자본으로 간행된 직지보다 앞선 13세기 초의 금속활자(증도가자, 證道歌字 · 가칭)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라고 자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은

'직지심체요절(1377년)'로 상 · 하권 중 하권만 프랑스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자(興德寺字)'라는 금속활자 실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증도가자는 그러나 그동안 존재를 입증할 만한 금속활자본이나 금속활자인본이 전해지지 않았다.

따라서 그것의 주조 시기나 수량, 인쇄 시기 등을 알기 어려웠고

활자의 규격이 가로 · 세로 각 1㎝ 정도로 추정되었을 뿐이다.

 

남 교수가 다보성고미술이 소장한 고려시대 금속활자들을 분석한 결과

이 중 청동활자 12점이 '증도가'를 인쇄한 금속활자로 확인됐다.

이들은 목판본 '증도가자'와 활자의 규격이 거의 일치했고, 활자의 구성 성분도 밝혀졌다.

활자 크기는 글자에 따라 다르지만

'不'자는 가로 12.11㎜,세로 10.93㎜에 무게 4.31g이었으며

'於'자는 가로 15.65㎜,세로 13.24㎜에 무게 4.88g이었다. 

두께 0.1~0.7㎝. 성분은 구리 40~80%, 주석 25~38%, 납 22~32%이다.

다보성미술관 측은 남 교수가 세계 최고 금속활자라고 주장한 '증도가자'의 제조 시기를 밝혀내기 위해

보존과학자들에게 성분 분석을 의뢰하는 등 다각도의 분석과 검증을 거쳤다고 했다.

 

이 증도가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책으로 알려진 직지보다 최소 138년 이상 앞선 금속활자로

세계 기록문화 역사를 새로 쓸 세계적인 우리의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했다.
고려 왕조는 1076년부터 몽골의 침입으로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도로 옮긴 1232년 사이에

이 책을 금속활자로 찍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속활자가 1126년 이후에 발명된 점을 감안하면

'증도가'는 1200년 전후에 인쇄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남 교수는 추정했다. 

한편 고려 무신정권기 문신이자 문장가인 이규보의 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는

고종 21년(1234)에 금속활자로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이라는 역대 시가집을 펴냈다는

기록이 있어 이 문집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주장도 있다.


남 교수는 "직지보다 몇 년 빠른지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며

"직지는 결정물인 책이고, 증도가자는 도구인 활자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
도가를 찍어낼 때 사용한 활자라고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번에 발굴한 금속활자 12글자가 증도가의 서체와 같다.

증도가만 쓰는 글자 모양이 있는데 그 모양까지도 같다는 것은

금속성분 분석 등 (과학적 검증)이전에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고 본다.

한두 글자가 아니고 대부분 글자가 그렇다. 충분한 개연성이 있으며 나는 확신하지만,

차후 학계에서 이번 발표를 바탕으로 성분 분석 등 여러 연구가 이뤄지길 바란다.

--
가짜 활자가 아니라는 근거가 있는가.
처음에는 나도 가짜활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활자의 높이와 각을 보면 위작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 밀랍 주조방식과 주물사 주조방식의 차이는.
밀랍 주조방식(직지)이 아닌 주물사 주조방식(증도가)으로 만들어졌는데,

이것 때문에 증도가자가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다만 직지는 지방 사찰에서 만든 활자지만, 증도가자는 중앙에서 주조한 것이다.

이를 통해 고려시대 중앙에서는 주물사 주조방식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고,

조선시대와 비교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한다.

-- 확실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발표한 이유는.
지난 수년간 연구했지만 이제 혼자 전전긍긍할 단계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공개적으로 학계에서 연구되게 하려고 발표하게 됐다.

앞으로 공식적으로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연구해 제대로 된 보고서를 낼 것이다.

-- 활자 입수 과정은. 
나는 소유자가 아니며 단순히 연구자일 뿐이다.

일본인이 개성에서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라고 소장자에게 들었다.

소장자가 보유한 100여 점 중 일단 증도가자로 확신할 수 있는 12점을 이번에 발표한 것이다.

소장자가 앞으로 연구에 전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금속활자

 

 

145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찍은 성경을

'42행 성경'이라고 부른다. 총 180부를 인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부는 양가죽으로, 나머지는 종이로 제작했다고 한다.

그 중 48부가 남아 있지만 상태가 좋은 건 20여 부다.

디자인이 뛰어난 걸작이란 점과 '세계 최초'라는 상징성을 갖춰서

고서 수집가들이 가장 탐내는 대상이 됐다.

간혹 경매에 나오면 수백만달러씩에 팔리곤 한다.

구텐베르크 성경에서 세계 최초라는 지위를 빼앗아온 것은 '직지심체요절'이다.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가 동양문헌실에 묻혀 있던 것을 찾아냈다.

그가 '직지'를 처음 접한 때는 1967년이었으나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구텐베르크보다 먼저 금속활자를 만들었을리 없다는 서구학계의 선입견 탓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박 박사는 글자체를 꼼꼼하게 분석해 가장자리의 금속 흔적인 이른바 '쇠똥'을 증거로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금속활자본임을 밝혀냈다.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78년이나 앞선 1377년(고려 우왕 3년) 7월

청주 교외에 있던 흥덕사에서 찍어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1972년의 일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미 1200년대 초반에 '증도가자(證道歌字)'와 '상정예문자(詳定禮文字)'라는 금속활자로

책을 찍어냈다는 기록이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등에 남아 있다.

아쉽게도 실제 판본은 전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직지' 이전의 금속활자본이 존재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셈이다.

'직지'보다 138년 이상 앞선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12점이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이들 금속활자가 1239년 목판으로 찍어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 보물 758호)'의

글자모양과 일치한다는 점이 근거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끝부분에 '원본은 금속활자로 편찬됐지만 전해지지 않아 목판으로 복각해

찍었다'는 기록이 있어 적어도 1239년 이전에 주조된 활자라는 얘기다.

이 주장이 맞다면 세계 인쇄사를 새로 써야하겠지만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이들 활자의 출토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속활자는 절대연대를 과학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워 출토 당시 상황으로 연대를 가늠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내외 학계의 교차 연구와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하는 이유다.
- 이정환 논설위원

2010.09.02  한국경제신문 [천자칼럼]

 

   

 

금속활자

 

인쇄술은 화약, 나침반, 종이와 함께 역사 발전을 이끈 4대 발명품으로 꼽힌다.

지식을 전파하는 힘이 곧 인쇄술인 까닭이다.

 

세종 7년(1425년) 때의 일이다. 중태, 범령이라는 일본 사신이 조선에 왔다.

조선 초부터 대장경 목판을 달라며 애걸하던 일본은 이때도 똑같은 간청을 했다.

가관인 것은 '목판을 주지 않으면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한 점이다.

6년 전 이종무가 이끄는 조선군 1만7285명이 대마도를 정벌한 터였으니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세종은 온화한 빛으로 말했다.

"대장경 목판은 한 질밖에 없고, 조상 때부터 전해오는 것이니 내 마음대로 줄 수 없지 않으냐."

조선과 일본의 문화 격차는 그만큼 컸다.


9년 뒤 세종의 명을 받든 조선 기술자들은 무려 20만자에 이르는 동활자를 만든다.

한국 활자의 백미 '갑인자(甲寅字)'다.

이로부터 "명의 활자술은 조선을 따르지 못한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인(因)이 있어야 과(果)가 있는 것은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때의 활자 기술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활자 기술은 이미 고려 때 개화됐다.

1087년 완성된 초조대장경, 1092년부터 9년 동안 만든 속장경,

몽골 침입에 맞서 1236년부터 16년간 조성된 팔만대장경.

고려는 세계 역사상 보기 드문 '활자문화 대국'이었다.

 

독일 구텐베르크가 성경을 찍기 위해 금속활자를 만든 데 비해

고려에서는 불경을 찍기 위해 활자를 새겼다.
대장경에 이어 나온 것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을 찍어낸 금속활자다.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 책은 1372년 만들어진 불교 서적으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78년 이상 앞선다.

금속활자 최고(最古) 기록이 바뀌게 될 판이다.

다보성미술관은 직지심체요절보다 138년 이상 빠른 금속활자 '증도가자(證道歌字)' 12자를 공개했다.

책이 아닌 활자 실물이다. 원래 금속활자본인 것을 1239년(고려 고종 26년) 목판본으로 똑같이 만든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의 글자체와 일치한다고 한다.

세계로부터 공인받자면 더 치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금 우리는 화려했던 그 기술 전통을 제대로 잇고 있는가.'
- 강호원 논설위원

- 2010.09.02 세계일보 [설왕설래]




 

 

 

 

  

 

 

 

 “증도가 활자 목판본과 달라” 最古금속활자 논란

 

현존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보다 앞서 제작된 금속활자라고 공개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이하 증도가)' 활자가 목판본과 서법이 다르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고 금속활자를 둘러싼 논란도 가중될 전망이다.

충북 괴산군 소재 중원대 교양학부 이상주 연구교수는

“서지학자인 경북대 남권희 교수가 최근 증도가자로 공개한 12개 금속활자 중

‘명(明)’,  ‘선(善)’,  ‘소(所)’,  ‘평(平)’,  ‘어(於)’ 등 언론에 보도된 5개 금속활자의 사진과

증도가 목판본을 대조해보니 서법적으로 같은 글자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명(明)’자의 경우 금속활자가 월(月)의 왼쪽 세로획의 밑부분이 윗부분보다 두터운데

목판본은 끝이 칼날처럼 날카롭다”며

“ ‘일(日)’자와 ‘월’자의 간격 역시 목판본이 금속활자보다 훨씬 가깝다”고 주장했다.
다른 글자 역시 금속활자와 목판본의 글씨 붓놀림 등이 다르다는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고

꺾임 등에서도 금속활자와 목판본이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月' 자의 삐침 길이 등도 금속활자와 목판본이 큰 차이를 보이는 등

증도가 목판본의 '明' 자 28개 중 증도가자 '明'자와 동일한 글자를 발견할 수 없어 이 금속활자로

증도가를 인쇄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 '선(善)' 자도 금속활자는 '양(羊)' 자의 윗 획이 '팔(八)' 자로 돼 있으나

목판본의 '선' 자 대부분이 거꾸로 된 '팔(八)' 자로 돼 있다"며

"목판본의 글자 3개는 거꾸로 된 '팔' 자로 되어 있으나 금속활자와 목판본의 글씨 붓놀림이 다르다는

것을 붓글씨에 정통한 사람이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 '平' 자의 二 중간에 있는 삐침 획도 목판본에는 직선처럼 인쇄돼 있으나

금속활자는 꺾임이 있고 '二'의 간격 역시 목판본과 금속활자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붓이 가는 방향이나 강도 등에 따라 글씨 모양이 다소 달라지는 서법적으로 분석할 때

'明' , '善', '平'뿐 아니라 '所', '於' 등의 금속활자와 목판본이 같은 것이라 보기 어렵다”며

"이는 남 교수가 공개한 금속활자가 증도가를 인쇄한 활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근거"라고 주장했다.

앞서 남권희 교수는 다보성미술관이 소장한 고활자 12점이

13세기 초 고려 증도가를 찍어낼 때 사용한 활자라고 공개하며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라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2010-09-08 헤럴드생생뉴스, 연합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