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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석조비로자나불상

Gijuzzang Dream 2010. 8. 9. 13:39

 

 

 

 

 

 

 잃어버린 석조비로자나불상

 

 

 

몇 해 전에 가족이랑 아산 스파비스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서산 마애삼존불상과 보원사 절터를 답사하고 온 적이 있다.

마침,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바위 한쪽 편에 그냥 방치해 둔 불상 하나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아무도 신경써지 않은 채 버려두었다는 느낌 때문에 불교조각을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

괜시리 미안한 마음과 함께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불상을 보고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인천공항 문화재감정관실로 도난문화재 신고가 들어왔는데

바로 그 불상이었다(2005년 3월 19-20일 도난). 얼마나 놀랍고 황당했는지......
 

서산 운산면 용현리 비로자나불상은 높이 93cm로 머리부분에는 몸체와 연결한 흔적이 흉측하게 남아있다.

(그림 1)

이 불상은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으며 누구의 손에 의해 없어졌는지 그 내력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오랫동안 노천에 방치된 탓에 얼굴부분의 마멸이 심하고 각이 진 어깨와 네모난 신체,

형식적인 옷주름 표현 등에서 고려 이후의 불상으로 추측된다.

다만, 두 손은 가슴 앞에 올려서 왼손으로 오른손 손가락 전체를 감싸고 있는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다.

이러한 손의 모양은 흔히 비로자나불상이 취하고 있는 지권인과는 좌우 손의 위치가 바뀐 것으로

좌권인(左券印)이라고 한다.

 
  

 

좌권인의 수인은 중국 당대와 북송대의 비로자나불상 중에서 간혹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상을 비롯하여 강원도 홍천 물걸리 석조비로자나불상,

경상남도 진양군 한산사 석조비로자나상, 전라남도 광주 증심사 철조비로자나불상 등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유행한 비로자나불상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좌권인의 비로자나불상은 새로운 불상형식을 수용할 때 흔히 있을 수 있는

단순한 지권인 좌우의 착오라기 보다는 삼존불상 중의 협시보살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단독상으로 조성되었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지권인이란 이(理)와 지(智), 중생과 부처, 미혹함과 깨달음이 원래 하나라는 뜻의 수인으로

지권인을 결하면, 보리심이이 일어나 견실한 지혜가 갖추어지고 빠르게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지권인을 취하는 불상은 보통 비로자나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비로자나불(Vairocana)의 성립과 기원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지만

광명신 또는 태양신의 성격이 강하여 오래전부터 일본 학자들은

인도 고대 신화에 나오는 대표적인 신인 아수라(Asura)에서 비롯된 것으로 언급해 왔다.

아수라는 고대 페르시아 종교 조로아스트교의 최고신인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를 의미하는 것으로

원래 빛의 신이었던 것이 악마로 바뀌고

다시 빛나고 눈부시게 비친다는 뜻을 가진 비로자나불로 변하게 되었다.

따라서 비로자나불은 태양이 지닌 특성에 비유하여 온세계의 모든 것을 두루 비추어 어둠을 없애주고

그 광명은 항상 빛나고 생멸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비로자나불의 지혜의 빛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밝게 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산 용현리 석조 비로자나불상 외에도

경주 신평리 석조비로자나불상을 비롯하여 안동 금계리 석조비로자나불상, 김해 백룡암 불상,

군위 서경리 석조불입상, 임실 덕계리 석불상 등 모두 근래에 도난된 불상들이다(그림 2, 3).

 

 

이와 같이 불교조각의 도난현황은 국가지정문화재와 시도지정문화재에 비해

비지정문화재의 경우가 훨씬 빈도수가 높고 심각한 형편이다.

지금도 여전히 문화재 전문털이범에 의해 문화재가 도난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방비없이 노출된 불상들을 보면, 이런 저런 걱정이 앞선다.


박사논문을 쓰면서 자료 수집차, 불국사에서 갔을 때에도 느꼈던 불안감이다.

우리나라 불상 중에서 사자(獅子) 위에 앉아 있는 문수보살과

코끼리[象]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을 협시로 한 불국사의 석조비로자나삼존불상은 보기 드문 예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그림 4).

 

 

이 비로자나삼존불상은 1970년 6월에 불국사 토량처리공사 중에 발견된 것으로

본존불과 협시보살상들은 원래 남아 있지 않고 대좌만 불국사 경내에 있다고만 기록되어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있을만한 데를 여기저기 둘러보니 불국사 경내 기념품 판매소 앞마당에 완전히 분리된 채 흩어져 있는

대좌의 잔편들이 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면, 불상의 대좌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퇴락한 모습으로 무상함을 절감케 한다.

이런 사정은 경상북도 성주군 법수사(法水寺) 절터에서 발견되어

 현재 경북대학교박물관 앞에 전시되어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비로자나삼존불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림 5)



 

불국사의 삼존불상에 대해서는 「불국사고금역대기」에 기록이 남아 있다.

“문수전에는 석조 비로상과 그 좌우에 사자좌 위에 앉아 있는 문수와 코끼리좌 위에 앉아 있는 보현보살상

2구가 있었는데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언제 조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文殊殿 五間所安 毘盧石像及左右 文殊普賢座臺象王獅子二具 野火樸落不知何代人所造也)”고 되어 있다.

 

이 조상찬문에 의하면,

불국사의 비로자나삼존불상은 887년(신라 진성여왕 원년)에 헌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그의 후비로 추정되는 수원(秀圓) 비구니의 발원으로 조성되었으며

원래는 불국사의 문수전(文殊殿)에 봉안되었던 불상이라 한다.  

 

불국사의 사자좌(獅子座)와 코끼리좌[象座]는 사각형의 받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있는 모습으로

파손이 심하여 머리와 다리부분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특징은 거의 유사하다.

보살상이 앉았던 깔개 위에는 구름문과 연주문이 장식되었고

코끼리의 머리 위에는 굴레가, 사자의 발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표현되었음이 확인된다.

본존불의 대좌였을 것으로 보이는 팔각대좌 또한 상대석과 하대석이 일부 파손된 채

중판연화문으로 구성되었으며 중대석에는 사자와 구름문이 뒤섞여 조각되어 있다.

이러한 팔각연화대좌는 법수사지 비로자나불상을 비롯하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상 등

통일신라 후기 불상에서 유행했던 대좌형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불국사 비로자나삼존불상은 이미 파손된 채 발견되어 그 원형을 잃어버렸으며

지금도 아무렇게나 놓여 있어 그저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하다.   

 

경주 불국사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신라인의 최고 유적지로 문화재가 여기 저기에 널려 있지만

정작 그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데에는 다소 게으른 것같다.

나 역시 문화재가 국외로 반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언제나 부족함이 많다.

문화재를 지키고 보존하는 일이야 서로 엇비슷하겠지만, 밖에서 보는 자의 시각은 이렇게 다른가 보다.

 

  문화재 컬럼을 통해서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옛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예기치 않았던 일이기에 내심 무척 놀랍고 반갑기도 했지만 새삼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위력을 실감했다고나 할까...

이런 생각이 드니 이 글을 또 누군가 읽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 이숙희, 문화재청 인천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

-  2010-03-15, 문화재청, 문화재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