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괴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다
전 세계의 생물종 가운데 과학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보다 확인되지 않은 생물의 수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아직 확인되지 않은 동물종을 연구하는 신비동물학이라는 동물학 분야도 있다.
신비동물학은 늑대인간이나 일각수, 설인 등 전설상으로 전해오는 동물이나
인간을 피해 숨어사는 기이한 동물들을 추적하는 학문이다.
영조 때 평안도에서 나타난 괴수와 맥(貘)은 닮은 점이 많다. |
1747년(영조 23) 11월 5일 조선의 평안도에서도 아주 괴이한 동물이 발견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그 괴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앞발은 호랑이 발톱이고 뒷발은 곰발바닥이며 머리는 말과 같고 코는 산돼지 같으며 털은 산양 같은데 능히 사람을 물었다. 병사가 발포해 잡아서 가죽을 올려 보내왔다.”
여러 동물의 형상을 합쳐 놓은 듯한 이 괴수는 성질도 아주 사나워 사람을 물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짐승의 가죽을 받아든 영조가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그 정체를 파악한 결과, 매우 흥미로운 대답이 나왔다. 누구는 얼룩말이라 했고 또 누구는 맥(貘)이라고 대답했던 것.
얼룩말은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이남 초원지대에 서식하는 동물로서, 조선에서는 도저히 발견될 수 없는 종이다.
맥이라는 동물 또한 마찬가지다. 맥(貘)은 말목 맥과에 속하는 포유류로서
말레이반도, 수마트라, 타이 등에 분포하는 말레이맥과 아메리카 대륙에 분포하는 아메리카맥으로 나뉜다.
아메리카맥은 다시 남아메리카 및 멕시코 등지에 살고 있는 브라질맥과 안데스산맥에 사는 산맥,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 분포하는 베어드맥으로 나누어진다.
즉, 맥(貘)이라는 동물 역시 동아시아의 조선 땅 근처에조차 기웃거리지 않는 먼 나라의 동물인 셈이다.
그런데 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괴수가 ‘맥’과 유사점이 상당히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맥은 발굽이 앞발에 4개, 뒷발에 3개 있다. 즉, 앞발과 뒷발의 모습이 조금 다른 셈인데
앞발을 호랑이 발톱에, 뒷발은 곰발바닥으로 각각 다르게 비유한 실록의 내용과 일치한다.
또 맥의 코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짧은 통 모양으로서, 길게 자란 윗입술과 붙어 있어
그 모습이 흡사 코끼리의 조상을 연상시킨다. 코가 산돼지 같다는 실록의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흰 가로줄무늬가 있는 맥(貘)
결정적인 것은 가죽을 본 어떤 신하 중에서 얼룩말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말레이맥이건 아메리카맥이건 맥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생후 6개월까지는 온몸에 흰 가로줄무늬가 있다.
또 말레이맥은 성인 개체의 경우에도 몸 색깔이 검은색과 흰색으로 반반 정도씩 나누어져 있다.
따라서 이런 동물을 본 적이 없을 경우 얼핏 얼룩말을 연상할 수도 있다.
이런 희한하고도 불완전한 모습 때문에 맥(貘)이 서식하는 지역의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창조주가 동물을 만들다가 남은 부분을 모아서 맥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맥과 다른 특징도 눈에 띈다.
털이 산양 같다는 기록을 볼 때 그 괴수는 털이 매우 길었던 것 같다.
이에 비해 맥은 털이 비교적 뻣뻣하고 짧은 편이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먼 외국에 가본 적이 별로 없었던 조선의 문무백관이
어떻게 맥이나 얼룩말 같은 동물을 언급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동양에서의 기린은 육상 포유류 중 키가 가장 큰 아프리카 기린과는 달랐다. |
이밖에도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상한 동물에 대한 기록이 종종 나타난다.
1671년(현종 12) 1월 15일 평안도 벽동군에서 이상한 짐승이 사람을 물어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그 짐승의 모습이 매우 이상했다.
실록에 의하면
“그 몸이 매우 크고 색은 반은 잿빛이고 반은 검었는데 혹 붉기도 하고 혹 희기도 하여 곰과 비슷하나
곰이 아니었다”고 되어 있다.
한편, 야생에서 발견되는 괴수 외에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 이상하게 생긴 새끼를 낳는 경우도 있었다.
1627년(인조 5) 12월 14일 가평군에서 암말이 새끼를 낳았는데
고양이를 닮았고 머리가 둘, 다리가 넷, 눈이 넷, 귀가 둘이었다고 되어 있다.
또 1519년(중종 14) 4월 9일에는 평안도 상원군의 민가에서 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그 모습이 아주 특이했다. 실록에 의하면 그 송아지는
“머리는 하나에 다리는 여덟, 콧구멍은 넷, 귀는 셋, 등뼈가 둘, 꼬리가 둘, 배꼽 이하로는 갈라져
꽁무니가 둘이 되었는데 사람이 서로 끌어안고 누워 있는 것 같았다”고 묘사되어 있다.
가평이나 상원의 경우 신체의 일부가 결합된 상태로 태어난 샴쌍둥이 개체일 가능성이 높은데,
귀와 다리 등의 숫자를 감안할 때 그 붙은 형상이 샴쌍둥이 개체 중에서도 매우 독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괴수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1793년(정조 17) 12월 3일자에 기록된 동물에 대한 내용이다.
강원도 원주의 명봉산에 기린과 비슷한 동물이 나타났는데,
실록에는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원주 판관 원우손(元羽孫)이 첩보하기를
‘어떤 짐승이 있는데 머리와 꼬리는 말과 같고 소의 눈에 발굽은 둥글며, 크기는 세 살 난 송아지만하고
털은 잿빛인데 반짝반짝 윤이 나며 이마 위에는 길이가 두서너 치쯤 되는 털이 있고
그 사이에 숨겨진 뿔이 있었다. 지난 11월 15일에 사제면(沙堤面)의 민가에 나타났고
12월 9일에는 명봉산으로부터 큰길을 따라 건등산(建登山)으로 들어갔는데,
다닐 때는 풀을 밟지 않고 곡식을 뜯어먹지 않으며,
사람을 만나면 꼬리를 흔들어 마치 길들인 짐승과 같았다’고 하였다.”
어진 성품을 지닌 기린과 공자의 관계
상상 속의 동물인 기린은 매우 어진 성품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여기서 기린은 육상 포유류 중 키가 가장 큰 아프리카 초원의 기린이 아니다.
동양에서 전해 내려오는 기린(麒麟)은 거북 ‧ 봉황 ‧ 용과 더불어 4령(四靈)으로 꼽히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원래는 ‘린(麟)’만 있었으나 짝 없는 짐승은 없다며 수컷을 뜻하는 ‘기(麒)’를 붙여 ‘기린(麒麟)’이 되었다.
사슴의 몸에 말의 발굽과 소의 꼬리를 갖고 있는 기린은 긴 털이 있는 모든 짐승의 선조이자 왕으로서, 그를 따르지 않는 동물이 없다고 한다.
온몸에는 영롱한 비늘이 덮여 있으며, 머리에는 뿔이 한 개 돋아 있는 일각수이다. 그런데 그 뿔은 살이 변해서 된 것으로서, 무기로 사용되지 않는다.
또한 기린은 살아 있는 것은 절대로 죽이지 않아서
산에 아무렇게나 나 있는 풀도 밟지 않고 다닐 정도로 어진 성품을 지녔다.
그러나 싸울 때는 입에서 불을 뿜고 우레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괴물들을 굴복시키는
강력한 힘을 지닌 동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정조 때 원주 명봉산에 나타난 짐승은 기린의 이런 특성과 상당히 닮아 있다.
특히 기린은 한‧중‧일에서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상서 동물인데, 공자를 상징하는 동물로도 유명하다.
중국의 고대 사상가이자 유교의 시조인 공자는 BC 551년 노나라에서 태어났다.
전설에 의하면 공자의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기린이 나타나 비취옥을 토했는데,
그 옥에 공자가 ‘무관의 제왕’이 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다.
공자가 탄생할 때 나타난 기린은 공자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다.
노나라 애공 14년 봄에 기린이 어느 사냥꾼의 손에 잡혀 죽는 사건이 발생한 것.
이 사실을 안 공자는 기린이 죽었으니 이상 정치를 펼치는 세상이 되기는 틀렸다며,
당시 집필하고 있던 ‘춘추’를 ‘서수획린(西狩獲麟 ; 서쪽에서 사냥하다 기린을 잡음)’이란 대목에서
끝맺어 버렸다.
그로부터 2년 뒤 공자는 세상을 떠났는데,
이 때문에 ‘획린’이란 말은 글쓰기를 그만두는 ‘절필’이나 임종의 뜻으로 사용된다.
더불어 기린은 걸출한 인물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고,
또 기린이 나타나면 성인 혹은 성군이 출현해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상상이나 전설 속에서만 전해져 오던 기린이
정말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다.
1414년 어느 날 중국 명나라의 영락제가 살고 있는 궁궐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성군이 출현할 때 나타난다는 전설 속의 동물인 기린이 성큼성큼 궁궐로 걸어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 동물은 전해져 오는 대로 매우 신기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이 기린은 원래 동아프리카의 말린디 왕국(지금의 케냐)에서 새로 즉위한 벵골국(지금의 방글라데시)의 술탄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그런데 벵골의 술탄은 대선단을 이끌고 나타난 정화 장군을 통해 기린을 다시 명나라 영락제에게 조공으로 바쳐 버렸다. 즉, 그 기린은 전설로 전해져 오던 상서 동물이 아니라 아프리카 초원에서 뛰어다니던 목이 긴 쥐라프(giraffe ; 기린)였다. 사실 포악한 성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숙청하고 끊임없이 주변국을 찬탈한 폭군이었다. 하지만 기린의 출현으로 인해 영락제는 순식간에 천하의 성군으로 칭송되는 영광을 누렸다. 명나라의 심도란 이가 그린 ‘서응기린도(瑞應麒麟圖)’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중국국가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이 그림에는 ‘영락 12년(1414)’이라는 연호와 함께 기린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1414년(태종 14) 윤 9월 30일자의 태종실록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기린이 나타난 것을 하례하기 위함이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영락제의 정치적 안정을 굳힌 엄청난 상징 동물이었던 셈이다. 타조와 표범, 얼룩말 등 진기한 동물을 비롯 기린을 직접 배에 싣고 중국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말리아에서는 기린을 ‘기리’라고 하는데, 기린이라는 단어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유럽의 대항해시대보다 70년이나 앞서고 규모도 훨씬 컸던 대항해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남해원정으로 정화 장군은 ‘바다의 실크로드’ 또는 ‘도자기의 길’이라 불리는 남해항로를 개척했다. 또한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기린을 계속 수송함으로써 영락제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의외의 소득도 함께 올린 셈이다. 그런데 영락제 때의 기린을 놓고 조선의 대신이 이의를 제기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1428년(세종 10) 11월 9일 세종은 승지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사슴은 앞에서 인도하고, 뭇 사슴이 뒤따라 다녔다 하는데, 잡지는 못하고 종이에 이를 그렸는데 그 생김새가 매우 이상하였다 하니 이것은 상서인 것이다. 또 태종 황제 때에도 기린이 들에 나온 것을 잡아 길렀다 한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좌승지 김자(金赭)가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태종 때에 나온 기린은 그 발굽이 소와 같았다 하옵니다.” 도대체 말과 소의 발굽이 어떻게 다르기에 김자는 그렇게 말했던 것일까. 기제류는 뒷다리의 발굽 수가 홀수인 동물로서, 발굽이 하나인 말과 셋인 코뿔소 등이 해당된다. 따라서 맥(貘) 역시 기제류에 속한다. 특히 말이나 당나귀, 노새 등은 한 발에 하나의 발굽을 가지고 있어 ‘단제류’라고 한다. 진화 과정에서 더 빨리 달리기 위해 세 번째인 가운데 발가락과 발톱만 남아 하나의 발굽이 되었다. 말이 전속력으로 달릴 때 발굽 하나에 체중의 10배에 해당하는 무게가 전달된다고 한다.
그러니 몸무게가 500㎏ 나가는 말의 경우 약 5톤의 충격이 순간적으로 발굽에 가해진다. 이런 엄청난 충격을 견디기 위해 말의 발굽은 굽바닥 가운데가 깊고 오목한 돔의 형태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닥이 지쿠션이라고 하는 생고무 같은 탄성 섬유성의 부위로 이루어져 있는 등 매우 특수한 구조로 발달되어 있다. 영락제 때 실제로 나타난 기린은 소처럼 짝수의 발굽을 지닌 우제류라는 것이 곧 김자의 주장이었다. 아프리카 초원의 기린은 우제류이니 당연히 말이 아니라 소의 발굽과 닮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세종은 “그렇지만 대체로 기린과 같고 몹시 기이하게 생겼다 하니, 이것도 기린이라고 이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라는 말로 논란을 마무리 지었다. 이때는 제6대 황제인 정통제가 명나라를 다스리던 때로서 어디서 온 기린인지는 알 수 없다.
한편, 조선 단종부터는 문무 당상관이 입던 관복에 모두 흉배를 붙이게 했는데, 왕자인 대군(大君)들에게는 기린을 새겨 넣도록 정했다. 기린은 원래 풀을 밟지 않고 벌레조차 잡아먹지 않는 인후한 짐승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왕실의 자손이 많고 인후함을 상징한 것이다. 역시 상상 속의 괴수이다.
중국 고서인 ‘이물지’에 의하면 해치는 “동북 변방에 있는 짐승이며,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는다”고 되어 있다. 그 후 해치는 고종 때 광화문 앞 좌우에 석상으로 세워져 경복궁에 드나드는 관리들이 마음을 경건하게 가다듬는 구역의 경계선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에 대해 아드리엔네 메이어라는 미국의 한 민속학자는 상상 속의 괴수가 단지 사람들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고대인들이 당시 발견한 화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펼쳐 한때 관심을 끌었다. 사모스섬에서 화석이 많이 발견된 매머드의 일종이며, 사자의 모습에 독수리의 부리와 날개를 가진 괴수 그리핀도 중앙아시아에서 발견된 공룡의 뼈와 연관이 있다는 것. 옛날 옛적에 멸종된 어떤 동물의 화석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
- 이성규 기자, [이야기과학실록]
- 2009.12.24/ 2010.01.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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