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마당놀이의 꽃 - 줄타기

Gijuzzang Dream 2009. 12. 31. 14:57

 

 

 

 

 

 




 

 

줄타기의 어원 및 종류

 

타기란 ‘공중의 맨 줄 위에서 줄광대가 재담·소리·발림을 섞어가며 갖가지 재주를 부리는 놀음’을

말한다. 고려시대부터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줄타기 관련 기록을 보면,

한자로 답삭희(踏索戱), 답삭(踏索), 주삭(走索), 보삭(步索), 삭상재(索上才), 주승(走繩), 이승(履繩),

사연삭(  索), 긍희( 戱), 환희( 戱), 희승(戱繩), 무환(舞 ), 고환(高 ), 승기(繩技), 승도(繩渡),

도백삭(渡白索), 주질(注叱)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한자어들은 공통적으로 ‘줄 위에서 재주를 부리며 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표현의 다양함에서 온갖 재주가 다 망라되었음도 짐작할 수 있다.

 

줄타기하면 모두 똑같은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전승되는 줄타기는 연행자의 성격을 기준으로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가 ‘광대 줄타기’이며 다른 하나는 ‘뜬광대 줄타기’이다.

‘광대 줄타기’는 관아에 예속되어 정착한 대령광대(待令廣大)가 연행하는 것이다.

반면에 ‘뜬광대 줄타기’는 ‘어름 줄타기’라고도 불리는데, 유랑광대(流浪廣大)에 의해 연행되는 것이다.

‘광대 줄타기’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되어 현재 그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뜬광대 줄타기’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남사당놀이의 한 종목으로 전승되고 있다.

 


마당놀이의 꽃, ‘판줄’

 

예능보유자 김대균에 의해 전승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는 ‘광대 줄타기’를 계승한 것이다.

이 줄타기의 특징은 짧은 시간에 몇 가지 재미있는 잔노릇(기예)만 보여주는 ‘도막줄’이 아니라, ‘판줄’이라는 데 있다. ‘도막줄’이란 줄광대 혼자서 간단한 재담과 잔노릇 몇 가지만 짧은 시간에 보여주는 줄타기 연행을 말한다.

이에 비해 ‘판줄’은 줄광대가 다양한 잔노릇은 물론이고, 줄타기 기예 가운데 가장 어렵다는 살판,

갖가지 소리 · 재담 · 춤 · 흉내내기 등이 어우러지는 중놀이와 왈자놀이 등을 어릿광대와

악사인 삼현재비들과  함께 길게 연행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김대균에 의해 전승되는 줄타기는 ‘광대 줄타기’ 계열이며,

줄타기 연행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판줄’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판줄’을 연행하는 광대들

 

흔히 줄타기하면 줄을 타는 광대만을 떠올리기가 쉽다.

줄 위에서 여러 가지 잔노릇으로 재주를 선 보일뿐만 아니라,

재담과 노래 및 춤까지 보여주는 이가 줄광대이다.

사실상 ‘판줄’ 연행을 주도하는 이가 줄광대인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판줄’ 연행에는 줄광대뿐만 아니라, 어릿광대와 삼현육각재비 등이 함께 참여한다.

줄광대가 소리를 하고 춤을 출 때 바탕이 되는 반주를 하는 이들이 삼현육각재비들이며,

줄광대의 재담을 받아주고 되받아치는 이가 어릿광대이다.

어릿광대는 줄광대가 줄을 탈 때 땅 위에서 움직이며 익살을 부리고, 줄광대와 재담을 주고받는다.

어릿광대의 주된 역할은 줄 밑에서 줄광대의 상대가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놀이 대목에서는 장삼과 고깔, 죽장 등과 같은 의상과 소도구들을

줄광대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며,

왈자놀이 대목에서는 왈자로 분해서 줄광대와 파자(破字)놀이를 하기도 한다.

줄광대와의 공존 속에서 판줄을 연행하는 또 하나의 주요 연행자가 어릿광대인 것이다.

 



삼현육각재비는 북, 장구, 피리, 대금, 해금 등을 연주하는 악사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줄 밑에 자리하며 ‘판줄’ 연행에서 없어서는 안 될 나름의 역할을 한다.

삼현육각재비의 반주는 줄광대의 기예를 율동감있고 날렵한 느낌이 나게 만들어준다.

줄타기 연행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는 반주는 연행판의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또한 줄광대 연행 사이사이에 단독 연주와 합주를 하여,

줄광대가 적절하게 휴식을 취하며 연행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장구재비인 경우는 때에 따라서 어릿광대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줄광대와 어릿광대가 신명나게 연행을 하고,

이에 관중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는데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이 삼현육각재비들이라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판줄’은 그 연행 시간이 한나절 정도이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연행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연행의 분량이 풍부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내용과 형식도 유기적으로 짜여있어야 한다.

이러한 판줄 연행을 하려면 줄광대의 기예만으로는 미흡한 점이 많다.

삼현육각재비의 반주 · 협주 · 독주, 어릿광대의 갖은 재담과 소리 · 흉내내기 등이,

줄광대의 소리 · 재담 · 기예 등과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다.

결국 ‘판줄’ 연행은 줄광대, 어릿광대, 삼현육각재비들의 공존과 어우러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판줄’ 연행이 단순히 줄을 타는 묘기만을 보여주는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기예(技藝)이며 연희(演戱)라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줄광대, 어릿광대, 삼현육각재비의 존재 자체가 ‘판줄’ 연행을 기예이고 연희이게 하는 것이다.

 




‘판줄’ 연행의 과정

 

‘판줄’ 연행은 줄광대가 줄에 오르기 전에 이루어지는 줄고사로부터 시작된다.

줄에 오르기 전에 줄광대가 지내는 줄고사는 줄타기 스승과 선배들에게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줄을 타게 해달라고 빌고, 관중들 역시 건강과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줄고사가 끝나면 본격적인 줄타기 연행이 이루어진다.

줄타기는 줄광대가 염불장단에 맞추어서 줄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줄광대가 작수목에 오르면 쉬-하고 반주소리를 그치게 하고 재담을 하면서 비교적 쉬운 잔노릇들을

보여준다. 잔노릇은 ‘판줄’ 연행의 뒷 부분에서 벌이는 ‘살판’과 같은 큰 놀음의 반대 개념으로,

한 발을 굽히고 한 발을 줄 밑으로 늘어뜨리는 ‘외홍잡이’, 몸을 날려 돌아앉는 ‘거중틀기’,

왼발을 꿇고 오른발을 세우고 앉는 ‘무릎꿇기’ 등과 같은 잡다한 곡예적 동작을 말한다.

 

비교적 쉬운 잔노릇 연행에 이어서 중놀이, 왈자놀이가 이어진다.

줄광대와 어릿광대의 댓거리를 기반으로 해 재담과 소리 그리고 흉내내기가 이 대목에서 흥겹게 연행된다.

공중에서 이루어지는 줄타기 기예가 갖는 긴장감이 이 대목에서 다소 완화되는 효과를 낳는다.

중놀이, 왈자놀이에 이어 다시 줄타기 기예를 중심으로 한 연행이 벌어진다.

전반부에서 펼쳐진 기예가 비교적 쉬운 잔노릇이었다면,

후반부에는 ‘칠보 달어치기’, ‘허공잡이’, ‘살판’ 등과 같은 고난도의 연결 및 결합 동작이 주로 연행된다.

줄 위에 일어서서 뒤로 뛰어올라 몸을 날려 공중제비를 한바퀴 한 다음

줄 위에 앉는 ‘살판’과 같은 기예가 이 대목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살판이 끝나면 줄타기를 마무리 하는 대목이 이어진다.

줄광대는 관중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건강과 행운을 다시 한번 기원하고, 줄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줄 아래에서 어릿광대와 함께 관중들과 악사석에 인사를 마치고 퇴장하는 것으로

줄타기가 끝난다 .


기예 혹은 연희로서의 ‘판줄’ 연행이 갖는 의미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는 ‘판줄’ 연행을 지향한다.

앞에서 대체적으로 살폈듯이, 줄타기 연행은 묘기에 가까운 기술적 속성을 갖는 것이면서 동시에 재담, 소리, 흉내내기 등이 어우러지는 예술적 속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

기술과 예술이 공존하며 통합되어 전승되는 흔치 않은 사례가 줄타기인 것이다. 그야말로 명실상부하게 ‘기예’라 부를 수 있는 드문 사례이다. 이러한 특징은 우리로 하여금 줄타기를 ‘연희’라 부를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기예 혹은 연희로서의 속성은 현재 전승되는 대한민국 줄타기 전반이 공유하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웃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 여러 나라의 묘기적 줄타기와 변별되는

우리만의 독특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이 아닌 기예로서의 줄타기, 묘기가 아닌 연희로서의 줄타기,

이것이 우리의 줄타기가 갖는 독특한 얼굴이고 나름의 의의인 것이다.   


글·허용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사진·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최원진

-  2009-12-04 월간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