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官) 주도의 책 출판
조선시대의 출판은 그 대부분이 官 주도로 이루어졌었는데, 현대와는 달리 책은 판매용이 아니고 국가이념을 전파하는 매체로서의 성격이 강하였다. 그 때문에 출판되는 책은 보관용을 포함하여 몇몇 고위관리와 양반들에게 주로 배포되었고 그 생산과 유통은 제한적이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다. 유교의 이념을 나라의 근간으로 하는 조선에서 서적의 출판은 백성을 교화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였고, 조선시대 정부는 이를 적극 활용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관의 주도로 출판된 서적을 ‘관판본(官板本)’이라고 부르는데 출판이 이루어졌던 중앙관청으로는 교서관(校書館)이 대표적이다. 출판인쇄가 주요업무는 아니었지만 관상감(觀象監), 사역원(司譯院), 시강원(侍講院), 내의원(內醫院) 등에서도 각 관청의 성격에 걸맞는 출판활동이 있었으며, 필요에 따라 찬수청(撰修廳), 찬집청(撰集廳), 교정청(校正廳) 등과 같은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서적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조선 초기에 불경을 주로 간행하였던 간경도감(刊經都監)이나 큰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하였던 17세기초에 목활자로 책을 인쇄한 훈련도감(訓鍊都監) 등은 대표적 임시출판기구이다. 지방에서는 영영(嶺營, 경상도 감영), 완영(完營, 전라도 감영), 기영(箕營, 평안도 감영) 등과 같은 감영이 서적 생산의 중심지였다. 또한 정부주도의 관판본에 비해서 그 비중이 적긴 하였지만 민간에서도 사찰, 서원, 문중 그리고 개인이 필요에 따라 서적을 간행하였었고, 후기에 들어서는 상업적인 목적에서 출판되는 방각본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책이 주로 공적인 성격으로 생산되어 왔기 때문에 판매를 통한 책의 유통은 이웃 중국, 일본에 비하여 그다지 활발하지 못하였다. (책 판매에 관한 논의가 16세기 이후로 몇 차례 있었지만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였고, 19세기 들어서야 본격적인 서점과 판매를 위한 방각본이 활성화된다.)
官에서 만들어진 책은 판매가 아닌 왕이 하사를 하는 방식으로 배포되었는데, 이를 ‘반사(頒賜)’ 또는 ‘내사(內賜)’라고 하였다. 반사를 할 때에는 표지 안쪽에 반사 날짜와 대상을 기록하는 ‘반사기(頒賜記)’또는 ‘내사기(內賜記)’를 기록하였다. 반사의 대상은 기본적으로 태백산, 오대산, 적상산 등에 있었던 사고(史庫)나 중앙과 지방의 주요 관청, 그리고 중앙관서의 현직 고관, 퇴임 고관, 지방 관료 등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책의 출판은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이루어졌던 것일까? 수많은 출판기관들이 조선시대에 존재하였다. 요즘처럼 인쇄와 발행이 명확히 구분된 경우가 많지 않았으며, 중앙의 경우 구분하여 수록되기도 하였는데, 대부분 교서관이 인쇄를 담당하고 발행은 각 기관별로 명칭이 언급되거나 출판된 책의 책판을 보관하기도 하였다.
간경도감이 짧은 시간 존속하면서 많은 불경을 간행한 반면, 교서관은 출판기구 중에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래 존속한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관은 중앙정부의 인쇄를 담당하였으며, 공식적으로 관서명이 교서관으로 정해진 것은 1484년에 들어서였다.
중앙에서 생산한 서적은 판각과 인쇄 수준이 대단히 높고 그 중에서도 교서관 인쇄본이 대표적이다.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에는 교서관에서 일하는 장인들이 글자가 틀렸거나 책에 오류가 발생하였을 경우에 대한 처벌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놓았는데, 글자 한자가 틀렸을 경우 30대의 매를 맞았다. 책의 제작에 들인 정성과 조선전기 관판본의 오류가 적은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교서관처럼 주 업무를 출판으로 삼지 않은 관청에서도 책을 출판하는 경우가 많았다. 날씨와 천문을 측정하는 별도의 기관인 관상감(觀象監)에서도 출판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관상감의 주 업무는 천체관측, 기상관측, 지도제작, 택일 등이었지만 매 해마다 현재의 달력과 같은 책력(冊曆)을 간행하여 배포하는 일도 담당하였다. 책력은 요즘처럼 연말에 선물용으로 배포되기도 하였다. 인쇄부수가 많이 소요되어 대부분 목판으로 간행되었으나 비교적 이른 시기의 책력은 관상감활자로 불려지는 금속활자로 간행된 것이 많다.
외국어의 번역과 통역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역원(司譯院)도 책을 간행하였다. 주로 중국어, 일본어, 몽고어, 만주어 등 외국어 교육을 위한 학습서를 출판하였는데 『노걸대(老乞大)』, 『박통사(朴通事)』, 『첩해신어(捷解新語)』등이 대표적이다. 간경도감이나 교서관 같은 경우에는 전문적인 출판기관이었으나, 관상감, 사역원 등의 기관은 각자 기관의 성격에 맞는 서적들을 필요에 의해서 출판하였던 것이다.
지방의 인쇄와 책판
책의 주제를 놓고 보면 매우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목판본 출판을 위해서 판각된 책판의 종수로 본다면 지방관아에서도 출판활동도 중앙에 못지않게 활발하였다. 문헌만으로 확인되는 16세기 말까지의 지방관아에서 보관하고 있는 책판의 종수는 약 980종이다. 그 후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의 발발로 잠시 주춤하였던 서적의 간행은 17세기 후반부터는 차츰 회복하여 18세기 초까지 활발한 간행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지방관아에서의 간행활동은『고사촬요(攷事撮要)』,『누판고(鏤板考)』, 『제도책판목록(諸道冊版目錄)』등의 책판목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중 정조 20년(1796)에 편찬한 『누판고』에는 관판본 외에도 사찰, 서원,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책판까지 소개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조선시대에는 정부 이외에도 민간에서 사찰, 서원, 문중, 개인이 서적을 간행하는 경우가 있었다. 각각의 주체들은 어떠한 출판활동을 하였을까. 조선시대 사찰에서의 출판은 고려시대에 비해서는 크게 위축되었지만 여전히 민간의 서적 간행에 있어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사찰에서는 공양 및 포교를 위해, 또는 신도들이 기복을 위하여 시주의 형식으로 불경을 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초기에는 주로 고려시대 간본을 번각하였고, 15세기에는 유명 서예가의 필사본을 바탕으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그리고 16세기 이후는 주로 이전의 사찰판과 간경도감판, 국왕 및 왕실판, 주자소활자판을 번각하였다. 이 중 독자성을 띤 사찰본은 고승(高僧)들의 어록 및 문집류와 국역불경류가 약간 있고, 불경외에도 일반의 시문집, 몽구서(蒙求書) 등이 간행되기도 하였다. 사찰판에는 책 끝에 간인기(刊印記), 시주자와 각수 등 간행에 참여한 자들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어 당시의 서적제작의 형태와 모습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된다.
서원은 대표적인 유학 교육기관으로서 이곳에서도 서원과 관련된 인물, 유학자 및 유학서등의 책을 간행하는 경우가 있었다. 책을 출판한 서원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의 것으로는 청량서원(淸凉書院), 천곡서원(川谷書院), 명곡서원, 임고서원 등이 있으며 모두 16세기 말에 책을 출판하였다.
앞서 소개한 『누판고』에는 서원에 소장된 목판의 목록도 실려 있는데, 모두 84개소의 서원에서 개판(開板)하여 책판 184종이 있었다고 한다. 지역별로는 경상도 서원 127종, 충청도 서원 22종, 전라도 서원 21종, 황해도 서원 8종, 경기도 · 평안도 · 함경도 서원 각 2종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서원판의 간행은 많지 않고 판각의 수준이 관판본에 비하여 낮은 편이었다.
문중과 개인에 의해 간행된 서적으로 고려시대에는 불서(佛書)가 많이 간행되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시문집, 전기, 족보류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중에서도 문집의 간행은 개국 초부터 조선조 말기까지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조선초기에 간행된 개인 문집은 대부분이 현재 남아있지 않다. 16세기 후반부터는 실기(實記), 족보(族譜)가 출간되기 시작하여 18세기 이후에 대단히 성행하였는데, 이러한 문중과 개인에 의해 간행된 서적은 대체로 판각의 수준이 낮고 인쇄가 거친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시대에는 주변의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판매용서적이 거의 없었고, 독자적인 서점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에 서포(書鋪, 서점)을 설치하자는 주장이 이어졌지만 계속해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는 조선전체의 서적유통을 매우 제한적으로 만든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임란 이후인 17세기경부터 민간에는 돈을 받고 서적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서적들을 특별히 방각본이라고 부른다. 앞에서 알아본 여러 서적들과 이 방각본이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바로 판매, 즉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서적이 출판되었다는 데에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당나라에 서적과 방각본이 등장하여 송나라대에 성행하였던 것을 비교해 본다면 조선의 방각서적의 등장은 매우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방각본도 또한 서울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간행되었는데 이를 경판(京板) 방각본이라 하고 이외에도 완판(完板, 전주), 달판(達板, 대구), 태인판(泰仁板, 태인), 금성판(錦城板, 나주), 안성판(安城板, 안성) 등이 있다.
간행한 책의 종류에는 아동의 학습용 교재나 과거 및 교육용의 경서 · 역사서적 및 시문류, 예서, 농서, 의서, 간찰서식집, 한글 소설류 등이 있어 일반 서민들의 교육 및 독서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 2009-10-13 |
|
'알아가며(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왕조 궁중음식 (0) | 2009.10.31 |
---|---|
왕의 시(詩)에 답하다 - 갱재(賡載) (0) | 2009.10.31 |
서재에서 만나는 선비들의 내면 풍경 (0) | 2009.10.31 |
조선시대의 독서제도‘사가독서 및 독서당’을 찾아서 (0) | 2009.10.31 |
함안 성산산성 14차 발굴조사 (0) | 2009.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