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일상)

추모시) 도종환 - 벼랑에 지는 꽃

Gijuzzang Dream 2009. 6. 4. 23:44

 

 

 

 

 

 

 

 

벼랑에 지는 꽃




   바람도 없는 허공에
   들찔레꽃 하얀 잎 하나 혼자 지고 있네요

   치열하게 살았으나
   욕되게 살 수는 없어
   벼랑 끝에 한 생애를 던진 저 한 점 꽃잎의 영혼을
   하늘이여, 당신의 두 팔로 받아 안아 주소서

   그의 좌절은 나의 좌절
   그의 한계는 이 나라의 한계
   그의 굴욕은 우리들의 굴욕
   그의 자존심은 우리 모두의 자존심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으며 뉘우치노니

   그의 늑골에 금이 가는 것은
   권위주의를 벗으려는 노력에 금이 가는 것
   그의 정강이뼈가 부서지는 것은
   지역주의를 깨보려던 시도가 부서지는 것
   그가 피 흘리며 쓰러지는 것은
   정의로운 역사를 세우려던 몸부림이 쓰러지는 것
   그의 몸이 산산조각 나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 균형 발전, 평화로운 나라를 향한
   간절한 소망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이므로
   역사여, 당신의 가슴으로
   이 조각난 육신을 받아 안아 주소서

   다시는 손녀딸을 자전거에 태우고 논길을 달리는
   대통령을 가질 수 없을지 모르니
   밀짚모자를 쓰고 구멍가게 앉아 담배를 꺼내 무는
   소탈한 우리의 대통령을 만나지 못할지 모르니

   그가 꿈꾸던 아름다운 가치들이
   모조리 불에 타
   허망한 연기, 한 주먹의 재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으니
   잔혹한 시대여, 그를 우리의 벗으로 다시 돌려주소서

   그를 조롱하고 손가락질 하던 야만의 시간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있습니까
   그를 업신여기고 비아냥거리던 비겁한 권력들은
   지금 무슨 혀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가장 뜨거웠으나 가장 외로웠던 그
   가장 도전적이었으나 가장 힘들어 했던 그를
   혼자 벼랑으로 걸어가게 한 이 누구였을까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뉘우치는 눈물 발등을 적시지만
   이제 어디서 그를 만나야 합니까

   이 땅의 슬픈 역사여,
   아아, 대한민국이여!

    - 도종환 - 

 

 

 

 

 

 

-